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개론 게시판

  마티아스 밀라트,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
  박경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
Glauben Juden und Christen an denselben Gott?
Matthias Millard
(1964년생, 독일 빌레펠트 베텔신학대학교 구약학 강사, 독일 학술재단 장학생으로 성서신학(오경, 시편연구)과 유대교(유대교 성서주석과 랍비 유대교) 분야 연구)

번역 박경철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본서의 제목인 이 말은, 이 책을 만든 편집자들뿐 아니라, 본서에 기고한 모든 저자들에게 기독교의 시각에서 묻는 하나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우린 모두 분명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기에 미리 밝혀둘 것이 있다: 이 질문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물음이 유대교와 기독교가 단지 서로 특별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지 만을 묻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오해다. 그러나 일신교(一神敎) 신앙인들의 근본적인 입장에서는, 그것이 어떤 종교이든, 또 어느 나라에서 생겼든 간에 관계없이, 어차피 신은 오직 한 분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이것을 두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하나님 신앙의 특별난 공통점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물음에 대해서 기독교 시각에서 볼 때, “그렇다”라고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이유는, 유대교 성서(기독교에서는 구약성서라고 부르지만)로는 하나의 부록(Anhang)이랄 수 있는 신약성서의 전승의 틀을 통해서 이미 주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하나님과 같은 개념으로서의 헬라어 번역이다. 내용적으로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에 나온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간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약성서는 구약성서 안에 묘사된 하나님에 대한 상(像)을 받아들인 것이다. 신약성서 안에 새로이 더 추가된,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조차도 구약성서 안에 나타난 언어와 사상으로 점철된 것이다. 헬라어 신약성서 본문 안에 나오는 예수에 대한 칭호는 구약성서의 헬라어 역본에 있는 똑같은 단어와 축약형으로 쓰인 하나님의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헬라어 본문인 빌립보서에 나오는 노래는 매우 특징적인 것을 보여주는데, “(예수가)자기를 스스로 낮추셨으니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었다”(빌 2:8f.)고 한다. 이 노래에서 예수에게 붙인 ‘주’(퀴리오스)라는 칭호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감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부를 수 없는 하나님의 이름과 동일시 여겨진다. ‘주’(퀴리오스)라는 개념은 이미 구약성서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YHWH)를 대신해서 사용한 것이다. 기독교인의 입장은 간단히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예수와 함께 한 하나님으로 동일시되어 나타나셨고, 이 분이 곧 유대인이 믿는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한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의 질문, 즉 서로 함께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 기독교가 했던 형태와 방식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기독교는 분리된 유대교의 이단종파이기 때문에, 이들을 처음부터 구약에 상대해 자기들만의 새로운 신앙을 갖는 자들로 특징짓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유대교 입장에서(이슬람 측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때, 기독교 신앙은 우상숭배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참되신 유일신 하나님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라 여겨졌다.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 말은 일례로, 기독교적인 형상숭배가 유대인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뒤편에는 참되신 하나님을 믿는 기본신앙이 깔려 있다는 것을 유대인 스스로가 발견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중세 유대 종교철학은 기독교를 이슬람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는 유대교의 일신교 신앙을 더욱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한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와 기독교 신앙의 유사점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위해, 이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교리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에서 밝히려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것 역시 유대교 신학의 요소이기는 하지만, 이는 유대교가 말하는 신론으로 다룰 수 있는 가능한 주제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의 상호 공통점들에 대해서 밝히고자 한다. 곧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대교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특성과 본성(유대교적 표현에 따르면)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에게나 기독교인 모두에게 하나님은 전해 내려온 성서의 이야기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곧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고,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으며,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는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으며, 자기 백성을 포로로 잡혀가게도 하셨다. 자기 백성과 함께 한 하나님의 역사는 마찬가지로 전 세계와도 관련을 맺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며, 아직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남아있다. 하나님의 특성에 대한 기독교의 묘사처럼 유대교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특성은 위와 같은 역사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그분의 특성을 살펴보는 잣대가 되어야한다. 