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학교 기독교학부, 성서해석학
(Biblical Criticism and Hermeneutic)-2002년 2학기

[참고] 구약성서 주석방법론(영문): 본문비평,   문서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편집비평
[참고] 박동현 교수님(장신대) 자료:구약 주석방법론

  라황용 [ E-mail ]
  [참고] 김경래교수의 "쿰란에서 발견된 이사야 사본(1QIsa)"
  
첨부화일1 :
첨부화일 : 1QIs-a.hwp (37696 Bytes) 1QIs-a.hwp (37696 Bytes)

김경래교수님의 "쿰란에서 발견된 이사야 사본" 입니다. 참고하세요.



쿰란에서 발견된 이사야 사본

김경래

처음으로 발견된 사해 사본들
이사야 사본(1QIsa)
이사야 사본(1QIsa)에 보이는 필사상의 오류
오류의 수정
내용상의 첨가 및 삭제(조화)
이사야 사본(1QIsa)의 가치




처음으로 발견된 사해 사본들

1947년 봄 유다 광야를 비롯 성경의 땅 이스라엘 곧 팔레스타인은 아직도 영국의 식민
통치하에 있었다. 무하마드라고 불리는 한 베두인 청년이 길 잃은 염소를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여리고 남쪽 15 km 지점, 사해 북서 연안에 위치한 쿰란 근처에서 고대의 사본들이
간직된 항아리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에 전 세계 성경 학계를 놀라게 한 사해 사본의 발
견은 이처럼 우연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성경 말씀 또는 그와 관련된 문서들을 담은 고대
의(약 2000여년전) 두루마리들이 사해 일대에서 발견된 일은 성경 및 고고학자들뿐만 아니
라 성경을 애독하는 많은 이들의 흥분을 자아내는 사건이기도 하였다. 이들 대량의 고대 성
경 문서들이 발견된 곳이 이집트도 시리아도 아닌 성경의 땅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사람들
의 관심을 끌기에 더욱 강도 깊은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47년의 후반기 어느 무렵엔가 위에 언급한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의 두루마리들은 베들
레헴의 한 신기료 장수 겸 골동품 취급상인 칸도라는 사람을 통하여 일부는 예루살렘의 성
(聖) 마가 수도원 원장인 시리아 정교의 대감독 아타나시우스 예슈에 사무엘에게 팔렸고, 일
부는 당시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고고학 교수이던 유대인 수케닠 교수에게 팔렸다. 성
마가 수도원의 사제들은 자기들이 구입한 두루마리들의 학문적 중요성보다는 금전적 가치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들의 기대대로 쉽게 풀려 가지는 않았다. 문화재 관
리국에 근무하는 한 시리아인 직원과 그리고 도미닉 교단 소속의 한 구약 학자는 이 사본들
을 가치 없는 것으로 판정하였다.

한편 1947년 여름 처음으로 아랍인 골동품 취급상 칸도와 접촉했던 수케닠 교수는 이들
문서들이 진본임을 확신하였다. 1947년 11월 29일, 이 날은 마침 유엔에서 표결을 통하여 유
대인을 위한 이스라엘 국가의 건립을 결정한 날이기도 하였다. 이 날 수케닠 교수는 히브리
대학교를 대표하여 세 개의 두루마리를 구입하였다. 그것들은 바로 이사야서 일부가 간직된
두루마리(1QIsb), 성경의 시편과 유사한 찬양시들을 모은 두루마리,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간의 전쟁에 대한 기록을 담은 두루마리였다.

