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학기 감신대학교 성서와 문화 강의

  이경수
  성서와 장애인에 관한 글
  

처음 이곳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교향 과목을 선택해야 되서 이 과목을 듣게 됐는데, 강의를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준비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고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주시는 교수님의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교수님도 열심인데, 그 교수님과 함께 이 수업을 만들어 가는 학생인 저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성서와 장애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자료를 모아 레포트식으로 글을 하나 써 봤습니다.(그렇게 해야지 공부가 잘되는 성격이라...*^^*)
우리들의 이웃인 장애인을 우리가 성서의 시각으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적어봤는데, 이 수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모두모두 수고하세요 *^^*


성서와 장애인


담당교수: 박경철 교수님
학 번: 199703023
학 과: 신 학 과 3
이 름: 이 경 수

들어가는 말

성경을 보면 예수는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사람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의 친구가 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예수가 만난 사람들 중 병든 사람들은 다는 아니겠지만 오늘의 주제가 될 장애인일 것이다. 예수가 그들의 친구가 되셨다면 우리들도, 우리들의 교회들도 예수의 모습을 따라 장애인의 친구가 되어야 할텐데, 현 우리들과 우리들의 교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연 어떨까? 라는 질문이 먼저든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가 장애인 주일을 제정하였고, 한국 기독교 장로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등의 교단에서도 장애인 주일을 제정하여 지키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지키고 있으며, 주일을 지킴으로써 장애인을 향한 교회의 사역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또한 장애인 주일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교회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조차 확인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장애인을 올바르게 보려는 시도는 중세 이후에 수없이 진행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장애인이라는 명칭이 따라다니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보려는 시각이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있다. 고대 사회에서는 조롱거리와 학대의 대상으로, 중세 사회에서는 종교적 자선의 대상 혹은 교육 대상의 고려 정도로, 근세 사회에서는 수용 및 지역사회에 봉사할 공민으로서, 현대 사회에서는 시민권을 가진 대상 혹은 사회적 통합의 대상으로 더 나아가 타인과의 동등한 권리뿐 아니라 특수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 보는 경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한국은 기독교가 들어온지 100년이 넘는 나라이다. 그러면 기독교는 장애인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흔히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현존하는 기독교인 혹은 교회의 인식을 기독교의 시각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이 장애인에 대한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현재 기독교가 가져야 할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제시하고, 또한 모든 국민을 향한 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올바르게 교정하는 것이 바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나는 지금부터 성서에 나타난 장애인관을 토대로 성서와 장애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내 나름대로의 의견을 논해보도록 하겠다.

장애인에 대한 정의

우선 성서를 살펴보기 전에 장애인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장애인이라 함은 신체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인하여 생활에 불편함을 갖는 사람을 일컫는다. 국제연합에서 제시한 장애인 권리선언 제1조에서는 장애인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이라 함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불완전으로 인하여 일상의 개인 혹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을 자기 스스로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장애인 복지법 제2조에서 장애인을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또는 정신지체 등 정신적 결함으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또 다른 관점으로 권도용은 개인적 장애-신체장애(Impairment), 의식장애(Despair), 개인장애의 통합(능력장애), 물리적 사회 장애요인, 문화적 사회 장애요인, 사회심리적 장애요인으로 인한 사회적 장애, 개인적 장애와 사회적 장애의 통합(분리)으로 구분하였다. 즉 장애란 개인적인 책임과 원인에서보다는 사회적인 관계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또한 사회적인 장애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본다.
장애에 대한 의식 수준과 생활 수준, 복지 수준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신체장애로 인한 사회기능 수행의 어려움이 있을지언정, Handicap으로 인한 어려움은 별루 없다. 따라서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장애란 규범화된 개념이라기보다는 조작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Handicap 요소가 많기에 신체적 장애를 넘어서 사회적인 장애를 겪고 있는 모든 그룹을 장애인이라고 하여도 될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인 장애가 신체 혹은 정신적인 구조 또는 기능의 결함으로 인한 것이라 볼 때, 장애인이란 Handicap을 가진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결함 있는 자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적 불리라는 사회적 장애의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사회적 장애란 심신의 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결함으로 인하여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때를 가리킨다. 사회적 장애를 가져오는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심신의 결함 자체에서 오는 사회적 장애로서 중증 장애로 인하여 보호를 필요로 하는 경우
2) 신체적 결함에 대한 장애인 자신의 심리적 문제에서 오는 사회적 장애로서 부정, 회피, 사시적 행
동을 하는 경우
3) 심신의 결함에 대한 사회적 태도에서 오는 사회적 장애로서 장애를 죄의 결과로 보거나 귀신의 장
난, 전염될 수 있다거나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미신적 신화적 의식
4) 모든 사회가 일반인(Ordinary man, General man) 을 중심으로 한 환경이 되어 장애인들이 다닐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 경우
따라서 사회적 장애라는 관점에서 볼 때, 장애인이라 함은 신체적 장애로 인하여 일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가지 사람뿐 아니라 노인성 질환과 내부기관의 이상으로 인하여 일상적인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장애인 가운데 60세 이상이 57.7%를 이루고 있고, 우리나라도 노인의 증가로 인하여 이러한 추세를 따라가리라 생각될 때, 노인과 장애인을 구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부 시각에서는 신체장애(Disability)라는 용어보다는 '다른 능력을 소유한 사람'(Differently abled per
-son)으로서 긍정적인 개념 정의를 시도하고 있다. 즉 장애인이란 능력의 결함 혹은 부족한 자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르듯이 다르게 발휘되는 능력을 소유한 자라고 정의하여 통합적인 개념화를 시도하고 있다.

