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학교 기독교학부, 성서해석학
(Biblical Criticism and Hermeneutic)-2002년 2학기

[참고] 구약성서 주석방법론(영문): 본문비평,   문서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편집비평
[참고] 박동현 교수님(장신대) 자료:구약 주석방법론

  박경철 [ E-mail ]
  [참고]BHS 시편 본문비평장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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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 시편의 본문비평장치 해설

BHS 시편의 본문비평장치 해설 / 김정우
성경원문연구 제3호

김정우*


1. 비평본들의 역사에 있어서 BHS의 위치와 가치

마소라 사본은 주로 비평적인 원리도 없이 여러 다양한 자료들로부터 복사되고 인쇄되어 왔기 때문에, 본문비평가들은 가상적인 원본에 더욱 가까운 독법을 찾기 위해 금세기에 와서 여러 필사본들을 보다 충실히 반영하는 비평본을 만들게 되었다. 비평본의 역사를 간략하게 되돌아 보면, 16세기 초로부터 1937년까지, 제이콥 벤 하임이 편집하고 다니엘 봄베르그가 1524-1525년에 출판한 제 2랍비 성경(the Second Rabbinic Bible)이 구약 성경의 “표준본문”(the Received Text)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1937년 루돌프 킷텔은 Biblia Hebraica 제3판을 출판하면서, 1, 2판에서 대본으로 사용한 벤 하임본문(ben Hein text)을 그 보다 약 500년 정도 앞선 벤 아셰르 본(Aron ben Moses ben Asher text, 1008년)으로 대체하였다.* 총신대학교 교수, 구약학
샌더스에 따르면, “폴 칼레는 1926년 레닌그라드의 러시아 공공 도서관 (살티코프 췌드린 국립 박물관)에서 (제2랍비 성경 보다) 더 오래된 사본을 발견하고, 후에 벤 하임본을 BH 1, 2판에 사용한 킷텔에게 벤 아세르본이 더욱 우수함을 말하여 그를 설득하였다”고 한다(Sanders 1967:9).
이리하여 1937년 이후로부터, 레닌그라드-벤 아세르본(B19-A)이 구약 본문의 기준이 되었다. 이 사본은 19세기에 카이로의 에즈라 회당에 있는 게니자에서 레닌그라드로 옮겨졌으며 시편 전권을 다 담고 있다. 카이로 게니자에서는 5-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단편들이 1890년 이후에 발견되었다.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알레포 벤 아세르본은 10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안에는 10개의 시편이 담겨 있다(시15:1-25:2).

1920-30년대 작품인 킷텔의 비평본(BHK)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더 나은 비평본의 필요성을 느낀 독일 성서공회는 엘리거(K. Elliger)와 루돌프(W. Rudolph)를 편집자로 세우고 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로 대치하려고 계획한 후, BHK의 위원이었던 Baumgartner, Hempel, Quell, Robinson, Rudolf는 BHS에서도 일한다. 대부분은 독일계 (혹은 독일어계) 학자이며, W. Thomas, T. H. Robinson은 영어권, Gerleman (욥기)은 스웨덴, de Boer (사무엘서)는 화란계이다.
새 비평본 BHS는 BHK 제3판이 나온지 40년 만에 윈턴 토마스의 이사야서판(1968년)으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에 대한 비평적 논평으로서 P. W. Skehan의 글 (1969:616-7)을 보라.
이듬해인 1969년 바트크(H. Bardtke)가 편집한 BHS 시편이 두번째로 나타났고, 이후 1976년에 사무엘서와 이어 다니엘서와 에스라-느헤미야가 완성되고, 1977년에 전권이 완성되었다. 새 개정판 BHS는 제본과 활자체에 있어서 BHK를 능가하며(Barr 99) BHS는 “아름답게 만들어지고 활자체도 탁월하다”(Barr 99).
오랫동안 학계에서 사용된 BHK 제3판을 점진적으로 대치해가고 있다.
대본에 있어서 BHS는 BHK와 같이 레닌그라드 코덱스 B19a(L로 표기됨)를 사용한다. 이 점에 대해 바아는 “이 사본은 일반적으로 높은 인정을 받으며, 이 선택의 적합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사본(주후 1008년)과 알렙포 사본(Allepo Codes) 사이에 하나를 선택한다. 후자는 손상되었기 때문에, L을 선택하는 것은 성경 전권을 위한 하나의 본문으로서는 최상이다. 본문은 뤼거(H.-P. Rueger)에 의해 재연구되고 세심하게 감독되었다”고 말한다(Barr 99).` 이 사본의 독법이나 출판상의 실수에 대해 도단(Dothan)은 “BHK보다는 인쇄 오류가 적으나, 사본 오독은 더 많았다”고 한다 (Barr 99에서 인용됨). 바아는 욥기 38:2, 이사야 42:9, 민수기 2:12, 출애굽기 1:3 등에 있는 몇가지 실수를 잘 찾아내어 지적하고 있다(99-100쪽).

BHK와 BHS의 전체적인 특징에 대한 토브의 설명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Tov 1992: 375).
(1) 모든 본문상의 증거들로부터 나온 이독들과 지난 세기 동안 제시된 수정 제안들을 주관적으로 선택한다.
(2) 이독과 가상 수정을 평가하며, lege, “읽으라”, delendum, “생략하라”, ins(ere), “삽입하라,” pr(aemitte), “앞에 두라” 등으로 제시한다. 이런 용어들을 통해 편집자들은 독자가 마소라 사본이 어떤 방향으로 전환시키라고 제시한다. 그들에 따르면, 이 변화들은 가정된 원본의 세부사항을 회복하는 것이다.
(3) BHK 3판과 BHS는 레닌그라드 사본에 근거하나, 시와 설화의 형태에서 배열은 편집자들의 주관적인 견해를 따라 이루어진다.
토브는 이어서 BHS가 도입한 새 요소들을 간략하게 제시한다(Tov 1992: 375).
(1) BHK에 있는 세개의 장치를 하나로 통일시킨다. 그렇지만, 바아는 이 비평주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한다. “비평주는 새 판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다. BHK의 비평주에도 불만이 많았다. 많은 경우에서 새 것은 옛 것 보다 더 나쁘다. 비평주를 한 란(column)으로 정리한 것은 ‘주된’ 상이점과 ‘사소한’ 것의 둘로 나누는 BHK의 이중 장치 보다 더 좋다. 그러나 옛 장치의 잘못들이 계속된다. 우리는 수많은 예들을 제시할 수 있다” (Barr 102).

(2) 소마소라(Mp)와 대마소라(Mm)에서 보다 방대한 자료를 가져온다.
(3) 카이로 게니자와 쿰란 두루마리들에서 증거들을 보다 세부적으로 증거해 준다. 그렇지만 자료들에 대한 정확한 시사가 없다.
(4) 단수와 복수 사이의 차이 등의 문법적 범주에서 마소라 사본과 고대 번역들에 대한 차이가 일반적으로 주어진다. 이 특색은 히브리대학교 성서(Hebrew University Bible)에 처음 도입된다.
(5) 고대 번역들에서 나온 세부사항들은 주로 히브리어로 재구성하지 않았다.
(6) 추측에 의한 수정에 대해 크게 주의하였다.


2. 마소라 서기관들의 본문비평과 BHS

2.1. 마소라의 특수 부호들

(1) 비정상적인 부점(Puncta Extraordinaria)
시편 27:13을 시작하는 단어 루레(lule')에는 아래 위로 다이아몬드형의 부점들이 여섯개 붙어 있다(Leningrad Codex [이후부터 LC] 752쪽 // BHK, BHS). 스캇에 따르면, “이것들은 서기관들이 교리적 혹은 본문상의 유보를 시사할 때 만든 것”으로 본다(Scott 1995:3). 긴스버그에 따르면 이 표시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모두 15번 나타난다(318쪽). 특히 그는 이 부점이 탈무드(Berachoth 4a)에서 논의되었으며, 2세기의 유명했던 랍비 요세(Jose)가 시편 27:13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 것을 인용한다. “랍비 요세는 루레(lule')에 있는 부점들은 다윗이 거룩한 자, 찬송받으실 이, 우주의 주 앞에서 말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즉, '나는 주께서 장차 올 세상에서 의인에게 큰 상을 내리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들 사이에 제 몫을 받을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333쪽). 달리 말하자면 랍비 요세는 루레(lule')에서 부점을 따라 “첫 부분(lu)은 삭제하고 lo' he'emanti, '나는 믿지 않았다'로 읽었음이 분명하다.”(Ginsberg 333). 이 독법이 어렵고 문맥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몇몇 사본들과 70인역과 시리아역과 벌게이트에서는 이 단어를 완전히 삭제하기 때문에 긴스버그는 아래와 같이 제안한다(Ginsberg 333).
“I believe that I shall see
The goodness of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긴스버그의 제안은 개역과 우리말 현대어 번역에서 “내가 믿나이다”로 반영된다(//공동, 표준). 그렇지만 니하우스(Niehaus 1979:88)에 따르면, 접속사 루레(lule')는 구약에서 13번 사용되며, 대부분 조건절(protasis)과 주절(apodosis) 형태의 일부를 이루며, 이 용법 중 세 번의 예외가 있으며(신32:26-27; 시106:23; 시27:13), 특히 시편 27:13은 12절 하반절과 연결된 것으로 본다.
12절상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12절하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고 하오니,
13절 내가 만약 산자의 땅에서 주의 선하심을 보기를 믿지 않았다면.
즉, 12절 하반절은 12상반절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으며, 주절(apodosis)로서 13절을 이끄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12절 하반절에서 qum이 be와 함께 사용될 때는 단지 “대적하여 일어나다”(arise against)가 아니라, 신명기 19:15에서처럼 “이기다”(prevail against)라는 뜻을 가진다. 신명기 본문도 증인이 피고인에 대항하여 행동을 취하는 문맥이다. 따라서 새로운 번역을 시도해보면 다음과 같다.
12절상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13 만약 내가 산자의 땅에서 주의 선하심을 보기를 믿지 않았다면.
12절하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나를 이겼으리이다
즉, 13절은 12절 하반절의 조건절로서 시인이 이미 주님을 믿지 않았다면, 그는 위증자에게 패배하였을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히브리어 루레(lule')에 있는 이상한 부점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 매달린 문자(suspended letter) Ginsberg (1966:338)는 “suspended letter”라고 하며, 스캇은 “raised letter”라고 한다(Scott 1995:4).

