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개론 게시판

  F.크뤼제만, 기독교인인 내가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박경철
  

기독교인인 내가 구약성서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Muß ich mich als Christ an das Gestz des Alten Testaments halten?
Frank Crüsemann, 번역 박경철


복음서가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예수 역시도 그의 제자들로부터 위의 질문을 받았다고 보인다. 산상수훈에서의 그의 대답은 이렇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f.). 누구든지 가장 작은 계명 하나까지라도 행해야하고 가르쳐야한다(V.19, cf. 23:2f.). 예수의 가르침은, 예를 들어 이른 바 ‘반제’(Antithese, 5:21-48)를 들여다보면, “옛 사람에게 말한 (것)”을 없애려 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그것을 보존하고 더욱 확실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표현에 따르면, 예수가 “율법의 울타리”를 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을 막기 위해선 이웃에 대한 악한 생각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이고(5:21f.), 부부생활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이미 다른 여자를 보고 음탕한 마음을 품는 것을 제해야 된다는 것이다(5:27f.).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의 비유를 보면, 저 세상에 간 부자가 자기 친척들이 잘못된 행동을 돌이킬 수 있도록 간청하자, 아브라함이 그에게 일러,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날 지라도 그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눅16:31)고 대답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분명 유대 백성들 중에 속한 이들이며 제자들이다. 그러나 복음이 널리 퍼져 있는 오늘날 교회는 이것이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들에 대한 여러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교회는 이를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기독교회는 다른 길을 택했다. 초대교회 선교의 중심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도록 하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구약성서의 옛 언약의 약속들을 확인하게 되었다(예, 사 45:20ff; 습 2:11). 당연히 이들이 할례예식을 통해 유대인이 될 이유는 없었다(참고, 특히 갈라디아서). 그런데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문제 하나가 생긴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밥 먹을 때마다 일어난 음식규정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바울이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에게 서로 상대를 고려하라는 말(롬 14:1ff.)과, 이른바 사도회의에서 기본준수 사항으로써 약속했던 노아계명(행 15:20,29)의 효력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율법이 곧 구원의 길이라는 생각을 비판했다. 율법이 구원의 길이라는 생각은 구약성서뿐 아니라 후대 유대교 그 어디에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그러한 비판은 점차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갔고, 이는 점점 유대기독교를 거세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교회는 점차 유대교로부터 멀어져 갔다. 확정되어 있던 절기들은 다른 날짜에 행해졌고, 안식일은 일요일로 대체되었다. 물론 많은 윤리적 계명들만큼은 그대로 이어져 갔다. 현대에 이르러, 이제 구약성서 율법 전체는 그렇게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고, 이는 비기독교적인 것으로 그리고 이젠 극복된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모든 것이 성서의 기본 틀에서 점차 멀어지고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해야 하는 것을 교회가 의심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이것을 구약성서의 율법과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성윤리 같은 것들은 많은 것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특히 정치적 기본 규정들이나 또는 경제 정의를 위한 것들은 잊혀져 버렸다. 무엇보다도 십계명 하나만 그대로 놔두고, 여러 다양한 율법조항들을 서로 한데 묶어 새로운 조항처럼 만들어 버렸다. 곧 사랑의 계명(롬 13:8)과 사랑의 이중계명(마 22:37-49) 그리고 황금률(마 7:12) 같은 것이 그것이다. M.루터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에집트에서 나온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십계명이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고, 다른 한편으론 같은 내용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새겨주셨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가 십계명을 그의 교리문답의 한 부분으로 삼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그것은 렘 31:31ff.에서 말하는 예레미야의 새 계약은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기 때문에 ‘아무도 서로를 가르칠 필요가 없는’ 그런 정황을 보여주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런 예레미야가 말한 새 계약의 현장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그토록 종종 나쁘게 발전해 갔던 것들에 대해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은 참혹한 만행을 저질렀던 나찌 민족주의와, 타민족들에 대한 수탈, 인종차별주의 및 생태계 파괴에 대해서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 여러 모양으로 뒤엉켜있었다. 이는 신약성서 안에 있는 수많은 윤리적 문제들이 이상의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아울러 기독교인들은 구약성서의 기본규정들과 함께 가장 중요한 규범들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율법”으로서가 아닌 “토라”가 구약성서의 유일한 계명들이며, 이것이 곧 기독교 윤리를 올바르게 세울 수 있는 성서의 기본 틀이다. ‘토라’라는 말은 본래 부모의 교훈, 특히 자식에게 가르친 어머니의 교훈으로, 자식이 살아가면서 올바르게 찾아야 할 삶의 법을 뜻하는 말이다(잠 6:20). 아울러 토라는 시나이에서 주신 하나님의 계명을 가리키는 중요한 말로 쓰이기도 했다. 토라는 한편으론 종교적인 기본 규정들로, 하나님에 대한 형상금지, 안식일과 절기법등을 가리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이와 동등한 중요한 가치로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들 나아가 사회 약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다른 것으로 고칠 수 없는 기본 규정들이며, 그 내용은 여러 면에서 인권을 위한 행동들과 관련이 되는 것이다. 덧붙여 세 번째 의미로서 토라는, 법제도의 틀에서 그에 적용되는 율법을 뜻하기도 한다. 율법의 형벌조항은 로마법에서 발전하여 온 현 유럽의 법과는 다르지만, 피해를 당한 사례들에 대해 정의를 행사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율법에 기초하고 있으며, 여기다 무언가 보충했거나 현실적으로 적용시킨 신약의 것들과도 다르지 않다. 물론 그것은 오늘 우리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이를 자유롭게 그리고 책임 있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인간에게 말씀하신 그 분의 성서의 이야기로부터 떼어내 생각할 수는 없다. 이 때, 정의는 그 모든 이야기를 이끄는 가장 큰 말 중에 하나다(신 16:20). 또한 이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넘어, 동물과 자연의 관계까지도 해당한다(신 22:6; 25:4 등등). 토라는 모든 인간들에게가 아니라, 우선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비추어지는 것 때문에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우선 낯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더욱이 이는 성서시대 이후의 유대교의 해석을 위해서만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다. 따로 분리시키고 적대시 했던 오랜 역사를 단숨에 뛰어 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언가 음식규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음식규정들이 갖고 있는 지혜는 식량으로서의 동물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존엄성 사이에 대한 오늘날 책임 있는 많은 논쟁들과 미래에 서로간의 보다 나은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위하여서도 새롭게 비춰질 것이다.

“기독교인인 내가 구약성서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로마서 12장 1절에 따라, 우리의 온 삶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어하는 우리의 “합당한 예배”란 그(율법을 지키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고, 그보다 더 나은 것도 없으며, 더 현명한 것도 없다. 아울러 이보다 더 합당한 근본이란 없다(신 4:6-8).

2017-03-14 07: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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