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신학 논문, 원고, 컬럼, 번역 글 모음

  [서평] 롤프 렌토르프, 구약정경신학, 하경택 역, 2009
  박경철
  

롤프 렌토르프

<서평> “구약성서 그 자체가 곧 구약신학 책이다”, 박경철 교수(한신대 구약학)


구약정경신학

롤프 렌토르프, 하경택 옮김

서울: 도서출판 새물결플러스, 2009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Band 2, Thematische Entfaltung

Rolf Rendtorff

Neukirchen-Vluyn: Neukirchener-Verl, 2001


구약성서와 구약성서신학

‘구약성서신학’을 간단히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 용어 안에 들어 있는 ‘구약성서’와 ‘신학’이라는 용어에 대해 미리 답해야 하고, 이 둘이 하나의 용어로 어떻게 말해질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가장 일반적 정의에서 ‘신학’(神學 Theologie)은 ‘신’(神-Theos)에 대(관)한 ‘말’(言-Logos)이며, 신에 대해 말하는 모든 인간학적 개념들에 대하여 학문적으로 체계를 이루는 한 학문이라는 것이다. 여기 신에 관해 말해진 또는 말해야하는 다양한 학문적 논의들이 있게 된다. 여기서 ‘구약성서신학’은 구약성서가 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 지를 서술(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구약성서신학’의 과제와 방법론들이 매우 다양하고 상이하게 진행되어 온 것이 지난 세기 구약성서신학사가 보여준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방법론적 문제는 이때 ‘구약성서 전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구약성서는 어느 날 갑자기 한 권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구약성서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각 본문들은 저마다 다양하고 오랜 생성의 역사들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성서 전체 안에는 오랜 시기에 걸쳐 형성된 각 시기마다의 새로운 상황에 따른 여러 다양한 진술들과 상이한 주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구약성서전체를 통해 어떤 하나의 학문적 체계, 구약성서 전체를 아우르는 어떤 중심 주제를 잡는 일이란 어려운 문제였으며(오늘날까지), 이는 곧 지난세기 구약성서신학사에 나타난 자취들이기도 하다.

