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학기 감신대학교 성서와 문화 강의

  이경수
  페미니즘에 대해서
  

I. 들어가는 말



'신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우리의 작은 논의는 시작되었다. 이 작은 논의는 도래하는 시대에 대한 비전으로서 우리가 최소한 제안할 수 있는 방향표지이다. 그러므로 그 가능성은 무한하며 그 무한한 가운데서 공통의 관심 분모를 찾고 또 그 위에 우리의 학문적, 실천적 역량들을 모아낼 일이다. 그것이 현실로서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최선의 노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판단과 지식의 잣대로부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이 놓여진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우리의 논의를 끌어낸다. 그것은 우리의 관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으로서 세계에 대한 해명의 작업은 삶의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이야기하는 자나 듣는 자에게 모두 의미있는 것이 되기 쉽다. 또 하나 우리는 글쓰기를 통하여 우리의 관심의 영역을 넓혀간다. 그것은 나로부터 너들로 향하는 새로운 세계의 지시이며, 동시에 오늘의 한계를 벗는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자는 제안이다.
나는 '페미니즘과 창조'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전개해나가고자 한다. 왠? 페미니즘? 여성신학적 논의가 척박한 한신에서 우리는 단순한 남―여 대립의 구조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소박한 이해에 머문 채 신학적 논의를 전개하지 않았나 하는 문제제기로부터 이 글은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하자.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 여성신학의 관심에 대하여 정말 알고 있는가? 나 또한 여성신학에 대한 천박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성서에 나타나는 여성억압적 현실을 조장하고 유지하게 하는 표현들, 하나님 아버지―어머니라고 하는 신세대적인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에 대한 논의들에 집착하였다. 그러나 여성신학의 진정한 관심은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인 구분과 패권다툼에 있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여성해방이론(Feminist-theory)으로서 페미니즘(Feminism)은 20세기에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서 그 자리를 찾는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가능성으로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느껴진다. 이것은 이 논문의 주요 텍스트로 소개되는 「페미니즘 이론」의 역자들이 기대했던 페미니즘이 조화를 추구하는 우리 전통사상과 맞닿음과도 일치한다. 페미니즘 이론이 이론화되기 시작한 계몽주의 시대로부터 새로운 문화와 도덕(생태학적 질서)적 비전으로서 제시되는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더불어 성서적 접근, 즉 여성신학적 전거로서 비블리컬 페미니스트(Biblical Feminist)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한계와 오류들을 지적해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성서 본문으로 직접 들어가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남성 중심'이 아닌 '남녀 조화'의 세계, 즉 총체적 인간성 회복으로서 '인간―남자와 여자'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 다루게 되는 '창조'란 하나님의 창조 사역 전반을 의미하지 않는다. 창조의 의미보다는 창조의 대상을 다룰 것이다. 새로운 비전을 보는 '제안'이 되길 바란다.



II. 페미니즘



여기서는 18세기 말 계몽주의 페미니즘 이론의 시초로서 메리 울스턴그래프트로부터 문화적 페미니즘, 마르크시즘과 프로이트주의, 실존주의와 관련성 속에서 전개된 페미니즘, 1960년대 후반의 래디컬 페미니즘을 거쳐 이제 최근의 신페미니스트들이 제안하는 도덕적 비전까지 종합적인 페미니즘 경향을 소개하면서 페미니즘이 보여주는 새로운 비전의 가능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1. 페미니즘에 대하여

