정의를 비처럼 내리시는 하나님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이름에 나타난 호세아서의 신학-

호세아서 1장 1절-2장 25(23*)절

(*성서 장,절은 호세아서 구성의 의도를 보기 위해 히브리성서 본문 BHS 장,절에 따랐고,

우리말 성서 장,절은 별도로 괄호 안에 표기하였다)


박 경 철(감신대, 전주대, 한신대, 호서대 강사 / 구약학)



1. 들어가는 말


호세아서는 예언자 호세아가 음란한(간음한) 여인 고멜과 결혼해서 그로부터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한다(2절). 이러한 호세아서의 강한 도입부로 인해 호세아서 하면 거의 모든 이들이 제일 먼저 고멜을 떠올린다. 고멜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 자녀들의 상징적 이름으로 거론된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의 이름을 떠올리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고멜과의 결혼사건 외에는 호세아서 전체 내용을 아는 이가 드물다. 대부분의 이들이 고멜과의 결혼 이야기를 담고 있는 1-2장만 알고 있는 셈이다. 3장에서 다시 한 번 결혼 이야기가 다루어지긴 하지만, 3장에서의 여인이 고멜을 말하는 것인지는 학계의 논란이 심하다. 단 5절로만 이루어진 3장까지를 포함한다고 해도 전체 14장 중에서 고멜과의 결혼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는 내용은 전체 호세아서의 분량으로 치자면 작은 부분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호세아서에 대한 학계의 논의 역시 호세아서 전체에 대한 연구보다는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이야기를 담고 있는 호세아서의 앞부분인 1-3장까지에 대한 연구가 거의 주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이는 단지 호세아서 연구뿐만 아니라 예언서 및 구약성서 어느 책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도 전체 책에 대한 이해를 고려하지 않고 어느 한 본문, 내지는 한 단락만을 갖고 이해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어떤 한 글에 대해 어느 한 문장만을 갖고서 저자의 사상에 대해 시비를 거는 행위가 종종 시사거리가 되긴 하지만 시비 거는 자의 우매한 고집만을 드러내는 것임을 자주 보곤 한다. 오늘날 많은 설교들 역시, 설교를 위해 정해진 특정 성서본문에 대해서 그 성서본문이 들어 있는 문맥과 나아가 본문이 들어있는 그 책 전체와는 관련이 없이 행해지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호세아서에 대한 대부분의 설교가 음란한 여인 고멜의 이야기를 가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과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행해진다면, 이는 자칫 호세아서 전체 신학적 의미와는 벗어나는 설교가 되기 쉽다.