롤프 렌토르프(Rolf Rendtorff 이하 저자)의 ‘구약정경신학’(원서: 구약성서신학, 정경적 구상, 제2권: 구약성서의 주제들)은 이상의 지난세기 구약성서신학사에서 나타났던 문제들과 함께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해석학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구약성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매우 중요하고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본서가 나오기 이미 오래 전부터, 저자는 이 길을 위해 끊임없이 준비해 오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91년에 출간된 『정경과 신학』이다(Kanon und Theologie, Neukirchen-Vluyn: Neukirchener-Verl, 1991). 이 책의 부제는 ‘하나의 구약신학을 위한 준비들’(Vorarbeiten zu einer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이었다. 당시 그는 지난 10년간 새로운 구약학의 논쟁들 가운데 두 가지 관점인 유대교의 성서해석과 이들과의 관계 및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역사비평적 논의들에 대한 여러 논문들을 묶어냈다. 특히 폰라트 이후 구약성서신학에 새로 추가될 것들을 제안했는데, 하나는 구약성서내의 책들 안에서 스스로 밝혀질 수 있는 신학적 개념설정들이 기본적으론 전체적인 윤곽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가 밝힌 구상이란 여러 서로 다른 입장들 속에서, 편집사, 구성사 또는 본문의 최종 형태에 대한 정경비평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이끌려는 것이었다. 이는 최종형태에 나타나 있는 문학과 신학의 현상에 대한 것으로 다시 말해, 편집과 구성의 역사적 흐름을 통해 나타난 최종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다. 이전 본문의 모습이 현재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가를 살피는 공시적 연구 방법의 관점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구약성서 안에 있는 여러 상이한 진술들, 때론 모순 되어 보이고 대립되어 보인다 할지라도, 이 문제들에 대해서 이 둘을 서로 양분시킬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시켜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테마를 두 부분, 곧 하나는 구약성서 책들 또는 수집물들에 대한 '정경'으로서의 개괄/윤곽, 그리고 둘째는 그 동안의 연구사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구약성서내의 각 개별적인 주제들과 신학적 논제들을 다루는 것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라 말했다. 바로 이 구상에 따라 본서(제2권)는 제1권과 함께 이루어졌다. 아울러 이미 그가 제안했던 새로이 추가해야 할 신학적 주제들로 구약과 신약이 어떻게 하나의 성서신학을 이행해야 할지, 나아가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구약성서해석에 대한 문제들 역시 이번 본서 제2권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본서 제2권이 출간되기 직전 2001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또 한 권의 그의 책은 『최종형태 본문』(Der Text in seiner Endgestalt)에서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에 대한 구약신학의 문제들과 과제들, 구약성서해석학의 근본적 문제들, 그리고 정경으로서의 성서본문에 대한 새로운 모습들과 기타 여러 성서주석 논문들이 실려 있다. 이 책의 부제는 ‘하나의 구약신학을 위한 여정의 발걸음들’(Schritte auf dem Weg zu einer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이다. 여기서 다룬 그의 구약정경신학을 위한 노력들이 본서에 그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구약성서해석의 처음과 마지막은 지금 우리 손 앞에 놓여 있는 구약성서 그 전체를 지금의 모습으로 보려는 데 있다. 그래서 그의 구약성서신학의 첫 말은 “구약성서는 하나의 신학책이다. Das Alte Testament ist ein theologisches Buch”(제1권 서론 p.1)라는 말로 시작한다. 본서는 두 권으로 이루어진 저자의 ‘구약성서신학’의 제2권을 번역한 것이다. 제1권은 정경으로서의 구약성서 전체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어떻게 이루어졌는가가 아니다)를 살폈다면, 제2권인 본서에서는 제1권에서 다루었던 구약성서 전체의 다양한 목소리들에 대하여 좀 더 정확하게 고찰하고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들, 주제들이 서로 어떻게 화음을 이루고 있는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점에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는 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히브리성서 본문에 포괄되어 있는 이스라엘 역사의 근본적인 변화를 매우 분명하게 인지 할 수 있을 것”(19)이라고 본다. 저자가 제1권에서 펼쳐 보인 구약성서신학은 구약성서의 지금의 모습들, 곧 정경으로서의 구약성서가 어떻게 전개되어가고 있는 지를 따랐다. 이는 마치 일반적인 구약성서개론책과 같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구약성서의 책의 순서에 따라 기술되고 있다. 문제는 일반 구약성서개론책들이 하듯이 개별 책들에 대한 요약정리나 신학적 문제들을 열거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 책들이 정경의 순서에 따라 본문 자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을 따르면서, 개별 책들이 정경의 배열에 따라 어떻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구약성서의 책들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구약성서를 하나로 보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제2권 역시 제1권에서 다루었던 현 구약성서 정경의 배열 속에서 개별 본문의 구성에 따라 족장시대-출애굽-이스라엘 건국시기-통일왕조-분열과 멸망-포로기-포로 귀환 후 새로운 건설에 이르기까지 각 주제들을 현 성서본문의 순서에 따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구약성서의 어떤 본문이든 각기 자기시대의 특정 상황을 본문의 정황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 역사적 정황을 규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20). 저자의 관심은 개별 본문의 역사적 정황에 대한 해명에 있지 않고, 오히려 현 성서본문의 최종형태, 곧 “현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형태 안에서 보여주는 본문자체의 진술”(20)이 무엇인지에 있다.


