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학교 기독교학부, 성서해석학
(Biblical Criticism and Hermeneutic)-2002년 2학기

[참고] 구약성서 주석방법론(영문): 본문비평,   문서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편집비평
[참고] 박동현 교수님(장신대) 자료:구약 주석방법론

  송선덕 [ E-mail ]
  후기 구조주의(해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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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후기구조주의(해체주의)
담당교수: 박경철교수님
발 제 자: 송 선 덕
발제일;2002.11.21.

성서해석학(박경철교수님) 2002.11.21.
1.정의

후기구조 비평은 본문에 대한 몇 가지 해석방법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해체주의만)
1. 해체주의비평은: 본문의 불 완전성을 발견하는 것과 본문의 “자유”. “활동”(free play)혹은 비 정확성을 통해 가능해진, 신선한 통찰력을 발견하는 것, 모두를 포함하는 해석방식이다.
이 형식의 이동은 (focal moves) 은, 단순한 한가지 비평형식으로 임의대로 선택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진리는 숙명적으로 권력과 반목할 뿐 아니라 불가피하게 역사적으로 변화하며, ”역사적 변화“에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선택되었다.

해체주의는 존재하는 패턴들에 대한 분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다른 종류의 후기구조주의 비평과 구분된다.
본문의 전망 혹은 주장에서 불일치한 점들이나 흠(gaps)을 폭로하는 전략인 해체주의 비평의 첫 번째 움직임은 상당히 이해할만하게, 그 공헌도를 평가하려는 시도의 대부분의 관심을 기울인다. 해체주의의 비평은 만일 어떤 본문을 효과적으로 읽으려 한다면 우리는 언어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어의 불 완전성(incompleteness)-말이나 글을 통해 그려진 그림에다 청중이나 독자가 무언가를 더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 언어 자체 안에 있는 울타리(enclosure)-단어들의 직접적인 연결이 “현실”로서가 아니라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패턴 속에 있는 다른 단어들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 언어의 고정되지 않고, 물 흐르는 듯한 특성- 독자가 본문을 통해서 움직임으로 의미들이 계속적으로 확장되거나 이동한다는 것,

두 번째 움직임(더 중요한 것은 그 두 번째 움직임에 있다.)
의미 있는 독서란 “제 생산” 이 아니라는 것, 즉, 본문의 저자가 일단 표현했거나 혹은 본문의 패턴 속에 있는 의미를 재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언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독서는 오히려 독자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즉, 아주 진지하게 연구된 (예를 들면 구조주의자들에 의해서) 논리적인 관계에 의해서 암시될 수 있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하고 우연한 결합에 의해서도 암시될 수 있는 독자의 세계를 창조적인 발견과 새로운 결합을 이해 열어놓는 것이다.

* 해체주의의 강조점
후기구조주의의 특징적인 형태인“해체주의”에서 강조되는 것은 언어- 분명하고 모호하지 않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으로 보이는 언어일지라도 - 이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다.

2.비평방법
만일 우리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본문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단어를 만나게 된다면, 또한 그것으로 인해 한 단어가 때로는 한 방식으로 또 때로는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게 되며, 이와 같이 한 단어가 통일된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또한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그 단어를 급히 붙들어야 (그 단어의 미묘함과 연결관계를 주의 깊게 찾아내야 ) 한다. 만일 하나의 은유가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것을 은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그 은유를 급히 붙들어야만 한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본문의 모험을 따라가야 하며, 본문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은폐의 구조물로 이해해야 하며, 본문의 자기위반과 (self transgression) 결정불가능성(undecidability)울 폭로해야 한다. 나 자신이 궁극적으로 통일된 의미의 본문 체계 안에 통합된 모호성이나 아이러니의 순간을 찾아내는 것에 대해 단순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체계를 무너뜨리겠다고 순수하게 위협하는 순간을 찾아내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는 사실이 강조되어져야만 한다.