호세아서에 대한 이상의 잘못된 시각은 바알숭배로 인한 죄지은 이스라엘을 여성으로 인식함으로써 호세아서는 남성주의적 성서해석의 기초를 제공해 준 성서본문으로 인식되어 왔다. 물론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는 신실한 남편의 사랑을 묘사하는 하나님(남성)과 이를 배반하고 바람을 피우는 아내인 이스라엘(여성)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줌으로써 ‘남성 하나님’-‘여성 이스라엘’이라는 도식을 그려준다. 그러나 이는 호세아서 전체의 시각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여성적으로 묘사한다든가(11:3-4) 또는 이스라엘을 남성(아들, 11:1)으로 묘사하는 본문 역시 호세아서 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호세아서 4장 이하에서는 이스라엘의 범죄의 대상으로 제사장, 예언자, 정치 권력자, 가장들인 남성들로 지목하기도 한다. 남성들의 간음이 문제이지, 여성들(딸, 며느리)의 음행은 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까지 말한다(4:14). 그렇기 때문에 호세아서에 대한 설교를 단지 여자의 범죄, 고멜의 이야기만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이스라엘을 왜 여성(고멜)으로 비유하는 것일까? 호세아서는 바알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자 호세아를 통한 하나님의 고발과, 훈계를 담고 있는 책이다. 바알종교의 내용을 살펴보면 바알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이 무엇 때문에 여성으로 특히 여성의 성적행위로 비유되고 있는지를 곧 알 수 있다. 바알 종교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바알 신이 곧 남성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바람, 구름, 비를 다스리고 천둥과 번개 속에서 등장하는 곧 자연을 다스리는 신이다. 자연을 관장하는 바알의 특징은 땅을 경작하는 농경문화에서는 가장 강력한 숭배의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바알은 남성으로서 어머니 신인 땅에 비(정액)를 내려주고 이로 인해 땅은 생산을 하게 된다. 바알신은 곧 풍요와 다산의 신인 셈이었다. 땅이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는 바알의 정액(비)을 기다리고 맞아야 했다. 이런 상징적 관계는 곧 바알 종교적 제의가 성적인 것으로 묘사되었고, 실제 종교적인 성적 행위(sexual Kult)가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남성적 신인 바알을 숭배하는 풍요와 다산을 위한 종교 제의의 내용이 여성의 성적 행위의 모습으로 비추어 진 것이다. 이스라엘이 여성으로 상징화 되는 이유는 단지 이뿐이다. 만약 바알이 여성 신이었고 이스라엘이 그를 섬겼다면,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의 모습은 남성의 성적 행위로 묘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호세아와 고멜의 내용이 마치 호세아서 전체인 것으로 잘못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호세아서 전체는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호세아와 고멜의 이야기가 호세아서 전체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2. 호세아서 전체 구성과 내용


호세아서는 서언(표제어)과 맺는말이 앞, 뒤에 있고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각 단락은 의도적인 구성을 보일 뿐 아니라, 각 단락들은 서로 중요한 단어(리브, 슈브)와 주제(심판과 구원)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서언(표제어)    1:1

I       1:2-3:5 (심판과 구원)

                처음 1:2 야훼를 떠남

                끝   3:5 야훼를 다시 찾을 것

                공통주제        2:4 리브(논쟁/변론 문체’: 호세아서 핵심단어 1)

                                3:5 슈브(‘돌아오다’: 호세아서 핵심단어 2)

II      4:1-11:11 (심판과 구원)

                처음 4:1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끝   11:11 “야훼의 말씀이다”

                공통주제        4:1.4 리브(논쟁/변론 문체’: 호세아서 핵심단어 1)

                                11:11 슈브(‘돌아오다’: 호세아서 핵심단어 2)

III     12:1(11:12)-14:10(9) (심판과 구원)

                처음 12:1(11:12) 에브라임의 범죄

                끝   14:9(8)    에브라임의 구원

                공통주제        12:2(3) 리브(논쟁/변론 문체’: 호세아서 핵심단어 1)

                                14:2(1).3(2).8(9) 슈브(‘돌아오다’: 호세아서 핵심단어 2)

