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신학 논문, 원고, 컬럼, 번역 글 모음

  [설교] 죽은 자의 부활, 연세대학교 루스채플(2009년 4월 26일)
  박경철
  

연세대학교 루스채플 설교

연세대학교 루스채플 설교(2009년 4월 26일)

구약:        이사야 26:19-21

복음서:      누가복음 24:25-32

신약:        사도행전 3:12-19

설교제목:    죽은 자의 부활(Resurrection of the Dead)

설교자:      박경철 목사(Rev. Park, Kyung-Chul)


이사야 26:19-21: “그러나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즐겁게 소리 칠 것입니다. 주님의 이슬은 생기를 불어넣은 이슬이므로, 이슬을 머금은 땅이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땅이 죽은 자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나의 백성아 ! 집으로 가서, 방 안으로 들어가거라.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의 진노가 풀릴 때까지 잠시 숨어 있어라. 주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셔서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니, 그 때에 땅은 그 속에 스며든 피를 들어낼 것이며 살해당한 사람들을 더이상 숨기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4:25-3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은 참 어리석습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참 무딥니다. 그리스도가 반드시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자기에 관하여 쓴 일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 두 길손은 자기들이 가려고 하는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더 멀리 가시려는 척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만류하여 말하기를 "저녁때가 되고,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집에 묵으십시오."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사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던가?”

사도행전 3:12-19: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또 어찌하여 여러분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하기나 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d)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찍이 그를 넘겨 주었고, 빌라도가 그를 놓아 주기로 작정하였을 때에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d. 또는 아이)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운 그를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증언하는 증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고, 또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을 낫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이름을 믿는 믿음에 힘입어서 된 것이니, 예수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완전히 성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해서 그렇게 행동하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만 한다고 미리 선포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