3.특수용어
해체주의 저술들은 우리를 자극하여 다르게 생각하려는 시도에서 수많은 특수용어를 사용한다. 다음과 같은 핵심단어들이 있다.
◉결정불가능(undeniability) - 본문의 외관상 마감으로 인해 숨겨지는 의미의 개방성, 차이, 오직 글에만 나타나는 형태에서 differing(차이)과 deferring(지연: 의미는 차이를 통해 발견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 의미는 지연된다. 의미는 끝이 없는 문제이다.) 둘 다 뜻하는 difference"의 수정된 철자 “(무론 원래는 프랑스어임)
◉로고스(말)중심주의(logocentrism): 역시 핵심단어로서, 언어가 언어를 넘어서는 질서 혹은 말의 실재를 전달한다고 가정하는 로고스〔말〕중심주의(logocentrism)는 비판을 받고 사라져 버렸다. 최소한 부분적으로 언어에 의해 표현된 형이상학적 일관성에 대한 종종 숨겨진 가정은 “실재‘(presence) - 화자의 실재를 통한 화자의 의미의 실재- 의 외관상의 즉시성을 통해 구어체의 언어가 (spoken language)언어의 우선적인 형태라는 가정에 의해 부추겨 진다.
이와 는 반대로 해체주의에 따르면 글(writting)이 우선적인데, 그 까닭은 글의 의사소통의 완전한 실재가 불가능함을 분명하게 해주며, 또한 모든 언어는 이전의 언어- 언어를 초월한 대상에 대한 새롭고 공명정대한 진술이 아닌-를 재생한(reworking) 것이라는 사실을 훨씬 더 명확하게 해주는 것도 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의 근본적인 특징은 본문상호성(intertextuality)이다.
◉ 본문 상호성(intetextuality): 주어지 “본문” 혹은 구조화된 의사소통은 어느 것이라도 그 자신의 구조를 만드는데서 이전에 관습적으로 확립된 패턴들을 단순히 반복하거나 아니면 수정(아마도 “변형”)시키는 것이다. 해체주의는 어떤 모습의 의사소통이라도 그것을 하나의 본문으로 이전의 의사소통과 섞여 짜여진(textured)형태의 -생각하는데, 여기서 본문은 책(book)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리고 흔히 가정되어 왔던 것과는 반대로, 해체주의는 본문상호성을 만들어 내는 의미의 역사적 이동 안에는 연관된 패턴이 없다고 주장한다.

◉ 해체(deconstruction): 파원 , 해체주의) 이러한 어휘 중에서 가장 평범한 용어인 해체는 본문의 일관성을 벗겨내고, “마감”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본문을 읽는 것을 말한다. 구조주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이전의 해석형식들과는 달리 후기구조주의는 “흠”(gaps),"비일 관성“, 본문의 양상들이 서로 못보고 빠뜨리는 점들을 찾는데 이것은 본문이 결정적인 혹은 폐쇄적인 의미를 전달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4. 후기구조주의와 해체주의 선구자
① 칸트와 헤겔 - 후기구조의 비평과 이 비평의 독특하고 가장 엄밀한 형태인 해체주의는 서구 유럽의 문화와 친숙하다. 칸트는 우리의 앎의 형태인 사고의 과정자체에 의해 상당히 구체화되기 때문에 우리는 “사물자체”를 알 수 없다고 주장했고, 헤겔은 인간의 정신사에 펼쳐지는 정신의 개념을 말했다. 그러나 칸트와 헤겔로부터 헤체주의까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19세기 유럽의 사상을 대단한 힘을 가지고 이끌었던 이 두 사람은 근본적인 신념은 20세기 후반의 문화가 포기햇던바 이 포기는 언어와 본문들에 대해 해체주의비평이 접근을 특징짓는다.