맺는말  14:10(9) 의인과 악인의 길


이상의 호세아서 전체 구성은 호세아와 고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1-3장이 별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 호세아서의 구성이 보여주는 신학적 주제와 매우 잘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고발(리브)과 심판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범죄한 길로부터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라(슈브)는 권면을 받는다. 호세아서 전체의 마지막은 지혜로운 자는 이 책에 쓰여진 것을 깨달으며, 의인은 야훼의 길을 따르지만, 악인은 그렇지 않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의인과 악인의 구분은 12소예언서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 마지막 장의 주제이기도 하고, 히브리성서 정경의 순서에 따르면 호세아서의 마지막 말은 12소예언서 다음에 나오는 성문서의 첫 번째 책인 시편 1편의 마지막 말이기도 하다. 또한 히브리성서 정경의 제2부 예언서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의 마지막 말(3:22-24/4:4-6)이 제1부 토라와 2부 예언서의 결론구이며, 제3부 첫 번째 책인 시편의 제1편은 제2부 예언서의 첫 번째 책인 여호수아서 1:8과 긴밀한 연결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히브리성서 정경의 의도적인 신학적 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호세아서의 중심 내용은 바알 종교제의의 빠진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고발과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권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호세아서는 바알 종교 제의의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언서들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사회적 불의의 문제까지를 포함하고 있다(4:2; 7:1-2; 11:12-13; 12:8(7)). 특히 호세아서 전체 신학의 특징 중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가나안땅 점령이후와 이스라엘의 왕조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4:15; 7;3ff; 8:4.14; 9:15f; 10:9; 13:10)을 취하는 반면에, 에집트와 광야 시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2:17; 9:10; 11:1; 12:10)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에 대한 일반적인 기억은 부정적이다. 이스라엘이 에집트로부터 해방시킨 야훼의 구원의 은총을 잊어버리고 수 없이 불평하고, 금송아지를 섬겼던 불신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세아서에 와서는 광야시절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만난 곳이요(9:10), 하나님은 에집트 땅에서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반복해서 강조한다(12:9(10); 13:4). 호세아서의 광야시절에 대한 향수와 왕조에 대한 비난은 이스라엘의 바알 종교 숭배와 무관하지 않다. 이스라엘이 광야시절을 지나 가나안 땅 정착과 함께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었던 광야에서 인도해주셨던 야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제 자신들이 농사짓는 땅에 비를 내려주고 풍요를 가져다주는 바알을 섬기게 된 것이다. 바알 숭배와 이스라엘의 왕조에 대한 호세아서의 비난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장소인 지방 성소들(길갈, 벧엘, 세겜)에 대한 비난은 호세아서 곳곳에 이스라엘 왕조의 비난과 맞물려 있다.

이상에서 본 호세아서 전체의 내용인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 사회 불의의 문제, 광야시절에 대한 향수와 이스라엘 왕조에 대한 부정 등의 모든 내용이 바로 호세아서 첫 단락인 1-2(3)장안에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이름들의 대조적인 표현을 통해 심판과 구원이라는 틀 속에 들어 있다. 이제 그 자녀들의 이름 안에 나타난 호세아서의 메시지를 살펴보자.


3. 호세아의 세 자녀들과 호세아서 전체 신학


예언자 호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라는 명령 외에 그로부터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명령을 함께 받는다. 호세아서 1장과 2장은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1장에서 세 자녀들의 이름인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가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면, 2장 처음(2:2-3(1:10-11))과 마지막(2:23(25))에서 이들은 다시 구원의 의미로 바꾸어진다(이스르엘 땅의 축복/ 로루하마(은혜를 받지 못한 자) → 루하마(은혜를 받은 자)/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암미(내 백성).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이름들이 상징과 함께 서로 대조적인 모습으로 번갈아 나타남으로써, 한편으론 호세아 예언의 내용을 어렵게 할지도 모르나, 이는 모든 예언서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된 내용임을 이해한다면 호세아서 역시 모든 예언서들의 공통된 구성요소를 따르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심판과 구원은 서로 분리되는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호세아서 1-2장의 내용은 호세아서 전체 내용을 모두 포함할 뿐 아니라, 세 자녀들의 이름이 지닌 심판과 구원의 상징은 곧 호세아서 전체 구성과 그 맥을 같이한다.


1) 바알종교와 이스르엘과 예후

호세아서 전체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이름 중 유독 첫 아들에게만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으로 독특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둘째, 셋째의 이름은 죄지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상징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첫째의 이름은 왜 ‘이스르엘’일까? 히브리어 글자적 의미는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다’ 이지만, 이는 죄지은 이스라엘에 대한 어떤 상징도 담고 있지 않다.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은 갈멜산 자락의 비옥한 이스라엘의 평야지대인 지명이다. 그러나 호세아서는 단순히 이 땅의 이름을 거론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 얽힌 분명한 역사적 사건 장소로서의 ‘이스르엘’을 거론하고 있다. 또한 이 지명은 호세아서 전체 신학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 이름을 이스르엘 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꺽으리라 하시니라” (1:4)