시편 80:14(한 13), “수풀의 돼지가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에서 “수풀”(ya'ar)이란 단어의 중앙활자 “아인”('ayin)이 반쯤 위로 올려져 걸려 있다(LC 776). 긴스버그에 따르면, 알렙과 아인은 둘 다 “무성이거나 혹은 약한 발음을 내기 때문에” 본문 속에 자주 표현되지 않아 원래는 miyyor로 쓰여진 것이 학파에 따라 알렙으로 읽거나(“강으로부터”), 혹은 아인으로 읽게 되었다(“숲으로부터”)고 한다(Ginsberg 339). 70인역은 전자로 읽으며, “강의 돼지”(즉 하마)는 이집트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3) 도치된 눈(Inverted Nun)
이 부호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편 107:21-26, 40에 나타나며, 이 외에도 민수기 10:34과 36절에 나타나고 있다. 긴스버거에 따르면, “이 도치된 글자들 혹은 그와 같은 것들은 서기관들(소페림)이 그들의 본문비평의 결과를 시사하는 가장 초기의 기호들이다”(Ginsberg 342). 긴스버그는 시편 107:39절과 40절은 위치가 도치되었기 때문에, 40절, 39절, 41절의 순서를 따라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제안한다(344쪽).

2.2.. 시가서 본문에서 절 구분 문제

현재 BHS에 있는 시편의 행간 표시는 원래 레닌그라드 사본의 표시와 다르다. BHS의 단어와 부호들은 엄격하게 레닌그라드 사본을 따르지만, 한 절을 두 소절(cola 혹은 stichoi)로 구별하는 것과 원래의 행간(caesurae) 사이의 간격을 넣는 것은 각 책의 비평 장치를 만든 편집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행간 간격에는 마소라적 권위가 없다. 원래의 사본에는 시편 역시 산문체로 쓰여지고 있다.
(1) 시편 83:12(한 11절)에서 레닌그라드 사본에는 “오렙”과 “스엡”이 붙어 있으며, “세바와 살문나”로부터 하반절을 시작한다(LC 777). 그러나 BHS는 상반절은 “오렙”('oreb)에 두고, 하반절은 “스엡”(ze'eb)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런 현상은 BHK에도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BHK와 달리 BHS는 레닌그라드 사본을 보다 정확하게 따르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여기서는 달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바아에 따르면, 여기에 지침으로 택한 사본에 최대한 일치하는 “고문서를 충실히 따르는 원리”(diplomatic principle)와 실제적 사본 훨씬 이전에 있었던 “원래”의 본문 상태를 회복하는 “비평적 원리”(critical priniciple)라는 두개의 대립적 원리 사이에 있는 긴장을 드러내어 준다고 본다(Barr 1979:101). 우리는 BHK와 BHS를 즐겨 사용하지만, 여기에 나타난 절 구분은 원래의 사본에는 없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따라서 원본에 없는 절구분을 비평본에서 시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필요한 일이다. 특별히 시가 등장하는 본문에서는 히브리어 시의 형식을 따라 인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 구분에는 인위성이 있다.

(2) 시편 1:1의 절구분 문제
BHS의 시편 절구분이 어떤 의미론적 차원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본문인 시편 1:1을 살펴보고자 한다. 레닌그라드 사본과 BHS는 마소라 강세 부호에 있어서 일치점이 있지만, 절 사이에 공백을 두는 데 있어서는 서로 다르다(예로서, L에서는 ubedereq hatta'im과 lo' 'amad 사이에는 큰 공백을 두고 있다). 이런 차이는 영어 번역 뿐 아니라, 우리말 번역에도 나타나고 있다. 개역은 설화처럼 한 절로 처리하며, 공동번역은 4소절로 표준새번역은 5소절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개역 번역을 공동번역의 구조를 따라 아래와 같이 배열하였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렇지만, 마소라의 독법은 이렇게 평이하게 4소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절에서 문장을 둘로 나누는 아트나(Atna)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lo' 'amad)에 나타나고 있으므로, 마치 하반절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로 만 이루어진 것 같다. 그러나 시편과 욥기와 잠언에서는 올레-베요레드가 아트나보다 상위 개념이므로, D. Yeivin, Introduction to the Tyberian Massorah. Translated and Edited by E. J. Revell. Massoretic Studies 5 (Scholars Press 1980): 264 #358을 보라. 스네잇 역시 이 입장을 따르고 있다 (1979:363).
올레-베요레드(oleh-weyored)가 한 절을 두 소절로 나누는 지점이 된다. 따라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에서 이 절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이렇게 보면, 악인 위에 있는 올레-베요레드(oleh-weyored)가 주절을 이루고, 잇따르는 두번째(“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와 세번째 소절(“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은 첫 소절을 확대하고, 반향하고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W. Wickes 1881:28). 윅스는 같은 현상이 여기 외에도 구약에서 일곱번 나타난다고 말했다 (시7:15; 28:4; 52:7; 115:12; 129:12; 140:6; 욥31:7).

그러므로 여기에는 서로 독립된 세개의 동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첫 소절에 있는 “걷다”(halak)에 하반절에 있는 “서다”와 “앉다”가 종속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뒤따라 나오는 두 동사인 “서다”와 “앉다”는 “걷다”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동사는 “걷다”가 된다. 또한 “서다”와 “앉다”는 합성어(merism)로서 이 합성어가 “걷다”와 평행을 이루고 있으므로, 인생을 총괄적으로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Zenger 46). 특히 완료형을 통해, 인생 전체를 한 눈에 보듯이 그려주고 있다. 따라서 시편 1:1은 아래와 같이 새로 배열될 필요가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3. BHS의 시편 본문비평 장치 해설 우리는 편의상 개역의 본문을 인용하며, 필요한 경우에만 수정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주님의 이름도 “여호와”로 통일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또한 히브리어와 희랍어는 로마어로 음역하였으며, 특히 히브리어 헷트(j)는 ch로, 짜데(x)는 ts로, 쉰(v)은 sh로, 알렙(a)과 아인([)은 구별 없이 '로 표기하였다.


