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학기 감신대학교 성서와 문화 강의

  박경철 [ E-mail ]
  성서?, 정경...
  

성서란 무엇인가?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를 뜻하는 영어로 바이블(The Bible, 독일어 Die Bibel, 불어 La Bible) 이라는 말은 라틴어 비블리아 (Biblia)에서 온 말인데, 이 라틴어는 그리스어의 ta biblia에서 왔으며, 이것은 그리스어의 비블로스 biblos의 복수형으로 <책>을 의미하며, 이는 고대 필사 재료였던 파피루스 (종이 풀)의 줄기를 가리키는 그리스어에서 온 것이다. 또한 고대의 항구도시 비블로스는 지중해 연안의 베이루트 북쪽에 있는 항구도시 쥬베르, 히브리어로는 게발 (언덕)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의 이름이다. 이 항구도시의 역사는 기원전 수 천년으로 소급되며, 이곳은 고대 오리엔트 세계의 교역의 중심지이며 특히 이집트산 파피루스의 집산지였다. 비블로스는 기원전 2천년대에 지중해 세계에 발달하기 시작한 알파벳이 파피루스에 기록되어 그리스 세계에도 전달되면서 책을 의미하게 되어, 뒤에 책 중의 책이라는 뜻에서 <성서>를 가리키게 되었다. 우리말 성서(聖書)는 영어의 The Holy Scripture, 독일어의 Die Heilige Schrift, 프랑스의 La Sainte Ecriture등의 번역이며, 이것은 교부시대의 라틴어 Sacra(Divina) Scriptura등에서 온 말이다. 히브리어로도 거룩한 책 sepharim kithbe haqqodsh 라는 말이 있다.
현재 기독교가 갖고 있는 성서는 크게 구약과 신약 둘로 나뉜다.
구약이라는 말은 신약성서 고린도후서 3장 14절에서 바울이 히브리성서에 대해 언급한 '옛 언약' (팔라이아 디아테케)에서 온 것으로, 기독교에선 이를 신약성서와 구분하여 이해한다. 언약, 또는 계약이라는 Testament 는 라틴어 '테스타멘툼'에서 온 것으로 히브리어 '베리트' 와 헬라어 '디아테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계약, 또는 언약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구약이라는 말은 기독교와 유대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논쟁을 불러 일으켜 왔는데, 이는 구약이라는 말이 옛날 것이라는 오래되었다는 어감이 있고, 이는 신약을 통해서 구약의 가치를 논하는 것으로 비추어지기 때문에 최근 구약이라는 말 대신에 ‘히브리성서’ 또는 첫 번째 계약(Erstes/First Testament)이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유대교에선 구약성서를 가리켜 타나크(TaNaK)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세부분 즉, 토라(Tora 율법), 느비임(Nebim 예언서), 그리고 케투빔(Ketubim 성문서)의 히브리어 앞자들을 따서 부르는 것이다. 또는 '미크라'라고도 하는데, 이는 히브리어 ‘까라' (읽다)에서 온 ’쓰여진 토라'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후대 주석인 구전으로 전승된 '미쉬나' (히브리어 '솨나'/반복)와의 구별을 위한 것이다. 이렇게 구약의 세 부분이 모두 언급되는 가장 첫 보도는 기원전 125년경의 예수 시락서이다. 히브리성서는 22권 또는 24권으로 되어 있는데(참고 요세푸스, Contra Apionem I,8; 4. Esra 14,22이하), 이는 사무엘 상하, 열왕기상하와 역대기상하 그리고 에스라 느헤미야, 12 소예언서가 모두 각각 한권씩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22권일 경우는 사사기와 룻기, 그리고 예레미야서와 애가서가 또한 한 권으로 합쳐진 모양이다. 현재 개신교에선 이를 모두 나누어서 39권으로 갖고 있다.
구약성서의 헬라어 번역인 70인역 '셉투아진타'는 히브리성서에 15권이 더 추가 되었다 (제3에스라, 유딧, 토빗, 1-4마카비서, 오덴, 솔로몬의 지혜, 예수시락, 솔로몬의 시편, 바룩, 예레미야 서신, 수산나, 벨과 용). 이들을 개신교에선 외경으로 부르고 카톨릭에선 제2경전으로 부른다. 또한 위경이라고 하는 에녹, 제4에스라와 시리아 바룩등을 카톨릭에선 외경으로 한다.