② 마르크스와 프로이드 마르크스와 프로이드 또한 서로 방식은 다르지만 :해체주의의 중요한 선구자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표면상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관된 논리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discourse)사 경제적 차원(마르크스)혹은 심리적 차원(프로이드)에서 권력관계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③ 하이데거는 서구의 형이상학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해체주의의 또 다른 중요한 선구자이다. 그러나 그는 형이상학에 대한 그의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존재”(being)에 대해서 말하는 “존재론”(ontology) 에 도달했다. 해체주의는 우리의 언어와 경험 배후에 있는 지서를 향한 탐구에 우리의 영속적으로 얽혀져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러나 해체주의는 그러한 탐구 속에서 “종결도 최종적인 것도 그리고 참으로 실제적인 결과라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우리는 ”흔적들“(traces), 즉 앞선 탐구에 의해 남겨진 흔적들을 가지고 작업하는데, 그 중 어느 것도 언어 속에, 그리고 언어가 창조해낸 세게 속에 갇혀 있는 우리를 더 높은 혹은 초월적인 차원(vision)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특별히 불트만의 저술을 통해서 성서 연구에 자 알려진 실존주의는 후기구조주의와 해체주의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실존주의가 세상에 질서가 있다는 신념을 포기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존적 주의는 “중심적인 자아”(the centered self)- 의무감이라는 면에서 여전히 매우 칸트 적인 -이 잔망을 지니고 있다. 구리 세기의 파괴적인 사회적 세력에도 불구하고 실존주의자들은 ‘중심적“자아를 확신할 수 있었다.
후기구조주의에서는, 특별히 해체주의에서는 중심적인 자아가 관계의 망 속에서 중심점(node)이 되는 자아로 대치됐다.

④ 푸코(Michel Foucault)와 데리다는 해체주의적 후기구조비평과 특별히 관련된 두 인물이다. 본문들이 권력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방식에 대한 푸코의 강조는 많은 후기구조주의 비평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보통 해체주의에 대해 말할 때 생각나는 인물은 데리다이다. 이 난해한 사상가를 소개하기 위해 그의 사상에 뛰어난 소개를 인용하고자 한다.
5.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의 차이점

구조주의는 또한 해체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는 모두 방법은 다르지만 표면적으로는 분명하게 보이는 본문의 의미를 의심한다. 그 둘의 차이점은 대부분의 구조주의가 언어의 망에서 결정적이고 더욱 뿌리깊은 구조를 찾고 있는 반면, 해체주의적인 후기구조주의는 스스로 일시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독자 혹은 청중을 자유롭게 할 목적으로 어떤 일관된 패턴도 철저히 인정하지 않는 본문에 있어서 개방성, 유희, 관계의 망, 불완전함을 강조한다.

6. 해체주의와 윤리
해체주의 비평은 윤리에 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윤리는 편협하고 억압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비평은 고립된 지적 훈련이 아니다. 이것은 강력한 윤리적 함축을 지니고 있다. 의무라는 전통적인 윤리에 대한 반작용은 규칙을 만드는 것이 폭력이나 강제의 한 형태라는 가정에 근거해 있다. 결정불가능성에 대한 강조- 본문에는 복수의 의미가 있다는 것에 대한 강조 - 는 군림하는 정통파의 지배적인 사회 집단들에게 도전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해체주의는, 권력자들이 한 공간- 그들이 인정되고 지배하는 -을 유지하는 구조화된 세계에 정확하게 호소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과 권위를 정당화시키는 사회적, 제도적 권력자들에 대한 공격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문화에 대한 마르크스적 비평의 다양한 형태들은 이론 체계들과 종교체계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지적함으로써 해체주의적 중요한 예비적 형태의 배경을 형성한다. 마르크스적 비평과 해체주의적 비평의 차이점은 최소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가 그릇된 권력 지향적인 이념적 환상(고전적 마르크스주의가 비판했던)을 대신할 “참된” 비젼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와는 달리 해체주의는 그러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문화적, 혹은 종교적, 표현 모두를 제거하는 것이 사회 권력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긴 하지만 그것이 선명한 대안을 제시할 수 는 없는 것이다. 그것의 기능은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목적을 향해 있지 않는 과정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것 없이 살게 하는 것이다.

