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학교 기독교학부, 성서해석학
(Biblical Criticism and Hermeneutic)-2002년 2학기

[참고] 구약성서 주석방법론(영문): 본문비평,   문서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편집비평
[참고] 박동현 교수님(장신대) 자료:구약 주석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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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신학의 다섯모델-왕대일 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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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신학의 다섯 모델: 21세기의 구약신학 원문: 왕대일, 구약신학, 감신대성서신학연구소, pp.56-95




20세기의 구약신학 작업을 대표하는 신학자로는 아히로트, 폰라트, 침멀리, 클레멘츠, 베스터만 그리고 차일즈, 핸슨등을 꼽는다. 이들의 구약신학 방법론의 반성과 평가 위에서 다음의 모델들은 21세기의 구약신학의 작업으로 전망되어 지고 있다.
첫째는 하르트무트 게제(Hartmut Gese)의 전승사적 구약해석에 기초하여 이룩되는 구약신학이며, 둘째는 브루기만(Walther Brueggemann)의 사회과학적 성서해석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는 구약신학의 세계이다. 셋째는 유대인의 경험과 영성을 토대로 재구성된 히브리어 성서의 철학적 사고이다. 레벤슨(Jon D. Levenson)의 구약신학이 이런 노력을 대표하며, 넷째는 트리블(Phylis Trible)이 바라보는 여성신학 시각에서 구약성서라는 문학 작품을 주석/해석하면서 쌓게 되는 구약신학의 세계이다. 마지막으로 구약성서의 여러 증언들이 각각 지니는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묻고 대답하면서 "정의와 공평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야웨 하나님의 통치"가 왜, 어떻게 해서, 구약신학의 보편타당한 기준이 될 수 있는지를 조직적으로 탐구하는 구약신학이다. 크니림(Rolf P. Knierim)의 구약신학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1)하르트무트 게제 폰라트의 제자이며 그의 우파로 알려져 있다. 1958년 이래 현재 이르기까지 독일 튀빙겐의 에버하르트 - 칼스대학의 루터신학부 교수로 구약학교수이다.
와 구약신학의 전승사적 전개
게제가 생각하는 구약신학의 과제는 원칙적으로 신구약성서의 전승 속에 펼쳐진 계시의 본성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전승이 어떻게 해서 신약으로, 신약의 전승이 어떻게 해서 구약에서부터 단계적으로 발전되어 왔는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성서신학에서 구약의 가르침은 반드시 신약까지 연결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성서신학적 작업은 무의미하다고까지 한다. 구약과 신약의 전승사적 연결에서 게제가 소중하게 보는 것은 구약의 지혜전승이다. 구약의 지혜전승이 구약 전승사의 최종 단계에 있으면서, 구약을 신약과 연결시키는 핵심적인 고리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신약의 기독론이 구약의 지혜전승에서부터 시작된 "인자"사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통찰이다. 게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욥기 28장에서 지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영역에 있다(욥28:25-27). 이 지혜가 잠언 8장이 찬양하는 지혜에서는 인간 세상의 질서(잠8:12-21)와 우주의 질서(잠8:22-31)를 판단하는 존재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다가 주전 3세기말 벤시락의 지혜서는 지혜의 창조행위를 이스라엘의 구원사의 계시적 작업에까지 확장시킨다. 지혜와 계시가, 창조와 구원이 조화를 이루면서 벤시락에게 가서는 지혜가 하나님의 창조적인 말씀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온에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바로 지혜라고까지 단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게제는 창조의 질서로 여겨지던 지혜(욥28장)가 창조의 질서 속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이해되게 되고(잠8장), 그것이 나아가 하나님의 구속사의 현존으로까지 간주되게 되었다고 본다(벤시락의 지혜서). 그것이 다시 "인자같은 이"가 하나님의 왕권을 대행하게 되는 주전 2세기의 메시야 사상(단7장: 에녹의 비유 37-71)을 만나면서 전통적인 다윗-메시야 사상이 인자-메시야 사상으로 수정되게 되고, 배타적이던 메시야가 모든 인류를 위한 메시야로 대체되게 되었다고 본다. 게제는 바로 이런 메시야 사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개념이 신약의 인자 개념이라고 본다. 예수의 인자 칭호란 구약의 지혜전승의 의미를 극대화시켜 놓은 종말론적 지혜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약의 지혜전승에 대한 참된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에 대한 신앙이 생겨났고, 왜 기독론이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승이야말로 구약성서 전체가 무엇을 증언하는지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장치이며 게제는 이 때 중요한 것이 구약의 전승사가 구약에서 끝나지 않고 신약성서로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구약의 전승은 신약성서를 위한 전승사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폰라드의 구약신학을 방법론적으로 계승하면서 구약성서에 수록된 전승의 통시적 전개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제가 폰라드와 다른 점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사이에 놓여 있는 연속성을 추적하려는 그의 노력에 있다. 게제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하나로 연결되는 신학, 곧 성서신학의 구성을 자신의 "신학하기"의 최종 목적으로 삼는다. 이 점에서 게제는 역사 비평적 성서해석의 중요성을, 그 가운데서도 전승사적으로 성서를 읽어간다는 것의 가치를 새삼 일깨워주는 신학을 우리에게 학문적 열매로 제시하고 있다.


