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신학 논문, 원고, 컬럼, 번역 글 모음

  [논문] 토라 법전의 신학, 토라의 최종형태 구성이 지닌 신학적의미
  박경철
  

II

토라 법전의 신학

-토라의 최종형태 구성이 지닌 신학적 의미-

박경철


1. 시작하는 말


한 토라 교사(노미코스)가 예수에게 영생의 길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예수는 직답을 피하고 오히려 그에게 반문했다. 토라에(엔 토 노모) 무엇이라 쓰여 있으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토라 교사는 토라의 많은 계명들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두 가지를 뽑았다. 예수는 그의 토라 해석이 옳다고 말하고 이를 실천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눅 10:25-28; 참고: 마 22:35-40).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예수를 거쳐야 한다면, 위의 이야기에서 영생에 이르는 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오직 토라의 실천에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토라’란 무엇인가?

히브리어성서에 언급된 ‘토라’를 칠십인역에서 단순히 ‘법’(노모스)이라 번역한데서, 이를 신약성서에 ‘율법’이라 표기하고, 오랫동안 교회는 ‘율법’은 ‘복음’과 대조되는 말로 이해하여 왔다.1) 위의 토라 교사와 예수의 이야기 역시 한 ‘율법’ 교사와의 대화로 알려져 있다. ‘토라’를 의도적으로 ‘율법’이라는 말로 고친 것이다. 그럼으로써 율법과 예수의 복음을 대비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럼에도 위의 이야기에서 예수는 율법/토라에 대하여 그 어떤 반대뿐 아니라, 그 어떤 새로운 해석도 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은 율법은 유대인의 것으로 여기고, 기독교인이 유대교의 율법을 지킬 이유가 있는가를 회의한다.2)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 역시 그와 같은 회의를 한 듯 보인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예수의 대답을 보면 그렇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f.). 그러므로 누구든지 가장 작은 계명 하나까지라도 행해야하고 가르쳐야한다(V.19, 참고, 23:2f.). ‘율법’과 ‘선지자’는 히브리성서의 삼분법에 따른 제1부 ‘토라’와 제2부 ‘느비임’을 일컫는 말이다. 곧 예수 당시 정경이었던 구약성서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른 바 ‘반제(反題)’(Antithese, 5:21-48)3)를 들여다보면, 예수의 가르침은 “옛 사람에게 말한 (것)”을 없애려 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그것을 보존하고 더욱 확실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표현에 따르면, 예수가 율법이 손상 받지 않기 위하여 ‘울타리’를 치고자 했다는 것이다. 살인을 막기 위해선 이웃에 대한 악한 생각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이고(5:21f.), 부부생활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다른 여자를 보고 음탕한 마음을 품는 것을 제해야 된다는 것이다(5:27f.).4)

본래 ‘토라’라는 히브리어는 ‘가르침’을 뜻하는 것으로, 훈계와 권면 및 교훈 등의 모든 가르침, 특히 어머니(잠 1:8; 6:20), 또한 아버지(4:1f.)가 그 자녀들에게 쏟는 관심과 사랑을 의미한다. 어머니의 사랑에서 나오는 아이에 대한 관심, 어린자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바른 삶으로 이끌기 위해 하는 모든 말씀들을 ‘토라’라고 말한다. 이는 ‘토라’의 모든 가르침 안에 들어 있는 사랑과 보호의 약속은 또한 이를 지키기 위한 요구들과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라란 율법과 복음의 통일성을 의미하며, 이는 시종일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놓여있다. ‘토라’를 ‘율법’으로 표기하고 구약의 계명들을 신학적으로 복음에 대립되는 것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성서가 하나로 묶어놓은 것을 서로 가르고 찢는 일이다. 토라는 곧 복음의 한 형식이며 형태인 것이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구원사를 기록한 신앙고백서이다. 구약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구약성서는 넓은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과 요구의 모든 가르침이며, 이것이 곧 토라인 것이다. 예수의 복음 사역의 시작과 그 중심은 ‘하나님 나라’ 도래를 앞둔 회개 선포이다. 회개란 돌이키라는 히브리어 ‘슈브’라는 뜻이며, 이는 구약시대 모든 예언자들이 외쳤던 하나님의 뜻으로 돌이키라는 선포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땅에서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하나님이 주신 그의 모든 법과 계명이다. 이것이 곧 토라다. 예수의 복음 선포의 핵심은 다름 아닌 토라인 것이다. 영생의 길이 곧 토라에 있다는 예수의 말이 이것이다.

‘토라’에 대한 다른 의미로는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의 책인 이른바 모세 오경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경이 비록 다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오경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개별 책들이 아니라 한 권으로 묶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다섯 권으로써의 오경이 아니라, 토라로써의 한 권이다.5)


2. 한 권 토라의 구성


오경의 가장 큰 특징은 오경의 마지막 장면(신 34장)이 모세의 죽음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6) 모세의 등장은 오경의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의 시작에 나온다. 곧 출애굽기부터 신명기에 이르기까지 오경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네 권의 책(출-레-민-신)은 모세의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마치 모세의 일대기를 그려놓은 것과 같다. 최소한 사경7)은 모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개별 책들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모세는 토라의 중심인 셈이다. 모세가 누구인가? 모세의 시작은 출애굽기 서막에서 애굽에서 고역에 시달리는 히브리 백성의 해방을 위한 인물로 등장한다. 히브리 백성의 해방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며 그가 다름 아닌 야훼다(출 3:14-15; 6:3).8) 해방하시는 야훼가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상들과 맺은 언약 때문이라는 것이다(출 2:24). 조상들과 맺은 언약의 구체적 내용은 가나안 땅으로의 인도다(출 3:8,17; 창 15:18-21). 창세기는 바로 이 조상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창 12-50장).

창세기는 크게 둘로 이루어져 있다.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인 족장사(12-50장)와 그 앞의 원역사(1-11장)다. 원역사와 족장사를 잇는 독특한 구성이 있다. 그것이 곧 “대략이 ~~하다”는 ‘톨레도트’로 이루어진 족보들이다. 창세기라는 책명이 영어로 ‘Genesis’인데 이는 헬라어 ‘기원’을 뜻하는 ‘게네시스’(복. 게네세오스)에서 온 말로 이는 창 2:4a에 있는 히브리어 ‘톨레도트’를 옮긴 말이다. 창세기는 이 ‘톨레도트’로 짜여진 반복된 단락들로 이루어져 있다.9) 특히 원역사의 톨레도트 구성의 특징은 아담에서 노아까지, 그리고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족보를 보여주려고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곧 오경 전체에서 중요한 조상들의 이야기를 등장시키기 위한 그 이전 역사를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간략하게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와 타락, 심판과 구원, 그리고 영원한 계약(창 9장)과 세상 열방으로 퍼지게 된 민족들의 명단, 그리고 어떻게 한 사람(조상)을 선택하여 그가 모든 민족들과 어떤 관련을 맺게 하려는 가(창 12:3)를 서론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족장사의 시작은 그 다음 책인 출애굽기와 나아가 오경이 펼치고자 하는 전체 주제와의 연결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다. 첫 번째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이미 애굽에서의 종살이와 해방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의 인도하실 것이 그와 맺은 언약에 나온다(창 15:13-21).10)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에게 이어지고(26:3-5),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할 때(27:29; 12:3), 야곱이 베델에서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날 때(28:13-14), 또 다시 베델에서 이스라엘 이름을 받을 때(35:10-12), 야곱이 애굽으로 갈 때(46:3-4), 그리고 요셉의 마지막 유언에도 나온다(50:24).