오늘은 교회력에 따라 부활절 셋째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중 사도행전의 말씀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후 사도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전 앞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한 사람을 고친 이야기를 전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우리는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게 된 것을 본 사람들이 분명 이 일을 보고 놀라고 이상히 여겼던 그때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모습을 동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 일이 오늘 여기서 다시 일어난다면 우리도 이상히 여길 것입니다. 제가 다시 베드로의 말로 묻겠습니다.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긍정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오늘 여기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성서 본문을 다시 자세히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걷지 못하던 사람이 다시 걷게 된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기던 사람들에게 증언합니다. 그의 증언의 핵심은, 그 광경을 이상히 여기던 그 사람들, 바로 당신들이 “거룩하고 의로운 그를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증언하는 증인입니다”라고 증언합니다. 바로 당신들이 의인을 죽이고, 오히려 살인자를 살렸다고, 당신들이 생명의 근원을 죽였지만, 온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의인을 다시 살렸고, 그 의인이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 이 사람을 다시 고치신 것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 곧 그의 십자가의 사건과 그의 부활의 산 증인임을 살인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모두 이 일에 증인인가요? 오늘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의인을 죽이고 악인을 살리는 불의한 권력앞에서 담대하게 너희가 살인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너희가 죽인 의인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 있지 않고 살아났다고, 우리가 이 일에 모두 증인이라고 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목격자입니까? 2천년전의 사건이니 우리는 분명 골고다의 목격자와 증인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증인들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을 어떻게 무엇을 믿고, 또 어떻게 무엇을 전할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라고 아직 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어느날 갑자기 믿은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2천년동안 전해내려온 교회의 신앙전통이 나를 그렇게 믿도록 해 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니라, 오히려 2천년전에 사건 당일에 있었던 사람들, 아니 단순한 먼 발치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를 따라 다녔던 사람들중 제자들 가운데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를 다시 믿고 이 일에 증인이 될 수 있었는가를 전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나의 믿음이라고 단정하기 전에, 바로 그 제자들의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복음서인 누가복음 24장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는 이들이 처음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가 후에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저들이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몇몇가지 가정들을 들어보겠습니다. 본래 저들은 주님의 얼굴을 모르던 이들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생전의 주님을 잘 따르던 자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이 변장을 했을까요? 무리한 상상일 뿐입니다. 30절에 보면 떡을 먹고 난 뒤에 저들의 눈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들이 처음엔 허기로 인해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우스운 가정일 뿐이지요. 문제는 눈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저들이 처음엔 시각장애자였다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감기웠던 눈이 열렸다는 말은 곧 ‘눈뜨임’이요, 이는 깨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길에서의 논쟁은 분명 얼마전 있었던 예수의 십자가의 사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메시야로 우리 모두를 구속할 자로 여겼던 그가 그만 나무에 매달려 죽은 것입니다. 그에 대한 논쟁은 곧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바로 이 이해할 수 없는 십자가의 논쟁에 끼어듭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들이 다시 눈뜨임, 깨닫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을 한문장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길에서 그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던가?”(32절) 성경에 대한 풀이,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길에서 말했던 성경풀이가 무엇입니까? 눈이 감기운 자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는 한마디로 성경을 풀어줍니다. “그대들은 참 어리석습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참 무딥니다. 그리스도가 반드시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자기에 관하여 쓴 일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25-27절) 고난을 통한 영광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부활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왜 메시야가 고난을 당해야 하는 지를, 왜 십자가를 져야 했었는 지를 구약성경을 통해서 깨닫을 수 있고, 구약성서가 바로 고난을 통한 부활을 증언하고 있음에도 왜 이를 깨닫지 못했는가를 질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구약성서가 말하는 고난과 부활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수난절이 되면 그리스도의 고난을 구약성서에서 무엇보다도 이사야서 53장을 인용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약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4-5절) 이사야 53장은 이사야서 안에 나오는 고난받는 야훼의 종의 노래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야훼의 종의 노래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야훼의 종은 하나님(야훼)의 정의를 이 땅에 실천하기 위해 그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야훼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그의 종은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야훼의 종의 고난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평화를 선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의인의 죽음은 실상은 이 땅의 재앙을 피하여 평화/샬롬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57장 1-2절). 이사야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를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시는 이유를,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심”이라고 말합니다(61장 1-2절). 누가복음은 예수의 공생애의 시작을 안식일에 회당에 가셔서 그가 행한 처음 설교를 바로 이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눅 4장 18절이하).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야의 도래를 가리켜,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고 그가 와서 정의로 이 땅의 가난한 자, 눌린자들을 해방하실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날이 오면, 이리가 어린양과 뛰노는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노래합니다(사 11장). 이 땅에 가난한 자, 눌린자의 해방을 위해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에는 단지 이들을 위한 구원의 메시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에 대한 구원은 이들을 짓밟았던 자들에 대한 엄연한 심판이 있음을 전제합니다. 불의하고 부정한 땅에 대한 심판은, 부정과 불의에 의해 짓밟히고 억울하게 죽어갔던 이들을 다시 살리시는 일입니다. 억울하게 땅 속에 묻혔던 이들을, 그리고 땅 속에 이들을 파묻고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살아가는 땅위의 이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는 땅 속에 묻혀있는 이들을 다시 사리실 것이니, 이는 부정한 땅이 억울하게 죽어갔던 이들의 피를 다시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낼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26장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즐겁게 소리 칠 것입니다. 주님의 이슬은 생기를 불어넣은 이슬이므로, 이슬을 머금은 땅이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땅이 죽은 자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나의 백성아 ! 집으로 가서, 방 안으로 들어가거라.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의 진노가 풀릴 때까지 잠시 숨어 있어라. 주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셔서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니, 그 때에 땅은 그 속에 스며든 피를 들어낼 것이며 살해당한 사람들을 더이상 숨기지 않을 것입니다.”


죽은자의 부활은 고난받는 자의 부활입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이는 불의와 부정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죽였던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죽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생명의 근원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정의의 실천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그에 대한 증인이라고, 오늘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신자요 그의 제자라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고난을, 그리고 고난받는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눈이 감기워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바로 우리들이 밝고 선 이 자리 밑에 오늘도 여전히 힘없이 짓밟히고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는 이들을 밟고 서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이 불의와 부정의 땅을 심판하고 죽은 자들, 고난받은, 고난받는 이들을 다시 살리실 것임을, 다시는 죽임의 권세가 이들을 땅 속에 파묻어 숨기지도 못할 것입니다.

의인의 고난은 평화의 씨앗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듯이,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한 알의 밀알일지라도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로인해 우리가 평화의 많은 열매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그의 고난과 죽음이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음을 비로소 감기웠던 눈이 열려 눈뜨임의 깨닫는 날이 될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고난받는 자들의 부활입니다.

지난 주 49 년전 4.19 영령들이 그랬고, 다음 달 29년전. 5.18 영령들이 그랬고, 미선이와 효순이가 그랬고, 지금 우리 바로 옆 용산 철거민 영령들이 그럴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모든 이들의 산 증인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2009-04-27 10: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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