지금 기독교가 갖고 있는 성서가 경전으로 결정되게 된 일련의 과정을 학계에선 정경화 과정(canonization)이라고 부른다.
정경(Canon)이라는 말은 헬라어 ‘카논’에서 온 말로, 이는 ‘갈대’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네’에서 온 말이다. 작고 곧은 갈대인 막대기를 가지고 옛날 사람들은 어떤 것을 재는데 이용했다. 그로부터 어떤 것을 재는 기준인 하나의 잣대로, 또한 사물을 재고 판단하는 표준, 법칙, 또는 규범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그리스도교회는 주후 4세기 후반경부터 성서를 가리켜 기독 신도들의 삶의 규범이 된다는 의미로 정경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기독교가 현재의 성서를 다른 어떤 책들보다 표준이 되는 정경으로 결정하게 된 것은 우선 구약성서 였다. 이미 유대교에선 오래전부터 정경으로 인정되어 왔던 히브리성서 제1부 토라인 모세오경과 제2부 느비임인 예언서에다 제3부 그 외의 성문서들을 포함시켜 지금의 39권을 정경으로 최종 결정하게 된 때는 주후 90년경 팔레스틴 지중해 연안의 작은 마을 얌니아(Jamnia)에서 열렸던 회의에서이다. 이를 줄여서 얌니아 회의라고 부른다.
이 얌니아 회의에서 현재의 구약성서들을 정경으로 결정하게 된 이유들과 그 결정의 원칙들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예루살렘에 있던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 버리게 되자 유대교로서는 무엇보다도 자기들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유대교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자손 대대로 전수시킬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유대교로서는 무엇보다도 자기들의 경전을 확정시킬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요소로는 주후 1세기 급속하게 퍼져나가던 그리스도교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었다. 당시 초대 그리스도교회 역시 구약성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이 갖고 있었던 구약성서는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셉투아진타)이었다. 유대교로서는 히브리어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많은 부분이 헬라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믿었다. 그랬기에 유대교로서는 무엇보다도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의 표준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당시 마르시온 이라는 이단의 출현이었다. 폰투스(성경에는 본도)의 시노페 감독의 아들인 마르시온(Marcion)은 고향을 떠나서 소아시아에서 살다가 다시 로마로 갔는데 144년 경 로마교회로부터 출교를 당하게 된다. 그는 출교를 당하자 기성교회와 대적하기 위해서 따로 교회를 세우게 된다. 당시에도 이미 이단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마르시온처럼 기성교회에 대항해서 교회를 따로 세운 경우는 마르시온 전까지는 없었다. 마르시온이 세운 교회는 급성장을 해서 기성교회와 대적할 정도로 급성장을 하게 되는데, 이들을 마르시온 파라고 한다. 마르시온 파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 쉽게 성경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마르신온의 신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복음은 가장 악한 죄인까지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하나님은 복음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이 지배하고 있다.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하나님은 다름 아닌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믿는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고 나서 보시기에 참 아름답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고 나서 피 흘리는 제사를 요구했고, 자기 백성들을 전쟁터로 몰아 넣었으며, 사람의 잘못을 당사자도 아닌 3-4대까지 저주를 돌리는 지독한 하나님이었다. 따라서 이 하나님에 대해 가장 좋게 표현한다고 해도 질투를 하는 하나님이라는 정도로 밖에는 달리 좋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한 하나님이다. 그러나 이렇게 전쟁이나 좋아하고 보복이나 하는 하나님과는 달리 또 다른 좋은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분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이 악한 세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세상에서 오신 하나님이다.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 욕정적이고 전쟁을 즐기는 하나님이라면 이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하나님이신 복음의 하나님은 지고 지선의 하나님으로 사랑, 평화 그리고 무한히 선하신 하나님이다.]
이처럼 마르시온 파들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을 구별해서 구약의 하나님은 악한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은 선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구별함으로써, 이러므로 비록 구약에는 진리가 있다해도 저급한 진리밖에는 없다고 가르쳤다. 유대교는 이런 마르시온 사상으로부터 구약성서를 지켜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성서를 정경으로 결정할 당시 그 원칙 및 규정을 살펴보자.