출애굽기는 “야곱과 함께 ...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다”(출 1:1)로 시작한다. 히브리성서는 “그리고 이것들은 이름들이다...”로 시작하는 “베엘레 쉐모트”가 책의 이름이다. 출애굽기의 이와 같은 시작은 왜 야곱(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됐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그 앞 책인 창세기와의 연결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의 첫 단어에 접속사 “그리고”를 쓰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창세기와의 연결을 의도하는 그 첫 번째 증거이기도 하다. 아울러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경위의 설명은 앞으로 전개될 애굽에서의 탈출을 위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출애굽기(Exodus)라는 책명은 70인역과 불가타역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 중요 내용에 의거해 ‘애굽을 탈출한 기록’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실상 전체 40장에서 애굽을 탈출한 이야기는 앞부분인 1-12장까지이다.11) 출애굽기는 회막을 만들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고(40장), 레위기의 시작은 바로 이 회막에서 야훼가 모세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레 1:1). 회막 안에 계신 야훼가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연결이 되는 셈이다. 곧 출애굽기는 야훼가 어떻게 회막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가의 중요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책이다. 이는 ‘야훼가 어디에 계시는가’의 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야훼의 등장은 출애굽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모세를 부르는 장면에서 야훼의 이름이 계시되고(3:14-15), 특히 조상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엘 샷다이)으로 나타난 것과 구분하여 처음으로 ‘야훼’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이 그렇다(6: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야훼는 조상들의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있다(6:8, 참고, 3:15). 야훼의 등장이 곧 출애굽신앙고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라면, 그 야훼는 어디에 계시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야훼가 어디에 계시는지를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출애굽기는 이를 중요하게 묘사한다. 애굽에서의 탈출(출애굽)을 인도하시는 야훼에 대한 표현이 구름기둥(낮)과 불기둥(밤)이다(13:21f.; 14:19.24).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야훼는 그의 기적적인 구원사건을 통해 나타난다. 홍해(갈대바다/얌숩)에서의 기적사건에서 야훼는 “나(야훼)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으로 말한다(14:17f.; 15:6). 만나의 기적사건에 대한 예시도 “야훼의 영광”(케보드 아도나이)을 보게 될 것으로 말한다(16:7). 그런데 그 야훼의 영광이 어떻게 눈에 보이는가? 바로 구름이다(16:10). 모세가 야훼를 시내산에서 만나게 될 때, 언제나 구름이 등장한다(19:9.16; 24:15-18). 법궤가 만들어 지고, 법궤를 안치했던 성막이 세워진 다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구름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갔다. 구름이 가던 길을 멈추면 그 자리에 장막을 쳤고, 구름이 머무를 때 까지 움직이지 않았으며, 구름이 떠오르면 그제야 장막을 거두고 구름을 따라 나섰다(출 40:36f.; 레 16:2; 민 9:15-22). 야훼가 회막에 계신다는 것은 곧 야훼의 영광이 회막(성막)에 가득 차는 것인데, 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곧 구름이 회막을 덮는 모습이다(출 33:9f.; 40:34-38). ‘회막’은 ‘만남의 장막’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를 만나게 되는 이스라엘의 삶의 가장 중요한 곳이다. 하나님이 회막에서 이스라엘을 만나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서 야훼가 그의 영광을 드러낼 곳이기 때문이며, 야훼는 그곳을 또한 거룩하게 하실 것이다(출 29:43). 구름이 시내산을 덮었고, 야훼의 영광이 시내산에 머물렀고, 야훼가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던(출 24:15f.) 것에서, 이제 시내산에서 회막으로의 하나님의 현존의 장소 이동의 본문이 제시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콜-하암)로 하여금 이제 야훼 하나님을 그들의 일상에서 어떻게 만나게 되는 지를 말하려는 것이다.12)

이제 회막에 계시는 야훼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회막, 성막은 곧 야훼께 제사(예배)를 드리는 장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막에 계시는 야훼를 만나러 가기 위한 모든 제의에 관련된 사항들이 출애굽기 다음인 레위기에 나오는 것이다.13) 레위기의 모든 제의에 관한 조항들은 야훼를 만나기 위한 길을 제시함과 동시에, 야훼를 만나기 위한 모든 준비는 곧 정결해야 하기에 정한 것과 부정한 것과의 구별은 거룩 개념과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이는 모든 제물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삶의 모든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아울러 이스라엘이 거룩해야 하는 그 이유가 바로 야훼가 거룩하기 때문이며(레 11:44f.; 19:2; 20:26; 21:8, 참고, 20:7f.; 22:31f.), 그 야훼는 다름 아닌 애굽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11:45; 19:36; 22:33; 25:38,55; 26:13). 특히 레위기 마지막의 축복과 심판의 결론적 선언을 하고 있는 26장은 출애굽기 6장에서 모세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레 26:12)과 연결되어 출애굽 해방사건과 시나이의 율법 준수가 중요한 계약형식으로 묶여 있으며, 이는 또한 조상들과의 언약인 가나안 땅의 주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레 25:38; 26:42).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해, 율법이 수여되고, 회막이 봉헌 된 후,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상징이었던 구름과 야훼의 영광은 이제 회막 위에 머무르고 뜨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은 다시 광야 길을 거쳐 조상들과 맺은 언약의 땅으로 향하게 된다(민 10:11). 그러나 조상들과 맺은 약속에 의해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 광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데 40년이나 걸려야 했던 이유( 13-14장),14) 이스라엘 백성을 조상들과 맺은 약속에 따라 애굽에서 해방하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던 모세마저도 결국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20장, 참고, 27:14) 히브리성서 책명인 ‘밤미드바르’ 곧 ‘광야에서’라는 책인 민수기는 이상의 광야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애굽을 나온 사람들 그러나 결국은 광야에서 모두 죽은 자들의 명단(1장)과,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들,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명단(26장)의 인구조사에 대한 내용에 따라 칠십인역과 라틴역은 ‘민수기’(Nummeri)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불평과 불만(11장; 20:1-3)은 시내산을 중심으로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연결시키는 매우 중요한 광야전승의 중요 주제이다.15) 하나님께 거역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중보자로서의 모세의 모습 역시 이 두 책을 연결한다(출 32:10=민 14:12; 참고, 출 34:6f.=민 14:17-19). 이후 이어지는 이방민족들과의 전쟁의 이야기는(에돔 20:14-21; 모압 21:13-20; 아랏 21:1-3; 아모리 왕 시혼 21:21-32; 바산 왕 옥 21:33-35)16) 약속의 땅의 경계인 모압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다.

