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신학 논문, 원고, 컬럼, 번역 글 모음

  [논문] 이스라엘 포로기이후 금식제의 논쟁, 구약논단 32,, 2009, 6
  박경철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금식제의논쟁’의 문제에 대해서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금식제의논쟁’의 문제에 대해서1)




                                                                    박 경철(한신대)





1. 들어가면서

굶는 것이 금식인가? 굶주린 자를 먹이는 일이 금식인가? 무엇 때문에 금식하는가? 금식은 종교적 행위인가, 아니면 사회,정치적 행동인가? 올바른 금식이란 무엇인가? 물론 성서를 통해 성도들을 위한 건강 다이어트방법을 찾으려는 질문은 아니다. 이상의 문제들에 대해 사 58장은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금식제의와 사회정의 실천에 대한 중요한 논쟁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포로기 이후 초기 본문인 슥 7장에서도 사 58장과 동일하게 금식제의의 문제와 사회 약자들에 대한 윤리적 실천행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곧 종교적 행위와 사회정의 실천 행위의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 예언자들이 어떻게 다루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문들이다. 이 두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무엇 때문에 금식제의 문제가 종교, 사회적 문제로 중요하게 거론되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본 연구의 중요 문제제기이다. 아울러 두 본문의 공통점과 차이들을 통해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의 사회적 상황을 살펴볼 것이다. 특히 사 58장은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금식과 사회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사 58장 1-12절까지만 다루어졌지만, 본 연구에서는 13-14절에 나오는 안식일 주제가 그 앞에 다루어지고 있는 금식과 사회정의 관련의 주제와 어떤 관련을 맺는 지에 대해 본문의 최종형태 구성적 측면에서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 질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금식에 관해 보도하는 구약성서내의 모든 본문들을 찾아서 ‘금식’에 대한 성서의 정의를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2) 위의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의 두 예언자(서)를 통해 제기되었던 포로기 이후 ‘금식논쟁’에 들어있는 당시의 상황을 밝혀서, 종교적 행위와 사회정의 실천 행위가 서로 어떤 관계를 지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성전재건과 금식제의의 문제(슥 7장)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용서를 구할 때, 금식 하는 일이 잦았음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금식에 대한 첫 보도는 삿 20장이다. 사사시대 기브아에서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이 베냐민 지파를 대항해 전쟁을 치른 후, 미스바에 모여 야훼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금식을 했다(삿 20: 26), 법궤를 찾기 위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회개하는 미스바에서의 금식성회가 열리기도 했다(삼상 7: 6). 나라와 민족이 큰 슬픔을 당했을 때에도 금식을 했고(에 4: 1-3), 특히 신분이 높은 이를 장사지낸 후 온 백성들이 금식을 하곤 했다. 사울과 요나단을 장사 지낸 후가 그랬다(삼상 31: 13; 삼하 1: 12). 때론 왕이 전국에 금식을 선포하기도 했다.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기 위해 거짓 반역죄를 씌워서 금식을 선포한 일도 있었다(왕상 21: 12). 심지어 이방 니느웨의 왕은 전국적으로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방도로 금식을 선포하기도 했다(욘 3: 5-7). 특정일을 금식일로 정하기도 했다(렘 36: 6; 욜 1: 14; 2: 15). 무엇보다도 공식적이고 정기적으로 온 백성들이 지키는 ‘금식제의’는 주전 587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예루살렘성전 파괴를 기념하여 정해진 것으로 학계는 본다.3) 예루살렘성전 파괴에 따라 포로기 동안 금식제의가 행해졌다면, 포로귀환 이후, 예루살렘성전이 다시 재건되었다면 금식제의 행위는 계속 유효한 것인가?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곧 성전재건과 관련하여 이에 대한 ‘금식제의논쟁’을 보여주는 성서가 바로 스가랴서이다.

슥 7장 1-13절에는 제 5월에4) 행해지는 ‘금식제의’5)에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그 뒤를 이어 슥 7장 4-14절에서는 이른바 스가랴의 ‘금식설교’6)라 불리는 예언자 스가랴가 백성들의 질문에 대답7)하는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 5월에 행해지는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를 기념하는 탄식과 금식제의를 계속 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슥 7장 3절에 나오는 이 ‘금식제의’에 관한 물음은 이렇다: 지난 여러 해 동안(슥 7: 3b)8) 진행되어 온 ‘금식제의’를 1절에 언급된 연대표기9)에 따르면, 이제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고 있는10) 마당에도 계속 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곧 지난 세기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기념하여 ‘금식제의’를 ‘여러 해 동안’(םיꗼꚂ הꗶꗐ 캄메 솨님) 행해왔다면, 이제 성전을 다시 세우는 시대가 왔으니, 이전의 ‘금식제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입장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금식제의’ 문제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재건으로 보는 이들의 질문에 대해 스가랴의 대답은 전혀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스가랴는 지난날의 ‘금식제의’가 시작된 근본원인을 성전 파괴의 결과로 보지 않고, 성전 파괴의 원인으로 본다. 성전 파괴가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에 있기 때문에, 성전이 다시 세워진다고 해도, 성전 파괴 이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스가랴는 ‘금식제의’의 유효성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의 유효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논쟁적인 문체(참고, 말라기11))로 되어진 슥 7장 4절 이하의 스가랴의 입을 통한 야훼의 말씀은, ‘땅의 온 백성들’(슥 7: 5, 참고, 학 2: 4)과 제사장이 행하는 금식과 탄식이 실제 야훼가 받을 수 있는 것인가를 문제 삼는다(슥 7: 5, “너희가 나를 위해 금식했는가?”). 대답의 형식을 취한 예언자의 지난날의 ‘금식제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금식’이 야훼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백성들이 마시지 않고 먹지 않는 금식과, 마시고 먹는 것이 백성들 자신들을 위해 즐기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슥 7: 6). 특별히 스가랴의 ‘금식제의비판’은 포로기 이전 예언자들의 ‘제의비판’의 성격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무엇보다도 예언자들의 ‘제의비판’은 근본적으로 제의 자체를 금하는 것에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제의행위의 외형적 겉치레에 있다(참고, 암 4: 4f.; 호 8: 13; 사 1: 10-17; 렘 7: 21; 시 50: 13)12). 그렇기 때문에 스가랴는 ‘금식제의’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이전 예언자”(슥 7: 7, 12)들을 거론하여, (금식)제의의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곧 9절 이하에서 포로기 이전 예언자들이 요구했던(렘 7: 5f.; 암 5: 24; 사 1: 17) 사회 약자들(슥 7: 10, 과부, 고아, 나그네와 가난한 자)13)을 위하여 사회정의를 실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11-14절에서 포로로 잡혀가게 된 파국을 초래한 원인에 대한 지난 역사의 기억은 9절에 나오는 사회정의 실천 요구와 관련을 맺고 있다. 지난 역사에 대한 스가랴의 이 기억은 그의 시대 청중들을 위한 교훈임과 동시에 성전 파괴와 멸망의 원인에 대한 증거로 제시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포로기 이전 요구됐던 사회정의 실천 요구는 포로기 이후 시대에도 여전히 동일하게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가랴에게 있어서 ‘금식제의’는 성전의 파괴가 그 원인이 아니다. 그는 왜 ‘금식제의’가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금식제의’가 계속 유효하다는 것을 말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성전파괴의 원인에 대한 지난 역사를 거론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만을 거론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시대, 곧 성전이 재건되고 있던 그 시대에도 ‘금식제의’가 유효한지에 대한 물음에는 전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약자들을 위해 정의를 실천하라는 말만 강조한다. 스가랴에게 있어서 ‘금식제의’는 곧 ‘사회정의실천’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식제의논쟁’을 다루는 슥 7장의 뒤를 이어 슥 8장에서는 구원의 시대(때)에 사회정의실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스가랴서의 현 최종형태 본문은 슥 7장과 8장이 הꕯהꖾ־רꔨꕎ ... יꕙꖾꕰ/הꖷꕗ(하야/바예히 드바르-아도나이/야훼의 말씀이 ... 임했다)라는 표현(Wortereignisformel, 7: 1b. 4. 7. 8. 9a; 8: 1. 2aa. 18. 19aa)과 הꕯהꖾ רꗫאָ הꗔ(코 아마르 아도나이/ 이렇게 야훼가 말씀하셨다)는 ‘예언신탁형식’(Botenspruchformel, 8: 3aa. 4aa. 6aa. 7aa. 9aa. 14aa. 20aa. 23aa)14))뿐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다음과 같이 교차대구적으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A 7: 1-6  금식물음과 금식비판