첫째, “정경으로 선택될 책은 모세오경인 토라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토라는 이미 유대교에서 가장 큰 권위를 지니고 있었기에 정경으로 선택될 것들은 토라의 내용과 벗어나면 안된다는 규정을 가장 중요한 제일 원칙으로 세우게 된 것이다. 그랬기에 에스더서는 이 원칙에 들지 못했다. 왜냐하면 에스더서에 나오는 부림절은 토라에는 나오는 절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예언자의 영감에 의한 책이어야 한다.” 유대교에선 주전 5세기 이후 예언 활동은 종결된 것으로 믿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이후의 문서들은 정경에 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 이후의 문서인 아가서, 전도서등은 그 저자를 솔로몬으로 보았기에 정경에 포함시켰으며, 다니엘서 역시 주전 2세기 문서이지만, 바벨론시대의 중요 신앙인물이라는 점을 들어 정경에 포함시켰다.
세 번째, “정경에 포함될 것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이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은 헬라적 영향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70인역에는 포함된 것이어도 현 히브리어 정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 70인역에 포함된 것들은 오늘날에도 카톨릭에서는 사용하고 있고, 개신교에서는 이를 외경, 또는 제2의 경정이라고 부른다.
네 번째, “정경에 들기 위한 책은 이미 당시 널리 퍼져 있던 것이어야 한다.” 이 말은 비록 정경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았어도 정경의 권위에 들 정도의 책들이 이미 유대교 회당등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것들이 있었다. 이런 것들은 정경으로 포함될 수 있었다.
신약의 정경화 작업(canonization) 역시 마르시온(Marcion)에 의하여 처음 시도되었다는데 대체로 동의한다. 마르시온은 누가복음을 그의 유일한 복음서(Gospel)로 삼았으며, 바울의 서신들 중에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을 제외한 나머지 열 서신(이중에 '에베소서'는 '라오디게아서'라는 이름으로)으로 사도서(Apostolikon)로 삼아 이 열한 권만을 정경(Canon)으로 여겼다. 마르시온의 정경에 자극을 받은 로마 카톨릭(Catholic Church)도 교부들을 중심으로 서둘러서 정경화 작업을 하였는데, 이때 이레니우스(Irenaeus)는 누가복음 이외에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도 정경에 포함되어야 함이 마땅하고, 바울의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과 요한의 서신들, 베드로의 서신들 등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에 계속하여 어떤 성서들을 정경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는데, 20-30권의 성서들이 포함되었다가 제외되었다가 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복음서와 바울서신들, 요한일서, 베드로전서 등은 대체로 진품인을 인정받았지만, 요한2서, 요한3서, 베드로후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등은 교부들과 시대에 따라서 진위가 엇갈리며 포함-제외의 과정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다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주후 367년에 현재와 같은 순서의 신약을 처음 그의 서신에서 언급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대체로 이를 받아들이는 추세가 된다. 물론, 동방의 교회들과 서방의 일부 교회들에서는 나름대로 여전히 다른 권수의 정경을 갖고 있었지만 현재의 정경이 완성된 것은 아타나시우스 때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신약성서는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현재 27으로 확정되었다고 알려진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동방교회는 아타나시우스의 영향으로 벌써 367년에 27권을 정경으로 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정경 can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이 정경인지의 여부에 대해선 동방교회에서 논란이 계속되었다. 10세기에 가서야 이견없이 현재의 27권만이 정경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라틴교회에서는 일찍이 5세기 초에 27권을 신약성서로 확정하였고, 오뎃사를 중심으로 한 시리아 교회는 (특별히 서부시리아 교회에서는) 5-6세기에 아직 '벧후, 요2, 요3, 유'를 정경으로 보지 않았다. 당시 시리아 교회에선 계시록은 점차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1442년 프로렌츠 종교회의에서 로마 교황청은 이견없이 고대교회의 아타나시우스의 정경목록 27권을 다시 한번 신약성서로 확정한다. 이처럼 신약성서 27권의 확정은 지역에 따라 편차를 두고 서로 다른 목록들이 존재하다가 아주 후대에 결정된 것이다. 신약성서의 정경 작업에 있어서 채택되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얼마나 초대교회들에서 많이 읽혀지고 있었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2002-03-22 03: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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