성서에 나타난 장애인관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는 이러한 장애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금부터는 성서에 나타난 장애인관을 살펴보면서 기독교인으로써 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 성경에 나타난 장애인에 관한 말씀들

성서 전체를 살펴보면 장애인에 대한 기록이 first testament에 89회, second testament에 74회, 총 163회가 등장한다. 이 중 first testament를 살펴보면 시각장애가 47회, 지체장애가 27회, 청각장애가 15회가 나오고, second testament에서는 시각장애가 33회, 청각장애가 9회 등장한다.
장애 원인별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노화로 인한 장애: 창 27:1, 23(이삭), 48:10(야곱), 삼상 3:2, 4:15(엘리), 삼하 19:35(바실래),
왕상 14:4, 6(아히야)
2) 만성적 질병으로 인한 장애: 마 4:24(중풍병자), 8:6-7(중풍 앓는 하인), 8:2-4(막 1:29-31, 눅
4:38-39, 문둥병자), 9:20-22(막 5:25-34, 눅 8:26-39, 혈루증을 앓는 여인), 9:26(막 2:3-10, 눅
5:18-24,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 12:10-13(막 3:1-4, 눅 6:6-10, 한편 손 마른 사람), 17:15-18
(눅 9:38-43,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 눅 13:10(귀신들려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 17:11-19(열명의
문둥병자), 행 9:33-35(중풍을 앓는 애니아)
3) 우연한 사고로 인한 장애: 출 21:26(다툼으로 인한 장애), 삼하 4:4, 9:3-13, 19:25-27(피난 길
에 유모에 의하여 떨어져 지체장애를 입은 므비보셋)
4) 선천적 장애: 창 29:17-18(레아), 요 9:1-3(시각장애인), 행 14:8-18(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
5) 전쟁으로 인한 장애: 삿 1:6-7(아도니 베섹), 16:21(삼손), 렘 52:11(시드기야)
6) 하나님의 징벌로 인한 장애: 신 28:28
7) 귀신에 의한 장애: 마 9:32-33(청각장애인), 막 9:17, 25(언어장애인), 눅 11:14(벙어리귀신)
8)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장애: 창 32:31(지체 장애를 입은 야곱), 삿 16:21(삼손), 왕하 6:
18(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은 무리들), 눅 1:20-24(요셉), 요 9:1-3(선천적 시각장애인), 행13:11(일
시적 장애), 기타 예수님을 만난 모든 장애인들의 장애
9)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장애:
→ 신 27:18 / "시각장애인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 잠 26:6 / "미련한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이라 해를 받느니라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 사 29:9 /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시각장애인이 되고 시각장애인이 되라"
→ 미 4:6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 마 18:8-9, 막 9:43-45 /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 눅 6:39 /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겠느냐 둘이 다 구덩
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 계 3:17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 장애인에 대한 성서적 관점