   B 7: 8-10  사회정의 실천 요구

      C 7: 11-14  조상들에 대한 야훼의 심판

         D 8: 1-13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선포

      C' 8: 14  조상들에 대한 야훼의 심판과 구원선포

   B' 8: 16-17  사회정의 실천 요구

A' 8: 18-19  슬픔에서 기쁨으로의 금식제의의 의미 변경


아울러 슥 7장과 8장은 스가랴서 처음인 슥 1장과 2장을 그 앞, 뒤를 둘러싸는 구성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슥 7장 11-14절과 8장 14절에 언급된 이전 역사에 대한 예언자의 기억은 스가랴서 가장 처음인 슥 1장 2-6절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슥 1장과 7장은 연대표기(슥 1: 1, 7; 7: 1)15)에 있어서 서로 연결된다. 슥 7장 5절에 있는 “70년”(참고, 렘 25: 11; 29: 10; 대하 36: 21; 단 9: 2f.)16)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며 탄식하는 햇수로서 스가랴서 첫 부분인 슥 1장 12절에 나온다. 1장 13절 이하에 나오는 예루살렘/시온에 대한 구원선포는 슥 8장 서두에 나오는 것이다.17) 이는 슥 1-8장까지가 그 처음과 끝의 연결을 통해 하나로 묶여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 14b  ׃הꗚוֹדꔾ האָꘁꙎ ןוֹיּ꘾ꗡוּ םꗛꚂוּריꗜ יꚕאꘈꙎ

        “낀네티 리루샬라임 우레찌온 끼느아 게돌라”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8: 2  ׃הּꗚ יꚕאꘈꙎ הꗚוֹדꔾ הꗪꖑꕵ הꗚוֹדꔾ האָꘁꙎ ןוֹיּ꘾ꗡ יꚕאꘈꙎ

         “낀네티 레찌온 끼느아 게돌라 베헤마 게돌라 낀네티 라흐”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1: 16  הּꔯ הꗾꔯꖹ יꚕיꔲ םיꗬꖖꙝꔶ םꗛꚂוּריꗜ יꚝꔮꚃ

      “솨브티 리루샬라임 베라하밈 베티 입바네 바흐”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 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8: 3  םꗛꚂוּרꖾ ꗗוֹתꔶ יꚝꘁꗈꚂꕵ ןוֹיּ꘾־לꔟ יꚝꔮꚃ

        “솨브티 엘-찌온 베솨칸티 베토크 예루샬라임”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나아가 시온/예루살렘으로의 ‘열방순례’에 대한 주제 역시, 슥 1-8장의 첫 부분 슥 1-2장의 마지막인 슥 2장 15절에 나왔다면, 역시 끝부분 슥 7-8장의 마지막인 슥 8장 20-23절에 나온다.