구약정경신학이란 성서의 순서를 따라서

본서는 구약성서의 주제들을 현 구약성서 배열에 따라 총 18개(B.I-B.XVIII)로 나눈다. 처음 7개의 주제들은 히브리성서의 삼분법에 따른 첫 번째 부분인 오경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인 ‘하나님의 창조세계'(B.I), ‘언약과 선택’(B.II), ‘이스라엘의 조상들’(B.III), ‘약속되고 위임받은 땅’(B.IV), ‘첫 번째와 두 번째 출애굽’(B.V),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 토라’(B.VI),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장소: 제의’(B.VII)등을 다루고, 오경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모세’에 대해서 그 다음 장(B.VIII)에서 다룬다. 다음 두 장은 오경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그러나 히브리성서 곳곳에서 매우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두 주제들인 ‘다윗왕국’(B.IX)과 ‘시온’(B.X)에 대하여 다룬다. 앞의 10가지 주제들은 독자들에게 주는 구약성서 자체의 진술들을 고찰한 것이었다면, 뒷부분은 이제 독자가 히브리성서 본문자체에 어떻게 응답하는가의 문제로, 성서본문의 진술들에서 생겨난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문제들을 살핀다. 곧 성서의 진술에서 나타난 그 하나님은 누구이며(어떻게 요약할 수 있으며-‘하나님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 B.XI), 그와 관련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은 누구인가(‘반역하는 이스라엘’ B.XII) 하는 질문들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상의 주제들, 곧 히브리성서, 곧 타나크의 구성에 따른 토라와 전기예언서에서 바라본 이야기체 본문과 법률적 본문들이 다룬 상황(세계)으로부터 새로운 상황과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국면을 상기시키며, 그 이후에 펼쳐지는 새로운 예언문학의 세계에 대하여(‘예언’ B.XIII)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세계 안에 펼쳐지는 일상의 문제들인 ‘이스라엘의 예배와 기도’(B.XIV)와 ‘이스라엘의 지혜’(B.XV)인 히브리성서의 마지막 부분인 성문서를 다룬다. 그 다음 장에서는 지금까지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서 어떤 점에서는 멀어진 듯 보이는 그러나 처음부터(창조) 이스라엘 역사 마지막까지 항상 함께 관련이 되고 있는 열방의 문제인 ‘이스라엘, 열방 그리고 이방신’(B.XVI)에 대하여 다룬다. 마지막 두 장은 히브리성서 전체가 그리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문제, 곧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B.VII)와 ‘이스라엘은 미래에 대해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B.XVIII)에 대하여 다루면서 히브리성서 전체를 개괄한다. 새로운 큰 장으로서 ‘구약성서 해석학 개관’(C.I 방법론에 대한 고찰, C.II 히브리성서/구약성서의 유대교 신학과 기독교신학)은 구약성서신학의 방법론, 해석학적 문제들의 근본적인 문제들과 함께 저자 자신의 기본 전제들과 새로운 전망들에 대하여 다룸으로써 제1권과 함께 본서 제2권에서 다루고 있는 저자의 ‘구약성서신학’이 어떤 이유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이루어 졌는지를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래서는 위에서 소개한 저서의 구성에 따라 전개된 구약성서의 주제들에 대하여 저자가 바라보는 정경으로서의 구약성서신학의 내용들의 중요부분들을 정리해본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은 첫째, 저자가 구약성서의 중요 주제들을 정경의 배열에 따라 전개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정경 순서에 따라 다루고 있는 개별주제들이라 할지라도 이를 개별 책에 한정하지 않고, 이 주제가 히브리성서 전체에서 어떻게 확장, 발전 되고 있는 지를 살핌으로써 히브리성서신학의 통일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각 주제는 히브리성서 곳곳에서 언급되면서 서로 상관관계를 갖지만 이는 매우 다양하면서도 상이한 맥락 속에서 이해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문제를 해당 본문의 역사적 맥락을 추론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그려내고 있는 커다란 하나의 그림이 무엇인지를 말하려는데 그의 관심이 있다. 그는 이것이 곧 현 최종형태로서의 구약성서 정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며, 이를 나타내는 것이 곧 구약성서신학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구약성서가 곧 하나의 신학책' 이라는 저자의 명제에 따라, 저자는 그의 구약신학의 시작을 ‘창조’로부터 시작한다(B.I). 구약성서에 대한 역사 비평적 방법의 시작은 곧 오경에 서로 다른 자료들이 있음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면, 그 첫 단추가 곧 창 1장과 2장간의 불일치에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 서로 다른 두 창조보도를 문서비평적 근거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 정경의 모습 안에서 서로 보완되고 보충, 구체화되고 있는 상호연관성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 연관성을 인간이 창조에서 차지하는 위치적 관점에서 창조를 바라본다(46). 저자는 창세기의 창조주신앙은 곧 다른 본문들에서 유일신앙 연결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주제를 타나크 전체에 관련(시편, 이사야, 욥...)하여 다른 주제들과 긴밀한 관계성을 고찰하지만 이를 하나의 ‘창조신학’이라는 틀로 체계화 시키고자 하지 않는다(21).