2)월터 브루기만 미국 조지아주 콜럼비아 신학교의 구약교수이다.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 세인트 루이스대학에서 교육학박사학위 받음.
: 사회학적 구약해석과 신학적 상상력
브루기만은 구약성서 해석의 지평을 사회학적/사회사적 영역으로 넓혀간 학자이다. 사회사적으로 구약의 말씀을 이해할 때 이스라엘의 신앙은 결코 어떤 추상적인 아이디어들을 모아놓은 결과물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먹고, 입고, 살았던 구체적인 삶 속에 뿌리를 내린 실체이다. 구약의 말씀을 해석하려는 자는 누구나 그 증언 속에, 그 증언과 함께, 그 증언 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구체적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렇기에 구약신학적 작업에는 반드시 구약신학자의 해석학적 고백이 반영되어야 한다.
브루기만이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구약의 증언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 보면, 그는 야웨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히브리어 동사들이 본문 속(예를들어 창1:1-2:4a; 14:19, 22; 사37:16; 42:5-6, 18; 51:9; 렘10:16; 암4:13; 시33:6,9)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해석하면서 구약의 창조신앙에는 무엇인가를 선언하고자 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들어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왕조시편(시89편)이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을 지지하신다는 주장과 야웨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선하다는 주장을 같은 차원에서 선포하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브루기만이 생각하는 구약신학은 구약성서가 선포하는 증언의 가치나 의미를 단순히 찾는 작업이 아니다. 신학은 성서의 어떤 주장을, 그 주장의 가치나 의미를 묘사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구약신학은 성서가 말하는 주장의 가치나 의미 속에 신학자의 본질적인 자기 고백을 내포해야만 한다. 사실 구약성서의 증언 자체는 기존구조를 정당화하는데 소용되기도 하고, 소외된 자의 아픔을 감싸 안기도 한다. 전자는 일종의 대중적인 신앙유형이며, 후자는 시편의 탄식시 등에 집대성 되어 있는 신앙 유형이자 약자의 아픔을 껴안는 신앙 전통이다. 이것은 보편적인 신앙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소수인의 신앙이다. 브루기만이 간파하는 구약신학의 핵심은 후자에 놓여진다. 그는 구약신학이란 이른바 약자의 "고통을 껴안는"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웨 하나님이 약자의 아픔을 어떻게 감싸 안으시는지를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브루기만의 구약신학하기-그것은 체계적인 사회적정황속에서 구약성서의 의도를 읽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3)존 레벤슨 1975년 미욱 하바드 대학에서 고대중동지방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받음. 현재 하바드에서 유대인의 문학, 철학,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 유대교의 영성과 히브리어 성서의 철학
유대인의 시각에서, 유대인의 경험과 아픔에서, 유대적인 영성의 틀에서 구약성서의 하나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토론해 가는 레벤슨에 있어서 진정한 구약신학은 "유대적 성서의 신학"인 것이다. 구약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유일신 야웨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를 익히는 것인데, 바로 여기에서 레벤슨이 제기하는 질문, '왜 야웨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에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아래 구약신학의 주제, 창조와 계약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레벤슨의 질문은 "홀로코스트"의 대학살을 경험했던 유대인의 아픔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주님이신데 현실적으로 유대인들은 역사 속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박해와 시련을 당했다. 여기서 레벤슨이 이해하는 히브리성서의 창조신학은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누르시고, 하나님의 권위로 "삶을 지탱하는 질서"를 깔아 놓으셨음을 가르쳐준다. 이 때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의 질서가 "깨지기 쉬운"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레벤슨이 추구하는 히브리어 성서의 연구는 옛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 안에서 히브리어 본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추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유대인답게 히브리 성서와 랍비들의 유대교 사이에 연속성이 있음을 강하게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레벤슨은 히브리 성서가 중요하게 다루는 계약의 문제를 유대적 신앙의 골격으로 중요하게 다룬다. 그것이 바로 시내산과 시온산이다. 그는 시내산(모세)과 시온산(다윗)의 관계를 복합적인 것으로 본다. 이 둘의 관계는 비평적인 학자들이 설정하였듯 서로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은 히브리 성서 안에서 차라리 "복수적인 형태"(pluriform)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시내산과 시온산, 모세와 다윗이야말로 유대 성경과 유대인의 삶에서 두 극점에 해당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4)필리스 트리블 뉴욕 유니온 신학교 구약학교수이다. 그의 스승은 뮬렌버거이다.
: 여성신학적 구약신학
지금까지 성서해석은 남성 중심적인 작업이었다. 남성 중심적인 사고에 물들어져 있었고, 남성 중심적인 언어에 길들여져 있었다. 트리블의 과제는 이런 경향에 반하여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 신학적 사고와, 여성 해방적 언어로 남성의 문화에 억압 받았던, 또는 남성의 폭력에 짓눌렸던 구약성서의 세계를 탐구하려고 한다.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은 첫째, 옛 이스라엘의 문화와 종교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얼마나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억압을 받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둘째, 성서 안에서 잊혀져버린 전승들을 재발견하거나, 또는 여태까지 왜곡되어 왔던 전승들을 재해석하였다. 셋째, 신구약 성서 안에서 작지만 크게, 미약하지만 힘차게 나타나고 있는 여성의 긍정적인 본문들을 발굴해내서 성서 본문의 이미지를 반 가부장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열매를 남겼다. 그 결과 넷째,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이미지로 받아들였던 하나님의 이미지를 수정하여 하나님의 여성적 심상이나 여성적 형상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트리블은 성서해석이 단순한 묘사나 역사적인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본문에 사용된 언어가 어떤 것인지, 그 상징은 어떤 것인지를 텍스트→ 장면→ 에피소드→ 사건이라는 체계와 계통을 따라서 세밀하게 분석한다. 그의 구약해석은 아히로트식의 언약 모델이나 폰라드식의 전승사적 구속사 신학 모델을 모두 다 거부하고 있다. 트리블은 본문의 어느 한 주제를 해석의 대상을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히로트를 넘어서고, 본문의 주제가 다른 본문에서 어떻게 수정, 확장, 재해석되는지를 추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폰라드를넘어서고 있다. 트리블의 구약해석은 어디까지나 철저히 최종형태의 본문 자체를 주석하는 것이다. 본문의 세밀한 읽기를 통해서 얻은 깨달음과 단서를 가지고 복잡한 오늘의 상황을 푸는 고리로 삼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구약성서의 초점인 신앙을 설명하고 있으며, 트리블에게 있어서 신앙의 근본적인 과제는 '인격적 성'과 '몸의 성'에 대한 해석에 있다.