이상은 사회정의실천 요구가 다가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인간의 의무적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시대에 맞추어 그 시대에 이루어지는 결과적인 것을 말한다. 슥 1장 12-17절과 슥 8장 1-15절에 나오는 예루살렘/시온을 위한 심판과 구원은 온전히 야훼께 속한 것이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재판과정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의무를 지닌다(슥 8: 16-17, 참고 7: 9; 사 59: 3f.) 인간의 의무조항은 구원을 위한 조건18)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행위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 슥 8장 15절에 예루살렘/시온을 위해 선포된 하나님의 구원은 슥 8장 16절 이하에서 인간의 의무가 조건화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구원선포와 구원행위는 오직 그의 주관, 그의 질투심(האָꘁꙎ 킨아)19) (슥 8: 2f. 참고, 슥 8: 14)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인간의 의무는 오직 구원의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정의실천’ 요구는 오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시대에 있어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진리의 도성’(슥 8: 3b תꗮꔤꕗ־ריꘟ 이르-하에메트)이라 칭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표시로써, 그 증거로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곧 야훼가 예루살렘/시온으로 돌아와 그 안에 거주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슥 8: 3a)20). 야훼는 스스로 구원의 때에 ‘진리와 정의’(הꙌꕇꙃꔩוּ תꗮꔤꔳ 베에메트 우비츠다카)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예루살렘/시온에 거하시겠다고 한다(슥 8: 8). 야훼는 스스로 ‘진리 안에’(תꗮꔤꔳ 베에메트) 머무르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은 서로 ‘진실’(תꗮꔤ 에메트)을 말해야 한다(슥 8: 16). 하나님의 구원의 때는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한 평화의 때가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전에는 ‘평화가 없었으나’(םוֹלꚂ-ןיꔞ 엔-샬롬, 슥 8: 10bα), 이제 구원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평화의 씨앗’(םוֹלꚋꕘ עꙝꖂ 쩨라 하샬롬 슥 8: 12aα)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문법정에서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םꗋיꙟ꘥ꚃꔶ וּט꘰Ꚅ םוֹלꚂ 샬롬 쉬퍼투 버솨아레켐, 슥 8: 16). 금식제의는 기쁨의 날들이 되고, 이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실과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וּבꕗꔤ םוֹלꚋꕘꕵ תꗮꔤꕗꕵ 버하메트 버하샬롬 에하부 슥 8: 19b). 그렇게 될 때에 4월, 5월, 7월 그리고 10월에 행해지고 있는 ‘금식제의’는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될 것이다. 결국 이런 일이 생기게 되면 이스라엘은 정의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21) 이는 이미 슥 8장 13절에 분명하게 제시된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지는 저주 또는 축복의 발생은 오직 전적으로 그들의 하나님인 야훼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3. 금식제의행위와 사회정의실천의 문제(사 58장)

구약성서에서 ‘금식제의’에 대한 일반적인 상(像)에 대하여 가장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입장/모습(像)을 보여주는 본문이 사 58장이다. 사 58장이 말하는 금식은 ‘스스로의 고행’(사 58: 5)으로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먹지 못해 배고파 고행을 하고 있는 가난한 자들을 배부르게 하라는 것이다(사 58: 7). 한 마디로 참된 금식이란 자신이 먹지 않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먹이는 일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야훼가 기뻐하는 금식이라는 것이다.

슥 7장에서는 백성들이 ‘금식제의’를 계속 할 이유가 있느냐를 질문했다면, 사 58장은 왜 야훼는 우리의 ‘금식제의’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가 하는 탄원이다(사 58: 3). 사 58장은 예언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고발하라는 신탁으로 시작한다(사 58: 1). 그들의 죄로 제시된 것은, 뜻밖에도 그들이 날마다 야훼를 찾고, 야훼께 가까이 나가기를 즐겨하며 무엇이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인지를 묻기도 하는 그들의 종교적 행위에 있다(사 58: 2). 이러한 그들의 종교적 모습은 사 58장 3절에서 ‘금식제의’와 관련을 맺는다. 얼핏보면 그들의 종교적 행위가 범죄로 보이지 않을지 모르나, 사 58장 3절 하반절에서 백성들이 한편으론 금식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향락을 즐기며, 일꾼들에게 일을 시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예언자의 제의비판은 바로 그들의 위선적 제의행위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제의행위와 사회적 불의한 처사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고발인 것이다. 이사야서는 가장 처음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고 있는 제의행위에 대하여 철저하게 금지를 명한다(사 1: 11-14). 그러나 이는 제의자체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손에 피를 묻히고 야훼께 나와 기도를 드리는 그들의 위선적인 이중적 삶의 모습이 원인이다(사 1: 15). 진정한 제의는 사회 약자들을 돕고 이들에게 정의를 행사하는 것이다(사 1: 17).

사 58장의 ‘금식제의비판’ 역시, 스가랴의 지적처럼 금식이 야훼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백성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행하는 것이라는 데에 있음을 지적한다.22)

‘금식제의’를 계속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는 슥 7장 3절은 성전이 파괴된 이래로 행해진 ‘금식제의’가 성전이 재건되고 있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지에 대한 문제에 있었다면, 사 58장 3절은 백성들의 금식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탄식에 있고, 이는 성전재건이 이미 세워진 그 이후와 관련되는 것이다.23) ‘금식제의’의 유효성에 대한 질문은 같지만, 사 58장은 계속 진행하고 있는 ‘금식제의’에 대한 야훼의 무관심에 대한 탄식에 있다. 이는 포로기 이후 초기의 상황, 곧 성전이 재건되고 있던 때를 말하고 있는 슥 7-8장을 통해서 ‘금식제의’는 계속 진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4) 문제는 그 이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가 그들의 ‘금식제의’에 무관심한 문제가 백성들 사이에서 생기게 된 스가랴 시대 그 이후를 암시한다. 이는 사 56장을 통해 이미 성전이 세워진 그 이후임이 보도되기에 그렇다(사 56: 7). 실상 슥 7장 3절과 사 58장 3절에서는 금식에 대한 탄식과 질문의 형태가 서로 다르다. 아울러 슥 7장 이하와 사 58장은 모두 사회 정의 실천에 대한 요구가 진정한 금식의 의미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서로의 가장 큰 차이는 슥 7장 이하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주석가들은 사 58장 13-14절은 문체상으로 그리고 안식일 제의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 앞의 사 58장 1-12절과 분리시킨다.25) 특히 1QIsa에는 사 58장 12절과 13절 사이에 빈 줄이 들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사 58장 13절 이하를 그 앞 단락과 분리시킨다.26) 그러나 1QIsa 에는 여러 곳에서 앞, 뒤 절 간에 주제상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 줄이 있는 곳들이 있다(특히 1QIsa 42: 26절 과 27절). 또한 ‘안식일’ 주제를 다루고 있는 1QIsa 66장 23절은 그 앞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다루고 있는 22절과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22절과 23절 간에는 빈 줄이 들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의 빈 줄의 이유가 사 58장을 1-12절과 13-14절로 분리할 근거는 타당성이 없다. 오히려 사 58장 전체를 ‘안식일’과 관련하여 고려하지 않음으로 사 58장 전체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는 점이다.27) 그렇기 때문에 사 58장에서 금식에 대한 비판과 사회 정의 실천에 대한 요구의 문제는 사 58장 13절 이하의 ‘안식일 준수’ 주제와 함께 다루어 져야 한다. 이는 사 58장에서 금식제의와 사회정의의 문제가 사 58장 13-14절의 안식일 주제와 어떤 관련을 맺는가를 본문의 최종형태의 구성적 측면에서 접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 58장은 무엇보다도 사 58장 1-14절 전체가 교차대구의 구성으로 그 중심에 진정한 금식제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A  야곱의 집(בꙑꘞꖸ תיꔪ 베트 야아꼽)에 대한 고발(1b)