아타나시우스 대감독은 예루살렘에 주재하던 미국인 학자들의 제의를 받아들여 자신이
구입한 바, 이사야서 전부를 담은 두루마리(1QIsa)와 공동체 규율서라고 불리는 문서와 하박
국서에 대한 주석을 담은 두루마리를 출판하는 권한을 그들 미국인 학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이때 출판할 수 없었던 네 번째 두루마리는 거기서 떼어낸 일부 조각에 근거하여 '라멕 두
루마리'라고 불린 것인데, 기술상의 문제로 당시 열어볼 수 없었던 두루마리였다. 이 두루마
리는 수년이 지나고 그 주인이 바뀐 다음에야 펼쳐져서 '창세기 위경'으로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 독립을 계기로 중동의 정세가 점점 더 어지러워지자 아타나시
우스는 자신이 구입한 네 개의 고대 두루마리를 보다 안전한 미국으로 빼돌렸다. 그가 두루
마리들을 가지고 미국땅을 밟은 때는 1949년 1월이었다.
그러는 동안 당시 동예루살렘과 사해 근처의 쿰란 지역을 관장하던 요르단 왕국의 문화
재 관리국에서는(이때의 국장은 영국인 학자 하딩이였다) 고대 두루마리의 해외 반출이 불
법이라고 하며 아타나시우스를 비난하는 동시에 미국인 학자들에게는 그 두루마리들을 출판
할 권한이 없다고 하며 맹렬한 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이들 네 두루마리는 공교롭게도 수
케닠 교수의 아들인 이갈 야딘의 활동을 통하여 사실상 이스라엘을 위하여 1954년에 구입되
어 일찍이 수케닠 교수가 구입했던 다른 세 두루마리와 더불어 1967년 이후로 예루살렘의
'책의 전당'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고대의 두루마리들이 마침내 제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이사야 사본(1QIsa)

이상의 기사는 학자들이 편의상 쿰란 제1동굴로 지정한 곳에서 발견된 고대 두루마리들
의 발견 및 초창기 행방에 관한 서술이다. 이들 일곱 개의 두루마리 중에서 이사야서 66장
을 모두 담고 있는 두루마리(1QIsa)는 쿰란을 비롯한 사해 일대에서 발견된 고대 성경 및
비성경 사본들중에서 이제까지 가장 관심을 많이 끈 사본들중 하나이다.

이 이사야서 두루마리는 모두 54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54쪽의 문서를 위하여 17장
의 양피지를 삼베 실로 꿰매어 연결하였는데, 각 양피지의 평균 높이는 26.2cm 이며 그 길
이는 다양하다. 이 두루마리는 그 전체 길이가 7.34m에 이른다. 이 성경 사본이 기록된 연
대는 보통 주전 2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이사야 사본(1QIsa)은 시간상으로 비록 주후 10-11세기에 필사된 맛소라 사본들보다
1000여년이나 앞서있는 중요한 고대 사본이긴 하지만 그 필사(筆寫)의 정확도에 있어서는
실제로 후자보다 훨씬 못한 사본이다. 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의 기저가 되는
레닌그라드 사본(주후 1008년에 기록)과 1QIsa를 비교하여 철자법상의 차이점과 간단한 어
법상의 변화를 제외하고 본문 내용상의 두드러진 차이점들중 몇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
다.

이사야 사본(1QIsa)에 보이는 필사상의 오류

1QIsa는 비교적 필사상의 실수를 많이 담고 있는 사본중의 하나이다. 다음에 몇 가지 예
로 들어준 경우들은 1QIsa에 분명히 보이는 필사상의 오류들로서 1QIsa가 후기에 필사 전수
된 맛소라 사본들보다 훨씬 열등한 사본임을 밝히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2:3
(맛소라) 우리가 야웨의 산에,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오르자
(두루마리) 우리가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오르자
* 두루마리는 실수로 '야웨의 산에'를 빠뜨렸다.

2:9-11
(맛소라)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
에 숨어 야웨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두루마리)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 맛소라의 밑줄친 부분이 두루마리에서 실수로 빠져있다.

4:5-6
(맛소라)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
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두루마리) 낮이면 구름과 더위를
* 맛소라의 밑줄친 부분이 두루마리에서 실수로 빠져있다.

30:30
(맛소라) 야웨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두루마리) 야웨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듣게 하시며
* 두루마리에서는 같은 문구(듣게 하시며: , '히슈미아')를 실수로 반복하여 기록하였
다.

31:6
(맛소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두루마리)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자에게로 돌아오라
* 두루마리에서는 같은 문구(자에게로: , '라아쉐르')를 실수로 반복하여 기록하였다.