구약성서에서 ‘언약’은 매우 중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이는 특정한 단면에만 해당되며, ‘선택’이라는 주제 역시 “어떤 특정한 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어떤 주제 전체를 포괄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22)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이로부터 저자는 ‘언약과 선택’의 장(B.II)에서 히브리성서 전체에서 이상의 주제들을 거론하는 본문들을 언급한다. 특히 저자는 무엇보다도 ‘언약’은 ‘기억하심의 신학’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출6장; 레 26장; 렘 14장; 시 106편; 겔 16장 등). 저자는 이상의 주제들이 히브리성서전체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본다. 곧 세 가지 측면의 연결인, 출애굽전 조상들과의 맹세 기억과 이를 지키라는 율법 수여시 모세의 여러 계명들이 추가되고 회개를 통한 가능성은 조상들과의 언약을 하나님이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 역사의 시작은 아브라함을 선택(느 9:7)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 관심은 땅의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선택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이는 또한 곧 창조주의 능력과 권한이며, 신명기에서 선택과 창조신앙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70). 저자는 오경의 중요 주제들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음을 매우 주목한다. 곧 조상의 선택은 출애굽 근거인 조상들과의 언약 기억하는 것이고, 율법수여는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하는 것이며, 자기소유의 민족으로 선택하는 것은 언약(형식구와) 밀접한 연결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조상들’(B.III)의 주제는 이스라엘 역사의 매우 다양한 시기를 통해 고찰되고 있는 중요 신학적 강조점이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기역사에 대하여 어떻게 바라다보고 있는가의 진술들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의 주제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음을 저자는 바라본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단지 후손과 땅 약속의 언약을 받은 인도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죄악의 역사의 시작이 되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조상들의 주제가 지닌 신학의 특징에 대해서 저자는 첫째 그들이 땅 약속과 결합되어 있지만 그 땅의 수령자는 후손들이라는 점, 곧 약속의 성취가 후손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약속과 성취는 언제나 하나님의 맹세를 통해 나타난다는 점이다. 둘째는 조상들과의 언약은 출애굽시, 시내산 율법수여 종결장에서 그리고 포로기 때에도 조상들과의 기억(레 26:42)등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조상들이 이스라엘 역사의 출발점에만 서있지 않다. 이 조상들의 시작은 계속되는 민족 전체의 역사와 미래를 위한 기대와 희망들을 결정짓는다”(85)고 말한다. 저자는 조상들은 단지 족장들뿐 아니라, 출애굽세대(왕상 8:21, 참조 왕하 17:15), 땅 정착세대(신 5:2), 포로귀환세대(왕상 14:15. 참조 왕하 21:8)에 이르기까지 당야하게 언급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처럼 저자는 어떤 성서본문의 주제를 성서 전체를 통해 그 주제가 어떻게 성서 전반에 걸쳐 연결되고 있는 지, 곧 성서 전체를 지금의 현 최종형태를 통해 보도록 안내한다.