   B  백성들이 자신들이 즐겨(ץ꘭ꖑ 헤페츠) 야훼를 찾음(2)

      C  자신의 몸(שׁ꘭ꗾ 네페쉬), 고행(הꗺꘞ 아나)의 금식(3a)

         D  금식하며 불의한 폭력행사(4a)

            E  이것이 금식인가?(5a)

               F  이것이 야훼가 즐겨하는(ץ꘭ꖑ 헤페츠) 금식?(5b)

            E'  이것이 금식이 아닌가?(6aα)

         D‘  불의한 폭력 금지(6aβ)

      C'  자신의 몸(שׁ꘭ꗾ 네페쉬)을 가난한 자(아나)의 몸(שׁ꘭ꗾ 네페쉬)을 위해(10a)

   B'  안식일에 자신들의 즐거움(ץ꘭ꖑ 헤페츠) 금지(13)

A' 야곱의 후손(나할라트 야아꼽)에 구원선포(14)


비록 금식제의와 사회정의실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사 58장과 슥 7장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보이지만, 사 58장 13절 이하가 안식일 주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사 58장과 슥 7장간에는 서로 다른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포로기 이후 초기 스가랴 시대에는 안식일에 대한 문제가 사회정의의 문제와는 아직 관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결국 사 58장은 포로기 이후 초기인 스가랴 시대 그 이후에 생겨난 또 다른 상황이라는 점이다. 요약하면, 스가랴 7-8장을 통해 ‘금식제의’의 문제는 성전의 파괴 및 재건과는 관련이 없다. 사회정의 실천 여부에 달린 것이다. 결국 스가랴에게 있어서 ‘금식제의’의 유효성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고, 그로부터 이는 계속 진행되었다. 그러나 계속된 사회정의를 외면한 ‘금식제의’는 이사야 58장에 와서 중대한 문제로 부각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안식일’ 주제가 사회정의 문제로 부각된 시점이며, 이를 잘 보여주는 본문이 곧 느헤미야서이다. 사 58장에서 사회정의의 요구와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강조되고 있는 그 이유를 밝힐 수 있는 본문이 느헤미야서가 되는 셈이다.

사 56장에서는 안식일이 ‘더럽혀지는 것으로부터’ 이를 지키라고 말한다(사 56: 2, 6). 안식일과 함께 연결되어 나오는 이런 모습은 구약성서 전체에서 오직 사 56장에만 나온다. 그리고 이는 구원의 조건으로 나온다. 단순히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안식일이 더럽혀지는 것으로부터 이를 지키라는 것은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안식일을 더럽히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더럽히는 그 누구, 또는 그 무엇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이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이 또한 왜 구원의 조건으로 말해지는 것일까? 여기서 안식일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사회적 정황을 보여주는 본문이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의 정황을 보여주는 느헤미야 본문이다.28)

느헤미야서에는 안식일이 더럽혀지고 있다는 표현과 함께 그 사회적 정황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느 13장 15-22절은 이상의 질문인 “누가 안식일을 더럽히고 있는가?”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안식일(느 13: 15a, 19a, 21b)에 유다 안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장사를 하려고 술틀을 밟고 물건들을 싣고 나르며(참고, 렘 17: 21ff.)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난의 내용이다. 느헤미야서에는 안식일과 성전제의의 관련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것은 느헤미야가 안식일에 일을 한 당사자들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일도 하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았던 당시 유대의 고위 관리들인 사회상층부들을 향해 그들이 안식일을 더럽힌 당사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는 점이다(느 13: 17, 18b). 느헤미야가 이들을 비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비록 이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 감독해야할 종교지도자들로서의 의무를 저버렸기에 그 책임을 추궁하는 것인가? 혹은 오히려 이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인가? 느헤미야의 사회 상층부에 대한 비난의 말은 상층부인들의 사회적 불의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가? 이들이 안식일에 일을 허용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난한 자들이 하루라도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면, 이것은 단지 안식일에 일을 한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안식일에도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회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짜여진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랬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이 상층부를 비난 했던 것은 아닌가? 이런 추측은 실상 느헤미야 5장에 나타난 당시 유다의 상황을 보여주는 본문을 통해서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29)

느 5장 1-5절은 당시 유다의 열악했던 경제적 상황,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들의 절대적 빈곤과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전 유대 공동체 문제로 확산된 것이었음을 자세히 보여준다.30) 가난한 자들의 절대적 빈곤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빚을 갚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게 늘어만 가던 이자31)의 문제였고, 이 엄청난 이자의 빚을 갚지 못해 자식은 노예로 팔려갔으며32), 또한 페르시아 왕에게 받치는 세금33)등의 부담이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었다. 느 5장은 이상의 사회적 문제의 책임이 느 13장에서 안식일을 더럽힌 당사자들로 거론된 당시 사회 상층부 관리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느 5: 7). 이 관련을 통해 볼 때, 느 5장에서 총독인 느헤미야에게 달려가 오늘날의 말로 하면, 민중생존권쟁탈을 외치던 이들은 느 13장에 나오는 안식일에도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과 동일시되어진다. 결국 안식일이 더럽혀지는 것의 문제는 단순히 안식일에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당시 불의한 사회적 문제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을 더럽힌 책임이 안식일에 일을 한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경제적 부를 챙기는 사회 기득권 세력들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 13장에서 느헤미야의 사회개혁은 곧 이 사회 상층부들에 의해 저질러진 불의한 것들을 없애는 것으로 이루어진다(성전정화: 느 13: 4-14; 안식일을 거룩하게 함: 느 13: 15-22; 잡혼금지: 느 13: 23-31.