오류의 수정

위의 예들은 쿰란에서 발견된 이사야 사본이 오류를 담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수정 작업
을 거치지 않은 경우들이다. 그러나 1QIsa에는 많은 오류뿐만 아니라 그 오류를 수정한 흔
적이 곳곳에 나타나 있기도 하여 성경 연구가들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이처럼 본문내의 수
정 작업은 이 두루마리가 필사된 이후로 사람들에 의하여 애용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
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성을 기울여 필사하였더라면 이러한 수정 작업을 거의 면할 수도 있
었을 것이다.

1QIsa에는 때때로 특정한 글자를 지우고 다른 글자로 대치한 경우가 있다(1:6; 2:4; 3:16
등). 수정하는 방법으로서 때때로 잘못 기록된 글자 아래나 위에 점들을 찍고 옳다고 간주
되는 글자를 그 바로 위에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3:17,18). 특정한 글자 위나 또는 위아래
양쪽 모두에 점들을 찍되 대치하는 글자가 기록되지 않았으면 그 글자를 삭제한다는 의미일
것이다(11:4; 27:4; 36:4,7). 특정한 글자가 빠졌다고 간주될 때에는 주로 줄 위에 그 누락된
글자나 단어를 기입해두었다.

그러나 가장 눈에 잘 띄는 수정 방법은 결코 짧지 않은 문장을 줄 사이나 심지어는 문단
좌우의 여백에까지 침투하면서 그 누락된 내용을 삽입시킨 경우들이다. 34:17의 맨끝 한 구
절과 35:1-2절이 이런 식으로 줄 사이에 조그만 글자로 보충되어 있다. 37:6-7의 수정문도
이처럼 줄 사이에 작은 글자로 삽입되었다. 38:21-22의 본문에서 누락된 부분은 문단 왼쪽
여백에 수직방향으로 기록하여 삽입시켰다.

내용상의 첨가 및 삭제(조화)

사마리아인들이 전수해온 사마리아 오경이나 고대 헬라어 역본인 칠십인역 안에는 문맥
을 참고로 하여 특정 본문에 짧은 문구를 첨가 내지는 삭제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런 현
상은 일반적으로 '조화'라는 용어를 통하여 설명할 수 있는데, 성경 전체 문맥에 있어서 실
제 또는 가상의 모순점들을 없애거나 또는 귀에 익은 문구를 도입함으로써 본문을 보다 매
끈하게 다듬으려는 후기 서기관들의 자유로운 활동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조화 현상을 많
이 보이는 사본일수록 결코 원본에 가깝다고 볼 수 없다.

쿰란에서 발견된 이사야 사본들중 1QIsb에서는 이런 조화 현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반하여, 1QIsa에는 많은 조화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전자를 필사한 서기관이 성경 문
헌의 전수 과정에 있어서 보수적 성향을 반영하는데 비하여 후자를 기록한 서기관이 자유로
운 태도로 성경 필사에 임하였음을 증명해주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다음의 몇 가지 경우들
은 아마 1QIsa의 조화 현상을 반영해주는 예가 될 것이다.

1:15
(맛소라)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두루마리) 이는 너희의 손에는 피가, 너희의 손가락에는 죄악이 가득함이니라
* 59:3의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를 참조할 것.

4:2
(맛소라)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두루마리) 이스라엘과 유다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표현은 이사야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1QIsa의 '유다'는 후기에 덧
붙인 것임에 틀림없다.

14:2
(맛소라)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두루마리) 많은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 2:3의 '많은 민족들이 가며'를 참조할 것.

21:16
(맛소라) 품꾼의 정한 기한같이 1년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두루마리) 품꾼의 정한 기한같이 3년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 16:14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3년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는 문구가 여기서 모종의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47:12
(맛소라)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두루마리)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오늘까지 힘쓰던
* '오늘까지'라는 표현( , '아드 하욤')은 39:6에 나타난다.