‘약속되고 위임받은 땅’(B.IV)은 그 이전 족장사와의 연결이며 곧 약속과 성취의 주제이다. 땅 수여의 조건은 율법의 준수에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땅으로부터 추방된 것이다. 그러나 회개한다면 다시 그 땅으로의 복귀가 가능하다. 저자는 이처럼 각 주제가 모두 연결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땅 정착 이전에 이미 땅의 수여는 이전 조상들에게 주었고, 맹세를 통해 확증된 약속의 성취는 모세를 통해 준 계명 준수의 의무와 연결되고 그 의무를 위반한 결과로 땅을 상실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히브리성서 정경이 보여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저자는 오경의 출애굽의 주제를 ‘첫 번째와 두 번째 출애굽’(B.V)으로 명명하면서 오경의 첫 번째 책들에서 제기된 주제들이 히브리성서 전 영역에서 어떻게 확대, 전개되고 있는 지를 고찰해 나간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자기이해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신앙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임과 동시에 바벨론 포로 귀환의 사건을 제2의 출애굽으로 인식하는 것은 이미 첫 번째 출애굽에 관한 진술들에서 이미 암시되고 있는 점에서, 초기 주제들이 바벨론 포로 이후 후대적 시각을 통해 고찰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출애굽 사건이 히브리성서 전통 속에서 보존되어온 가장 중요한 측면은, 야훼 한 분만이 하나님이시며, 그가 백성을 어디든지 이끄시며 모든 곤경 속에서 건지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이러한 사실을 항상 다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주셨다. 이스라엘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토라는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을 형성한다. ‘이스라엘 삶의 중심: 토라’(B.VI) 주제에서 저자는 히브리성서에서 토라는 그 전체로서 이스라엘의 토대를 제공하는 문서라고 지칭할 수 있는 오경의 본질적인 요소라 부른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저자의 중요한 신학적 방법론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토라에 대한 이해는 긴 전승과정의 산물임을 인정한다. 이러한 사실은 토라 개념의 기본적인 중요성에 적용될 뿐 아니라, 출애굽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책 가운데 수집된 다양한 본문과 본문 모음집들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과정의 역사를 해명하고 묘사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종교사와 사회구조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통찰에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흥미롭고 중요한 과제라는 점도 지적한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의 마지막에는 그 전체로서 우리 앞에 놓인 토라가 다양한 영역과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삶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140)는 것이 저자의 강조점이다. 현 최종형태 정경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토라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토라 전체 구조가 종교적인 측면과 함께 사회적인 측면(178)이 함께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결규정 뒤의 윤리적 규정 역시 근대적인 사고로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이 두 측면이 토라에서는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179)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의는 곧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장소’(B.VII)이다. 저자는 이 주제에 있어서도 이스라엘의 다양한 시기 걸쳐 적용된 진술들을 언급한다. 예루살렘 중앙제의와 성전파괴, 성전재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의전통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사람이 의식을 통해 예배하는 것은 히브리성서 모든 곳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행동의 근본적인 요소로 간주된다는 점을 밝힌다. 저자는 제사에 대한 진술의 다양성과 용어의 비통일성의 문제를 언급하지만 히브리성서에서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일관성 있게 체계화되어 있는 영역을 또한 발견한다.