포로기 이후 사회적 불의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 58장을 통해 당시 사회 상층부 기득권 세력들이 안식일에도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일을 강제로 시켰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사 58장 3절은 바로 이런 문제를 비난하는 것이고, 그래서 13절에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곧 일꾼들을 주먹으로 치며 일을 시키기를 ‘즐기지’(ץ꘭ꖑ 헤페츠)말고, 안식일을 거룩한 날이라 부르기를 ‘즐기라’(ץ꘭ꖑ 헤페츠)고 요구함으로써 안식일 준수란 곧 사회적 불의의 금지의 요구와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사 58장은 제의(금식)와 사회정의의 문제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본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 준수의 문제가 단지 제의적 의미만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천하라는 의미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사 58장은, 진정한 ‘금식’, 곧 야훼가 기뻐 받을 ‘금식’이란 사회 약자들을 돌보고,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적 제의 행위’와 ‘사회정의 실천의 행위’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4. 나가면서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나타난 중요 종교, 사회적 변화의 중심에는 성전재건이 있었다. 성전재건은 포로기 이후 유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포로기 이후 유대사회에서 성전재건은 곧 성전파괴로 시작된 공식제의 행위였던 금식문제가 따랐다. 포로기 이후 초기 스가랴서는 금식제의와 사회정의실천이라는 문제를 통해 성전파괴와 재건이라는 문제를 사회정의 실천의 문제로 제시하였다. 이와 같이 포로기 이후 금식과 사회정의의 문제를 다룬 본문이 사 58장이다. 그런데 사 58장에서는 안식일 주제가 함께 덧붙여 있다. 본 연구는 이 둘의 비교를 통해 사 58장은 슥 7장의 시대적 상황보다 후대에 안식일 문제가 사회정의실천이라는 새로운 문제와 연관된 것임을 느헤미야 시대와 비교하여 다루었다. 이를 통해 종교적 제의행위와 사회정의 실천의 문제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것임을 밝혔다. 특히 안식일 주제를 다루고 있는 사 58장 전체는 이사야서 전체 최종형태 구성과 아래와 같이 그 맥을 같이한다.

이사야서 전체에서 ‘안식일’ 주제는 이사야서 처음(사 1: 13)과 마지막(사 66: 23), 그리고 사 56장과 사 58장에 나온다. 안식일 주제를 다루고 있는 본문들이 이사야서 전체 구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들인데, 이런 면에서 사 58장은 이사야서 전체 구성과 그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사야서의 첫 단락인 1장 2절 - 2장 4절은 이스라엘의 잘못된 제의가 그들의 사회 불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어서 심판 선언이 나오고 다시 시온과 예루살렘을 정의와 공의로 회복하는 구원의 언어로 이어진다. 그리고 사 2장으로 넘어가면 온 민족들이 시온으로 몰려오는 종말론적 표상을 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시온에 평화(“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사 2: 4). 서론부에 나타난 이상의 주제들은 전체 이사야서의 결말부(사 65: 17 - 66: 24)에 가서 모두 함께 다시 나타난다. 물론 그 순서 역시 동일하다. 이스라엘의 불의와 부정한 모습이 공의와 정의에 의해 정화되고 시온/예루살렘이 정의로 회복된 후, 그곳에 평화가 이루어지면 온 민족들이 그곳으로 몰려온다는 구도이다. 이사야서 전체의 구도는 철저하게 이 순서를 놓치지 않는다. 시온/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의의 회복과 실현 이후 온 민족들의 구원의 장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구원의 장소는 정의가 실현된 장소여야 한다는 말이며, 정의가 먼저 선행되어야 그곳에 평화가 정착된다는 말이다. 그 뒤에 구원이 있게 된다. 이런 구성은 이사야서 첫 번째 큰 단락의 결론부(사 11-12장), 열방신탁의 단락들(사 13-23장), 이사야 묵시록(사 24-27장), 야훼의 종의 노래들(사 42장, 49장)과 예언자 소명기사 단락 (61-62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사 58장은 아래의 표에서 이사야서 전체를 감싸고 있는 서론과 결론부와 그 구성적 맥을 같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56: 2b-7 / 66: 20-23(종말론)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안식일

                1: 16-17 / 56: 1-2a / 65: 21f.

                사회 정의 실천 요구


사 58: 2-5              58:6-10          58:8-12          58:13           58:14

제의 비난

1: 11-14 / 66: 3-4

                                시온/예루살렘 회복

                        1: 26-27 / 65: 17-25 / 66: 7-14

                                                                        열방시온순례

                                                        2: 2-5 / 56: 7f. / 66: 18-22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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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본 연구는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금식제의 논쟁에 관련된 포로기 이후 본문인 슥 7장과 사 58장을 비교하여, 포로기 이후 금식제의와 사회정의의 문제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이를 통해 종교제의 행위와 사회정의 실천 행위의 관계가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뿐 아니라 오늘날 기독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검색어]

금식

사회정의

포로기 이후

이사야

스가랴

Zur Fastenpolemik in der nachexilischen Zeit



Kyung-Chul Park  Th.D.

Professor. Department of Theology

Hanshin University



Der Ziel dieser Arbeit sucht eine Antwort nach der Farge: Wie halt sich das Verhatnis der Problematik zwischen Kultus und sozialer Gerechtigkeit? Diese Frage liegt bei uns auch, wie die heutige Kirche fur seine religiose und soziale Rolle spielt. Diese Arbeit geht es besonders um die Fastenpolemik in der nachexilischen Zeit. Bei der Forschung uber die nachexilischen Prophetenbucher ist es sinnvoll, die prophetischen Begriffe oder Themen ‘Kultus’, ‘Tempel’, ‘Eschatologie’ und ‘soziale Gerechtigkeit’ aufeinander zu beziehen; denn diese Begriffe oder Themen zeigen sowohl wichtige Charakteristika der prophetischen Theologie als auch die soziale Lage der nachexilischen Zeit und nicht zuletzt die theologische Absicht der Endgestalt des Prophetenbuches, in dem die oben genannten Begriffe oder Themen einander begegnen.

In dieser Arbeit handeln sich vor allem um die zwei nachexilischen Texte Sach 7 und Jes 58, worum unsere Frage nach dem Verhatnis der Problematik zwischen Fastenkult und sozialer Gerechtigkeit geht.

Wie von den meisten Auslegern akzeptiert, wird die Fastenfeier in der nachexilischen Zeit als institutionalisierte, offentliche Gedenkfeier anlaßlich der Ereignisse um die Zerstorung Jerusalems im Jahre 587 v.Chr. charakterisiert. Bemerkenswerterweise geht es in den nachexilischen Texten Sach 7 und 8 und Jes 58 um die Problematik zwischen Fastenfeiern und sozialer Gerechtigkeit.