5)롤프 크니림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1962년 박사학위 받음. 폰라트의 제자로 좌파로 일컫는다. 미국으로 건너와서 캘리포니아의 클레아모트 신학교와 대학원 종교학부 교수이다.
: 구약증언의 논리적 검토와 구약신학적 정당성
크니림에 의하면 구약신학은 구약성서의 증언들이 얼마나 보편타당한 진리가 되는지를 규명하는 노력이 되어야만 한다. 구약성서 안에 병렬되어 있는 구약신학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묻고 확인하는 작업이야말로 구약신학이 다루어야 할 해석의 대상이다.
게제와 트리블의 문제가 신학을 주석으로 축소시킨 경우에 해당된다면, 레벤슨과 브루기만의 한계는 신학을 해석학으로 확장시킨 경우에 속한다. 구약신학은 어디까지나 신학으로, 신학 안에서, 신학을 향해서 행해져야 한다. 크니림이 생각하는 구약신학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온 세상을 지으시고 하늘과 땅을 공평하게 다스리시는 야웨 하나님이라는 "보편적인 실체"이다. 다시 말해 구약이 고백하는 야웨 하나님을 우주적인 하나님으로 공정하게 하는 기준이야말로 구약신학의 진리됨을 판정하는 잣대가 된다. "공평과 정의로 세상을 고루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해석하는 일이야말로 구약신학의 근본과제가 된다. 크니림의 구약신학은 방법론상 조직적이고 논리적이고 토론을 중요시한다. 그에게 있어 구약신학은 성서의 증언을 묘사하는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성서의 증언을 고백하는 것으로 치달아서도 안된다. 구약신학은 자기가 다루는 어떤 증언이 과연 구약성서에 있는 여러 신앙증언들 속에서 보편타당한 것인지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구약의 증언이 과연 진리인지를 묻고 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약성서의 복수적 신앙증언사이의 관계를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구약성서는 신학적으로 우리에게 닫혀지고 만다. 크니림이 강조하는 것은 구약신학의 최종적인 비평기준은 "야웨 하나님께서 보편적으로 정의롭고 공평하게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야말로 구약신학이 논해야 할 최종, 최고의 과제이다.





2002-11-27 12: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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