오경의 중심인물인 ‘모세’(B.VIII)에 대해서도 저자는 오경의 수집된 본문들은 매우 다층적이고 이스라엘 역사와 문학사의 매우 다양한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은 오직 다음과 같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이 본문들이 모세에 관하여 나타내고 있는 그림과 함께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통일성이 없고 모순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요소들은 하나의 전체 그림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이 그림이 무엇인지를 주목한다. 모세 그는 백성의 지도자, 인도자, 토라 수령자, 언약중재자, 범례적 예언자, 고난당하는 중보자, 하나님의 종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세의 죽음으로 이스라엘 역사의 첫 번째, 곧 기초가 되는 시대가 끝이 나지만 모세는 이스라엘의 범례적 지도자로서의 인물상으로 절대비교우위의 일회성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오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그러나 이어지는 책들에선 점점 더 중심적인 주제로 부각되고 처음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후에는 표면적으론 당연한 제도로 정착된 이스라엘 왕정제도 특히 그 중심인 ‘다윗왕국’(B.IX)과 시편에서 중요 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고, 예언서에서는 하나님의 도시로서의 성전과 예루살렘 도시 자체로 까지 다양한 표상들을 지니고 있는 후에는 이스라엘의 대리자와 동일시되는 '시온'(B.X)에 대해서 히브리성서 곳곳의 진술들과의 연결 속에서 살핀다. 아울러 다윗(왕국)과 성전의 연결, 그리고 성전이 있는 산인 시온의 두 주제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앞서 히브리성서가 진술한 것들에 대한 독자의 질문들, 곧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대한 문제의 입장에서 서술한다. 그 첫째가 히브리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다양한 진술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B.XI). 저자는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에 관해 말하지만, 하나님은 성서의 주제가 아니라고 한다. 성서 안에 하나님의 현존하심은 성서가 기록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지만, 하나님 그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고, 어떻게 행동하시고, 어떻게 경험되는 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중요한 것은 항상 세계와 인간,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의 관계 안에 있는 하나님, 그가 누구이며, 그가 계신가의 질문이 아니라, 그가 행동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는데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행동은 인간들에 의하여 다양한 방법을 통해 경험되고 성서 본문은 이 경험들을 다양성과 모순성 안에서 말해주는데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 진술은 통일성과 거리는 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분 하나님을 증언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떤 개념에 대한 많은 다양한 본문의 언급들을 소개하면서 이들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단지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들을 강조하고 서로에 대한 관계성을 고찰(347)하려고 한다. 곧, 하나님이 어떻게 소개되고 묘사되는가? 이를 통해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그림의 다양한 측면(352)을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저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경험될 수 있는 속성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단독으로 쓰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이 모든 경험들이 화음을 이룰 때에야 비로소 그것의 복합성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그림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아울러 그러나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현실성을 불완전하게 파악하고 표현될 수 있을 뿐(389)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들 가운데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특별한 관계를 지닌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 전반에 걸쳐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의 새로운 모습으로 비추는 것이 곧 ‘반역하는 이스라엘’(B.XII)이다. 성서 전체를 통해 한편으로는 본문의 저자들이나 그 본문을 대표하는 인물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본문이 종종 논증하며 때로는 투쟁하면서 대항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 사이의 논쟁이 줄곧 나타난다. 논쟁은 이스라엘 안에 있는 긴장과 대립을 표현한다. 반역하는 이스라엘은 본질적으로 긴장에서 그 근거-이는 실제 삶의 적용하는 것 사이에서 나타난다(399). 무엇보다도 유일신 야훼 숭배에 대한 문제와 함께 정의와 공의의 사회 공동체간의 관계에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앞선 장들이 히브리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술들이 그 초점이라면 이제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 지를 살피는 장들이 다음에 이어진다. 곧 하나님에 관한 발언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발언, 하나님을 향한 발언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 있는 인간에 관한 발언을 근본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대변하고 있는 본문들이다. 곧 예언자적인 발언들이다(B.XIII). 예언문학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말씀이라면 ‘시편’(이스라엘의 예배와 기도, BXIV)은 정반대로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말, 노래, 기도와 사색이다. 이는 하나님의 왕적통치에 대한 감사와 축제가 있고, 공동체만이 아니라 개인 기도자의 영적 상황, 주로 탄식과 곤경으로부터 벗어난 감사시들도 있다. 시편문학 역시 예언문학과 같이 다른 영역과의 분명한 결합 곧 오경과의 결합이 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지혜적 요소들이 들어있는 지혜문학('이스라엘의 지혜' B.XV)은 앞의 다른 문헌들에서 보인 삶의 영역과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곧 이스라엘이 삶의 영역에서는 주제가 아니다. 지혜문학은 예언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거나 시편처럼 하나님께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의 주제는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 개인의 삶과 행동이다(453). 무엇보다도 행위화복관계에 대한 비평적 문제가 구약성서 문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현상에 속한다. 욥기와 전도서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특히 욥기를 통해 “히브리성서의 독자들에게는 자기 스스로 이러한 질문과 논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고만 말할 뿐 이에 대한 구체적 신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455).

열방들에 대한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대하여(‘이스라엘, 열방 그리고 이방신’ B.XVI), 저자는 여러 상이한 관점들을 밝힌다. 이로부터 저자는 히브리성서의 저자들이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에 대하여 그리고 있는 그림은 전혀 통일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든다. 그 이유는 변화하는 정치적인 상황에 그 주된 근거가 있다고 보고, 그러한 상황들로부터 열방에 관련된 본문들이 기록되었고, 같은 상황에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본문들은 열방 가운데 있는 백성으로서 변화하는 이스라엘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472).

히브리성서 전체를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의 전체역사이다. 저자는 히브리성서 전체에 나타난 주제들을 펼친 뒤, 이제 그 요약과 전망을 위하여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B.XVII), ‘이스라엘은 미래에 대해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BXVIII)에 대한 다양한 전체적 구상을 조망한다. 이스라엘 역사 시작은 어디이며, 또 어떤 이유로 그렇게 역사 서술이 전개되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스라엘 역사 서술에 대한 관점 역시 일어난 사건의 재구성에 있지 않고, 최종형태 정경이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한 묘사이다. 저자가 보는 구약성서에서 역사는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서술되지 않으며, 또한 일반적으로 현대적인 역사적 사고에 상응하는 가정과 의도를 가지고 보도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재구성은 현재 논쟁의 여지가 있는 학문적인 토론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조건부로 가능할 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구약신학의 틀 안에서 추구하는 바는 그러한 재구성의 시도가 아니라, 역사에 관해 말하고 있는 성서본문들의 진술에 대한 묘사이며 해석이다. 저자나 그것을 말로 표현한 사람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경험했고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지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경험과 역사에 대한 성찰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언제나 서술된 역사에 관한 것(475f.)이라는 점이다.