계몽주의적 페미니즘(Enlightenment Leberal Feminism)
페미니즘은 구원의 복음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잃어버렸던 존재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실한 세계의 회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은 흔히 마녀로,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희생을 감내하면서 진리를 외친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는 이제 다양한 과학의 발견으로 철학적으로 부서진 세계를 새롭게 하는 질서화하는 데에 관심이 기울어진 시대였다. 종합이 이루어진 계몽주의 시대는 뉴튼-데카르트적 세계관의 고취시기였다. 그것은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이성은 인간의 세계, 도덕, 정치, 미학의 세계까지도 지배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근대세계의 중심 도덕 이념이 형성되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들은 다 천부의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명제였다.
그러나 이 이성제일주의는 분명 여성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질서 원리였던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한 종류의 인간, 남성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계몽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은 남성과 동등'함을 주장하고 나선다. 계몽주의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은 합리성에 대한 신뢰, 즉 이성과 신을 동의어로 취급하며 이성의 원천인 개인의 양심을 진리의 원천으로 보았다. 또한 남성과 여성은 존재론적으로 유사하다는 신념에 차 있었다. 바로 여기서부터 계몽주의 페미니즘 이론이 시작된다.
대표적 계몽주의시대의 페미니스트로서 메리 울스턴그래프트를 들 수 있다. 그는 인간에 대한 계몽주의의 견해를 이성과 감성의 분리로 보았다. 그래서 인간의 역할도 이렇게 개인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으로 나뉘는데 전자를 여성의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하여 여성의 유일한 목적은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되어 버렸다. 또한 그 방법은 자신을 끊임없이 성적인 대상으로 치장하며 남자들의 선택의 대상이 되기를 노력한다는 것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런 여성은 '불멸의 영혼'을 지닐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성으로 하여금 '불멸의 영혼'을 준비해야 하는 수단으로서 이성을 가져야만 하고 그 교육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에게 있어 이성은 진리식별의 유일한 힘이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개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로서 의미를 지닌다. 신과 연결된 것으로서 이성은 그러므로 모든 인간에게 들어있는 것이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똑같은 영혼을 가졌으며, 거기에는 남과 여라는 구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주어진 현실이란 가사(家事)라는 극히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영역에 국한되어 그들의 영혼이 불멸의 영혼으로서, 즉 비판적 능력인 이성으로서 훈련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에게 공적인 영역이 주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의약, 학문, 사업과 같은 직업의 허락이다. 절반의 인구가 절반의 인구에 의해 부양되며, 인간존재로 태어나 살아가는 그 절반은 내적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채로 일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은 최소한의 기본권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여성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존재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생득권이다. 평등권을 위한 투쟁에서 이들은 여성의 재산권, 어린이 보호에 있어 여성의 지위, 이혼법의 자유화 등 1880년대까지 고등교육과 전문교육의 문이 여성에게도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백인여성 중심이었으며, 노예제도 폐지운동과 더불어 진행된 이 운동에서 그들은 흑인여성의 현실을 간과하였다. 흑인여성들, 그들은 흑인남성들과 똑같이, 일하는 면(노예 노동)에 있어서는 공적인 영역으로 이미 개방된 존재들이었으나 그들에게 도덕적 존엄성, 지적 잠재력을 일깨울 교육의 기회는 요원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인류의 절반은 외적인 몇가지 형식 외에는 존재론적으로도 해명되지 않은 채 '여성'으로 묶여 있는 것이다.

문화적 페미니즘(Cultural Feminism)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행위자로서 여성상, 이것이 계몽주의 리버럴 페미니즘 이론이 남긴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결코 합리적인 면만을 가지지 않으며, 비합리적, 직관적, 집단적 측면들이 있음을 보고 이제 남성과 여성의 평등함―그것은 다소 생물학적인 일치를 지향하는 정도의 맹목적인 전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으로부터 페미니즘 이론을 전개시키며 권리획득 이상의 사회개혁의 수단으로서 그것을 바라보며 남성의 질서에 대한 반작용의 키로서 여성의 도덕적 관점을 가져 공적인 영역, 즉 사회변혁의 영역에 들어갈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19세기 말 계몽주의 페미니즘과 함께 전개된 '문화적 페미니즘'이다.
문화적 페미니즘은 마가렛 풀러의『19세기 여성』으로서 창시되었다. 이들은 지식의 정서적, 직관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계몽합리주의자들의 기계론적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유기적 세계관을 표현한다. 그는 그의 책에서 "여성들이 자신이 지닌 장점과 아름다움을 완전하게 발현시킬 줄 안다면, 여성들은 결코 남성이 되거나 남성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는 여성적인 것이 남성에 의해 박탈당했으며, 그 기회를 완전히 잃어 오히려 그것은 남성의 공적 질서마저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게 된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면서, '양성구유(兩性具有)'적인 질서를 말한다. 그것은 여성성으로 인해 지배되는 사랑과 평화의 세상이다.
문화적 페미니스트인 스탠턴은 창세기에 대하여 논평하였는데 하나님, 즉 천부적인 존재를 양성구유적 존재로 보았다. 그리고 양성구유를 우주의 중심적인 법칙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다루겠다. 이들은 여성중심의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보고 모권사회에 대한 회복을 꿈꾸었다. 모친의 생명긍정, 평화주의, 창조적 세계관을 가능케하는 채험과 능력을 중요하게 이들의 이념으로 삼았다.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모권사회적 질서가 기독교에 의해 파괴되고 부권중심의 사회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前기독교적인 시대의 존재를 상정하고 기독교적 교리들과 싸웠다.
또한 남성이라는 하나의 성 전체에 대한 여성의 종속이 경제적인 관계로부터 기인했다고 보았다. 길만과 같은 대표적인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다만 남성을 유혹하는 능력만을 키워왔고, 그래서 인간여성은 기생자로서, 그 일차적 에너지를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으로 썼으며 그 이유는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또한 하나의 매춘 형태이며 생존을 위해 매춘부가 되는 것이나 결혼이나 다 한가지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사회는 모권제적 비전을 담은 여성만의 세상이었다. 길만의 소설 『허랜드(Herland)』는 그 제목에서도 엿보이듯이 모권제적 전통이 지배하는 세상으로서 종교와 생식(단성생식), 나아가 평화와 조화의 생태학적 관심으로까지 나아가 20세기초의 평화주의 페미니스트 이론의 핵심이 된다.

2002-05-15 11: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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