우선 성서적 관점에서의 장애인을 보는 것은 크게 불평등 조건으로서의 장애인, 징벌로서의 장애, 죄인 혹은 불결한 존재의 상징으로서의 장애인 등의 역사적 사실로 나타나는 장애인들과 생명 전체로서의 장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장애, 변화된 증거로서의 장애,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의 장애인, 예수님 자신과 동일시된 장애인,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장애인, 사회적 약자로서의 장애인, 확실한 선교사로서의 장애인, 교회부흥에 있어서 중요한 성령의 도구인 장애인 등 사실을 넘어서는 중요한 존재로서의 장애인을 바라본다.
⊙ 불평등 조건으로서의 장애인: 장애는 일반인에 비하여 불평등을 당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이는
성서에 나타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창 29:17-18에서 레아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야곱의
선택에서 밀려나고 만다. 게다가 이로 인하여 레아는 동생 라헬 대신에 강제적으로 야곱과 결혼하게
되고, 많은 아들을 낳으면서도 사랑 받지 못하는 아내로서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누리게 된다.
⊙ 징벌로서의 장애: 장애는 고통스러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죄에 대한 징벌로서만 주어진 것
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에서는 징벌로서 장애가 주어지고 있고, 그렇게 장애인이 되는 경
우가 있다. 레 26:16에서는 재앙을 받은 결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되고, 삼손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힘의 비결을 노출시켜 눈을 빼앗기고 시각장애인이 되고 만다. 신 28:28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스
라엘에게 징벌로서 정신질환과 시각장애를 명한다. 렘 52:11에서는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두 눈을
빼앗기고 결박당하여 포로로 잡혀간다. 이는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듣지 않은 왕의 비극적인 최후로
서 결과되어진 것이다. 시 31:18에서는 교만하고 완악한 말을 하는 자에게 언어장애의 징벌을 내리라
고 한다.
⊙ 죄인 혹은 불결한 존재의 상징으로서의 장애인: 성서에서는 하나님이 사랑을 보여 주셨고, 증명
할 뿐 아니라 확인까지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부인하며 불순종한 자들을 가리킬
때, 종종 장애인을 비유로 말씀하시곤 한다. 즉 지체장애인의 균형 잡히지 않는 자세, 시각장애인의
더듬거나 갈팡질팡하는 모습, 청각장애인의 말을 듣지 못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죄인의 특성으
로 비유하곤 한다.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시각장애인이 되고 시각장애인이 되라(사 29:9)",
"눈이 있어도 시각장애인이요 귀가 있어도 청각장애인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 43: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란 받게 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
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미 4:6)",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
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가 시각장애인이라(벧후 1:8-9)"
⊙ 생명 전체로서의 장애: 마 12:9-21에서는 '손 마른 장애인'을 치유하시는 사건이 등장한다. 이 사
람은 양손도 아니고 한쪽 손이 말라서 기능을 상실하였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를 만났다. 거기에
는 바리새인 등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시는 예수님
을 송사 하시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예수님은 다음의 말씀을 하신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즉 양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치는 것과 연결시켜 말씀하고 계신다. 한쪽 손의 의미가 아니라 생명의 전부로서의 손 마름을
보고 계신 것이다. 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손의 장애는 생명 자체와 연결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장애: 요 9:1-12에서는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 된 사람과 예수
님, 제자들이 등장한다. 제자들은 이 시각장애인의 장애 원인에 대하여 '죄의 소재'를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3절)"이라고 일축하신다. 장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귀한 수단이기도 하다는 적극적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당시의 부정적 시각을 일시에 무너뜨리셨다.
⊙ 변화된 증거로서의 장애: 장애란 대부분이 죄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무능력으로 인
한 장애, 의사의 오진으로 인한 장애 입음, 교통사고나 산재 등의 불법적인 원인으로 인한 장애, 임산
부의 약물 오용과 성적 타락으로 인한 장애인의 출생 등은 모두 개인과 사회의 범죄로 인한 장애의
결과를 말하여 주고 있고, 이는 시대가 더하여 가면 갈수록 증가 추세에 있다.
성서에서도 그렇다. 중도 실명자 삼손(삿 13:1-16:31)과 중도 지체장애인 야곱(창 32:13-32) 보면,
우선 삼손은 여인에게 유혹당한 범죄로 인하여 시력을 잃었고,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인 범죄로 인
하여 도망갔다고 돌아오는 중에 하나님의 천사로부터 환도뼈를 맞아 다리를 절게 되었다. 분명히 그
들의 범죄의 결과이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범죄의 결과인 장애라 할지라도 하나
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고 말씀한다. 삼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알리면서 하나님의
품으로 죽음을 맞이했고,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의 징표로서 장애를 안고 '이스라엘'로서 남은 여생을
절룩거리면서 살게된다.
예수님을 만나 회복된 장애인들은 건강한 누구보다 더 분명하게 예수님을 만난 증거를 몸에 가지고
있었다. 심히 불편하였음을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의 변화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알리
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에게는 가장 분명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의 장애인: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가장 중요한 부분
이다.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장 먼저 강조하였던 것이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마 4:17,
막 1:15)고 선언하셨고,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직접 말씀하셨다. 이는 신학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부
분이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 나라는 장애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몰트만은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가난한 자, 장애인에게서 시작된다 고 말한
다. 또한 장애인은 복지사업이나 자선행위 혹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성원'이며, 세
계를 심판하는 인자의 '형제'요, 장애인을 하나님 나라의 성원으로 인정하고 그들에 의해서 우리가 형
제로서 받아들여질 때 우리들은 예수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찾을 수 있다 고 한다. 즉 일반
인에 의하여 주도된 장애인을 형제로 삼자는 운동이 아니라 장애인에 의하여 일반인이 형제로 인정될
때, 하나님 나라가 거기에서 발견되어진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서는 장애인과 하
나님 나라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눅 14:12-24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잔치에 비유하여 예수님의 말씀하신다.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제일 먼저 들어가게 된 사람이 바로 장애인 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함께 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렘 31:8)", "그날에 청각장애인이 책의 말을 들을 것