렌토르프의 구약성서 해석학

본서의 마지막 새로운 장, ‘구약성서 해석학 개관’은 구약성서해석을 위한 기본 방법론적인 새로운 고찰과 함께, 구약성서/히브리성서/이스라엘 성서가 유대교와 기독교신학에서 새로운 관계를 위한 전망을 그리고 있다.

우선 ‘방법론에 대한 고찰’(C.I)에서는 저자가 본서의 집필 방법론에 대한 기본전제들이 들어있다. 그가 구약성서의 최종형태 본문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기술한 것이 본서의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이라면 그렇게 집필하게 된 자신의 방법론적 원칙들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 자신의 구약해석학의 기반에 중요 두 사람을 거론한다. 하나는 그의 스승 폰라트요, 다른 하나는 정경적 구상을 갖게 한 차일즈다. 저자가 중시하는 폰라트의 구약신학방법론의 핵심은 구약신학의 기술은 무엇보다도 성서 본문들이 자신의 맥락속에서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라는 이전의 구약신학들과의 커다란 방법론적 선회에 있다. 저자가 차일즈로부터 얻은 정경적 개념의 동기부여는 그로 하여금 무엇보다도 최종형태 본문 해석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최종형태’라는 용어에 대한 논쟁들에 대해 반론한다. 우선 완성된 최종형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 이는 비판적인 재구성을 통해 얻어진 본문의 형태에 대한 대안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해석학적 논쟁의 상황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성서본문들의 신학이 중요하지, 우리가 문헌비평적이며 역사적으로 재구성한 본문들의 지나가버린 신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546)는 크뤼제만의 말을 인용해 성서신학의 우선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강조한다. 문헌비평적 문제는 개별본문을 중시하고 최종형태의 본문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고 보고 의미가 통하는 새로이 본문을 재구성하는 것인데, 이때 해석자의 관심은 최종형태 본문 자체가 아니라 해석자에 의해 재구성된 본문에 모아진다는 점을 비판한다. 저자는 여기서 해석학적 전환을 제기한다. 곧 본문의 이전 단계들에 대한 관심과 형성사가 아니라 최종 본문에 대한 해석으로!(547)이다.

저자의 최종형태 본문에 대한 관심은 통시적 해석과 공시적 해석에 대한 것과 맞물려 있다. 저자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전체로서의 구약성서가 보여주는 본문구조이다. 이 본문구조를 의미구조로 인식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공시적 전체 조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때 본문과 내용적인 사상의 이전 역사에 대한 통찰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은 문헌적인 분석이나 역사적 혹은 종교사적 전승, 즉 통시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획득될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 통찰은 그 자체로서 전체 조망을 결정할 수 없고, 오히려 전체적인 조망을 얻게 하는데 기여해야 한다.”(554)고 말한다. 그는 이 두 해석학적 방법론들이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충할 수 있는 상이한 문제제기와 시각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555)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구별해야 하는 것은 중요한 것으로, 해석자의 관점의 전환을 든다.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거룩한 문서로 읽는 정경적인 해석의 측면을 강조한다.