7. 해체주의 입장에서 본 무어의 설화비평(비평방법)
◉누가- 행전의 문제 양자의 상호관련성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취급된 - 해체주의의 언어에서 볼 때 아주 완성도 높은 한 권의 “책”이다. 따라서 우리는 해체주의를 소리쳐 요구하는 한 본문을 발견한다. 우리는 성서의 내적인 질서를 부수는 방법- 역사적 자료비평과 같은 -이 오랫동안 힘을 발휘해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복음의 축복선언의 첫머리를 해체주의적으로 읽어보기로 하자

“복이 있다〔행복하다“가 더 나을 듯 하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아,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눅6:20)
이 첫 번째 축복선언은 누가-행전에서 예수가 가져다 준 “새로움”-새로운 교회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새로움” -의 중심에 있는 것에 강력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선언이다.
예수가 자신과 함께 국외자들, 버림받은 자들, 그리고 주변인들을 공동체에 포함시킨 것은 누가-행전의 중요한 줄거리다. 이와 상응해서 예수는 부자 자신을 위해서도 부가 위험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가난한자의 궁핍 때문에도 부자들에게 도전한다. 부자들은 이렇게 말해야 마땅한데, 단순히 비난받는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도전 받고 있는 것이다. (눅6:24, 12:13-21, 16:13, 18:18-25).이것이 누가-행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해체비평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라는 말의 비유적이고, 반전시키는 힘이 그렇게 부드럽게 누가가 만든 교회의 안으로 통합될 수 있는가? 축복 선언에서 요구하는 가난한 자와 청중의 하나됨이 그렇게 쉽게 사도행전이 그리고 있는 가난한자들을 위한 제한된 행동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 이상의 논의에서 우리는 그 말씀을 설화 패턴에 통합시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통합되기를 거부한다.
p359. 수많은 세기가 지난 후에도 가난한 자들의 궁핍은 여전히 참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이 전제하고 있는 종말론을 무시하거나 최소한 변형시켜야 하지 않는가?
해체주의 비평은 “원래의 의미에 대한 역사적 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으로써 가 아니라 현재의 독자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라는 선포를 진지하게 들어보면, 이 선포의 내용은 제도화된 사회에서의 가난한자의 처지와는 정확하게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조는 깨지고, 가난한자와 청중간의 연결은 무로 돌아간다. 우리는 그 말씀의 대상으로 있고, 때로는 그 말씀에서 여지가 있다는 가능성이 부서지는 생생한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게 한다.(사람은 소유한 것을 모두 내놓지 않을 뿐 더러, 생산수단이나 재산소유권을 재구성하기 위한 계획도 말하지 않는다)이것은 아직 깨닫지 못한 가난한 자들과 관계를 향해 개방시킴으로써 기존의 관계성을 부수어 버린다. 또한 이것은 가난한 자들의 처지를 확고히 하는 권력구조에 도전한다.

자신은 한 방법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단순히 모방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해체주의 지도적인 사상가인 데리다가 주장한 이래로 그 주장은 해체주의해석방식의 발전을 위한 규칙과도 같은 말이 되었다. 요구되는 것은 듣는 방식이다.

탄네일이 누가-행전의 경우를 들어 아주 훌륭하게 보여주었듯이 우리는 한 본문에 대한 일관성 있는 해석을 쉽게 버리면 안된다. 우리가 해체주의적으로 본문을 읽는다는 것은 전통적인 해석방식을 제쳐두고, 본문 안에 꼭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는 패턴에 대해 날카롭게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마리아의 찬가〔“(하나님께서)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삶들을 빈손으로 떠나 보내셨습니다.” 눅1:52-53 로 부터, 나사렛의 회당에서“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초기에 예수의 모습(4: 18) 과, 예수가 가난한 자들과 주변 부의 사람들을 만나고 계속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누가복음의 중심부에 이르기까지 또한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으로 공동으로 사용하는 ”(행4:32) 예루살렘 공동체와 “내 민족에게 구제 금을 전달할 목적으로 (행24:17)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파울을 언급하는 사도행전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자를 위한 ”이타심“(otherest)의 개방이라는 주제는 이 두 권의 책의 주요 주제이다.

