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오르는 게(登山) 아니라, 그저 들어갈(入山) 뿐이다...

  지리서북 심설산행...(2010년 1월)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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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겨울이다.
오랜만에 겨울 같은 추위에다 폭설까지 내렸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 전광판마다 호남지역 대설주의보란다.
천안부터는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보라가 갑자기 몰아친다.
내심 기다렸지만 점점 어두워지니 가는 길부터가 조심스럽고 불안하기도 하다.

지리산 둘레 길을 떠난 팀에 지원조를 꾸미고자 했지만 팀이 꾸려지지가 않아 의현과 정현 그리고 늘 한 가족 같이 지내는 애제자인 윤치상과 함께 지리산으로 떠난다.
원래 수요일 저녁 둘레팀의 숙박지인 둘레길 최고의 전망대 숙소인 나마스테로 갈 예정이었으나 큰애가 갑자기 학교에 갔다 오느라 집에서 오후에 출발했다.
완주에서 전주로 가는 길에 백샘과 통화하니 저녁 7시가 넘어가는데 아직도 도보중이란다.
이 추위에 많은 아이들과 함께 둘레 길을 그것도 헤드랜턴까지 하고 걷는 이들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아빠 우리 어느 코스로 가요?”
“...”
“눈 엄청 많은 곳으로 가요...”

지리산으로 가긴 가지만 가는 내내 어디로 갈지 지리산 골골을 머리 속에서 두루 헤매고 다닌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천왕에 오를까?
그렇다면 어디로 해서 천왕에 오를까?
오늘 저녁 백무동 가서 민박하고 인민군사령부터로 해서 창암능선에 올라타 칠선으로 빠져 대륙폭포골로 해서 초암능선으로 올라 하봉에서 자고 다음 날 천왕으로 해서 칠선으로 내려와 원점산행을 할까?
백무동에서 한신지계곡을 치고 올라가 장터목 바로 전에 빠져 제석단에서 몰래 자고 천왕에 갈까?
한신계곡 초입에서 큰새골로 올라가 영신대서 비박하고 작은새골로 다시 내려올까?
추성리에서 민박하고 광점동으로 가서 허공달골로 올라 향운대나 청이당터에서 비박하구 하봉에서 초암능선으로 아니면 두류능선타고 추성리로 원점산행을 할까?
...

전주에서 남원 이도령 고개를 넘어 춘향이 터널을 지나면서 운봉으로 가는 여원재 고갯길 상황이 걱정되어 국도길을 버리고 88고속도로를 타고 지리산IC로 해서 인월로 가기로 한다.

늦은 밤에 인월에 왔다. 작은 시골 인월시외버스터미널. 언제나 올 때마다 정겨운 곳이다.
집에서 떠날 때는 2박3일의 식량분을 다 챙겨 왔지만, 늦은 첫날밤부터 그것도 아직 산 아래인데 배낭 끌러 밥을 해 먹기란 쉽지 않다.
늦은 시간이지만 문을 연 식당이 보인다. 그것도 고기집이다.
아이들과 한판 상을 차리고 큰애와 소주잔을 주고받는다.

“아빠 어디서 자요?”
식당 건너편으로 ‘지리산장’이 보인다. 인월 대중목욕탕이면서 숙박업을 겸하는 옛 여관이다. 모든 짐은 차에 두고 몸만 빠져 여관 온돌방을 잡는다. 네 명이 이만 오천원. 작은 TV에서 2006 독일월드컵 중요 장면들을 방영하니 잠잘 생각을 않는다. 결국 16강에 오르지 못하는 한국경기 다 보고, 스위스전 주심 신나게 욕하고, 16강, 8강, 4강에 이어 결승에서 지단의 그 멋진 헤딩 레드카드도 보고나서 한 사람씩 코를 곤다.

어제 늦게 자느라 아침 8시가 지나서야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눈 온다!” 소리에 모두들 군에서의 ‘기상’소리에 맞춘 듯이 벌떡 일어난다.

운봉에 가서 아침식당을 찾아 김치찌개를 갖가지 반찬들과 함께 배를 채운다. 산행을 하려면 무조건 많이들 먹어두라는 말에 사을 깨끗이 치우고, 결국 운봉에서 전북 학생 청소년 수련원으로 떠난다.

그래 이번 산행은 지리산에서 눈이 가장 많이 쌓이는 지리 서북을 가는 거다.
지리 서북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서쪽 끝 노고단에서 동쪽 끝 천왕까지의 지리 주능을 한 번에 파노라마처럼 다 보면서 걷는 하늘길이다. 지리 태극종주길을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눈다면 덕산에서 시작해 달뜨기능선의 웅석봉을 거쳐 왕등재-쑥밭재-하봉-중봉-천왕에 이르는 지리동부능선과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천왕에서 노고단까지의 지리주능 그리고 성삼재에서 만복대-정령치-바래봉-덕두봉을 거쳐 인월로 내려오는 지리서북능선이다.
겨울철 북서풍으로 인해 눈이 많이 쌓이고 일반등산객들도 없고, 대피소도 없는, 공단원들도 찾지 않아 불안하지도 않을 우리만의 곳을 찾는다.

