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레츠 이스라엘 성지 순례기

  박경철 [ E-mail ]
  알프스를 넘고 지중해를 건너 텔 아비브로.....
  



벌써 4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일들을 세세하게 다 떠올릴 수는 없어도, 떠나기 전 날 밤의 가슴 설래던 일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

떠나기 전 날 밤, 혹 잊은 것은 없는지, 계속 체크 리스트와 베낭을 몇번이고 확인을 했다. 막상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질 않았다. 책 한 권 집어들고 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기차 시간을 훨씬 넘겨 버렸다. 너무 놀랐는데, 꿈이었다. 새벽 5시 거의 두 시간 남짓 잠을 잤을까... 다시 잠도 오지 않고 아침 6시경, 마을 버스가 아직 운행을 하지 않아 베텔을 걸어내려갔다.
이스라엘 항공 엘 알빌레펠트 중앙역에 도착해 커피 한 잔, 그리고 뒤셀도르프 공항으로 향했다. 가능하면 경비를 줄이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독일서 가장 저렴하게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방법으로 뒤셀도르프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가서 거기서 이스라엘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는 것이었다. 독일 하노버 공항에서 직접 이스라엘로 가는 것과 비교하면 200 마르크(10 만원) 정도 차이가 났다.


사전에 입수한 정보에는 이스라엘 입국이 매우 까다롭다고 되어 있었다. 다른 나라를 비행기로 여행할 때, 출국수속을 위해 공항에 대체로 1시간 정도 일찍 나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경우는 다른 어디에도 없는 공항에서의 인터뷰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늦어도 2시간 전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뒤셀도르프 공항
뒤셀도르프 공항에 도착해 밀라노 가는 수속을 밟으려 했지만, 출국수속 카운터에는 너무도 썰렁... 안내소에 물으니, 여기서는 인터뷰가 없단다. 아하.. 나의 실수, 뒤셀도르프에서 밀라노가는데 무슨 인터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쓴 웃음을 홀로 지으며 혼자 남은 시간 떼우려 이리 저리 공항을 헤매었던 기억이 난다.

뒤셀도로르프 공항에서 이탈리아 밀라노까진 1시간 반 정도 소요됐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이 방법을 취했지만 정말 너무도 잘했다는 생각이 독일서 이태리 가는 비행기내에서 줄곧 떠나지 않았다. 이유는 지도상으로 독일 남부가 스위스이고 그 밑이 이태리인데, 이태리 북부가 바로 밀라노이다. 이미 예전에 자동차로 스위스와 이태리 여행을 했던 나로선, 자동차로 알프스를 넘으면 얼마가지 않아 밀라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비행기로 독일서 밀라노로 간다는 것은 알프스 산맥 바로 위를 비행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곧이어 밀라노이기에 비행기 창 밖으로 푸른 하늘을 날고 있는 다른 여러 비행기들을 볼 수 있었지만, 내가 탄 비행기가 가장 낮게 날고 있었다. 알프스의 영봉들이 발 밑에 깔리는 그 파노라마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정경이리라..... 혹이라도 유럽을 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코스를 꼭 추천하고 싶다. 알프스 영봉을 가장 낮게 나는 비행편을 한 번 잡아 보시라고 말이다.

알프스 정경
도착한 밀라노 공항, 여기 역시 인터뷰란 없었다. 약 3시간 정도를 기다렸고, 이스라엘 출국은 떠나기 전 10분전에 시작됐다. 밀라노 공항은 공항이라기 보다는 마치 강남 고속 버스 터미널 같은 분위기 였다. 공항의 규모도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쉽게들 이리 저리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공항 대합실의 담배 연기는 으악.... 이태리에는 모두 흡연가들만 모인것 같았다....

Alitalia 이태리 항공으로 밀라노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까지는 약 5시간 정도 소요됐다. 비행기는 아주 쾌적했다. 기내에는 성지순례 관광 단체팀들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인뿐 아니라 아예 동양인이라곤 나 혼자 밖에 없는듯 했다. 밀라노를 떠난 비행기는 곧장 지중해위를 날았다. 전날 밤 이루지 못한 잠 때문인지 곧장 잠에 빠져 들었다.....