오경의 마지막, 신명기 끝에 모세가 모압에서 죽기 전, 모압에서 모세는 호렙(시내산)에서 맺은 계약 외에 덧붙이는 모압 계약을 세운다(29장). 이 모압 계약은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이어나가는 것(29:13[12])으로 후손들과도 맺는 것이다.17) 축복과 저주의 언약에 하늘과 땅이 증인으로 등장하고, 이는 조상들과 맺은 언약의 땅에서 이루어질 일이다(30:19f.). 모세가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한 그의 마지막 노래는(32장), 조상들과 맺은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한다(31:20).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을 다시 한 번 되새기도록 하는 것이고, 그 율법은 이제 곧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서 살면서 지켜나가야 할 하나님과 맺은 영원한 계약인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은 이미 조상들과 맺은 언약이라는 점이 계속 강조된다.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유언으로 축복하는 장면이 오경의 마지막(신 33장)을 장식한다면, 오경의 첫 번째 책 창세기 마지막 역시 야곱이 죽기 전에 12아들들에게 유언의 축복을 하는 장면(창 49장)은 오경이 한 권 ‘토라’로 읽혀져야 하는 구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해방과 가나안 땅으로의 인도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오경의 중심 주제다. 그런데 해방자 모세의 역할은 단지 히브리 백성들을 바로의 압정으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나아가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이루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만도 아니다. 히브리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여 곧장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다. 애굽을 탈출한 히브리 백성들은 광야를 거쳐 시내산에 이르게 된다. 시내산은 우연으로 들른 중간 기착지가 아니다. 모세를 부르는 장면(출 3장)에서 야훼는 해방의 목적으로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산(하하르 핫쩨)” 곧 모세를 부르고 파송하고 있는 하나님이 나타난 시내산에 와서 그를 ‘섬기는(아바드)’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3:12; 4:23).18) 창세기의 조상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은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 길로 들어선 다음 시내산에 도착하고, 다시 시내산을 떠나 광야 길을 거쳐 가나안 접경지역인 모압 평지에 이르는 여정이다. 해방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가는 그 중심에 시내산이 서 있는 것이다.19) 시내산에 도착(출 19장)한 이래 하나님과의 계약체결과 그 뒤에 여러 법조항들이 뒤따른다. 시내산을 떠나는 이야기는 레위기를 거쳐 비로소 민수기 10장에 가서야 나온다. 이른바 ‘시내산 전승단락’(Sinaiperikope)이라 불리는 출애굽기 19장에서 민수기 10장 10절까지의 긴 단락에는 오경의 모든 법률 조항들이 들어 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율례와 계명 등의 모든 가름침은 조상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이것이 또 다른 의미에서의 법으로써의 ‘토라’이며, 좁혀 말하면 ‘토라의 법전’이다. 이 토라의 법전에 이른바 ‘계약법전’(출 20:22-23:33)과 ‘성결법전’(레 17-26장)이 들어 있으며, 시내산(호렙)에서 받은 ‘토라’에 대한 회상과 함께 다시 한 번 모세의 입으로 전해진 두 번째(Deutero) 법률 모음집이 곧 ‘신명기 법전’(신 12-26장)이다. 이들 법전의 내용들을 통해 ‘토라의 법전’의 내용은 무엇이며, 여러 상이해 보이는 법률들이 함께 모여 ‘토라’가 말하는 하나님의 법이 지닌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3. 토라 법전의 구성


3.1 계약법전(출 20:22-23:33)

‘계약법전’(Bundesbuch)이라는 용어는 출애굽기 24장 7절의 ‘계약의 책’(세페르 핫베리트)20)에서 온 말로 그 책의 내용이 법조항들의 모음집이라 여겨 학계에서 이를 ‘계약법전’이라 부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구약의 법전들 중에 가장 오래된 법전이라고 여겨지는 것21)으로, 현 오경의 최종형태는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토라’(법)다. 구약의 어느 문헌도 지금의 모습을 이루기까지의 그 형성 시기에 관한 논의는 다양하고 여전히 끝나지 않을 문제다. 현 계약법전의 형성에 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22), 여기서는 지금의 모습으로서의 계약법전 전체 구성23)이 보여주는 그 법전의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계약법전은 이 모든 법률조항들이 하나님이 “하늘로부터”(민-핫샤마임) 말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았다는 것으로 시작한다(20:22b). 이는 이미 하늘의 구름 가운데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한 것을 백성들이 듣고 모세의 말을 영원히 믿게 하려는(19:9) 것과 연결 지음으로 앞으로 전개될 법조항들의 권위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법조항은 종교적 제의를 위한 ‘제단법’(20:22-26)이다. 이는 계약법전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는 ‘제사법’(23:18-19)과 함께 앞, 뒤를 구성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오직 한 분 야훼 하나님만을 섬기는/제사하는 것과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애굽후 토라의 산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장의 나라’(맘레케트 코하님)와 ‘거룩한 민족’(고이 까도쉬)이라는 이름이 제일 먼저 거론된 것(출 19:6)을 떠올린다면, 토라의 산 시내산에서의 첫 번째 토라로써의 계약법전의 그 첫 자리를 야훼 제사를 위한 제단법이 차지한다는 것은 분명한 의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후, 법궤와 회막이 봉헌된 이후, 이제 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모든 일련의 행위가 이스라엘의 각종 제의/제사라는 것을 레위기가 말해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곧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모든 하나님의 가르침/법/토라의 시작과 끝은 오직 한 분 하나님 야훼만을 섬기는/예배하는 제사와 관련된 법이다.

오직 한 분 야훼신앙의 제사(제바흐)는 이방신상금지조항(23절)과 함께 이방신들의 제단과 구별되는 이스라엘만의 제단 설립의 형태규정(24-26절)24)으로 되어있다. 제단설립규정의 법은 이방종교의 제단과의 구별을 위한 야훼 종교만의 독특한 제단 건축의 형태나 틀을 규정하는 것이다.25) 이는 본래 이방신숭배와의 단호한 거절과 함께 오직 야훼의 이름만이 기억(념)되게(자카르, 히필) 하는 장소(함마콤)의 선택과 연결된다.26) 여기 한 ‘장소’(함마콤)는 계약법전에 세 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현 최종형태로서의 계약법전의 구성을 이루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27) 처음으로 ‘그 곳’(함마콤)은 계약법전의 서두에 제단이 세워지게 될 ‘장소’(20:24)로, 그리고 이른바 예루살렘 법전이라 불리는 미쉬파팀(21-22장)28)의 가운데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된 이에게 도피할 ‘장소’를 설명하는 곳에서(21:13-14), 그리고 계약법전의 결론부 서두(23:20)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인도할 예비된 ‘장소’를 언급할 때 나온다. 계약법전이 언급하는 ‘장소’의 의미는 하나님의 현존의 장소로서의 제단이며, 피난처로서의 성소와 함께, 올바른 제의 장소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것으로 서로 묶여 있다. 이 모두는 오직 야훼 신앙 계명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제단법 다음으로 이어지는 노예 해방에 관한 법규(21:1-11)는 계약법전의 마지막 제사법 그 앞에 있는 노동 해방 법령(23:10-12)과 교차대구로 연결 된다. 노예 해방에 관련한 법은 노예 생활의 기간과 자유로이 해방되는 기본 규정들에 대한 것으로, 십계명의 안식일 규정의 6일 동안의 일과 제 7일에 남종과 여종의 일로부터의 해방의 규정(20:8-10)이 여기 노예 해방에서는 남자 노예(21:2-6)와 여자 노예(21:7-11)에 대한 6년간의 노예로서의 삶과 제 칠 년째의 해방이라는 주제로 서로 맞물려 있다. 노예해방법과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노동해방법에서는 그 주기가 6년간의 토지 노동(23:10)과 제 7년째 토지 경작의 노동금지(23:11) 및 6일간의 노동(23:12a)과 제 7일에의 노동 금지(23:12b) 등으로 되어있다. 십계명의 서언(20:2)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처럼, 모든 계명들은 노예로 살던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대 전제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자기정체성은 출애굽 해방사건과 분리될 수 없으며, 이는 또한 오직 야훼 신앙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신상숭배 거절과 함께 오직 야훼 신앙에 근거한 제단법/제사법 규정이 노예해방법과 노동해방법으로 함께 나란히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현 최종형태 계약법전의 구성이 지닌 중요한 신학적 특징인 것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법들은 일반사회법령들(21:12-19)과 사회약자들을 보호하는 법령들(22:20-23:9)이다. 이 두 가지 법령들 역시 매우 의도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일반사회법의 처음(21:12-17)과 끝(22:17[18]29)-19[20])은 모두 사형에 관한 법률들이고, 사회약자보호법의 처음(22:20[21])과 마지막(23:9)은 서로 이방인/나그네(게르)30)를 보호하는 법령이다. 특히 이방인/나그네 보호 법령은 출애굽 해방 역사를 그 근거로 한다(23:9). 이는 그 뒤에 나오는 노동해방법에서도 이방인/나그네 보호를 위한 조처임을 명시한다(23:12). 아울러 일반사회법은 앞, 뒤의 사형법뿐 아니라, 신체상해에 관련한 법이 앞(21:18-32), 뒤(22:15[16]-16[17])에 대칭을 이루고, 그 가운데 공동체의 화해를 위한 합의에 의한 배상법(21:33-22:14[15])이 위치한다. 특히 전체 계약법전의 중앙을 이루고 있는 일반사회법과 사회약자보호법을 연결하는 22장 19[20]절은 야훼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제바흐)드리는 자를 사형에 처하게 하는 오직 야훼 신앙을 강조한다. 이는 계약법전의 시작인 제단법(제바흐)이 이방신상금지법을 처음 언급했던 것(20:23)과 마찬가지로, 계약법전의 마지막 제사법(제바흐)의 시작 역시 이방신숭배 금지법(23:13)으로 맞물려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계약법전 전체는 서로 상이해 보이는 여러 법규들, 곧 종교 제의 법들과 일반 사회법 그리고 사회 약자 보호법들이 오직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통일적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현 최종형태 계약법전의 교차대구의 구성을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A  제단법(20:22-26)-제바흐, 이방신상금지