Der Hauptgrund der Fastenfeiern liegt bei Sacharja nicht in der Zerstorung des Tempels, sondern in den Grunden, aus denen der Tempel zerstort wurde. Nach ihm verursachte die soziale Ungerechtigkeit in Juda/Jerusalem die Zerstorung des Tempels und die Katastrophe des Exils. Daher haben die Fastenfeiern in seiner Zeit keinen Sinn, wenn es in der Gegenwart keine soziale Gerechtigkeit gibt. Die Problematik der Fastenfrage hangt also nicht von dem Wiederaufbau des Tempels ab, sondern vom Tun sozialer Gerechtigkeit.

In Jes 58 geht es vor allem um die Problematik zwischen Kultus und sozialer Gerechtigkeit fur das Gottesvolk Israel. Dabei geht es auch darum, daß im Sinne der Endgestalt von Jes 58 als Ganzes die Themen „Fasten(Kult)“, „soziale Gerechtigkeit“, „Eschatologie“ und „Halten des Sabbats“ auf keinen Fall voneinander zu trennen sind.

Also gibt es keine Frommigkeit gegenuber Gott ohne eine befreite Solidaritat mit den Nachsten, die die an den Rand gedrangten Armen und wirtschaftlich schwachsten Glieder der betreffenden Gesellschaft sind. Es gibt keinen rechten Gottesdienst ohne Menschendienst. Diese Forderung entspricht besonders der konkreten sozialen und wirtschaftlichen Verhaltnisse der nachexilischen Zeit.

Diese Arbeit will einen wissenschaftlichen Beitrag zur Disskussion um das soziale Problem besonders um das Verhatnis der Problematik zwischen Kultus und sozialer Gerechtigkeit in der nachexilischen Zeit.


[Keywords]

Fasten

Soziale Gerechtigkeit

Nachexilszeit

Jesaja

Sacharja



[국문번역]

본 논문의 목적은 종교적 행위(제의)와 사회정의 사이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하나의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오늘날 교회 역시 자신의 종교적 역할과 사회적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 본 논문은 이를 위해 특히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의 금식제의 논쟁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포로기 이후 예언서에는 ‘제의’, ‘성전’, ‘종말론’ 그리고 ‘사회정의’의 주제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본 논문에서는 종교적 제의행위와 사회정의의 관련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포로기 이후 본문인 슥 7장과 사 58장을 서로 비교 분석해 나간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선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금식제의는 주전 587년 예루살렘 멸망을 기념하는 공적인 행사로 진행된 것으로 본다. 주목할 것은 포로기 이후 문서인 슥 7, 8장과 사 58장은 당시 금식제의와 사회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스가랴에게서 금식제의의 원인이 성전의 파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전파괴의 본래적 이유들을 문제 삼는데, 이는 당시 유다/예루살렘에서의 사회적 불의로 인해 성전이 파괴되었고 그로인해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스가랴는 자기 시대 금식제의는 사회정의가 실천되지 않는다면 성전이 다시 재건되고 있다 할지라도 금식제의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에게 있어서 금식논쟁은 성전재건이 아니라 사회정의 실천에 있다.

사 58장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제의행위와 사회정의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 전체는 제의(금식), 사회정의, 종말론, 안식일 준수등의 주제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회 약자들과의 연대 없이는 하나님과의 경건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상은 포로기 이후 사회, 경제적 관계에 대한 요구는 당시 이웃사랑, 돌봄이 없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말한다.

본 논문은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사회적 상황에 있어서 특히 종교적 문제와 사회정의실천에 관한 학문적 논의의 장에 공헌을 하리라 본다.



1) 이 논문은 한신대학교 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2) 이에 대해서는 T. Podella, Som-Fasten. Kollektive Trauer um den verborgenen Gott im Alten Testament (AOAT 224), (Neukirchen: Neukirchen-Vluyn 1989), 13쪽 주 36; H.-J. Hermisson, Sprache und Ritusim Altisraelitischen Kult. Zur Spiritualisierung der Kultbegriffe im Alten Testament, (WMANT 19), (Neukirchen: Neukirchen-Vluyn 1965), 76‐84쪽 등을 참고하라.


3) Podella, Som‐Fasten, 13쪽. 아울러 E. Janssen, Juda in der Exilszeit. Ein Beitrag zur Frage der Entstehung des Judentums (FRLANT 69), (Gottingen: Vandenhoeck & Rufrecht, 1956), 94‐104쪽을 참고하라.


4) 이는 587/6년 5월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와 관련된다(참고 렘 52: 12ff. = 왕하 25: 8ff.; 대하 36: 17ff. = 렘 39: 8‐10).


5) 엘리거에 의하면 슥 8장 18절이하 역시 금식에 관한 질문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K. Elliger, Das Buch der zwolf kleinen Propheten II: Die Propheten Nahum, Habakuk, Zephanja, Haggai, Sacharja, Maleachi (ATD 25), (Gottingen: Vandenhoeck & Rufrecht, 1982), 135f.쪽. 그와 반대로 레벤트로브는 이는 전혀 다른 금식과 관련된 질문의 문제라고 본다. H. G. Reventlow, Die Propheten Haggai, Sacharja und Maleachi (ATD 25/2), (Gottingen: Vandenhoeck & Rufrecht, 1993), 75쪽. 그러나 포델라는 스가랴의 답변에 나오는 금식기간의 문제에 대해서 4월(Tammuz) 금식은 렘 39장 2절; 왕하 25장 3절 이하와 렘 52장 6절이하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이 뚫린 달을 위미하고, 7월(Tischri) 금식은 그달랴 살해(렘 41: 1f.; 왕하 25: 25), 그리고 10월(Tebet) 금식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 점령이 시작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Podella, Som‐Fasten, 210쪽.


6) 본문에 대해서는 Elliger, Das Buch der zwolf kleinen Propheten II, 132‐144쪽; K. Rudolph, Haggai, Sacharja 1-8, Sacharja 9-14, Maleachi (KAT 13/4), (Gutersloh: Mohn 1976), 135‐154쪽; Rex A. Mason, “Some echoes of the preaching in the Second Temple. Tradition elements in Zechariah 1-8,“ ZAW 96(1984), 221-235쪽, 특히 229‐233쪽; Reventlow, Die Propheten Haggai, Sacharja und Maleachi , 73ff.쪽 등을 참고하라.


7) 슥 7장 5절은 7월의 금식에 대한 것이다.


8) 슥 7장 5절은 70년 (참고 1: 12).