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시각장애인의 눈이 볼 것이며(사 29:18)", "여호와께서 저는 자를 모아 남
은 백성이 되게 하리라(미 4:6-7)" 이 모든 말씀은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서 장애인은 주변인이거나
소외된 자가 아니라 오히려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주역이요, 당당한 천국 시민으로서 들어가게
될 당당한 참여자요, 더 나아가 일반인보다 앞서서 들어가는 선구자가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따라
서 장애인은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 중의 하나이다. 이는 교회의 올바른 모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참
된 교회의 구성요건 중 하나는 장애인과 일반인이 예수님을 믿는 고백 위에 함께 세워질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만의 교회나 일반인만의 교회, 혹은 물리적인 구조든 정신적은 구조든 간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는 교회는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없다. 올바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교회상이다.
⊙ 예수님 자신과 동일시된 장애인: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 5:3)"고 말씀하셨다.
틸리히(Paul Tillich)에 의하면 그는 설교에서 말하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눅 6:20)"에서 그 실재를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실제적인 부와 관계없이 정신적
인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는 소망을 두지 못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할 존재를
가리킨다.
장애인은 오늘날에도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지만, 예수님이 살아계셨던 1세기에는 더욱 비참하게
가난한 자였던 것이다. 즉 성경에서 가난한 자와 장애인을 구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가난
하되 특히 더 가난할 수밖에 없는 자가 장애인이다. 이러한 장애인을 주님은 "내 형제 중 지극히 작
은 자 하나"라고 하셨다. 게다가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뛰어듦
이 낫다(눅 17:2)"고 하셨다. 그렇게 작은 자 하나와 예수님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장애인에게서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장애인: 장애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세기에 창조하셨다. 창
1:27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 중 유독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이는 창 2:7에 의하면
사람은 흙과 하나님의 생기를 통하여 이루어진 생령(生靈)이 된 존재가 사람이다. 이 사람 중의 하나
가 장애인이다.
눅 13:10-17에 의하면 18년간 허리가 꼬부라진 귀신 들린 여인에게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딸'의
모습을 찾아낸다.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외모로는 보기에 완벽
하지 않지만,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장애인은 서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때에 시각장
애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청각장애인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
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사 35:5-6)"와 같이 아름답게 변화되어야 할 존재, '신령한 몸(고전 16:44)'
으로 변화되어야 할 존재가 장애인이요, 그 감격과 기쁨을 누려야 할 존재가 바로 장애인인 것이다.
⊙ 사회적 약자로서의 장애인: first testament를 보면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 경제적, 정
치적 그리고 종교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레 19:9, 23:22, 신 24:19<십일조>, 레 25:1-7, 출
23:10-11<안식년>, 신 16:11-17, 26:11<종교적 절기>, 레12:8, 14:21<제사법>)과 second testa-
ment에서 예수님의 모습(눅 2:7<출생>, 눅 18:35-43, 막 11:1-10<사역>)과 가르침(요 13:34-35<새
계명>, 눅 10:25-37<이웃사랑>)등을 보면 우리는 장애인 사랑을 특별히 부탁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는 십일조 정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 first testament에서는 경제적 터전이 없는 제사장 계
층의 레위지파와 사회적 약자 즉 과부, 고아, 나그네가 십일조를 사용하였다. 이 개념은 second test
-ament에 와서 사회적 약자가 장애인까지 확장되었다. 따라서 십일조란 목회자와 가난한 자 그리
고 장애인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십일조의 올바른 용도요,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 확실한 선교사로서의 장애인: 성서를 보면 예수님은 장애인을 치유하시고 부탁하셨다.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이를 신학적으로 '메시아 은폐'라고 한다. 이는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
시러 오신 예수님께서 정하신 그 때를 생각하여 그리스도임이 보다 빨리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보다 강력하게 전하는 자들은 다
름 아닌 예수임을 만난 장애인들이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단지 치유만 받고,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
하여 사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치유하여 주신 예수님을 확실히 알고,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확
실히 증거하는 선교사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이름이 전혀 알려
지지 않은 예수님이 이 땅에 살아 계셨을 때, 예수님을 증거하였던 익명의 선교사요. 1대 선교사였음
을 성서는 증거하고 있다.
⊙ 교회 부흥에 있어서 중요한 성령의 도구인 장애인: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께서는 복음전파에 사도
들만 사용하신 것은 아니다. 행 3:1-4:4에 의하면 '나면서부터 지체장애인이 된 사람을 사도들이 치
유한 사건'이 나온다. 이 사건은 단지 한 장애인을 치유한 사건이 아니라 장애인 치유사건이 교회확장
의 불을 지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 만으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성령께서
는 지체장애인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들이 남자만 5천 명이 넘는
(행 4:4)획기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행 5:12-16에서도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장애인을 고치며, 심지
어 그림자를 밟는 자들도 고침을 받는 이적이 생겼다. 이는 사도들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께서 장애인
을 사용하셔서 교회확장의 불길을 더욱 거세게 만든 것이다. 행 8:7에서는 빌립이 '중풍병자'를 고치
고, 9:32-35에서는 베드로가 '중풍병자'를 고쳤으며, 행 14:8-18에서는 바울이 '나면서부터 지체장애
인(앉은뱅이)'을 치유하여 우상숭배를 하는 곳에서 전도를 하게 되었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초대 교회
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사도들의 권위와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사용된 중요
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부흥과 확장을 위하여 사도들과 함께 사용
하신 귀한 도구가 바로 장애인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 볼 수 있다.