‘이스르엘’ 이라는 이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 중에 거론되는 이름이 예후이다. 예후가 누구이며, 호세아는 왜 자신의 첫 자식의 이름에서 이 예후의 이름을 거론하는가? 이것이 전체 호세아서의 내용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이스라엘에서 바알 종교 제의와 야훼 신앙사이의 가장 큰 문제를 제기한 사건은 바로 아합왕 시절 엘리야의 갈멜산에서의 바알 선지자들과의 싸움이다(왕상 16:30-18:46). 이스라엘에 가뭄이 심했을 때, 비를 내려줄 이가 누구인지, 누가 참 신인지를 가려냈던 일이다.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이방여인 이세벨과의 정략적 결혼을 통해 이스라엘 땅에 바알종교를 가장 크게 일으켰던 왕이다(왕상 16:30-33). 아합왕과 엘리야와 예후를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사건은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다(왕상 21장).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과 이세벨에 대한 엘리야의 심판의 예언은 예후에 와서 이루어진다. 이 모든 이야기의 장소 배경은 바로 ‘이스르엘’이다.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곳이 ‘이스르엘’이고, ‘이스르엘’에 흘린 나봇의 피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의 심판 장소로 엘리야가 예언한 곳 역시 ‘이스르엘’이다(왕상 21:19). 예후가 이세벨을 죽인 곳으로 ‘이스르엘’을 지명하는 것은 엘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으로 말한다(왕하 9:36). 예후의 혁명의 장소가 또한 ‘이스르엘’이다(왕하 9:25). 예후의 치적 중 칭송받는 부분은 예후의 바알종교 척결이라는 점에 있다(왕하 10:28).

호세아서 1:1절의 표제어는 호세아 예언의 시기가 유다의 웃시야 시대 이후와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 시대 그 이후를 말해 주는데, 이는 이스라엘에서 바알종교를 가장 많이 성행케 했던 아합왕 그 이후의 시대를 말해주며, 바알 종교를 피로 얼룩지게 했던 예후 혁명 그 이후의 시기인 셈이다. 호세아서의 첫 표제어를 읽는 독자는 예후 혁명 이후 유다와 이스라엘 사회로 눈을 돌리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호세아서가 이스라엘의 음란(간음)의 죄악의 문제인 바알 종교 거부를 중요시 하고 있다면, 바알 종교를 척결한 예후에 대해서 호세아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왜, 호세아서는 가장 처음에 첫 아들의 이름을 통해 ‘이스르엘’에서의 예후의 죄를 심판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2) 구원의 조건-평화와 정의

이상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이 들어있는 단락의 전체 구성을 통해 보아야 한다. 호세아서 1-2장은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처음과 끝에 대조적으로 씀으로써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가 하나의 통일성을 이룬 구성을 보여주며, 호세아서 전체 서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심판   A      1:4             이스르엘-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음