9) 슥 7장 1절의 연대표기는 518년 12월 7일이며, 성전재건이 시작(520년)되고 2년이 지난 뒤인 518년과 성전재건공사가 끝난 515년 사이를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Rudolph, Haggai, Sacharja 1-8, Sacharja 9-14, Maleachi, 136쪽. Reventlow, Die Propheten Haggai, Sacharja und Maleachi, 75쪽; Podella, Som‐Fasten, 209쪽, 주 8을 참고하라.


10) 레벤트로브는 성전재건공사가 이미 눈에 보이게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본다. Reventlow, Die Propheten Haggai, Sacharja und Maleachi, 75쪽.


11) 참고, E. Pfeiffer, “Die Disputationsworte im Buche Maleachi. Beitrag zur formgeschichtlichen Struktur,“ EvTh 19(1959), 546-568쪽.


12) 거론된 성서 본문들에 대해서 Reventlow, Die Propheten Haggai, Sacharja und Maleachi,, 76쪽을 참고하라.


13) 사회정의 실천에 대한 요구는 가장 오래된 계약법전 안에(출 20: 20ff.) 들어 있는 사회법과 관련을 맺는다. 참고 O. H. Steck, Israel und das gewaltsame Geschick der Propheten. Untersuchungen zur Uberlieferung des deuteronomistischen Geschichtsbildes im Alten Testament, Spatjudentum und Urchristentum (WMANT 23), (Neukirchen: Neukirchen-Vluyn, 1967), 144쪽.


14) Podella, Som‐Fasten, 208쪽, 주 2.


15) 스가랴서에 3번 나오는 예언신탁구안에 있는 연대표기에 관련해 주목해보면, 그 표기의 순서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슥 7장 1절에서는 1장 1절과 1장 7절이 다르다. 1장 1절과 1장 7절의 연대표기의 순서는 일(日, 1: 1에는 빠짐), 월(月) 그리고 년(年)의 순으로 되어있고, 그 뒤에 예언신탁구가 뒤따른다(“야훼의 말씀이 ...에게 임하니라). 반면에 7장 1절에는 년(年)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신탁구가 뒤따른 뒤, 그 다음에 일(日)과 월(月)의 순서이다. 또한 7장 1절에는 예언자의 족보가 빠져 있다. 무엇보다도 스가랴의 연대표기는 학개와 다르다. 슥 1장 7절과 7장 1절에는 월(月)에 대한 바벨론식 설명이 추가되고 있다. 슥 1장 7절은 슥 1장 1절과 연대표기의 순서와 예언자 족보의 형식이 같아 서로 연결되고, 슥 1장 7절은 바벨론식의 월표시 설명을 하고 있는 슥 7장 1절과 서로 연결된다. 이는 연대표기를 통해서 슥 1장과 7장 이하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슥 8장은 슥 7장과 금식과 사회정의 주제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른바 ‘제 1스가랴’로 불리는 슥 1-8장은 하나의 단락으로 볼 수 있다.


16) 레벤트로브는 이를 “하나의 상징적 숫자”로 본다. Reventlow, Die Propheten Haggai, Sacharja und Maleachi, 42쪽, 참고,  E. Lipinski, “Rechches sur le livre de Zacharie,“ VT 20(1970), 25‐55, 38쪽.


17) אנק 는 스가랴서 전체에서 오직 이곳 슥 1: 4과 8: 1에만 나온다.


18) 이에 대해서는 C. Westermann, Prophetische Heilsworte im Alten Testament (FRLANT 145), (Gottingen: Vandenhoeck & Rufrecht, 1987), 182쪽을 참고하라.


19) 명사 האנק 는 구약성서에서 43번 나온다. 오경에 7번(민 5: 14[2x], 30; 25: 11[3x]; 신 29: 19) 나오는 반면, 이사야서에 빈번히 나온다(7번: 9: 6; 11: 13*; 26: 11; 37: 32; 42: 13; 59: 17; 63: 15, 참고로 에스겔서에는 10번 나옴). 하나님의 האמק 는 이사야서에서 구원과 심판의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모든 예언신탁(사 11: 13 제외)에서 האמק 의 주어는 하나님 자신이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E. Reuter, “אנק,” ThWAT VII(1993), 51-62, 53쪽을 참고하라.


20) 야훼가 거주하신다는 표상에 대해서는 B. Janowski, Suhne als Heilsgeschehen. Studien zur Suhnetheologie der Priesterschrift u. zur Wurzel KPR im Alten Orient u. im Alten Testament (WMANT 55), (Neukirchen: Neukirchen-Vluyn, 1982), 296ff.쪽을 참고하라.


21) Podella, Som‐Fasten, 213쪽.


22) 특히 스가랴와 이사야 모두 ‘금식제의비판’에 동일한 문체를 사용한다. 슥 7장의 ‘금식제의비판’에 들어있는 반문형 문장을 보면, 5절 하반절에 의문형 접두사 ה(하)를 쓰고, 6절 하반절과 7절 서두에 의문사 הולה(할로)를 쓰고 있는데, 사 58장에서 ‘금식제의비판’과 함께 자비와 사회윤리적 행위를 요구하고 있는 5절에서 의문형 접두사 ה(하)를 3번 쓰고 있고, 6절과 7절 서두에는 의문사 הולה(할로)를 쓰고 있다.


23) 쇼트로프는 사 58: 1-12의 생성연대를 특히 12절의 “오래 황폐된 곳을 세우리라”는 말을 근거로 해서, 포로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던 시점과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기 시작했던 그 사이로 본다. W. Schottroff,  “Unrechtmaßige Fesseln auftun, Jochstricke losen Jesaja 58,1-12, Ein Textbeispiel zum Thema ‘Bibel und Okonomie’,” BI 5(1997), 263-278, 268f.쪽, 그러나 문제는 12절의 표현이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에스라-느헤미야 시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의미하는 지는 불분명하다(참고, Podella, Som‐Fasten, 222쪽 주 54; W. Lau, Schriftgelehrte Prophetie in Jes 56-66. Eine Untersuchung zu den literarischen Bezugen in den letzten elf Kapiteln des Jesajabuches (BZAW 225), (Berlin: de Gruyter, 1994), 256쪽; S. Sekine, Die Tritojesajanische Sammlung (Jes 56-66) redaktionsgeschichtlich untersucht (BZAW 175), (Berlin: de Gruyter, 1989), 127f.쪽. 쇼트로프는 사 58장에서 ‘안식일 주제’를 다루고 있는 V.13-14을 전체 58장과 함께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엇 때문에 ‘금식’과 ‘사회정의’ 그리고 ‘안식일’ 주제가 사 58장 전체에서 함께 연결되어 있는 지에 대해서 침묵한다. 이는 ‘안식일’ 주제는 없고, 다만 ‘금식’과 ‘사회정의’의 문제가 동일하게 나오는 포로기 이후 초기 시대인 슥 7장과 제대로 비교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 58장은 ‘안식일 주제’가 ‘사회정의 문제’와 연결되고 있는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와 비교하지 못한 것이다.