      B  노예해방법(21:2-11)-6/7 주기

              C 일반사회법(21:12-22:19[20]

                      처음: 사형법(21:12-17)

                              신체상해법(21:18-32)

                                      합의/배상법(21:33-22:14[15])

                              신체상해법(22:15[16]-16[17])

                      끝:   사형법(22:17[18]-19[20])

              C'  사회약자보호법(22:20[21]-23:9)

                      처음: 이방인/나그네 보호법(22:20)

                      끝:   이방인/나그네 보호법(23:9)

      B'  노동해방법(23:10-12)-6/7 주기

A'  제사법(23:13-19)-제바흐, 이방신숭배금지


3.2 성결법전(레 17-26장)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40)이 회막을 봉헌한 후, 구름이 회막을 덮는 모습을 그려 야훼의 영광이 회막 안에 가득 찼다는 보도는(40:34-35), 이제 야훼가 회막 안에 거하시게 된다는 야훼의 현존의 장소문제를 확정하는 중요한 신학적 자리매김이다.31) 그 다음 책인 레위기는 그 ‘회막 안에서’(메오헬 모에드) 야훼가 모세를 부르는 장면32)으로 그 둘을 밀접하게 연결한다(레 1:1).33) 레위기의 전반부(1-15장)는 이제 그 야훼를 만나게 되는 절차, 곧 각종 제사들과 제물에 관한 규정들(1-7장)과 제사를 집례할 제사장에 대한 규정들(8-10장), 그리고 야훼를 만나기 위한 개별적 정결규정들(11-15장)에 대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후반부(17-27장)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성결’34)을 강조하는 각종 법률 모음집(17-26장)이 들어 있고, 마지막 장(27장)은 부가적으로 서약예물에 관한 것으로 되어 있다.35) 레위기 16장은 대속죄일(욤 학키푸르, 참고 23:26-32)에 대한 것으로, 일 년간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인해 거룩한 성소와 회막의 ‘부정’을 제거하는 날이다(16:16). 이는 거룩하신 야훼의 현존의 장소이며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만나야 하는 거룩한 장소를 부정한 것으로부터 정결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 거룩하신 야훼를 만나기 위하여 거룩함을 보존해야 하는 임무로서의 ‘영원한 규례’(16:31, 훅까트 올람)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레위기 16장은 “하나님 백성의 성화”(Heiligung des Gottesvolkes)36)라는 주제로 그 앞 단락인 11-15장의 정결규정들과 17-26장의 성결법조항들 그 사이에 끼여 이 둘을 밀접하게 연결 지어 주고 있는 것이다.37)

야훼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의 관계, 곧 정기적인 그들의 만남을 위한 제의적 규정들을 담고 있는 레위기의 전체적인 내용들 가운데,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야훼를 만나기 위해 거룩해져야 하는 법률 조항들이 모아져 있는 후반부 17-26장을 이른바 ‘성결법전’(Heiligkeitgesetz)38)이라 부른다. 레 17-26장 안에는 이른바 오경의 제사문헌(P)에 나타나지 않는 훈계적인 특징을 지닌 일정한 양식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점으로부터 학계에서 이 단락을 독립적인 율법집으로 여겨왔었다. 그러나 많은 연구들과 최근에 이르러 이는 더 이상 독립적인 법전으로 여기는 것에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39) 무엇보다도 이 단락을 ‘성결법전’으로 특징짓는 “내(야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법적 명령의 고정구가 이미 11장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11:44, 45.).40)

‘성결법전’에 대한 지난 연구들은 크게 4가지 모델로 나뉜다.41) 첫 째는, 이 법률모음집이 본래부터 제사문헌(P)과는 별개의 독립된 법률집(als Urkunde/Rechtskorpus)로 보는 견해다.42) 두 번째는 기존에 있던 제사문헌들 가운데서 법적 조항들을 수집(Sammlung von Rechtssätzen/Rechtskomplex)하면서 수정 및 첨가 등을 통한 제사문헌의 편집을 위해 이루어 진 것으로 보는 견해다.43) 세 번째 모델은 레 17-26장은 이미 처음부터 제사문헌 안에 속해 있었다(als intergraler Bestandteil der Priesterschrift)고 보는 것이다.44) 마지막 견해는 이 법률 모음집을 더 이상 하나의 묶음으로 보지 않고 개별 본문들(als unverbundene Einzeltexte)로 다루는 것이다.45)