기독교인의 구약성서가 유대인의 성서가 되고, 이를 통해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묘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많은 특성들이 서로 견주어지고 비교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믿었던 이 근본적인 동질성이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믿는 하나님 신앙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이것이 서로를 연결하는 것이다. 고전적인 세계종교 중에서 오직 이슬람교만이 성서에서 일부 자기들의 것만을 떼어냈다. 이들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긴밀한 공동체에 들어 올 수 있는 그 다음의 가능성으로 진지하게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확장을 위해 특히 이슬람 신학을 통한 다양한 중세 유대교 신론이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성서 안에 나타난 하나님 상(像)을 수용해 확립시킨 모사(模寫)와 같은 기독교 신앙고백들은 어딘가 미흡한 듯 보인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서의 본문들을 발췌한 신앙고백들은 성서 자체의 이야기들로부터 검증되고 보충될 수 있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 자신들의 성서 강해들은 성서 이야기에 대해 달리 정리해 놓은 유대교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에 의해 검증될 수도 있다: 유대교에게 있어서 하나님 신앙의 그 중심은, 하나님은 노예(종)를 해방하신 해방자라는 것이다. 이점을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성서의 증언은 해방자이신 바로 그 분이 윤리와 법의 기초를 세운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은 특별히 이스라엘과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성서가 말하는 숱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이상의 모든 질문들은 비로소 현대 신학에 와서야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는 중요한 요소들로 발견됐다. 이상의 질문들은 하나님에 대해 설정한 성서의 기본 신앙고백들의 관점들을 새로운 화제 거리로 삼은 것이다. 이는 유대교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입장에서는 거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제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모두 같은 하나님을 고백한다는 생각은 오래전 고대 교회의 고백에서 밀려나 방랑의 길을 걸었던 하나님에 대한 성서의 근본적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관점을 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가 갖고 있던 신앙고백에 대한 자기검증은 결코 부착적인 것으로 옆으로 젖혀둘 것이 아니며, 새로이 추가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 신앙고백의 중심인 삼위일체론 자체는 분명 유대교가 반대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대화를 논쟁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작게나마 서로에게 설득력 있는 성서의 근거를 고려해 볼 때, 이는 기독교 내적으로는 더 심화 될 수 있는 필수적인 것이다. 아울러 이는 기독교 입장에서 결코 자기 정체성을 지켜왔던 고유자산을 허위로 돌리는 것도 아니며, 자기 것을 포기하도록 그 동기를 부여하려고 대화를 유도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화를 통하여 자극을 받아 기독교 스스로 자기검증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유대교 신앙고백 안에 있는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강조는, 단지 “들어라 이스라엘아![쉐마 이스라엘](신 6:4ff.; 11:13ff.; 민 15:37ff.)로 요약된 신앙고백의 성서 본문들을 통해 얻어진 것만은 아니다. 이는 상반된 하나님의 경험까지도 받아들인다. 이삭을 결박했던 이야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창 22). 하나님 스스로 약속했던 아들을 죽이려 했던 그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인가?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의 신앙고백은 비록 상이하고 서로 상반된 하나님을 경험한다고 해도, 그는 오직 한 분이라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그러한 하나님의 상(償)에 대한 긴장감은 삼위일체론의 도움을 통해 재빨리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즉, 우리가 인식하는 하나님은 자신 스스로 얘기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인간적인 상황으로 묘사하는 개념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개념은 다양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묘사하기 위해 <인격>화 시킨다는 말이다. 예수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보여주신다면,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으로 서있다. 신성이신 삼위일체의 각 인격은 각자 자신들만의 사역을 갖고 있다: 우리 기독교인은 여기서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매우 작은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의 대부분의 묘사들이 경박한 인간화라고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항변은 이슬람교도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권리인 것이다!
세분이 한 분 하나님이라는 기독교 신앙고백은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진지한 논의 가운데 다루어져 한다. 그렇지만 이는 올바르게 이해되고 정당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술만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 전체와 해당하는 것이다. 일례로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을 때, 하나님도 스스로 함께 갔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이해다. 이슬람교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진술들이 가능하지는 않다. 이것이 유대교-기독교와 이슬람교 신앙 사이를 긋는 선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단지 유대교 전통 안에 그들의 역사적 뿌리를 두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독교 신앙고백에 필수적으로 이를 추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방식들을 통해 성서의 기본사상의 중요한 진술들에 덧붙여 기독교 신앙을 보다 더 깊게 하려는 것이다.

2017-03-14 07: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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