8. 해체주의의 전통적인 종교와 신학에 대한 비판
해체주의는 전통적인 종교와 신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데, 그것들은 초월적 실재의 “현존”을 그릇되게 믿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들의 접근이 다양한 종교적 입장 및 신학적 입장들과 잘 결합될 수 있더라도 , 그럼으로써 그들의 입장은 상대화된다. 그 친화력은 “부정적 신학‘(negative theology)과 함께 하는 것이다.
9. 후기구조주의의 한계점
후기구조주의는 한계적인 것과 동일시된다. 때때로 한계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비평가의 순교자적인 입장에 대한 낭만적인 찬양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선택을 거부하는일, 한 사람의 선택권을 열린 상태로 두는 일에 대한 강조는 무한정 유지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거부는
그 자체를 기존의 해석이 가진 힘에 저항하는 윤리적 요구로 인식 되여야만 한다.

10. 결론
신약학이 해체주의의 비평을 위해서 준비했던 주요한 방법은 특별히 펑크와 크로산과 관련이 있는 예수의 비유에 대한접근이었다. 전통적으로 비유는 전체적인 그리스도교 이야기 가운데 일부 측면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펑크와 크로산은 청중의 세계 (신앙의 전통에 의해 그 속에서 구체화 된 방법을 포함하는 )에 도전하거나 그 세계를 전복하는 것으로 더 잘 이해되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비유들을 재해석한다. 펑크는 비유를 듣는 과정에서 있는 위험요소를 강조한다. 우리는 우리가 비유를 듣게 한 구조화된 세계를 해방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크로산은 조직을 파괴시키는 이야기를 통해 조직을 형성하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비유는 조직을 파괴시키는 이야기들의 전형이다. 비유는 청중의 세계를 산산이 부순다. 이들 해석학자들은 독자의 세계를 분쇄하는 움직임을 찾았고, 그리하여 그들은 해체주의비평을 예비했다. 그들은 그 말씀이 직접적인 충격을 받은 후에도 복음서의 비유 혹은 격언이 그 전체의 비전을 다시 세울 가능성이 있을지의 여부에 관한 핵심적인 문제에는 의견을 달리했다. 크로산은 비유적 언어의 힘은 자신이 “신화적”언어라고 부른 것(청중의 세계를 만드는)을 거스른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 "신화“(복음서의 설화를 포함해서) 는 세상을 세우지만 ”비유“는 세상을 뒤엎는다. 해체주의적 해석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 볼 때, 우리가 본문의 양상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거스르는가를 발견하려는 (비유의 경우에는 한 복음서 조직화된 설화가 비유에 의해 세상이 타도되는 것을 통해 어떻게 반대되고 있는지를 발견하려는) 눈을 가진 해체주의적 방식으로 한 본문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 본문 안의 구조들은 실제로 갈등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언제나 파괴적인 갈등은 아니다. 구조의 상호작용은 그것이 파괴적인 것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 내에서 갈등을 지속하며, 그것을 통해 창조적인 통찰력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글에서 가장 무게를 실어 조명했던 가난한 자를 제도적인 삶의 패턴 안에 통합시키는 “누가”의 구조와 첫 번째 축복선언의 파괴적인 구조 사이의 갈등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의 삶 한 복판에 있는 것이다. 이 갈등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삶 속에 끊임없이 새로운 에너지와 창조성을 공급한다.
따라서 해체주의에 대한 약속은 유일한 해석방법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이해한다. .

무어의 설화 비평을 했는데 우리는"가난하자‘에 대한우리의 입장을 재조명해야 하지 않을 까 생각된다. 먼저 왜? 가난한가? 하나님의 율례를 지켜야될 것과 성실하게 살아야 할 의무감, 부모로부터 타고난 복, 그들을 지탱해 주어야할 교회의 제도화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마음을 비인 자는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니라.



2002-11-21 17: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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