전북학생청소년수련원에서 지리서북능선상의 세걸산으로 오르는 길은 비지정구간이다. 길은 험하지 않고,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겨울산이란게 바로 이 맛이다. 그것도 눈이 내릴 때 큰 산에 들어가는 거다. 폭설이 내린 날 광교산 바라산에 갔을 때 눈은 많지만 눈꽃은 없었다.
큰 나뭇가지마다 쌓인 눈과 작은 가지마다 피어있는 눈꽃의 향연....

서북능선에 오르면 세동치다. 반대편 덕동마을에서 운봉으로 가는 옛 길의 고갯마루이지만 지금은 오지 산꾼 만이 다니는 길이다. 한여름 지리서북을 탈 때면 반드시 숙지해야 할 샘터가 있는 곳이 바로 세동치다. 세동치 갈림길에서 정령치쪽으로 조금가면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 조금 아래 쪽 능선길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캠프사이트가 나온다. 텐트 4-5동은 충분히 칠 수 있는 공간이고 그 아래로 내려가면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졸졸 물이 나오는 샘터가 있다.

길고 긴 지리서북을 탈 때면 반드시 숙지해야 할 샘터가 바래봉 샘터와 이곳 세동치 샘터이다. 만복대에서 성삼재로 갈 때, 만복대 넘어 묘봉치 가기 전 왼편으로 줄을 넘어 가면 만복대 샘이 있지만 초행길엔 아무리 가리켜줘도 찾기 힘든 곳이다. 정령치 휴게소에선 물을 사야만 하기에 바래봉과 세동치에서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세동치의 차디찬 샘물로 점심 떡 라면을 먹는다. 눈밭에서의 점심식사.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지리서북의 겨울산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점심후 출발이다.

허걱~
길이 없다. 당연 겨울산에 눈이 왔으니 길이 눈에 파묻혀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충 길이란 게 보이는 법인데, 바람에 쓸려온 눈들이 완전히 길을 막았다. 우측으론 천길 낭떠러지다. 결국 온 몸으로 길을 만든다. 가슴까지 빠져 쌓인 눈을 헤쳐가면서 뒷사람이 간신히 걸어올 길만 만든다. 연신 조심하라고 하지만 의현, 정현 모두들 소리치며 신나한다.
우측으론 낭떠러지, 좌측으론 70도 경사의 사면, 앞으론 산더미 같은 눈이다. 슈퍼 조교 치상과 번갈아 가며 러셀을 한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40분이 더 걸린다. 이 추위에도 눈속을 헤치느라 한여름의 땀이 흐른다. 얼은 귤을 까먹으며 더위를 식힌다.

그래 한 여름 지리서북 팔랑치에서 세걸산까지의 잡목들로 온 몸과 배낭을 잡아챘던 일들이 떠오른다. 모진 한겨울에도 잡목이 허리까지 찬 눈과 함께 모두의 갈 길을 막는다. 공단원보다 더 무섭다. 거기에 가파른 경사길. 그러나 겨울산의 묘미가 시작이다. 글리세이딩. 미끄럼이다. 모두들 신이 났다. 비료포대라도 갖고 왔다면 중간에 서지도 못했으리라.
부운치를 넘어 팔랑치 가는 편한 길마저도 눈이 허리다. 어느덧 붉은 해가 온 하늘을 붉은 선을 그어대며 넘어간다. 바람이 거세진다. 바래봉 샘터까진 가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눈도 헤치고 미끄럼도 타며 신나게 왔지만 기온이 뚝 뚝 떨어지면서 눈바람까지 거세지니 손끝, 발끝이 언다. 헤드랜턴을 키고 밤늦게라도 마을까지 내려가 따뜻하게 새워하고 뜨뜻한 온돌에 누어 자고 싶은데, 아이들이 무조건 텐트를 치고 자고 싶단다.