3.1. 시편 1편

시편 1편을 알리는 알렙(a)에 대해 BHS 각주는 “numerus > L”이란 설명을 한다. 이것은 제 1편이란 숫자(numerus)를 표시하는 알렙(a)이 레닌그라드 사본(L)에는 ”없다“(>) 혹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a]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b]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a] 악인의 “꾀”에 대해 BHS는 시리아역이 악인의 “꾀”(a)와 죄인의 “길”(b)을 “도치시켰다”(invers)고 말한다. 따라서 시리아역은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꾀에 서지 아니한다”로 읽어,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지만 “꾀를 좇다”라는 표현도 히브리어 성경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대하22:5; 미6:16; 시81:13; 렘7:24). 따라서 시리아역은 좀 더 자연스러운 독법을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꼭 본문을 수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여기에서 BHS는 단지 본문의 이독에 대한 현상 만을 말하며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는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a]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b]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b]
[a] 3절의 중앙 소절을 시작하는 히브리어 관계사 'asher에 대해 BHS는 “탈굼에는 없다”고 말한다.
[b] 3절의 마지막 소절을 이루는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b]~[b])에 대해 BHS는 이 소절은 “여호수아 1:8에서 가져온 첨가”(gl, cf Jos 1:8)라고 말한다. 크라우스(Kraus Psalms I:118f.)도 “이 첨가된 절은 여호수아 1:8의 모델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BHK는 이 부분에 대해 “삭제하도록 제안한다”(prps dl). 이 점에 있어서 BHS는 BHK 보다 온건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학자들이 이 절을 “첨가”(BHS)로 보고 때로는 “삭제”(BHK)를 제안하는 이유는 이 절이 그들이 생각하는 히브리 시의 운율(meter)에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 절은 정상적인 운율에서 벗어나 절을 너무 길게 만들기 때문에, 시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고대 사본들과 역본들은 이 절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운율에 근거한 삭제”는 히브리시의 운율에 대한 서구적 개념에서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학자들은 의미론적인 관점에서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는 바로 앞에 있는 나무 은유에 대한 설명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첨가”로 여긴다. 통사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소절은 바로 3절을 시작하는 “나무”를 가리킬 수도 있고(3절상), 혹은 1절을 시작하는 “복있는 자”를 가리킬 수 있다. 후자로 본다면, “복있는 자는...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로서 제1소절(1-3절)을 아름답게 끝맺는다고 볼 수 있다('ashrey ha'ish... wekol-'asher ya'ase).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a]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b]
[a]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에 대해 BHS는 “70인역을 참조하여 lo'-ken(그렇지 않음이여)을 '악인'(hareshaim) 뒤에 한 번 더 삽입하라(ins)”는 제언을 한다. BHK는 “70인역과 함께 삽입하라”(ins cum cf LXX)고 말한다. 70인역뿐 아니라(ouk houtos), 벌게이트 역시 “그렇지 않음이여”(non sic)가 두 번 나타난다. 아마 이 두 역본도 운율을 고려한 것 같다.
[b] “오직 바람에 나는”에 대해 BHS는 70인역이 “땅의 얼굴에서 (즉 땅에서) 일어나는 (바람)”(apo prosopou tes ges)을 첨가하고 있다고 한다. BHK는 이 문제를 각주 첫 란에서 다룬다(BHK는 각주를 두 란으로 나누었다). 이것은 아마 시상의 전환이 돌연하기 때문에 70인역 번역자가 문체를 순화시키기 위하여 이 구를 첨가한 것 같다. 이런 현상을 보면, 마소라 사본보다 70인역에 첨가가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70인역은 본문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키질을 할 때 땅에서 불어오는 바람 영상을 가져온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a] 들지 못하리로다
[a] 의인의 “회중”(바아다트)에 대해 BHS는 70인역이 “en boule”(생각, 뜻, 계획, 결심, 꾀)로 번역하였음을 말하며, 1절에 있는 악인의 “꾀”('atsat resha'im = en boule asebon)를 참조하라고 한다. 이것은 70인역이 “회중”('adat)이란 단어의 중간자음 달렛(d)을 짜데(ts)로 잘못 읽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에서 히브리어 qumu be를 “이기지 못하다”로 이해한다면(Niehaus 1979:88; 시 27:12), “죄인이 의인의 계획을 이기지 못하다”는 멋있는 해석이 될 것이다.

3.2. 시편 2편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a] 여호와와[b] 그 기름받은 자[c]를 대적하며[a]
[a]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a~a)에 대해 BHS는 “frt gl”, 즉 “아마 첨가”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비평가들(킷텔, 궁켈, 크라우스)도 이 소절을 대적들이 모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보며 “이차적인 첨가”로 여긴다. 또한 이 소절은 비평가들의 “운율” 개념에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절을 제거하길 원한다. 그렇지만, 이 입장은 그 어떤 고대의 역본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b] “여호와”에 대해 BHS는 “sic L”이라고 말한다. 즉 “레닌그라드 사본과 같이” yhwh에서 첫 자음 위에 분절기호 게레쉬(geresh)가 있음을 말한다(Yeivin 1980:193을 보라). 이어서 BHS는 “많은 사본들(mlt Mss)과 케니코트와 드 로시와 긴스버거가 편집한 히브리어 본문 제2판(Edd)에는 네 자음문자 위에 게레쉬와 르비아(Revia) 표시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c] 시편 2:2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그 기름받은 자”(meshicho)로 마치고 있다. BHS는 70인역이 diapsalma(즉, 히브리어 sela)를 첨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벌게이트에서도 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a]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a] “주께서”('adonay)에 대해 BHS는 “탈굼과 많은 사본들은 yhwh”로 읽으며, “70인역과 시리아역”은 “pr cop”(그 앞에 접속사 “그리고”[kai]를 둔다)고 말한다. 궁켈은 “'adonay를 yhwh로 수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어느 독법이 더 원래의 것이지 본문비평으로 결정하기는 어렵다. 여기에서 표준새번역은 왜 “내 주께서”로 번역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a]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a] BHS는 “진노하다”(ubacharono)에 대해 “두개의 사본은 ubachamato”(그리고 그의 뜨거움으로)로 읽는다고 말한다(이 형태에 대해서는 시 19:7을 보라). 그렇지만 “분”('ap)과 “진노”(charon)는 자주 평행을 이루며 나타난다(시 69:25, 78:49, 85:4;사 13:9, 13 등).

6 내가 나의 왕을[a]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b] 하시리로다
[a] “나의 왕”에 대해, BHS는 “70인역에 3인칭 단수 접미어가 있다”고 말한다. 벨하우젠으로부터 많은 본문비평가들은 몇 개의 히브리어 사본과 70인역(basileus hup' autou)에 근거하여 “그의 왕”으로 수정한다.
[b] 또한 “세웠다”라는 동사에 대해, BHS는 “70인역이 수동태”로 읽고 있다고 말한다. 즉, 70인역은 “내가 그에 의해 그의 거룩한 산 시온에서 왕으로 세움받았다”로 읽는다. 이렇게 보면, 6절은 마소라 사본처럼 주의 말씀이 아니라, 왕의 말이 된다.

7 내가 여호와의 영을[a] 전하노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a]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라는 개역은 마소라의 독법 부호를 잘못 읽은 번역이다. 마소라 사본을 따라 BHS에서는 “영”(hoq)과 “야웨”(yhwh)가 이음부호인 메르카(Merka)와 분리부호인 르비아(Revia)로 “영”(hoq)과 “여호와”(yhwh)가 이어져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영”(hoq yhwh)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내가 여호와의 영을 전하노라”로 보아야 한다. 표준새번역은 풀어서 “나 이제 주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로 읽는다. “영”(hoq)에 대해 BHS는 “70인역이 3인칭 단수 접미어”를 첨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a] 주리니[b]
네 소유가[c]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a] BHS는 “너의 유업”(nachalateka)에 대해 “탈굼과 몇몇 필사본들이 너의 유업들”(nachalateyka)”로 읽는다고 한다.
[b] “내가 주리니”에서 BHS는 “70인역”과(시리아역이) “kai doso soi” 즉 “내가 너에게 주리라”로 읽고 있다고 한다. 히브리 시에서 문법적인 한 요소가 이중기능(double-duty)을 수행하며 평행절에서 생략되기 때문에, 이인칭 단수 “너”를 첨가해야할 이유가 없다.
[c] BHS는 “네 소유” 다음에 “한 사본이 'ad(~까지)를 첨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땅끝까지”는 동사 “주리라”의 목적어가 된다. 그렇지만 현재 마소라 사본의 독법, “열방을[A] 네 유업으로[B], 너의 소유를[B'] 땅끝까지[A']”로 읽는 것도 아름다운 교차대구법으로 짜여진 히브리 시로 볼 수 있다(A:B//B':A').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a]
질그릇 같이[b] 부수리라 하시도다
[a] BHS는 “깨뜨림이여”(tero'em)를 “70인역”과 (시리아역)이 poimaneis즉 “다스리다”(tir'em)로 읽고 있다고 말한다. 제롬(Psalterium iuxta hebraeos)도 70인역과 같이 읽고 있다. 따라서 마소라 사본의 독법은 70인역과 시리아역과 제롬과 대립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같은 자음(tr'm)에 모음을 달리 붙여 읽는 것이기 때문에 본문상의 차이는 심각하지 않지만,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두 가지 독법이 다 가능하다(Wilhelmi [1977:196-204]는 70인역을 지지한다). 최종적인 선택은 자음본문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마소라 사본의 독법이 더 강력한 느낌을 준다. 린다스는 “이 단어(ra'a')]는 분명히 (하반절의) ratsats ('부수다')에 대한 아람어 풍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최소한 예레미야15:12에도 나타난다”고 잘 지적하고 있다(Lindars 1967:64).
[b] “질그릇 같이”에 대해 BHS는 “70인역의 알렉산드리아 사본(A)과 루시안 개정판(L)과 시리아역이 복수형으로 읽는다”고 말한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a]
[a] “교훈을 받을지어다”(hiwwasru)에 대해 BHS는 “카이로 게니자의 몇몇 사본들이 hwsdw로 읽으며, 70인역에서는 시편 148:11과 같이 kol(모두)을 첨가하고 있다”고 한다. 카이로 게니자의 “hwsdw”(hosdu)는 yasad의 호팔 명령형으로서 “세움을 입으라”는 뜻이다. 마소라의 독법 hiwwasru는 yasar의 니팔 명령형으로서 단지 “교훈을 받을지어다”(개역)가 아니라, “징계를 받다,” “경고를 받다”는 뜻이다. 이것은 보다 강하고, 부정적인 어조가 내포된 권면으로서, 우리말 현대어 번역에서는, “정신을 차려라”(공동), “경고하는 이 말을 받아들여라”(표준), “징계를 받아들여라”(임승필)로 제시된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a] 섬기고
떨며 [b]즐거워할지어다
1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b]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c]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d] 다 복이 있도다
[a] “경외함으로”(beyira)에 대해 BHS는 “한 히브리어 사본(Ms)은 besimcha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즉, “기쁨으로 주를 섬기라”고 한다.
[b]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b~b)에 대해 BHS는 새로운 독법을 제시한다. (1) bir'ada nashshequ leraglaw, “떨며 그의 발에 입맞추라”로 읽으라(lese). 이것은 크라우스가 “떨며 즐거워 하는 것”이 다음 절에 나오는 “아들에게 입맞추는 것”과 개념상 모순되는 것으로 보고 “본문이 손상된 것”으로 여기며, “떨며 그의 발에 입맞추라”(Kiss his feet with trembling)고 번역한 베톨렛의 제안을 따른 것과 같다. 크라우스는 이 수정이 평행법에 일치한다고 본다. 혹은 (2) wegadlu shemo bir'ada, “그리고 떨며 그의 이름을 높여라”로 읽으라. “그리고 nashshequ-bar는 중복오사(dittg)이므로 삭제하라(et dl)”고 제안한다.
BHS가 제안하는 위의 두 독법은 “떨며 즐거워하다”는 표현은 용어상 모순되는 것 같기 때문에 BHS는 위와 같이 두 가지의 독법으로 제안하였다. 그렇지만 “떨며 즐거워할지어다”는 독법은 70인역(agalliasthe en tromo)과 제롬(et exultate in tremore)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맥킨토쉬는 원문을 수정하지 않고, “떨며 두려워하라”(fear him with trembling)로 번역하라는 랍비 사댜(Saadya; 9-10세기)와 이븐 야나(ibn Janah; 10-11세기)의 제언을 받아들인다. 즉, 그는 “즐거워하다”(gil)가 아랍어와 gal/gwl, wgl; trb, “be moved to fear or joy.”
성경 히브리어(호10:5; 욥3:22; 시2:11)에서 “두려움”과 평행을 이루고 있으며, 시리아어에서도 gwl/gyl은 “정서적 혹은 정신적인 흥분”을 뜻하기 때문에, “즐거움”과 “두려움”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본문을 수정하지 않고, “떨며 두려워하라”로 번역하도록 제안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찬양하여라”라고 의역하는 표준역은 어떤 범주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즐거워하다”와 “찬양하다”는 전혀 의미가 다르며 히브리어에서 “찬양하다”는 자체의 동사를 가진다.