        B      1:6             로루하마-은혜를 입지 못한 자

        C      1:9             로암미-내 백성이 아님

구원   A‘     2:24(22)         풍요롭게 될 이스르엘

        B‘      2:25a(23a)      로루하마→루하마

        C‘      2:25b(23b)      로암미→암미


위의 호세아서 1-2장의 구성이 심판과 구원을 잘 보여주지만 2:20(18)-23(21)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어떻게 구원 선언으로 바꾸어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심판이 구원으로 바꾸어지는 동기는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온 땅의 생명들과 언약을 세우시는 일이며, 땅에서 활과 칼의 전쟁의 무기를 없애시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정의와 공의, 은총과 긍휼로 새로운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될 것이며, 하늘과 땅이 서로 침묵의 무관심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응답하는 하나의 일치된 관계로 회복될 것임을 말한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자(로루하마)가 은혜를 받는 자(루하마)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로암미)가 다시 하나님의 백성(암미)으로 구원의 신탁이 주어지는 그 변화의 관계에는 전쟁의 모든 폭력이 없어지는 것이며, 정의와 공의가 다시 살아나는 관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호세아의 첫 번째 아들의 이름인 ‘이스르엘’이 심판의 이유가 되었던 것은 예후의 ‘이스르엘’에서의 폭력과 살인을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예후의 혁명이 활과 칼로 폭력과 살인을 저질렀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시대는 모든 활과 칼을 꺾어버리는 평화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의 표상에 온 땅의 생명들과 언약을 맺는 것으로 묘사하는 2장 20(18)절은 창 9장의 노아계약을 떠올리게 한다. 홍수심판 이후 창 9:10에서 하나님은 모든 생명체와 언약(베리트)을 세우시고, 인간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준다.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땅에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이다(창 9:5f). 구약성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과 온 생명체와의 계약/언약은 하나님의 새 창조 세계 질서의 가장 우선하는 원칙이다.

‘이스르엘’에서 나봇의 피를 흘리게 한 아합과 이세벨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단호했다면, 바알 종교 숭배자들을 ‘이스르엘’에서 피를 흘리게 했던 예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또한 단호했다. 호세아서가 바알 종교 제의를 단호하게 거부하지만 바알 종교 제의를 척결했던 예후에 의해 저질러진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첫 원칙에 대한 예후의 피의 범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호세아서는 가장 먼저 분명히 못을 박아 놓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예후의 집, 이스라엘 족속을 폐하고 이스라엘의 활을 꺾겠다는 것은 피로 세운 이스라엘 왕조에 대한 호세아서의 강한 반대를 의미한다(8:4.14). 순수한 야훼 신앙의 근본이 피로 얼룩지는 것에 대한 절대 반대의 표시이다. 전쟁의 무기를 없애고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구원의 때로 말하는 것은 이사야서 2장 4절(미 4:2)과 동일하다. 이사야서의 표제어(사 1:1)와 호세아서의 표제어가 서로 같은 시기의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 이스라엘의 거짓된 예배 행위에 대한 비난의 말이 이사야서 처음(사 1:13)과 호세아서 처음(호 2:13(11))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점, 자녀의 상징적 이름의 거론(사 8:3)과 무엇보다도 정의와 공의에 대한 이사야서 1장에서의 주장은 이사야서 첫 단락이 12소예언서 첫 번째 책인 호세아서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엿보이게 하는 점이기도 하다. 전쟁의 무기를 없애고 살인을 금지하며 평화와 정의에 대한 요구는 호세아서의 근본 주제 중 하나다(10:12; 12:7(6)).


3) 풍요의 주인인 야훼를 알아라!

호세아서의 근본 주제인 바알 종교 거부는 이스라엘 백성이 풍요의 근원을 바알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부정과 함께 오직 야훼만이 풍요케 하시는 절대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호세아서 곳곳에 드러난 바알종교 거부와 이스라엘의 광야시절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이 서로 결합되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오래 전 에집트 땅에서 살 때와 올라오던 그 때부터도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음을 강조하는 것과 맞물려 있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경작하지 못하고 의지할 곳이 없던 광야 시절에 그들을 먹이고 인도했던 생명의 주인은 바로 야훼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깨닫고 알라고 권면한다(6:6). 이상의 호세아서 전반에 나타나는 사상이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호세아서 첫 단락 안에서도 모두 나타난다. 풍요의 근원이 오직 야훼임에도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겼다(2:10(8)). 결국 야훼는 이스라엘을 광야로 다시 데리고 나가서 에집트로부터 올라오던 때의 기쁨을 되찾기를 원한다(2:16(14)-17(15)). 바알 종교의 풍요와 다산의 근원은 하늘이 땅에 비를 내려 줌으로 땅이 그 소산물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2장 23-24절(21-22)에서 이 모든 관계의 근원은 다름 아닌 야훼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야훼가 하늘에 대답하니 하늘이 땅에 대답하고 땅이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으로 이스르엘에 대답한다는 것이다. 살인과 폭력의 피로 물든 땅 이스르엘의 비옥한 풍요의 근원은 오직 야훼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풍요의 근거는 이스르엘 땅이 바로 살인과 폭력의 금지의 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앞서 전제하고 있다. 바알 종교 제의 거부와 사회 정의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알이 비를 내려주어 땅이 풍요로워 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땅에 정의의 씨앗을 뿌리 때에야 하나님께서 정의의 비를 내려 주실 것이라(호 10:12). 결국 온 땅의 생명들과 맺은 계약은 온 땅에서의 전쟁의 사라짐과 모든 전쟁 무기가 파기된 평화의 세상이며, 정의와 공의의 회복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2:22(20). 호세아서는 끊임없이 이 하나님을 알기(깨닫기)를 원하고 그에게 돌아오기를 권면한다. ‘돌아오라’(슈브)는 말은 호세아서 각 단락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호세아서 전체 구성의 핵심 단어이다(3:5; 11:11; 14:2(1).3(2).8(9)).