바래봉 샘터 가기 전 바람이 눈을 쓸어 모아 눈으로 성벽을 쌓아놓은 기막힌 곳 바로 아래서 비박하기로 한다. 바람을 피하기엔 최고의 비박지다.
넷이서 바닥을 고른다. 일렬로 서서 노래를 부르며 바닥을 고르지만 눈이 너무 많다. 매트리스를 펴고 그 위에 의현을 눕혀서 불도우져처럼 눈들을 치워 바닥을 고르고 텐트를 친다. 3인용에 4명이 들어가니 장난이 아니다.
코펠에 눈을 담아 물을 끓인다. 뜨거워진 물을 날진에 담아 손 난로를 만들고 한사람씩 몸을 녹인다. 우선 먹고 보자. 바래봉 샘터에서 물 뜨기 위해 세동치에서 물을 많이 갖고 오지 않았던 터라, 그냥 눈을 녹여 밥도 하고 찌개도 끓이려 했지만 아뿔사, 커피 필터를 챙기지 못했다. 대충 눈을 녹여 해볼 수도 있지만 치상이가 바래봉 샘터도 알아둘 겸 수통들을 들고 헤드랜턴에 불을 밝히고 길을 떠난다. 자세히 길을 가리켜 주고 마지막 물로 밥을 한다. 동계용 가스는 희미한 불빛만 낸다. 휘발유 한통을 가득채운 휘발유 버너만 의지한다. 5분이면 샘터라 했는데, 10분, 20분 30분, 40분이 다 지나도 샘터에 간 치상이는 오질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소리치며 불러봐도 대답이 없다. 이리저리 랜턴 불빛을 비춰도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아~~~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만 반짝거리며 하얀 설산을 비춘다. 바람에 눈들이 깠건 발자국을 지우고 화이트아웃의 착란까지 겹친다면.... 별 생각이 다들 무렵 치상이가 왔다.
“와~~~ 죽는 줄 알았어요....”
“5분은 무슨 5분이예요... 산에만 오시면 샘은 완전 생구라쟁이....”
“까르르르....”
반가움과 함께 무사히 돌아와 준 고마움과 함께 모두들 한바탕 웃어본다.
꿀맛이다. 밥과 꽁치김치찌개와 양주잔이 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이다.
그냥 눕자. 뜨거운 물로 각자 수통난로를 하나씩 가슴에 품고, 라디오를 들으며 부동자세로 온 밤을 지새우기로 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스락 바스락..”
“스르륵, 치치치, 쭈욱..처벅...”
“치상아.. 치상아...”
이 밤에 무슨 텐트 정리할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가서 무얼 찾는지 계속하기에 치상이를 불렀다...
“네~”
낮은 목소리로 치상이가 대답하는데, 아니 바로 옆에 누워서 대답하지 않는가?
“어? 너 누구야?”
“...”
“야! 밖에 누구요?”
“.....”
잠시 정적이 흐른다.
“아빠... 아까부터 계속 그랬어요.”
“선생님, 좀 전까지 제 옆에 계속 있었어요...”
모두가 숨죽여 낮게 말한다.
“....”
“워이~~~워이~~~ 야~~~!!!”
큰소리를 쳤다. 헤드랜턴으로 텐트 밖으로 손을 내밀어 휘두르며 계속 고함을 치니 모두가 소릴 친다.
“내가 나가볼께...”
“아빠, 나가지 마요...”
텐트 쟈크만 살짝 열어 불빛을 비추니 멧돼지 발자국이 장난이 아니다.
갑자기 모두들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한다. 라디오 볼륨도 최대로 높인다.
...
어떻게들 잤는지 아침 8시가 되어서야 눈들을 떴다.
눈보라 속에 산짐승들과 온 밤을 비좁은 텐트 속에서 뜨거운 체온들에 의지하며 그렇게들 잤다. 간밤에 나가지도 못하고 급한 볼일들은 꽁치 통조림 깡통에 채우고 비우고 채우고 비우며 해결들을 했다.

이젠 가능하면 빨리 하산하는 길만 남았다.
햐~~ 악몽 같았던 어젯밤의 느낌과 또 다른 아침 눈꽃 만발한 설산의 경치에 취한다. 하루더 하는 맘들이 모두에게 있다. 텐트 바로 뒤 설벽 위에 멧돼지 발자국이 너무도 선명하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도 너무도 선명하다.
바래봉 전나무 군락지의 설경을 가슴에 담고 운봉으로 내려오는 도로 길을 버리고 운지사로 떨어지는 지름길 급사면 숲 속 길로 들어선다. 마지막 하산 미끄럼이다. 운지사에서 운봉 택시를 불러 다시 차를 세워 두었던 전북학생청소년수련원으로 가서 원점산행으로 마친다. 돌아오는 길 오수 근처에서 토종순대국으로 아침겸 점심을 식사를 하고 집으로~~~
집에와 뜨거운 샤워를 한다. 컴퓨터로 달려가는 애들을 불러 다음 산행을 위해 장비들을 말리고 닦고 챙기고 분야별로 정리하며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산행의 끝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2010-01-20 09: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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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렬 우와 선생님 진짜 좋으셨겠어요!!^^ 다음 산행은 꼭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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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렬 저도 예전에 군대 생활때 멧돼지때문에 엄청 고생했는데..ㅋ 읽으면서 제가 살 떨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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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순 전 산타는 거 싫어라 하는데...아빠와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행복한 아이들... 부럽다...한번도 해보지 못한 자의 부러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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