본서의 마지막 장으로 저자는 이 문제, 곧 유대교와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거룩한 문서에 대한 해석학적 입장으로 마무리한다. 이를 위해 그가 중요하게 제기하는 문제 중 하나가 곧 용어의 문제다.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약성서’는 기독교의 용어로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 공통적으로 거룩한 문서로 존중되던 것으로부터, 두 신앙공동체의 구별과 분리를 주는 의미로 적절치 못한 점이 있음을 말한다. 아울러 70인경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후, 유대교에서 70인경 사용이 금지되고, 히브리본과 헬라어역본상의 차이, 배열상의 차이 및 권수에 있어서도 ‘구약성서’는 히브리성서와 완전히 일치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592). 아울러 ‘옛 것’, ‘낡은 것’이라는 의미로 인해 유대교에선 적철치 못하다는 것이다. 이에반해 그의 새로운 제안인 ‘이스라엘성서’는 생성부터 최종 정경적 모양을 갖추기까지 이스라엘의 거룩한 문서였다는 사실에 강조점을 둔다는 점이다. 아울러 주후 1세기 메시아 운동시와 함께 신약성서 생성의 시기를 포함하여 기독교 시작시기까지 오직 하나의 성서가 바로 ‘이스라엘성서’라는 점이다. 최근에 ‘첫 번째 언약’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무언가 두 번째 보다 우선성을 둔다거나, 또는 무엇인가가 뒤이어진다는 의미로 적절치 못하고, 유대인들에겐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신약성서 스스로 언급한 용어인 ‘거룩한 문서’표현, 특히 크뤼제만의 말처럼 ‘성서 중의 성서’라는 표현에 대해서 새롭게 인정한다.

‘성서신학’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구약과 신약을 어우르는 ‘범-성서신학’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기본전제는 이스라엘의 성서가 처음부터 기독교 공동체의 거룩한 문서였다는 인식이라는 점을 강종한다. 이 말은 기독교신학이 처음부터 신약성서의 메시지와 함께 시작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뜻하며,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교회와 신학을 위한 구약성서의 의미를 신약성서나 신약성서로부터 도출된 어떤 신학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성서의 생성의 역사에나 이 역사에서 수행된 신학적인 결정에 위배되는 셈”(599)이라고 비난한다. 신구약의 연속성의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구약의 관련성 안에서만 신약의 메시지는 이해될 수 있고 지속될 수 있다(602f)고 본다. 저자는 기독교신앙의 근본적인 내용자체가 신약성서에서 발전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신약의 기자들이 하나님에 관한 어떤 교리를 발전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저자는 “두 분야의 밀접한 공동작업의 필요성”의 과제로 넘긴다(603).


끝으로 저자는 성서 본문에 대한 해석자는 자신의 신학적 전통과 이 전통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함께 가져오기 때문에 해석자 자신이 신학자로서 이 과제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 과제에 대하여 올해 84세인 저자는 본서에 “주도적으로 나타나는 신학전통에 대한 이해는 구약성서 연구에 일평생 종사한 것을 통해 결정적으로 함께 새겨진 것이다.”(605)라는 말로 저자는 본서를 통해 자신의 평생의 구약학연구의 결정체임을 자신 있게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최종형태 성서본문에 대한 역사 비평의 학문적 접근과 수용은 한 때, 국내 한 교단 분리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고, 오랫동안 대학강단과 교회현장, 신앙과 신학의 갈등을 초래하는 단초이기도 하(였)다. 마치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잣대처럼도 보였(인)다. 본서에서 저자가 해석학적 과제로 내세우는 유대교와의 문제에 접근하기도 전에, 신약성서와의 새로운 논의를 하기도 전에, 이미 구약성서자체 본문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로 정경 신앙공동체가 전해준 신앙의 유산은 해체되기도 한다. 세계 학계에서는 이미 성서의 최종형태에 대한 해석학적 논의가 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그렇게 구약학계의 핵심적 문제로 논의되고 있지는 못하다(필자의 눈에는 가장 우선적인 논의로 보임에도). 이 점에 있어서 렌토르프의 구약정경신학은 국내 신학계뿐 아니라 교회 현장의 일선 목회자들에게도 아니 일반 성도들의 성서읽기에도 매우 신선하고 친밀하게 다가설 것이라 확신한다.

본서를 대하면서 개인적으로 매우 기쁘다. 저자인 렌토르프는 필자의 논문에 지대한 도움을 주신 분이다. 필자의 신학적 방법론의 방향을 고정시킨 이다. 그의 글들은 언제나 반복적으로 강의실에서의 나의 외침이었다. 필자를 가장 힘 있게 지원해 줄 그의 구약신학의 번역작업은 오랜 숙원 과제였었다. 이에 본서를 국내 학계와 교회에 소개해 주고, 본서가 번역서임을 전혀 느끼지 않게끔 번역해 준 하경택 교수께 그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함께 기획했음에도 제1권을 함께 번역 출간하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이 서평으로나마 대신한다.


2009-09-07 08: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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