24) 슥 7장 이하와 사 58장의 관련과 덧붙여 슥 8장은, 이사야서 전체 구성을 위한 중요 주제가 등장한다. V.3bβ에 있는 “거룩한 산”(vdqh rh)은 이사야서 안에서 종말론적 보도 본문(사 11: 9; 27: 13; 30: 29; 56: 7; 57: 13; 65: 11, 25; 66: 20)안에 나온다. 4절 이하에 나오는 시온에 대한 미래의 상(像)은 이사야 결론 단락의 첫 부분인 ‘새 창조’ 주제를 다루고 있는 65:17-20과 관련된다. 그뿐 아니라 20-23절 안에 나오는 시온순례의 주제는 이사야서 전체 구성의 중요주제인 것이다(사 2; 56:7f.; 66:18ff. 특히 V. 23).


25) 사 58장 13-14절을 1-12절과 분리시킨 것은 거의 역사비평의 시작과 함께 있어온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R. Lowth, Jesaias, aus dem englischen mit Zusatzen und Anmerkungen von J.B. Koppe, (Leipzig:  1779)를 참고하라. Karl Pauritsch, Die neue Gemeinde: Gott sammelt Ausgestoßene und Arme (Jesaja 56-66), (Analecta Biblica 47), (Roma: Pontificio Istituto Biblico, 1971), 73쪽.


26) K. Koenen, Ethik und Eschatologie im Tritojesajabuch (WMANT 62), (Neukirchen: Neukirchen-Vluyn, 1990), 88쪽 이하. 1QIsaa에 나오는 히브리어의 특징들에 대해서는 조명기, “1QIsaa Col. VI: 2b-10에 나타난 히브리어 변형 연구,” 「구약논단」 25집 (2007년 9월), 103-118를 참고하라.


27) 사 58장 최종형태 본문은 12절과 13절이 중요한 핵심단어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쾨넨은 12절 끝에 תבשׁל(라솨베트)가 나오고 13절 처음에 תבשׁמ(미솨바트)가 언급되는 것은 하나의 ‘언어유희’(Wortspiel)라고 본다. Koenen, Ethik und Eschatologie im Tritojesajabuch, 89쪽. 특히 두 절에는 새로운 작명을 말하는 것(ארק)이 들어있다.


28) 참고, 박경철, “안식일의 제의적 의미와 사회정의,” 「구약논단」 17집 (2005년 4월), 56-77쪽.


29) 페르시아 시기 유다에서의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특히 W. Schottroff, “Zur Sozialgeschichte Israels in der Perserzeit,“ VF 27(1982), 46-68쪽, 특히 59ff.쪽; F. Crusemann, “Israel in der Perserzeit. Eine Skizze in Auseinandersetzung mit Max Weber,“ W. Schluchter(Hg.), Max Webers Sicht des antiken Christentums. Interpretation und Kritik (stw 548), (Frankfurt/M.: Shurkamp, 1985), 205-232쪽; H. Kreißig, Die sozialokonomische Situation in Juda zur Achamenidenzeit (SGKAO 7), (Berlin: Akad-Verl., 1973); H. G. Kippenberg, Religion und Klassenbildung im antiken Judaa. Eine religionssoziologische Studie zum Verhltnis von Tradition und gesellschaftlicher Entwicklung (StUNT 14), (Gottingen: Vandenhoeck & Rufrecht, 1978); M. A. Dandamayev, Persien unter den ersten Achameniden(6. Jahrhundert v. Chr.) (Beitrage zur Iranistik 8), (Wiesbaden: Reichert, 1976). 페르시아 시기에 관한 더 많은 참고문헌을 보려거든 G. Widengren, “The Persian Period,“ J. H. Hayes/J. M. Miller(Hg.), Israelite and Judaean History, (Philadelphia: Westerminster Pr., 1977), 489-538쪽등을 참고하라.


30) 이에 대해서는 Kippenberg, Religion und Klassenbildung, 55ff.쪽와 W. Schottroff, “Arbeit und sozialer Konflikt im nachexilischen Juda,“ L. Schottroff/W. Schottroff(Hg.), Mitarbeiter der Schopfung, (Munchen: Kaiser, 1983), 104-148쪽을 참고하라.


31)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자금지법과 그것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J. Hejcl, Das alttestamentliche Zinsverbot. Im Lichte der ethnologischen Jurisprudenz sowie des altorientalischen Zinswesens, (Biblische Studien 12/4), (Freiburg: Herder, 1907);  S. Stein, “The Lawson Interest in the Old Testament,” in: JThS 4(1953), 161-170; E. Neufeld, “The Prohibitionsagainst Loans at Interest in Ancient Hebrew Laws,” in: HUCA 26(1955), 355-412; H. Gamoran, “The Biblical LawAgainst Loans on Interest,” in: JNES 30(1971), 127-134; E. Klingenberg, Das israelische Zinsverbot in Torah, Misnah und Talmud, (Mainz: Akad. d. Wiss. u.d. Lit., 1977)등을 참고하라.


32) 이스라엘의 채무법에 관해서는 F. Horst, “Das Privilegrecht Jahwes,” in: 같은 이, Gottes Recht. Gesammelte Studien zum Recht im Alten Testament, (ThB 12), (Munchen: Kaiser, 1961), 17-154, 특히 82-102; Z.W. Falk, “Zum judischen Burgerschaftsrecht,” in: RIDA 10(1963), 43-54, 특히 43-45등을 참고하라.


33) 이 부분에 대해서는 특히 M.A. Dandamayev, “Politische und wirtschaftliche Geschichte,” G. Walser(Hg.), Beitrage zur Achaemenidengeschichte (Historia. Einzelschriften 18), (Wiesbaden: Steiner, 1972), 15-58, 특히 43-45쪽을 참고하라.


2009-10-18 12: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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