이상의 이른바 ‘성결법전’에 대한 다양한 모델들로부터 더 이상 이 법모음집이 독립된 개별 단행본으로서의 ‘법전’의 의미로 고찰되기 보다는, 거룩하신 야훼를 만나기 위한 모든 제의 및 제물에 대한 규정들과 아울러 부정한 것을 제하는 정결의 규정들 및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해져야 하는 모든 성결의 법 규정들을 담고 있는 레위기 전체 속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곧 현 최종형태 토라가 보여주는 시내산에서의 레위기 전체, 나아가 시내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든 법률조항들, 곧 토라의 법전 그 전체 구성과 맞물려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46) 다만 본 글의 지면상, 아래서는 이 법모음집(이하 성결법전47))의 내용들을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여러 상이한 법조항들이 현 성결법전 내에서 서로 어떤 관련들을 맺고 있으며, 아울러 그것들이 시내산 단락의 전체 토라의 법전과 어떤 관련이 있는 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토라의 중심은 이 모든 것이 시내산에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과, 아울러 모세를 통하여 전해 주었다는 것이다. 모세는 곧 토라의 중개자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토라를 전해주고, 모세는 이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형식이다. 모든 토라의 전달과정은 이것이 언제나 반복된다. 토라의 권위에 대한 분명한 표시와도 같은 이와 같은 공식 어구는 레 17-26장의 모든 법조항들이 시작하는 곳마다 나타난다. 그런데 야훼로부터 말을 전달받은 모세가 누구에게 그 말을 전하는 가를 주목하면, 레 17-26장은 전반부(17-22장)와 후반부(23-26장)로 나눌 수 있다. 17장 1-2절에서 야훼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하고, 21장 24절에서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것으로 나온다. 그 다음 22장 1절 이하에서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전하라는 야훼의 명령이 나온다. 그리고 17절 이하에서 다시 한 번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라는 야훼의 명령이 언급된다. 그 외에 모든 곳에서는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라는 언급뿐이다.48) 오직 이곳(17:1-2)과 21장 24절, 그리고 22장 18절에 야훼가 모세에게 말한 것을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한다는 표현이다. 누구에게 말을 전했는가를 고려한다면 야훼의 말을 전해 받는 당사자에 따라 그 내용 역시 구별되기 때문이다. 곧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론된 전반부는 제상장과 관련된 사항들이 포함되고, 후반부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 되는 셈이다.

성결법전 전반부의 첫 장인 레 17장은 제사법 조항이다. 특히 짐승을 제물로 받치기 위해 반드시 회막 어귀로 가져와서 그 짐승을 죽여야 하고, 제사장이 그 피를 회막 어귀 제단 주변에 뿌려야 한다. 이는 희생제물인 짐승의 피 일지라도 거룩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는 절대 금지한다는 조항이다. 이는 그 다음 피를 먹는 것을 금지하는 단락(17:10-16)과 밀접하게 연결된다.49) 피를 먹는 것의 금지는 생명인 피를 땅에 흘리게 하지 말라는 영원한 노아계약(창 9장)에 따른 것이다. 이 법조항은 이방인/나그네(게르)에게도 동일시된다(17:8,12). 그 다음 18장은 무엇보다도 성관계금지법이다. 이는 단지 무분별한 성관계윤리조항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이교도의 풍습을 철저히 거부하려는 오직 야훼신앙 준수에 있다(18:3f.,30).50) 여기서도 이 법조항은 이방인/나그네(게르)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된다(18:26). 성결법전의 전반부의 가운데를 위치하고 있는 19장은 이 법모음집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곧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로 시작한다(19:2). 19장은 무엇보다도 사회약자들을 위한 보호법령들이다. 밭의 곡식을 가난한 이들과 이방인/나그네(게르)를 위해 남겨놓을 것(19:9-10), 일일노동자에게 치러야 하는 품값(13), 장애인 보호(14), 가난한 자들을 위한 공정한 재판(15-16)등은 모두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18)는 법이다. 그 뒤에 나오는 여성 노예의 문제(20-25) 역시 사회약자보호법령이다. 여기서도 26절에 피의 금지 조항과 이방종교풍속에 대한 금지가 뒤따르고, 뒷부분은 사회약자들로서 특히 이방인/나그네(게르)를 보호해야하는 명령(33)과 공정한 재판과 상거래법이다. 이 모든 법적 근거가 출애굽 전승으로 맺어져 있다(34,36). 20장은 그 앞의 18장과 같이 성관계금지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20:10-22). 아울러 몰렉에게 자식들을 희생제물로 받치는 행위에 대한 금지 조항(20:2-5) 역시 18장에서 언급했던 것(21절)과 같이 이방종교풍습에 대한 금지조항으로 이 모든 것이 야훼가 허락한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20:23-24=18:24-28) 오직 야훼신앙 준수를 위한 규례와 법(20:22=18:26)임을 반복적으로 명시한다. 여기서도 이방인/나그네(게르)에게도 동일한 법적용을 반복한다(20:2=18:26). 성결법전의 전반부의 마지막 부분인 22장은 전반부의 시작인 17장과 같이 제사에 관련한 법조항으로 특히 제사음식에 대한 규정들(20:2-16)과 제물에 대한 법규정들(22:18-30)을 다룬다. 이 또한 이방인/나그네(게르)에게도 동일한 법적용을 반복한다(22:18). 마지막 결어는 이 모든 법규정의 근거를 출애굽 야훼신앙으로 끝을 맺는다(22:33).

성결법전(레 17-26장)의 전반부(17-22장)의 내용이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교차대구적 구성을 보면 아래와 같다.

A  제사법(17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함(1)

                      이방인/나그네(게르)(17:8,12)

      B  성관계금지법(18장)

                      이방풍습 배격(18:3f.,30)

                      몰렉 희생제의 금지(21)

                      이방인/나그네(게르)(18:26)

                      규례, 법도(26)

              C  사회약자보호법(19장):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2)

                      이방인/나그네(게르)(19:9-10)

                      규례, 법도(37)

      B‘ 성관계금지법(20장)

                      몰렉 희생제의 금지(2-5)

                      이방인/나그네(게르)(2)

                      규례, 법도(22)                  

                      이방풍습 배격(23)

A‘  제사법(21-22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함(21:24)

                      이방인/나그네(게르)(22:18)

결어: 출애굽 야훼신앙(22:33)


성결법전의 후반부(23-26장)의 시작인 23장의 내용은 거룩한 성회인 야훼의 절기들에 관한 내용들로 안식일규정(3절), 유월절과 무교절(4-8), 곡식단을 바치는 절기(9-22), 칠월 초하루 절기(23-25), 속죄일(26-32), 초막절(33-44)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절기들에 공통적으로 계약법전에서 보았던 6/7주기(3,6,15,16,24,27,34,36,41,42)와 함께 노동금지조항들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는 것이다(3,8,21,25,28,32,35,36,39). 특히 이러한 노동금지조항은 가난한 자들과 이방인/나그네(게르)를 위한 사회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로서 계약법전(22:20[21]-23:9)뿐 아니라 여기 성결법전의 전반부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19장과도 서로 관련을 맺고 있다. 여기서도 “나는 야훼, 너희 하나님”이라는 성결법전의 법적 권위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 공식구가 제시된다(23:22=19:10). 아울러 마지막 결어는 성결법전 전반부 결어(22:33)와 같이 출애굽 야훼신앙으로 끝을 맺는다(23:43). 특히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약자보호법이 나오는 두 번째 곡식단의 절기 주기는 7주기를 곱해 나오는 제 50일째가 되는 날을 말함으로써, 이는 안식년을 곱해 산출된 희년을 언급하고 있는 25장의 안식년, 희년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회약자보호법과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

23장 절기법이 보여주는 교차대구적 구성을 보면 아래와 같다.