[c] “길에서”에 대해 BHS는 70인역이 'eks hodou dikaias, “의로운 길에서”로 읽으며(=derek tsedaqa), 페쉬타는 mn 'wrchh, “그의 길로부터”(a via eius)로 읽는다고 말한다. 70인역의 번역에 대해 브릭스는 “이것은 해석일지 모르나, 이 절을 삼행으로 만들어 완전하고 빼어난 평행으로 만든다”고 말한다(Briggs 1960: 24). 그렇지만, 여기에서 70인역은 명백하게 시편 2편을 “지혜화”(sapientializing) 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Brownlee 1971: 321-36).
[d] “의지하는 자”(hosey bo)에 대해 BHS는 두 개의 사본이 hosim으로 읽는다고 한다.

3.3. 시편 18:1-30

1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a] 구원하신 날에...
[a] “사울의 손에서”(miyyad)가 많은 사본들과 삼하 22:1에서는 umikkap('손바닥')로 나타난다. 히브리어 yad와 kap는 여기에서 동의어로서 “권세, 능력”을 뜻하는 은유로서 “손아귀로부터”라는 뜻으로 사용된다(BDB 496; 창 31:42; 학 1:11; 욥 10:3; 시 128:2; 잠 31:13; 시 78:72 등). 또한 이 두 단어는 한 문장에서 평행을 이루며 자주 나타난다(삿 8:6; 시 71:4; 잠 10:4; 31:19, 20등).

2 [a]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b][a]
[a] BHS에 따르면, [a]에서 [a]까지는 삼하 22:2에 나타나지 않는다. 삼하 22장에서는 70인역에도 빠져있다. Briggs는 운율에 맞지 않기 때문에 제거하도록 제시하며, “다윗의 승리의 시가 예배용으로 사용되기 위해 첨가된다”로 본다.
[b]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erhomka)는 오직 여기에서 만 칼(Qal) 형으로 나타나며, 다른 형태에서는 “불쌍히 여기다”(피엘, 푸알형)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주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데 사용되며, 여기에서만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주체로 나타나기 때문에, BHS를 따라(prp) 많은 주석가들은 “내가 주를 높이나이다”('aromimka)로 읽도록 수정한다(Kraus). 그러나 아람어 라함(racham)과 아카드어 라무(ramu), “사랑하다”와 히브리어 아하브('ahab)는 가끔 “조약과 언약의 맥락에서 충성과 헌신을 바치는 뜻”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Chisholm 139), 왕이 자신의 대왕되신 주님께 충성을 다짐하는 고백으로 볼 수 있다.

3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a]
나의 하나님이시요[b]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c]
[a] “나를 건지시는 자”(umepalti)에 대해 BHS는 “dl m cs”(운율에 근거하여 제거하라)고 말하며, “카이로 게니자의 많은 사본들과 삼하 22:3은 li('나에게')를 첨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시 18:49에 다시 나타난다. 시편에서 이 단어는 주님의 공의로운 판단과 연관하여 나타난다(31:1; 71:1). 주님은 자신을 의지하며(batach, 22:5) 피하는 자를 건지신다.
[b] “나의 하나님이시요”('eli)에 대해 BHS는 “카이로 게니자의 몇몇 사본들과 삼하 22:3은 'elohey‘로 읽는다”고 말한다.
[c] “산성”(mishgab)에 대해 BHS는 “dl m cs”(운율에 근거하여 제거하라)고 제안한다. 이리하여 BHS는 시 18:3을 3:3:3 박자를 취하고 있다.

4 내가 찬송 받으실[a]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a] “찬송 받으실”로 번역된 단어(mehullal; 푸알 분사형 남성 단수)에 대해 BHS는 “70인역은 ainon(praise)= mehallel로 읽으며, 시리아역은 3절과 연결시켜 읽는다(cj c 3)”고 하며, “mimholalay나 혹은 이사야 53:5을 참조하여 mecholal('pierced', from chalal)로 읽도록 제안한다”고 한다. 크라우스는 마소라의 독법이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찬송 받으실”로 번역된 단어(mehullal)는 (1) 주격으로, “주는 찬양받으실 분”(공동), (2) 동명사형으로, “찬양받기에 합당한 분”, 혹은 (3) 호격으로 “오 주님... 찬양받으실 분”으로 볼 수 있다. 시편 113:3은 정확하게 현재 우리 구문과 일치하고 있으므로, 수정할 이유가 없어진다.

5 [a]사망의 줄이[b]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c]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a] BHS에 따르면, “많은 사본과 시리아역과 아라비아역 및 삼하 22:5에서는 ki를 앞에 둔다”고 말한다.
[b] BHS는 “사망의 줄”(chebley-mawet)을 “아마 삼하 22:5의 mishberey(물결)와 함께 읽으라”로 제안한다. 이것은 두 본문이 서로 다른 전승과정을 거쳤음을 말해준다.
[c] “그리고 불의의 창수”(wenchaley beliyya'al)에 여기에서 “불의”(beliyya'al)는 죽음과 연관된다. 따라서 새번역에서는 “멸망의 물에 휩싸여”(공동), “파멸의 파도가 나를 덮쳤으며”(표준), “멸망의 급류가 나를 들이쳤으며”(임승필)로 제시된다. 성경과 고대 근동의 세계관에서 죽음은 태초의 혼돈 세력인 물과 연관된다 (Keel 39를 보라). 이것은 “파괴하는 홍수”라는 뜻이다(TB 165). “파멸”(크라우스), “불경건한 자들의 홍수” (KJV), “멸망의 급류” (RSV), “벨리야알” (브릭스와 다후드) 참조.
대해 BHS는 “두개의 사본과 삼하 22:5에는 접속사 we가 생략되었다”고 말한다.

6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a]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a] “나를 두르고”(sebabuni)에 대해 BHS는 “많은 사본들이 sbwny로 읽으며, 삼하 22:6은 sabbuni로 읽는다”고 말한다. 크로스(Cross 1953)는 긴형태인 “나를 두른다”(sebabuni)를 단축형인 sebuni(삼하22:6) 보다 선호하며, 앞절에 있는 'apapuni와 평행을 이룬 것으로 본다.

7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a]
[b]저가 그 전에서[c]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d]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그 앞에서 그 귀에 들렸도다”는 “이본이 합쳐진 현상”(conflation)이다. 즉 lepanaw tabo'와 tabo' be'ozaw가 합쳐진 것 같다.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다”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Cross, Freedman, 23, n.13).