나가는 말

지금 우리의 시대는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전환이 시급히 필요하며, 또한 장애인 자신도 이러한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이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장애인 복지도, 장애인 교육도, 장애인 고용도,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통합도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장애인을 향한 서비스 제공이나 재활 기회 그리고 봉사나 선교행위도 효과적일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 있어서 가장 올바르면서 혁신적인 장애인관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성서의 가르침이다. 지금까지 위에서 살펴 본 바로는 하나님의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특히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선교의 역사에 있어서 장애인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도 그 기쁨을 가장 강렬하게 체험할 뿐 아니라 중요한 위치에 있을 자가 장애인이라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동시에 이 땅의 교회가 올바른 모습으로 영생을 소유한 생명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 위해서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 선포한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장애인을 향한 물리적 구조의 변화, 정신적 구조의 변화, 그리고 교회 프로그램의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장애인도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선교사로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때, 교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다운 교회가 될 것이다.
"교회를 교회 되게 하라"는 신학자의 절규는 결코 관념적인 외침이 되어서는 안된다. 성서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으면서도 지상의 교회에서는 소외된 자리매김을 하고 있어야만 했던 장애인을 교회의 핵심적인 자리에 올려놓았을 때, 그것도 "무엇무엇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마땅히 "그리하여 하는 것"의 모습이 되었을 때 그 절규는 기쁨의 탄성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것인 바로 성서에서 말하는 장애인의 위치일 것이다. 이러한 성서의 시각으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인 장애인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겠다.


<참고서적>

* 황의경, 배광웅 공저. <심신장애인 재활복지론 -홍익제(1991)->
* UN인권위원회편, 이익섭 옮김. <인권과 장애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1992)->
* 안병즙, 정재권 공저. <장애인의 이해 -형성출판사(1999)->
* 권도용 지음. <장애(재활복지의 변화대상) - 장애우대학자료집(1993)->
* 민은식 지음.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 - 삼육재활원(1990)->
* 정립회관 역. <일본 몸이 부자유한 사람들의 복지 - 정립회관(1990)->
* 이삼열 지음. <사회봉사의 신학과 실천과제 -한울(1992)->
* 유르겐 몰트만 지음, 곽숙희 역. <하나님 나라와 봉사의 신학 -한울(1992)->
* 박수암 지음. <신약성서에 나타난 장애인 신학 -총회전도부(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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