A  안식일(2-3); 7주기, 노동금지

      B  유월절과 무교절(4-8); 7주기, 노동금지, 저녁부터 다음날까지(5-6)

              C  곡식단 절기(9-14); 7주기, 영원한 규례(14)

                      D 칠칠절(15-22); 7*7 50일주기,  노동금지

                              사회약자보호법/ “나는 야훼, 너희 하나님”(22)

              C‘  칠월 초하루절기(23-25); 7주기(7월 1일), 노동금지, 영원한 규례(21)

      B‘  속죄일(26-32); 7주기(7월 10일), 노동금지, 저녁부터 다음날까지(32)

A‘  초막절(33-42); 7주기(7월 15일), 노동금지, 안식일(38)


23장이 야훼의 거룩한 성회로 모이는 절기들에 관한 법이라면 이 모든 절기는 곧 야훼께 드리는 제사와 관련된 것들이고, 이 제사를 위한 제사장(아론)이 해야 할 역할에 관한 사항이 그 다음 24장에서 다루어진다. 야훼의 이름을 더럽힌 자에게 취해지는 사형법 조항이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한 일례(10-16)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사형법 조항(17-22), 참고, 20절 계약법전 안의 탈리온법51))은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에 따라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23). 뒤 이은 25장은 잘 알려진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법규정이다. 이 모든 것들은 사회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들이다. 이는 이미 계약법전의 구성에서 보았듯이 노예해방법과 노동금지의 노동해방법과도 동일한 맥락이다. 더 나아가 단지 인간들만의 해방이 아니라, 척박해진 땅의 안식과 해방이기도 하다. 안식년과 희년법 규정이 사회 약자들인 가난한 자들과 특히 이방인/나그네(게르)에 대하여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를 출애굽 야훼 해방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25:38,42,55). 성결법전의 마지막 장인 26장의 시작은 이방신상금지와 함께 야훼의 안식 절기들의 준수 및 거룩한 그의 성소를 속되게 하지 않도록 두려워(경외)할 것을 명령하는 총론적 종교제의법규정이다(26:1-2). 그 다음은 지금까지의 모든 법들에 대한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3-13)과 불순종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14-39)에 대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결과로써의 땅으로부터의 추방에 대한 내용(32-39)과 회개와 함께 조상들과 맺은 야훼의 언약에 따른 구원과 회복의 내용(41-45)은 이 전체 토라를 이스라엘의 심판과 포로, 그리고 포로로 부터의 귀환이라는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로 읽게 한다. 야훼의 모든 토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하나님의 약속과 심판은 온전히 ‘하나님의 계약’에 근거한다. 특히 여기 쓰인 ‘나(야훼)의 계약’이란 표현은 레위기 전체에서 오직 이곳 26장에만 나타난다(26:9,15,25,42, 44f.). 성결법전의 마지막 말은 이 모든 법조항들은 “야훼가 시내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모세를 통하여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성결법전’의 법적 효력과 권위를 확고히 한다. 다름 아닌 야훼 하나님이 계신 시내산에서 야훼가 모세에게 직접 주신 토라라는 것이다.

성결법전의 후반부(23-26장)의 내용들의 관련을 간략히 그 구성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A  절기법(종교제의법률, 23장), 중앙-사회약자보호법

      B  제사관련법(24장), 중앙-사형법-탈리온조항-사회약자보호법

      B'  안식년, 희년법(25장)-중앙-사회약자보호법/노예해방

              출애굽 야훼신앙(25:38,42,55)

              시내산에서 주신 법(25:1)

A'  절기준수명령(26:2); 토라의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야훼의 계약(3-45)

              출애굽 야훼신앙(13)

              시내산에서 주신 법(26:46)


이상의 현 레위기 17장에서 26장까지의 그 최종형태 구성적 모습을 통해 이른바 ‘성결법전’이 보여주는 것은 거룩하신 야훼를 만나기 위해 거룩해져야 하는 이스라엘의 모습, 곧 그들이 지켜야 할 거룩의 법들이다. 이는 첫째, 제사를 통해 야훼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위한 종교제의에 관련된 제사 및 절기에 관련된 법규, 두 번째는 일상의 거룩한 생활을 규정하는 일반사회법으로 특히 부정한 성관계금지법과 사회약자들을 보호해야하는 법령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상의 모든 것들은 오직 한 분이신 야훼 신앙의 준수를 위한 것이고, 이 모두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해 주신 출애굽 야훼 신앙에 그 근거를 두는 것이다.


3.3 신명기법전(신 12-26장)

오경의 전체 구성은 창세기에서 조상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한 애굽에서의 탈출과 앞으로 들어가 살게 될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토라를 받기 위해 시내산에 도착해 그곳에서 받은 모든 하나님의 법(토라)의 내용들(출-민)을 그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오경의 마지막 책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다시 한 번 모세를 통해 한 번 더 야훼가 주신 토라를 상기시켜주는 모세의 설교/토라에 대한 내용이 곧 신명기이다.52) 그래서 신명기는 “이것들은(신명기)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온 이스라엘에게 전한 말씀들”(엘레 핟드바림 아쉐르 딥베르 모쉐 엘-콜-이스라엘 베에베르 하이야르덴, 신 1:1a)이라고 시작한다.53) 신명기는 그 시작이 명시하는 것처럼, 오경의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거의 이야기적 요소를 갖지 않고 있는 모세의 설교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곧 야훼의 토라에 대한 하나의 ‘신학적인 것’이기도 하다.54) 이에 따라 신명기의 전체 구조는 모세의 설교를 중심으로 한 전반부의 서론적 설명(1-11장)과 후반부의 결론(27-34장), 그 사이에 하나님의 토라인 율법 모음집(12-26장)이 들어있다. 이 율법 모음집을 이른바 ‘신명기법전’(Das deteronomische Gesetz)이라 부르는 것은 요시아가 발견했다는 ‘율법책’(세페르 핱토라, 왕하 22:11; ‘계약책’ 세페르 합베리트, 왕하 23:2)이 이것을 의미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55)

신명기 12-26장의 율법모음집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56) 우선 그 시작은 마치 계약법전의 시작과 같이(출 20:24-26)57) 제단 및 제의 장소에 관한 법조항이 나온다. 주목할 점은 그 제의 장소는 하나님이 직접 선택하실(12:5,11,14) 오직 ‘한 곳’이라고 특정된다. 물론 여기서도 계약법전이 중요하게 언급했던 ‘야훼의 이름’을 둘 곳이라는 동일한 언급이 나온다(신 12:11; 출 20:24). 그 ‘한 곳’이 어디 인지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58) 다만 아직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은 상황(신 1:1)을 염두에 둔다면,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곳에서의 제의법은 무엇보다도 ‘피 금지’조항과 맞물려 있다(12:15, 20절이하). 이는 창세기 9장의 노아계약에 명시된 ‘성결법전’의 그 처음과도 연결된다(레 17:3이하).

다음으로 이어지는 우상숭배금지조항들 역시 레위기의 부정한 짐승에 대한 금지 조항(레 11장)과 함께 ‘성결법전’이 제시하는 이방제의풍습을 배격하는 것(신 12:29-14:2; 레 18:3f.,30; 20:23)이며59), 그 근거가 곧 이스라엘은 ‘너희 하나님(야훼)이 선택한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다(신 14:2). 여기서도 ‘성결법전’에 줄곧 언급됐던 출애굽 해방 야훼 신앙을 떠올린다(13:5).