4. 나가는 말: 적용과 메시지


호세아의 결혼과 세 자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호세아서 1-2(3)장의 성서본문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이에 대한 설교 적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점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본문을 전체 호세아서의 구성과 내용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설교에서 흔히 보게 되는 성서본문에 대한 자의적 해석은 거의 대부분이 설교 본문으로 잡은 성서 본문만을 갖고 그 안에 담겨진 단어들에 대해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설교자가 성서 본문에 대한 기존의 역사비평연구자료에 너무 쉽게 의존하는데 있다. 하나의 성서 본문에 대해 학자마다 의견이 다 동일한 것은 아니다. 또한 성서 해석학의 방법들도 많이 변화해 가고 있다. 필자가 위에서 소개한 방법은 최종형태 성서 본문에 대한 역사적 재구성을 하는 통시적(synchronic) 비평 작업이 아니라, 현 최종형태 본문에 대한 공시적(diachronic) 연구방법이고, 특히 전체 호세아서의 구성과 필자가 선택한 성서 본문 단락의 자체 구성을 살펴봄으로써 호세아서 첫 번째 단락 안에 있는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호세아서 전체 신학의 메시지를 찾는 방법이었다.

호세아 예언자 당시 이스라엘에서 바알 숭배의 의미가 풍요와 다산이었다면,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물질만능주의라는 또 다른 바알신 숭배가 만연해 있음과 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엘리야 시대부터 이미 이스라엘 안에는 바알신앙과 야훼 신앙간의 혼합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이 바알이고, 야훼인지 구분 못하는 야훼의 예언자들까지도 있었다. 오늘날 교회는 이단에 대해 정죄의 칼을 높이 들고 있지만, 정작 교회와 성도들의 삶 속 깊이 야훼 대신 다른 것이 신앙의 대상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 지, 또는 자신들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이 둘이 서로 공존하고 있지는 않은 지 살펴 볼 일이다. 정의와 평화(야훼신앙)를 외면한 자신들의 풍요로운 삶(바알신앙)만을 위해 교회가 온갖 치장을 하고 맘몬(바알)을 좇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살펴 볼 일이다. 정의와 평화를 외면한 자신의 권력 쟁탈을 위해 바알 숭배를 진멸했던 예후의 칼이 자신의 신앙만을 외치며 타 종교, 문화를 향해 서슬 퍼렇게 내리치고 있는 중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호세아서 마지막 말을 다시 꺼낸다면, 지혜로운 자, 총명한 자는 이를 깨달아 알라고 한다. 성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호세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던 야훼의 말씀은 오늘 호세아서를 읽고 듣는 모든 이들에게도 생생하게 들려야 하고 외쳐져야 한다. 이것이 설교의 필수 요소이다.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라. 지금은 너희가 주를 찾을 때이다. 묵은 땅을 갈아 엎어라. 나 주가 너희에게 가서 정의를 비처럼 내려 주겠다.”(호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