[a] “내가 부르짖었더니”('ashawwe'a)에 대해 BHS는 “카이로 게니자의 몇몇 사본들은 'ws'로 읽으며, 삼하 22:7은 'eqra'로 읽는다”고 말한다. 카이로 게니자의 독법은 시 18:4 끝에 있는 'iwwashe'a와 일치 시킨 것이므로, 쉰과 와우를 여기에서 도치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삼하 22장에서는 'eqra'를 두번 반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4, 7절).
[b] BHS는 “두 개의 사본과 70인역, 시리아역, 탈굼과 삼하 22:7은 wayyishma'로 읽고 있다”고 말하며 7절이 접속사와 “와우 연속법으로 이어짐을 말해 준다.
[c] “그 전에서”(meheykalo)에 대해 BHS는 “70인역이 '그의 거룩한 성전에서'로 읽는다”고 말해준다. 70인역은 의도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연상케 하는 것 같다.
[d] “그 앞에서”(lepanayw)에 대해 BHS는 “삼하 22:7에는 없으며, 운율에 근거하여 제거하라”(dl m cs)라고 말한다.

8 이에 땅이 진동하고[a] 산의[b] 터도[c] 요동하였으니
[d]그리고 그들은 진동하였으니 그 진노를 인함이라[d]
[a] “땅이 진동하고”(tig'ash; 칼 미완료)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두 히브리어 사본이 wattitga'ash(히파엘 미완료)로 읽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개역의 “진동하고”는 “진동하고 요동한다”(ga'ash ... ra'ash)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 두 단어는 아주 좋은 한 쌍의 시어로서 “흔들리고 뒤흔들린다”로 번역할 수 있다. 첫 단어(ga'ash)는 “흔들린다”(욥34:20)는 뜻 뿐 아니라, 술취한 자가 비틀거리는 모습(렘25:16)과 바닷물이 “치솟는” 모습(렘 5:22; 46:7-8)으로도 사용된다. 그렇다면, 이 절은 지진 영상을 보여준다. 뒤따르는 단어 “떨리다”(ra'ash)는 격렬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b] BHS에 따르면, “산”(harim)은 삼하 22:8에서 “하늘”(hashshamayim)으로 읽혀진다고 한다. “하늘”로 보면, 첫 소절의 “땅”과 이어져 “온 우주”가 된다. 그러나 “산들”이 문맥에 더 잘 어울린다(신32:22).
[c] “터”에 대해 BHS는 “많은 사본들은 전치사 mem을 앞에 갖고 있으며, 삼하 22:8은 mosdot(복수 절대형)로 읽고 있다”고 한다.
[d] “그리고 그들은 진동하였으니 그 진노를 인함이라”에서 “그리고 그들은 진동하였으니”는 개역에 나타나지 않는다. BHS는 “이 절 전체(d~d)를 아마 첨가”(prb gl)로 본다.

9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a] 불이 나와 사름이여
[b]그 불에 숯이 피었다[b]
[a] “입에서 불이 나와”에서 “입”은 70인역에 “그의 앞에서부터”(apo prosopou autou)로 해석하여 신인동형적 표현을 순화시킨다.
[b] BHS에 따르면, “그 불에 숯이 피었다”(b~b)는 “아마 첨가”(prb gl)이다. “그 불에 숯이 피었다”(개역)는 직역하자면, “숯불이 그로부터 불탄다”는 뜻이다. 개역은 “그”를 “그 불”로 보고 있다. 표준역은 “그에게서 숯덩이들이 불꽃을 튕기면서 달아올랐다”로 번역하여 지나친 의역 내지는 의미의 확장을 만들고 있다. 임승필은 “그”를 주님으로 보며, “그분에게서 숯불이 타올랐도다”로 번역한다.

11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a] 날개로 높이 뜨셨도다[b]
[a] BHS는 “바람”(ruach)에 대해 “카이로 게니자가 정관사를 붙여 haruach로 읽는다”고 말한다.
[b] “높이 뜨셨도다”(wayyede')에 대해 BHS는 “카이로 게니자의 많은 사본들과 삼하 22:11은 wayyera'(바람날개 위에 나타났다)로 읽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고대 히브리어에서 달렛(d)과 레쉬(r)는 유사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로 여겨진다. “바람날개로 높이 뜨셨도다”(개역)는 우리말 현대번역에서, “바람날개를 타고 내리덮치셨다”(공동), “바람 날개를 타고 오셨다”(표준), “바람 날개 위에 떠가셨도다”(임승필)로 제시된다. 이 단어는 새가 먹이를 낚아 채기 위해 “하강하는”(swoop down) 모습 같다(신28:49; 렘48:40). “gliding” (NJV, SPCL).
그렇지만, “치솟다”는 뜻도 가능하다(Dahood; Kraus).

12 [a]저가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b]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c]
곧 물의 흑암과[d] [e]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e]
[a] BHS에 따르면, “두개의 사본과 70인역, 탈굼 그리고 삼하 22:12은 wayyashet로 시작한다”고 말한다.
[b] “그 숨는 곳”(sitro)에 대해 BHS는 “삼하 22:12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여기에 옮겨놓다(huc tr)”라고 말한다. 쿤츠(Kuntz 1983:3-31) 역시 “그 숨는 곳”(sitro)은 바로 앞에 있는 “흑암”에 대한 대독으로 보며, 삭제하길 제안한다.
[c]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에 대해 BHS는 “아마 첨가로서, 운율을 따라 삭제하라”라고 제안한다.
[d] “물의 흑암”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한 사본과 삼하 22:12은 chashrat(RSV, 'gathering of waters')로 읽는다”고 한다. “물의 흑암”(개역)은 직역이며 자연스러운 우리 말이 아니다. 현대어 번역에서 “비를 머금은 구름을 두르고 나서시니”(공동), “빗방울 머금은 먹구름”(표준), “시커먼 비구름”(임승필)으로 제시된다.
[e]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e~e)에 대해 BHS는 “70인역은(시리아역과 같이) en nephelais aeron('공중의 구름에')로 읽는다”고 하며 “아마 첨가”(prb gl)로 평가한다.

13 그 앞에 광채로 인하여 빽빽한 구름이[a] 지나며[b]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a] “빽빽한 구름”('ab)에 대해 BHS는 “70인역과(제롬)은 ai nephelai('구름')로 읽으며, 제거하라”(dl)고 한다. “그 앞에 광채로 인하여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를 본문 그대로 본다면, 빛과 어둠이 함께 하므로 모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광채”(nogah, “brightness”)는 (1) 빛(암 5:20), (2) 햇빛(삼하 23:4; 사60:3), (3) 달빛(사60:19), (4) 별빛(욜 2:10; 4:15)으로 나타나며, 주로 주님의 신현과 연관된다(겔1:4; 합3:4; 신33:2). 시편 18편에서는 구름이 주님의 빛나는 임재 앞서 나오므로 “빛”과 “구름”이 함께 하는 것은 모순으로 볼 수 없다.
[b] “지나다”('abru)에 대해 BHS는 “삼하 22:13의 ba'aru('불타다')를 따라 읽으라”고 제안한다.

14 [a]여호와께서 하늘에서[b] 뇌성을 발하시고[c]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시며
[d]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d]
[a] 14절을 시작하는 wayyar'em(천둥소리를 내다)에서 BHS는 “카이로 게니자의 많은 사본들에는 없다”고 말한다.
[b] “하늘에서”(bashshamyim)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몇개 히브리어 사본들과 70인역, 탈굼, 제롬은 '하늘로부터'(mish')으로 읽으며, 삼하 22:14에서는 min-sh'으로 읽고 있다”고 말한다.
[c] “뇌성을 발하시고”에 대해 BHS는 “케니코ㅌ의 두개 히브리어 사본과 삼하 22:14은 접속사 waw가 없이 yar'em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d]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많은 히브리어 사본과 삼하 22:14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13절하반절을 참조하여 제거하라”고 제시한다. 우리말 현대어 번역을 살펴보면, 공동역은 삭제하였고, 표준역은 “우박을 쏟으시고 벼락을 떨어뜨리셨다”로 제시된다. 앞에도 우박과 숯불이 나왔기 때문에, 이 절에서는 불필요한 반복처럼 느껴진다.

15 그 살을[a] 날려 저희를 흩으심이여
많은[b] 번개로 파하셨도다[c]
[a] “그 화살”(chets)에 대해 BHS는 “카이로 게니자의 몇몇 사본과 70인역과 삼하 22:15에서는 chitstsim(복수형)으로 읽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아마 뒤따라 나오는 소절과 일치시키기 위해 복수형으로 읽는 것 같다. 이 “화살”은 “번개불”(lightening bolts)을 가리킨다. 고대 근동아시아 문헌에서 번개는 화살로 자주 묘사된다(시 77:18-19; 144:6; 슥 9:14 참조).
[b] “많은”(rab)에 대해 BHS는 “2:2b를 참조하라”는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하며, “70인역은 'eplethunen('multiply')으로 읽으므로, 아마 baraq('비추다')로 읽으라”고 제안한다(시144:6 참조). 여기에서 히브리어 rab는 “많은” 보다 “강한,” “무서운”이란 의미이다.
[c] “파하셨도다”(wayehummem)에 대해 BHS는 “카이로 게니자와 삼하 22:15의 케레(Qere)는 wayyahom(혼란에 빠지게 하다)으로 읽는다”고 말한다.