신명기 14장 22-29절에는 신명기법전에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십일조규정’이 언급된다. 이는 신명기법전의 마지막(26:12-15)에 가서 다시 한 번 언급됨으로써 이 규정이 전체 신명기법전을 둘러싸고 있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14장 22-26절에서 십일조 규정은 오직 ‘택한 곳’에서만 드리게 됨으로써(14:23,24,25), 이 율법모음집 처음(12장)에 제시된 오직 ‘한 곳’의 제의 장소 선택을 언급한 것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특히 십일조 규정을 말하고 있는 두 단락(14:22-29; 26:12-15) 모두에서 사회약자들을 거론한다(14:27-29; 26:12이하). 아울러 십일조규정은 축복을 기원하는 것과 맞물림으로써(14:29; 26:15),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가 야훼 신앙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을 말해준다.60) 이 또한 계약법전과 성결법전에서도 언급된 사회약자보호법들과 같은 맥락이다.

신명기 15:1-16:17절에는 성결법전에 언급된 절기들에 대한 내용으로 안식년(15장; 레 25장), 유월절(16:1-8; 레 23:4-8), 칠칠절(16:9-12; 레 23:15-21)과 초막절(16:13-17; 레 23:33-42)등이다. 주목할 점은 이상의 절기법들이 채무면제(15:1-11)나 노예해방(15:12-18)등과 같이 -이는 이 율법모음집의 마지막부분(23:16[15]-25:19)에 가서 또 다시 반복되어지는데- 계약법전과 성결법전에서 언급된 사회약자보호법령과 그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신명기 16장 18절에서 18장 22절까지는 재판제도와 모든 관직 제도들에 대하여 다룬다. 공공사회질서를 위한 재판에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뇌물 금지(16:19)와 공정한 정의로운 재판(20)이다. 이것 역시 축복 개념과 맞물려 있으며(20), 동시에 우상신상금지(21-22)와 맞물려 일반사회법과 오직 야훼신앙이 하나로 엮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사형에 관련된 조항들(17:5-7)도 이방제의풍속에 대한 거절(3)과 관련되어 있다. 일반사회법으로서 재판의 증인제도(6) 및 재판관 제도(9-13)에서도 ‘선택한 장소’가 중요 주제로 등장한다(8,10). 아울러 이어지는 왕제도/왕의법(17:14-20)61)에서도 “야훼, 너희 하나님이 선택한”사람만이 왕이 될 수 있다는 ‘선택’ 주제가 따른다(15). 왕제도에 이어 다른 두 계층인 제사장(18:1-8)과 예언자직(15-22절)에 대한 법규정과 그 사이에 이방제의 풍습거절내용(9-14절)이 들어있다. 제사장직 내용의 중심은 레위지파를 ‘선택’했다는 것(18:5)과 하나님이 ‘선택’한 어느 장소에서도 그의 직무가 인정된다(6-7)는 것이다. 예언자직의 내용의 중심에 있어서도 한 예언자를 ‘선택’한다는 것(15-18)과 참예언자는 야훼가 선택한 사람으로 그는 오직 야훼 이름으로만 예언해야하며(19-21), 그 예언의 성사 여부를 통해 참과 거짓예언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22).

신명기법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19장 1절에서 21장 9절 안에는 무엇보다도 생명 중시의 법사상이 들어 있다. 토라의 모든 법의 중심에는 ‘피 금지 사상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이는 제사법뿐 아니라 일반사회법과 사회약자보호를 위한 조치들에도 그렇다. 사형법은 피흘림의 살인을 금지하기 위한 강력조치다. 그래서 누군가 살해를 당하게 되면 반드시 그의 혈족이 피의 복수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고의가 아닌 살인으로 인해 친족으로부터 피의 복수로 인한 또 다른 피흘림을 막기 위한 제도가 바로 도피성제도(19:1-3)이다. 그 핵심은 “죄 없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13)이다. 이런 사회적 장치가 야훼신앙의 축복과 하나로 묶여있다(13). 억울하게 죽임당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이 재판에서의 증인제도이다(15-21). 피흘림 금지 사상이 토라의 근저에 깔린 기본법이라고 한다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신명기 20장의 전쟁에 관련된 법 역시 그 근본은 피흘림의 전쟁을 권장하는 법률조항들이 아니다. 자세하고 구체적 사안들을 들어 전쟁터로 나서지 않게 하려는 법령들이다. 일반 개인의 일상사가 전쟁보다 더 우선한다는 가르침이다. 곧 집을 짓고 준공식을 하지 못한 사람들(20:5), 새 포도원을 지은 사람은 추수할 수 있도록(6), 약혼자는 결혼을(7)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전쟁으로 인해 개인이 억울하게 죽는 것을 반대한다. 이미 전쟁터에 나갔다 할지라도, 전쟁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고(8), 전쟁중이라도 먼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조치가 가장 우선시 된다(10-11). 심지어 적군의 생활터전에 있는 살아있는 과일나무조차 베어서는 안 된다(19-20). 가나안 땅의 민족들에 대한 진멸 이야기는 오직 야훼신앙 준수를 위한 이방제의풍속에 대한 절대 거부라는 것(17-18)과 맞물린 것이다. 범인을 알 수 없는 주검에 대한 이야기(21:1-9) 역시 무고한 이들이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생명 존중의 법장치이다. 그 뒤를 차지하고 있는 율법모음들은 크게 가정과 성관계법(21:10-23:15)과 사회약자보호법(23:16-25:19)들로 되어 있다.

신명기법전의 마지막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에 행해야 할 것들을 설명한다. 여기서는 이미 중요하게 언급된 야훼의 이름을 두기로 ‘선택’한 곳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하며(26:1-4), 여기에 이른바 폰라트에 의해 제기된 ‘작은 역사적 신앙고백’(신 26:5-9)이 나온다. 신명기 26장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땅’이 그 중심 주제이다. 이는 오경의 시작인 창세기 조상들과의 약속이 마지막에 가서 성취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경 전체 구성을 이루어 준다(26:15).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곧 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은, 오경의 법전들의 첫 자리마다 제사법이 위치한다는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는 오직 야훼신앙의 틀을 갖추고 있는 것이며, 아울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제는 사회 약자들과의 연대를 위한 십일조규정을(참고, 14:22-29) 결론적으로 다시 한 번 언급하고(26:12-14) 이를 조상들에게 약속한 이 땅에서의 축복의 줄로 연결한다(26:15). 이제 이 율법모음집은 마치 ‘언약체결’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26:16-19). 곧 지금까지의 모든 법들(토로트)을 지키면, “나(야훼)는 너희(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쉐마 이스라엘’(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모든 계명을 지킬 것)이 요구된다(26:16). 특히 결론적 계약체결의 형식은 옛 조상들과의 계약이 아니라, “오늘”(하이욤 핮제), 곧 ‘지금’ 이 토라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 청중들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26:16). 아울러 이는 이 율법모음집을 현 최종형태의 모습으로 ‘오늘’, ‘지금’ 읽고 있는 모든 독자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야훼의 말씀, 야훼의 토라로써의 그 신학적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4. 끝맺는 말: 토라 법전의 최종형태 구성의 신학


역사적으로 보면, 토라의 발생은 다양한 법문서 들로부터 성장해 오면서 한 분 하나님, 야훼 유일 신앙을 더욱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과 나란히 생겨난 것이다. 곧 토라는 유일신론으로 걸어갔던 이스라엘의 여정에서 하나의 중심된 부분이다. 비록 이 토라와 유일신론의 두 과정을 재구성하려는 것이 개별 사항들에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신학적 질문과 관련해서 이는 가장 중요한 틀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토라의 가장 오래된 계약법전은 시내산 단락 안에 있으며, 십계명 이후에 첫 번째로 언급되는 내용이다. 여기의 모든 법조항들은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법전을 형성하기까지는 다양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의 최종형태 구성은, 한 분 하나님의 동일한 뜻에 따라 하나의 단일한 문서로 묶여진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고대근동의 법문서나 법역사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토라의 구조’(Torastruktur)를 보여준다.