51:6
(맛소라)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두루마리)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그리고 누가 이것들을 창조하
였나 보라.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 두루마리에서는 맛소라의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라는 구절이
빠진 대신 그 자리에 '그리고 누가 이것들을 창조하였나 보라'는 구절이 삽입되었다. 40:26의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를 참조할 것.

이사야 사본(1QIsa)의 가치

이상에서 관찰해본 바에 의하면 쿰란에서 발견된 이사야 사본(1QIsa)은 그 유명세와는
달리 사본학적으로 별 가치를 지니지 못한 졸렬한 사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
정적인 측면에 이 두루마리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1QIsa는 이사야서가 저작된 이후로 몇 백년 지나지 않아서 필사된 고대 사본이다. 그 전
체 내용에 있어서 이 두루마리는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BHS의 맛소라 본문과 별로 다
를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1QIsa는 훨씬 후기의 레닌그라드 사본보다 '이차적인' 요소들을
더 많이 담고 있다. 위에서 예를 들어 보인 각종 오류, 수정한 흔적들, 조화 현상 등은 모두
가 이 두루마리의 '이차적인' 특성을 증명해준다.

주전 3세기에서 주후 1세기에 이르는 동안 구약 성경 사본의 전승은 통일성을 보이지 않
는다. 이는 쿰란에서 발견된 사본들을 통하여 잘 증거 된다. 이 무렵 구약 성경은 특정한 권
위의 압력이 없이 성경을 베끼고 사용하는 학파 내지는 개인에 의하여 비교적 자유롭게 전
수된 듯하다. 이들 성경 전수자중에는 자기 앞에 있는 사본에 충실성을 보여 한 자라도 수
정하거나 가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이도 있었겠고, 또 어떤 이들은 어느 정도 개인의 지식
내지 견해를 가미하여 성경 사본을 베낄 때 간단한 보충 설명 내지 문법 및 언어의 현대화
등을 통하여 더욱더 매끄럽고 편리한 사본을 만들고자 하였던 것 같다.

주후 10세기의 전반기에 기록된 것으로 사료되는 알레포 코덱스와 1008년에 기록된 레닌
그라드 사본으로 대표되는 벤 아셀의 맛소라 사본들은 그 전수 과정에 있어서 지나칠 정도
로 고집스럽고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성향이 바로 이들 벤 아셀 사본들로
하여금 1QIsa 같이 그보다 1000년 이상 오래된 사본들까지도 능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겠다. 종교 개혁 이후로 개신교에서 유대인이 전수해온 맛소라 성경을 아무런
의심의 눈길 없이 받아들인 일은 잘한 일로 보여진다.

쿰란 근처의 한 동굴에 2000여년동안 고이 잠들어 있던 이사야 사본이 마침내 이스라엘
의 독립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빛을 보았고, 그리고 성경의 민족 유대인을 주인으로 맞이하
였다. 이 이사야서 두루마리는 자신의 미천함을 통하여 그 동안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 사
이에 공히 사용되어 오던 맛소라 성경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2002-09-09 08:16:47


   

관리자로그인~~ 전체 151개 - 현재 7/11 쪽
61
2002-09-10
2716
60
첨부화일 : textual.ppt (250880 Bytes)
2002-09-09
1852
59
2002-09-09
1605
58
첨부화일 : TEXT.HWP (58959 Bytes)
2002-09-09
3136
57
palbang21
2002-09-11
1451
56
2002-09-10
1526
55
2002-09-10
1522
54
첨부화일 : 본문비평.hwp (31012 Bytes)
2002-09-09
2448
53
2002-09-09
1452
52
첨부화일 : BHS.hwp (3518650 Bytes)
2002-09-09
2409
51
첨부화일 : BHQ.hwp (2563583 Bytes)
2002-09-09
2184
50
첨부화일 : 11-역사의 창.hwp (217643 Bytes)
2002-09-09
2692
49
2002-09-09
2113
첨부화일 : 1QIs-a.hwp (37696 Bytes)
2002-09-09
2972
47
첨부화일 : BHS 시편 본문비평장치 해설-김정우.hwp (145279 Bytes)
2002-09-08
2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