갑자기 비행기가 툭 떨어지는 기분과 함께 승객들의 놀란 소리에 잠을 깼다. 몇차례 더 기체가 흔들거렸다. 옆에 앉아 계셨던 이태리 할머니는 손에 묵주를 돌리며 눈을 감은채 혼잣말로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번의 청룡열차의 기분이 가고 그동안 캄캄하기만 했던 창 밖으로 갑자기 지중해 연안인 텔아비브 해안의 밤 야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잠시후 비행기는 부드럽게 텔아비브 벤 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마자 기내에는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텔 아비브 야경 나도 따라 박수를 쳤다. 성지 이스라엘에 도착했다는 감격보다는 무사히 데려다 준 조종사에게 대한 감사의 박수였다. 바로 전까지 죽을 맛이었던 기분때문에 박수는 마치 연주회가 끝난 다음의 우뢰와 같을 정도로 컸다. 물론 누구도 "앵콜!" 하는 이는 없었다.


이스라엘 현지 시간으로 밤 9시을 조금 넘기고 있었고,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어깨를 축축하게 적셔주는 비가 내렸다. 공항 건물과 얼마떨어지지 않은 곳에 비행기가 내렸지만, 비가오기에 공항 셔틀버스가 왔다. 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입국수속하는 곳까지 그냥 걸었다. 고개를 들어 밤 하늘에 내리는 이스라엘의 봄비를 얼굴로 맞았다... 순간, 비 오는 밤하늘을 가르며 공항 건물에 달린 커다란 네온싸인 간판이 내 가슴을 뭉클거리게 했다.

히브리어로 쓰인 베루킴 핫바임 르이스라엘

이스라엘 오심을 환영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에 왔다는 감격의 시작은 바로 히브리어 글자로 부터였다. 그렇게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 어디를 가나
히브리어 글자들은 내게 가장 흥미로운 낯선 경험이었다. 그저 책으로만 보던 히브리어가 이렇게 살아 숨쉬는 언어로 눈 앞에 펼지는 것이 가장
신기했었다. 음식점에서 모든 메뉴가 히브리어였다. 버스 터미널에서도 그랬고 길거리 간판들이 다 그랬다. 물론 아주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내겐 그 광경이 사뭇 달랐다. 구약 전공자라서 그랬나 보다....

벤 구리온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군인복장을 한 이스라엘 여군의 날카롭게 쳐다보는 눈매가 이스라엘이 편안한 마음으로 순례자를 맞이하는 것만은 아닌 이 나라 현실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입국절차는 간단했다. 짐을 찾아 나오면서 나를 기다려줄 사람이 없는줄 뻔히 알면서도 괜히 이리 저리 두리번 거렸다. 나오는 출구쪽으로 마련된 작은 분수길이 조금전 여군에게 받았던 긴장감을 잠시 편안하게 풀어주고 있었다.

공항에서 텔아비브 유스호스텔로 곧 가겠노라고 전화를 했다. 공항 밖은 시장 바닥처럼 떠들썩했다. 일명 쉐루트 택시 라고 하는 합승 택시 기사들이 관광객들을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중이었다. 혼자 배낭을 매고 나오는 나에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숨을 크게 내 쉬어 보았다. 이스라엘.... 내가 지금 이스라엘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잘 가질 않았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용한 구석을 찾아 고개를 숙이고 감사와 함께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래는 기도를 드렸다.

모두들 바쁜 걸음들 처럼 보였지만, 난 바쁘지 않았다. 유스호스텔도 늦게 들어갈 수가 있었다. 대분분의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떠나고 있었다. 나도 이젠 움직여야 겠다고 마음 먹고 이리 저리 다니며 버스편을 물었지만, 텔아비브에 가서도 유스호스텔(참고: 텔아비브 유스호스텔
이스라엘 전역 유스호스텔 안내
)을 찾기가 힘들다는 택시 기사의 말만 듣고 합승하기로 했다. 경비를 줄여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첫 시작부터 콩콩 뛰고 있었다...

어렵게 찾아 들어간 유스호스텔의 첫날밤은 꼬박 세워야만 했다. 한 방에 10여명이 함께 생활하는 방을 잡아 들어갔지만, 별도로 귀중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서 화장실을 가면서도 여권과 카메라를 갖고 다녀야 했던 모습이 얼마나 불편했던지 모른다. 잠을 자려고 해도 새벽까지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책 한 권 들고 그 밤을 꼬박 세웠다. 그게 나의 이스라엘 첫날 밤이었다....
2002-01-09 11: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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