16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a]과 콧김을[b] 인하여
물밑이[c]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a] “여호와의 꾸지람으로 인하여”(migga'arteka, “당신의 꾸지람으로부터, 오 여호와여”)에 대해 BHS는 “삼하 22:16는 bega'art로 읽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사무엘하의 독법이 훨씬 자연스럽다.
[b] “콧김”(minnishmat ruach 'appeka)은 직역하자면, “당신의 코의 바람의 기식”이다. BHS는 “기식”(minnishmat)에 대하여 “한 사본과 시리아역에는 uminnishmat로 읽는다”고 한다. 그리고 “당신의 코”에 대해서는 “카이로 게니자의 몇몇 사본들은 'apeyka(복수형)로 읽으며, 카이로 게니자의 한 사본과 삼하 22:16은 'appo('그의 코')로 읽는다”고 말한다.
[c] “물밑”에서 “물”(mayim)은 BHS에서 “몇몇 사본들과 삼하 22:16은 yam('바다')으로 읽는다”고 말한다. 시편 18:17의 “물”(mayim)에서 첫 멤(mem)은 분명히 전접어 멤(enclitic mem)으로서, 연계형으로된 앞 단어를 끝내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시편 18:17의 “물”은 삼하 22:16을 따라 “바다”로 읽어야 한다.

18 [a]나의 강한 원수와[a] 미워하는 자에게서[b] 나를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a] “나의 강한 원수”(me'oyebi 'oz; [a~a])에 대해 BHS는 “70인역, 시리아역은 복수로 읽으며, 탈굼을 참조하라”고 한다. 70인역은 하반절의 “미워하는 자들”과 수를 일치시키며, 또한 시 18:3하반절의 “내 원수들”과 일치시킨다. 그렇지만 히브리 시의 한 절에서 성과 수는 자주 변화된다.
[b] “나를 미워하는 자”(umishshon'ay)에서 BHS는 “케니코트의 히브리어 사본 두개는 umimmitqomemay('나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로 읽으며, 삼하 22:18은 접속사 u가 없이 시 18:18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19 저희가 나의 재앙의[a]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b] 되셨도다
[a] “나의 재앙”('edi)에 대해 BHS는 “탈굼의 tsjltswlj = nodi(?)”라고 말하며, “재앙”을 “방황”으로 이해해 볼 것을 제시한다.
[b] “의지”(lemish'an)에서 BHS는 “시리아역과 탈굼과 삼하 22:19은 mish'an으로 읽는다”고 한다. 달리 말하자면, 시편 18:19에서 전치사 le는 불필요하다고 본다.

20 [a]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a]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a]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wayyotsi'eni lammerchab [a~a])에 대해 BHS는 삼하 22:20이 “wayyotse lammerchab 'oti로 읽는다”고 말한다.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개역)는 우리말 현대어 번역에서 “어깨를 펴게 해 주셨다”(공동), “넓고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나오셔서”(표준), “넓은 곳으로 나를 이끌어내시어”(임승필)로 제시된다.

21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a] 상 주시며[b]
내 손의 깨끗함을[c] 좇아 갚으셨다
[a] “내 의를 따라”(ketsidqi)에 대해 BHS는 “게니자와 몇몇 사본들과 삼하 22:21은 ketsidqati로 읽는다”고 말하며, “두개의 사본들은 betsidqi로 읽는다(25절 [a] 참조)”고 한다.
[b] “상주다”에 대해 BHS는 “70인역과 시리아역이 접속사(cop)를 갖고 있으므로, 접속사를 넣도록 제시한다.”
[c] “깨끗함”(kebor)에 대해 BHS는 “게니자의 한 사본 kbd('영광')로, 몇몇 사본들은 kebod로 읽는다. 삼하 22:21에서 70인역 루시안 사본은 doksan으로 읽으며, 70인역과 시리아역은 접속사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리하여 “레쉬”를 “달렛”으로 바꾸어 “깨끗함”을 “영광”으로 수정하길 제안한다.

23 그 규례가 내 앞에 있고
그 율례를 나로부터[a] 버리지[b] 않았다
[a] “나로부터”(menni)에 대해 BHS는 “삼하 22:23이 mimmenna로 읽는다”고 말한다.
[b] “버리다”('ashir, 히필형; RSV, 'put away')에 대해 BHS는 “게니자의 몇몇 사본들과 삼하 22:23은 'asur(칼형; RSV, 'depart' 참조)로 읽는다”고 한다.

24 내가 또한 그 앞에 완전하여[a]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지켰다[b]
[a] “나는 ~하다”(wa'ehi)에 대해 BHS는 “삼하 22:24이 wa'ehyeh로 읽는다”고 말한다.
[b] “그리고 나는 스스로 지켰다”(wa'eshtammer; 히파엘)에 대해 BHS는 “게니자가 w'shmr로 읽으며, 삼하 22:24은 wa'eshtammera(권유형)으로 읽으며 이것은 더 좋은 독법이다(melius)”고 말한다.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a] 갚으시되
그 목전에서[b] [c]내 손의 깨끗한대로[c] 내게 갚으셨도다
[a] “내 의를 따라”(ketsidqi)에 대해 BHS는 “게니자와 삼하 22:25이 -qati로 읽으며, 몇몇 사본들은 betsidqi로 읽는다. 21[a]를 참조하라”고 말한다.
[b] “그의 눈”('eynayw)에 대해 BHS는 “몇 사본이 '나의 눈'(-nay)으로 읽는다”고 말한다.
[c] “내 손의 깨끗한대로”(keor yaday; [c~c])에 대해 BHS는 “삼하 22:25이 kebori로 읽으며, 한 사본은 kebod yhwh로 또 한 사본은 kebodi로 읽으며 21절[c]를 참조하라”고 한다.

26 자비한 자[a]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b]에게는[c]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신다
[a] “자비한 자”(hasid)에 대해 BHS는 “아마 'ish를 삽입하라”(prb ins)고 제안한다. 이것은 뒤에 나오는 “완전한 자”(gebar tamim)과 평행을 만들기 위함이다. 히브리어 hasid에 대해 우리말 현대어 번역들은 “한마음으로 당신을 위하면”(공동), “신실한 사람”(표준), “충실한 이”(임승필)로 제시한다.
[b] “완전한 자에게는”에 대해 BHS는 (1) “많은 사본들과 오리겐의 히브리어 란과 70인역과 시리아역은 we'im('그리고 ~에게는)로 읽으며,” (2) “완전한 자”(gebar tammim)에 대해서는 “몇몇 사본들과 삼하 22:26은 gibbor로 읽는다”고 한다.

27 [a]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b]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c]
[a] BHS는 이 절이 “오리겐의 히브리어란과 70인역, 시리아역에는 접속사가 있다”고 말한다.
[b] “깨끗하심을 보이시며”(titbarar)에 대해 BHS는 “게니자의 몇 사본들과 삼하 22:27은 tittabar로 읽으며, 탈굼은 ttbrd로 제시된다”고 한다.
[c]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titpattal; patal의 히파엘 미완료)에 대해 BHS는 “게니자와 몇몇 사본과 삼하 22:27은 titapal(patal의 히파엘 미완료)로 읽는다”고 한다.

28 주께서[a] 곤고한[b]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c] 낮추시리이다
[a] “이는 주께서”(ki-atta)에 대해 BHS는 “삼하 22:28이 we'et로 읽는다”고 말한다.
[b] “곤고한 백성”('am-'oni)에 대해 BHS는 “아마도(frt) 'anaw로 읽으라”고 제시한다.
[c] “교만한 눈”(we'eynayim ramot)에 대해 BHS는 “70인역이 kai ophthalmous hupernphanon으로서 히브리어 we'eyney ramim과 같다고 제안하며, 삼하 22:28은 we'eyneyka 'al-ramim('주의 눈은 교만한 자들을 살피사')으로 읽는다”고 말한다.

29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a]
여호와[b] 내 하나님이[c]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d]
[a] “등불을 켜심이여”(ta'ir)에 대해 BHS는 “삼하 22:29에나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아마 삭제하라(pr dl)”고 제안한다.
[b] “여호와”(yhwh)에 대해 BHS는 “아마 여기에 옮겨진 것(huc tr)으로서 삼하 22:29를 참조하라”고 한다.
[c] “내 하나님이여”('elohay)에 대해 BHS는 “삼하 22:29이 wayhwh로 읽고 있다”고 한다.
[d] “밝히시리이다”(yaggiah, nagah의 3인칭 단수)를 70인역은 2인칭 단수로 읽고 있다“고 말한다.

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a] 달리며[b]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c] 담을 뛰어 넘나이다
[a] “적군”(gedud)에 대해 BHS는 “70인역은 'apo peirateriou('from a troop)로 읽으며, 아마 히브리어 gader로 읽으라”고 제안한다. 또한 “삼하 22:30을 참조하며, 루시안역은 pepharagmenos = 히브리어 gadur로 읽고 있다”고 말한다.
[b] “내가 달리다”('aruts)에 대해 BHS는 “70인역은 hrusthesomai('I shall be delivered')로 읽는다”고 말한다.
[c]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ube'lohay)에 대해 BHS는 “삼하 22:30에 접속사가 없다”고 말한다.

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a]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a]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리로다
[a]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에 대해 BHS는 “아마도 첨가이니 운율에 근거해서 삭제하라”(prb gl, dl m cs)고 제시한다.

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a]
[b]우리 하나님 외에[c][b] 누가 반석이뇨
a] “하나님”('eloah)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두 사본과 삼하22:31는 'el로 읽는다”고 말한다. 시편에서 복수형(Elohim) 대신에 단수형('eloah)이 나오는 곳은 여기와 시편 50:22, 114:7, 139:19이다.
b] “우리 하나님 외에”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한 사본과 시리아역과 아라비아 역은 “우리 하나님 같은”(ke'eloheynu)으로 읽는다고 한다.
c] “외에”(zulati)에 대해 BHS는 “삼하 22:32이 mibbal'adey('외에')로 읽고 있다”고 한다. 70인역은 시편 18:32과 삼하 22:3에서 “plen”(except)로 읽는다.

33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a]
내 길을[b] 완전케 하시도다[c]
a] “내게 띠 띠우셨다”에 대해 BHS는 “삼하 22:32이 ma'uzzi”('나의 피난처')로 읽고 있다고 한다. “띠 띠우다”는 기본적으로 “강하게 하다”는 뜻이다(시 93:1; 삼상2:4). 우리말 현대어 번역에서는 “나에게 힘을 입혀 주시어”(공동),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며”(표준), “힘으로 띠 두르시고”(임승필)로 제시된다.
b] “내 길”(darki)에 대해 BHS는 “게니자와 케니코트의 몇몇 사본과 삼하 22:33의 케티브는 '그의 길'(darko)로 읽고 있다”고 한다.
c] “(완전케) 하다”(wayyiten)에 대해 BHS는 “삼하 22:33이 wayyater (natar의 히필형, '자유롭게 하다, 안전하게 하다')로 읽는다”고 말한다. 우리말 현대어 번역에서는 “나무랄 데 없이 살게 해 주셨다”(공동), “나의 길을 안전하게 지켜 주신다”(표준), “나의 길을 온전하게 하다”(임승필)로 제시된다.

34 나의 발로[a] 암사슴(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b] 세우시도다
a] “나의 발”(raglay)에 대해 BHS는 “삼하 22:34의 케티브는 '그의 발들'(raglayw)로 읽는다”고 한다.
b] “나의 높은 곳”(bamotay)에 대해 BHS는 “칠십인역, 시리아역(Walton의 다국적어 역본), 제롬과 삼하 22:34(칠십인역, 불가타)는 인칭접미어를 생략한다”고 말한다. 우리말 현대어 번역에서는 “높은 곳에 세우시도다“ (개역; 임승필), “산등성이 위에 서게 해 주셨다”(공동), “높은 곳에 안전하게 세워 주신다”(표준)로 제시된다. 이 표현은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다,” 혹은 “원수로부터 안전한 곳에 있게 하다”는 뜻으로 여겨진다(신32:13, 29; 합3:19).

35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활을[a] 당기도다[b]
a] “놋활”(qeshet nechusha)에 대해 BHS는 “삼하 22:35의 루시안 70인역에는 빠져 있으며, 아마 운율에 근거하여 삭제하라”고 제시한다.
b] “당기다”(wenichata)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한 사본과 삼하 22:35은 wenichat(2인칭 남성단수, '당신께서 당기다')로 읽고 있다. 또한 시리아역과 심마쿠스와 제롬에서는 wenichat로 제안된다. 70인역은 kai ethou = wenatatta(?)로 읽는다”고 말한다.

36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a] 방패를 내게 주시며
[b]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들고[b]
주의 온유함이[c]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d]
이 절은 본문비평및 구문상의 문제를 함께 담고 있다. 먼저 길이에 있어서 상반절은 너무 길며, 두 소절에 모두 비유가 있지만 하반절의 비유가 상반절의 비유를 부각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하반절은 사무엘하 22장에서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본문비평적 제안들이 제시되었다.
a] “주의 구원하는”(yish'eka)에 대해 BHS는 “70인역 원본은 1인칭 단수 접미어('나의')로 나타나며, 시리아역과 탈굼은 접미어가 없다고 말한다.”
b]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들고”(b~b)에 대해 BHS는 삼하 22:36에는 없으므로 삭제하라“고 제시한다.
c] “주의 온유함”(we'anwatka)에 대해 BHS는 “삼하 22:36을 따라 we'anotka로 읽으라. 또한 70인역 데오도션(시리아역)은 kai he paideia sou('당신의 가르침')으로, 심마쿠스는 kia to hupakouein soi('당신께 경청함이')로 나타난다. 따라서 we'ezratka('당신의 도움')으로 제안한다”고 말한다. 히브리어 'anawa는 “겸손”(잠15:33; 18:12; 22:4; 슥2:3), “돌보심”(NJV, care), “비하”(condescension), 혹은 “섭리”(NEB)로 번역된다. 헐스트(Hulst 95)는 이 “비하”가 “실제적으로 '도움'을 뜻한다”고 본다.
d]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에 대해 BHS는 “70인역이 eis telos = lanechach('영원히')를 첨가한다”고 말한다.

37 내 아래의[a] 걸음을[b]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나이다
[a] “내 아래의”(tachtay, 'under me')는 개역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 단어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와 로시의 사본과 삼하 22:37은 tachteni로 읽는다”고 한다.
[b] “내 걸음”(tsa'adi)에 대해 BHS는 “칠십인역과 시리아역은 복수로 나타나며, 오리겐의 헥사플라 히브리어 란에는 saadai로 나타남을 참조하라”고 한다.

38 내가 내 원수를 따라[a] 미치리니[b]
저희가 망하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리이다[c]
a] “내가 그들을 따라가”('erdop)에 대해 BHS는 “삼하 22:38은 'erdepa(‘나로 따르게 하여'; 권유형)로 읽는다”고 말한다.
b] “미치리니”(we'ashshigem)에 대해 BHS는 “탈굼과 삼하 22:38은 wa'ashmidem('내가 그들을 멸하였다')로 읽는다”고 한다.
c] “내가 돌이키지 아니하리이다”(welo' 'ashub)에 대해 BHS는 “2:2b를 참조하라”고 말하나, 이 제안의 의미를 알 수 없다.

39 내가 저희를 쳐서[a] [b]능히 일어나지[b] 못하게 하리니
저희가 내 발 아래 엎드러지리이다[c]
a] “내가 그들을 쳐서”('emchatsem)에 대해 BHS는 “삼하 22:39은 wa'akallem wa'emchatsem('내가 저희를 무찔러 파하였다'[개역])으로 읽는다”고 한다.
b] “능히 일어나지”(yuklu qum [b~b])에 대해 BHS는 “삼하 22:39이 wequmun으로 읽는다”고 말한다.
c] “그들이 엎드러지다”(yiplu)에 대해 BHS는 “시리아역, 탈굼 그리고 삼하 22:39은 wayyiplu로 읽으므로, 따라 읽으라”고 제시한다.

40 대저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a]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 아래[b] 굴복케 하셨나이다 [c]
a] “내게 띠 띠우사”(watte'azzereni)에 대해 BHS는 “두개의 케니코트와 라시의 사본과 삼하 22:40(케트브)은 wattazreni로 읽는다”고 한다.
b] “내 아래에”(tachtay)에 대해 BHS는 “70인역이 pantas를 첨가하다고 말한다. 즉 “모두 내 아래 굴복한다”는 뜻이다.
c] “굴복케 하다”에 대해 BHS는 “삼하 22:40이 -teni('나')를 첨가한다”고 말한다.

41 [a]주께서 나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 향하게[a] 하시고[b]
[c]나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d] 하셨나이다[c]
a] “주께서 나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 향하게”(a~a)에 대해 BHS는 “시리아역(탈굼)은 ttbr qdmi(franges coram me), 즉 '주께서 내 앞에서 부술 것입니다'로 읽는다”고 말한다.
b] “주께서 주시다”(natata)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와 로시의 몇몇 사본들과 삼하 22:41은 tatta(칼 완료 2인칭 남성 단수)로 읽는다”고 한다.
c] “나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셨나이다”에 대해 BHS는 “소수의 사본들과 삼하 22:41은 앞에 있는 접속사(um')는 생략하고 뒤에는('ats') 첨가한다(wa'ats')”고 말한다.
d] “내가 그들을 끊어버렸다”에 대해 BHS는 “70인역과 삼하 22:41(70인역)은 2인칭 단수로 읽는다”(당신이 그들을 죽였다)로 읽는다고 말한다.

42 저희가 부르짖으나[a] 구원할 자가 없었고
[b]여호와께 (부르짖어도)[b]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
a] “저희가 부르짖으나”(yeshu'u)에 대해 BHS는 “삼하 22:4은 yish'u('그들은 본다'; from sha'ah)로 읽는다”고 말한다. 70인역은 시편18편을 지지하고 있다.
b] “여호와께”('al-yhwh [b~b])에 대해 BHS는 “삼하 22:42의 'el-yhwh와 함께 읽으라”로 제안하며, “시리아역(탈굼)은 nb'wn mn mrj', petent a Domino(그들은 주님께 간청하였다)로 읽는다”고 한다.

43 내가 저희를 [a]바람 앞에 티끌 같이[a]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b]
a] “바람 앞에 티끌 같이”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와 로시의 한 사본과 삼하 22:43은 ka'apar-'arets('땅의 진흙 같이')로 읽는다. 탈굼은 동일하게 '먼지처럼'으로 읽는다. '광장의 먼지처럼' 혹은 '길의 먼지처럼'으로 제안한다”고 한다.
b] “내가 쏟아 버렸다”는 “짓이겨 버렸다”(공동), “짓밟아 흩었다”(표준)는 뜻이다. BHS는 “케니코트와 로시의 많은 사본들과 70인역, 시리아역, 탈굼 그리고 삼하 22:43과 함께 'adiqqem('내가 그들을 부수다')로 읽는다. 그리고 케니코트와 로시의 두 사본과 삼하 22:43은 'erqa'em('내가 그들을 흩으리라')를 첨가하는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44 [a]주께서 나를 백성의[b] 다툼에서[c] 건지시고
열방의 으뜸을[d] 삼으셨으니 [e]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f]
a] BHS에 따르면, 이 절은 삼하 22:44에서 접속사 we와 함께 시작된다
b] “백성”('am)에 “삼하 22:44은 '나의'('ammi)가 첨가되었다”고 BHS는 말한다.
c] “다툼에서”(meribey)에 대해 BHS는 “meribbot 혹은 meribbo 혹은 miribey로 읽으라”고 제안한다.
d] “으뜸”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와 로시의 한 사본과 삼하 22:44의 루시안 70인역은 le'or('빛으로')로 읽는다. 사 42:6과 49:6을 참조하라”고 한다.
e] “삼으셨으니”(teshimeni)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와 로시의 한 사본과 삼하 22:44은 tishmereni('나를 지키다')로 읽는다”고 하낟.
f] “나를 섬기리이다”(ya'abduni)에 대해 BHS는 “게니자가 y'abd('섬기리라')로 읽는다”고 한다.

45 [a]저희가 내 (풍성을) 들은 즉시로 내게 순복함이여
[b]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c][b]
a] BHS는 “삼하 22:45에서 a et b invers”라고 말한다. 즉 “상반절과 하반절의 순서가 도치되었다.”
b]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b~b)에서 BHS는 “아마 제거하라”고 제시한다.
c] “그들이 복종하다”에 대해 BHS는 “삼하 22:45과 함께 히파엘형이나 니팔형으로 읽으라”고 제안한다. 이 단어(kachash)는 주로 순종을 가장하며 아첨하면서 “달라 붙는다”(RSV, “come cringing”). 즉, “복종하는체 하다, 외식으로 존경을 표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Gesenius, BDB, Koehler). 니팔형은 “근심하다, 피곤하다, 화나다, 두려워하다, 지치다, 탄식하다” 등의 동사에서 모두 재귀적인 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심리 반응으로 나타난다.

46 이방인들이 쇠미하여[a]
그 견고한 곳에서[b] 떨며 나오리로다[c]
a] “쇠미하여”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한 사본과 시리아역과 탈굼은 yiklu('끝나다')로 읽으며, 70인역은 epalaiothesan = yiblu(‘낡다, 늙다’)로 읽는다”고 한다.
b] “그 견고한 곳에서”(mimmidgeroteyhem)에 대해 BHS는 “삼하 22:45이 -tam('그들의')을 첨가하며, 70인역(시리아역)은 apo ton tribon auton('다져진 길')으로서 히브리어 mimmesilloteyhem이나 mimma'ageloteyhem('소로, 협로')으로 읽는다”고 한다.
c] “떨며 나오리로다”에 대해 BHS는 “게니자와 케니코트의 다수 사본들과 삼하 22:46은 weyachgru('스스로 띠띠다')로 읽는다”고 한다. 70인역(시리아역)은 kai ekolanan('to be or go lame')으로 정확하게(recte) 읽고 있다“고 말한다.

47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a]내 구원의 하나님을[b][a] 높일찌로다
a] “내 구원의 하나님”에 대해 BHS는 “시리아역이 'lhj wprwqj = 'elohay weyish'i('내 하나님과 내 구원')으로 읽는다”고 말한다.
b] BHS에 따르면, 삼하 22:47은 “하나님” 뒤에 “반석”(tur)을 첨가한다.

48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수하시고
민족들로 내게[a] 복종케 하시도다[b]
a] “내게”(tachtay)에 대해 BHS는 “삼하 22:49은 tachteni(다른 형태임)로 읽는다”고 한다.
b] 마소라 독법(wayyedaber, '그리고 말하다')는 전혀 뜻이 통하지 않는것 같다. 그러나 BDB는 아랍어와 아람어에 근거해서 dabar가 “복종시키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BHS는 “복종케 하다”에 대해 “삼하 22:48이 umorid('그리고 낮추다')로 읽고 있다(morid)고 한다. 또한 BHS는 “시편 144:2이 haroded, '복종케 하는 자'로 읽으며, 70인역은 kai hupotaksas('~아래에 두었다 [능동분사])로 읽는다”고 말한다.

49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a]
주께서 실로[b] 나를 대적하는 자의[c]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d]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a] “구조하시니”(mepalleti)에 대해 BHS는 “삼하22:49은 umotsi'i('그리고 나를 건져내십니다'로 읽는다”고 한다.
b] “실로”('ap)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몇몇 사본과 삼하22:49는 이 단어를 삭제한다”고 말한다.
c] “나를 대적하는 자의”(min-qamay)에 대해 BHS는 “게니자, 케니코트 사본과 삼하 22:49은 miqqmay로 읽는다”고 한다.
d] “강포한”(chamas)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몇몇 사본과 삼하 22:49은 chamasim(복수형)으로 읽는다”고 한다.

50 여호와여[a]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a]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b]
a]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a~a)에 대해 “케니코트의 몇몇 사본과 삼하22:50에는 순서가 도치되었다. 아마 leshimka('주의 이름에') 뒤에 두고 읽는 것이 바른 것 같다(frt recte et postea l lshmk).
b] “내가 찬송하리이다”('azammera; 권유형)에 대해 BHS는 “케니코트의 몇몇 사본과 삼하22:50에는 'azammer(미완료형)로 읽는다”고 한다.

51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a]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a] “큰”(magdil)에 대해 BHS는 “삼하 22:51(케레)가 migdol('망대')로 읽는다”고 한다.


4. 평가

(1) 우리에게 전수된 시편 본문에 있어서 가장 신뢰성이 높은 레닌그라드 사본을 대본으로 한 BHS는 각주 안에 가장 중요한 사본들과 역본들의 이독을 하나의 통일된 체계 속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본문비평적 기여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BHS의 본문 비평장치는 장차 나올 HUB에 비해서는 내용이 상세하지 않지만, 성경 한권으로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독특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BHS의 비평장치를 그 전신인 BHK와 비교해 볼 때, “추측에 근거한 수정 제안”은 훨씬 적고 온건하며, 본문 독법에 대한 최종적인 선택에 있어서 독자에게 더 많은 여지를 주고 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BHS는 BHK와 같이 여전히 “운율에 근거한 삭제”(dl m cs)를 고집한다. 히브리어 시의 운율은 영시처럼 일정하지 않으며, 그 운율 측정에 있어서 음절과 단어와 강세와 특히 장모음과 단모음의 길이에 대한 평가가 학자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운율에 근거한 삭제”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특히 다른 사본이나 역본의 지지가 없을 때는 더욱 문제시 된다.
4). 때때로 BHS는 본문비평과 상관 없는 주석적 설명을 시도하나(예, 시 1:3 [b-b]에서 수 1:8; 시 18:4[a]에서 사 53:5 등), 이것은 본문비평의 범위를 넘어가는 것이며, 또한 일관성이 없다.
5). 때때로 BHS는 독자들이 풀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예로서 시편 18:15 [b]와 18:38[c]에서 “2:2b를 참조하라”는 제안을 한다. 이 구절들은 시편 2:2b와 아무런 상관 없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제안에 대해 의아해 한다.
6). BHS가 라틴어를 요약하여 본문비평적 제언을 하는 것도, 오늘날의 독자들이 라틴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쉬운 용어로 수정되었으면 한다.
7). 쿰란 시편의 풍부한 자료들이 BHS의 비평장치에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은 시편이 1967에 출판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우며 다음 개정판에서는 쿰란 자료도 더 풍부하게 반영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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