 첫 번째 부분은 종교적인 법조항들이다. 특히 우상숭배 금지조항들이 전체 구성을 특징짓고 있다(출 20:23; 22:19; 23:13,24,32이하).그 다음 중요한 주제들은 신과 세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형상금지(20:23)와 이스라엘과 가나안 민족들의 문화들과의 차이와 이방종교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종교적인 시간구조이다. 여기에 해마다 치르는 축제(23:14이하)가 포함 되고,특히 각각 일곱 번째 날에는 쉬어야 한다는 조항, 곧 안식일과 또한 안식년(23:10이하)이 속해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이러한 종교적인 법조항들이 일반 사회법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사형법과 노예법, 그리고 그 외에도 특히 상해와 재산피해와 관련된 규정들이 속해 있다. 한 예로는 출애굽기 21장 18절 이하인데, 여기에는 심각한 신체피해로 인한 피해자의 재정적 손실에 대한 규정과 관련한 근본적인 원칙들을 볼 수가 있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가해자로부터 보상을 받아야만 하며, 이는 이러한 보상을 통해 앞으로 서로가 평화롭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게끔 하려는 것이다. 형벌은 피해자와 다시 화해를 이루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아울러 이는 오늘날의 형사처벌법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서도 큰 의미가 있다. 이 근본원칙으로부터 탈리온법, 즉 21장 24절 이하의 ‘눈에는 눈’은 유대적 해석의 의미에서 피해보상의 적합성의 요구로서만 이해되어야 한다. 결코 실제로 실행되어야만 하는 처벌로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세 번째 부분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보호규정들의 모음이다. 여기에서는 나그네(이방인)법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참고, 레 19:33이하; 24:22). 이는 출애굽기 22장 20절과 23장 9절 안의 부분인데, 고아와 과부(22:21-23) 그리고 가난한 자들(22:24이하, 23:3,6)에 대한 보호법령들이다. 또한 동물 보호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상은 아모스 이래로 많은 예언자들이 비판하고 요구했던 것들을 법적 문서로 확정하고 있는 것이다. 성문법으로서의 토라의 법전은 실행될 원칙들로서 법적으로 공개적으로 이행되어야 했음을 의미한다.

종교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결정적인 것은 이 세 개의 서로 다른 테마들이 한 분 하나님의 공통된 요구로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한 분 하나님의 영향은, 단지 좁은 종교적 입장에서만 신과의 관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시에 동일한 무게로 모든 영역에서의 법과 정의를 실천하도록 하고 있다. 단순한 종교적 잘못, 즉 다른 신들을 숭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그네(외국인)와 가난한 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오직 하나님 신앙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상의 토라의 구조는 후대의 법문서,즉 십계명과 특히 신명기법전, 아울러 레위기의 성결법전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정치와 경제의 영역과도 관계한다. 신명기 17장 14절 이하의 왕의 등극과 그의 권력의 한계에 대한 규정을 통해 당시의 국가가 이 법 아래 있음을 알리고 있는 왕의 법외에도, 법관의 임명과 중앙법정의 과제(16:18이하; 17:8), 또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18) 그리고 전쟁과 군사(20)에 대한 규정들을 가진 법체제에 대한 모든 중요한 사회적 제도들에 대한 규정들이 나온다. 이러한 정치적 법률들은 헌법의 형태로 되어 있다. 아울러 전 사회구조에 걸쳐 가난한 자의 권리에 대한 옛 규정들이 보다 강력하게 확장되어 나온다. 정기적인 부채탕감(15:1이하), 고리대금금지(23:20이하), 그리고 전통적으로 성전이나 왕에게 바쳤던 십일조를 이스라엘 내에서 토지를 갖고 있지 못했던 변방으로 밀려있던 이들의 생존을 위한 사회조세로 변환시키는 것(14:22이하, 26:12이하)이 속해 있다. 이런 모든 사회법들은 야훼 신앙의 축복으로 이어진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14:29; 15:18; 16:14; 23:21; 24:19). 이는 땅을 소유한 지주들의 법 준수를 통해 가난한 자들과 땅을 소유하지 못했던 자들이 지주들과 함께 하나님의 축복에 참예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연과 동물에 대한 윤리도 언급되어 있다. 한편에서는 일상에서 도살이 이루어졌지만 실제 동물보호규정이 유효해지기까지는 모든 동물살육은 희생제물에만 해당하였다. 신명기에서는 자연을 깨끗이 보존하기 위하여(23:14이하), 또는 어미 새의 보존(22:6이하)을 위해 막중한 법적 보호규정들 까지 두고 있기도 하다.

토라에서는 전체 현실, 특히 인간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모든 영역들이 한 분 하나님과 연결되어있다. 이 하나님이 누구/무엇인지는 이 연결 안에서 드러난다. 물론 토라의 법전 본문들에 대한 오늘날의 이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이 본문들이 그 당시의 사회적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근세 이전의 농경세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과의 연관성, 나아가 그 유효성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너무도 자명한 것은 마치 근본주의자들과 같이 성서 본문의 문자대로, 곧 토라 법전의 시대의 사람들로 살아갈 이유는 없다. 단지 이를 어떻게 올바로 재해석해야 하는지는 오늘 신학이 당면한 과제가 될 것이다.


기독교의 근본 질문을 다시 해 보자. 영생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토라 교사의 해석이 정답이다. 이를 그대로 실천하라는 예수의 대답이다. 그것이 곧 토라다. 현 시내산 토라의 최종형태의 구성이 보여주는 구약성서 토라의 법전은 하나님 사랑의 종교적 법조항들과 이웃 사랑이라는 일반사회법조항들, 그리고 사회약자 보호법령들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나아가 유일신 신앙은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모세(토라)와 선지자(느비임)의 대강령이라고 했던 예수의 대답(막 12:29-31)은 오경의 시내산 법전으로서의 토라만이 아니라, 토라로써의 전체 구약성서의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은 토라와 다르지 않다.


1) ‘율법’과 ‘복음’에 대한 교회의 오해의 문제 및 구약과 신약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하여, 박경철, 『한 권으로 읽는 구약성서』, 제 2장,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산: 한신대학교출판부, 2010), 33-65를 참고하라. 또한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한 교회의 오랜 반목과 갈등에 대한 역사적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로즈메리 류터, 『신앙과 형제살인, 반유대주의의 신학적 뿌리』, 장춘식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를 참고하라.


2) 크뤼제만은 지난 교회의 역사를 통해 교회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해야 하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은 없지만, 교회는 유대교와의 거리를 두게 되면서 점차 하나님의 계명과 구약성서의 율법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율법’으로서가 아닌 ‘토라’가 구약성서의 유일한 계명들이며, 이것이 곧 기독교 윤리를 올바르게 세울 수 있는 성서의 기본 틀이라고 말한다. Frank Crüsemann und Gabriele Obst, “Müssen sich Christinnen und Christen an das Gesetz des Alten Testaments halten?”, Frank Crüsemann(Hg.), Ich glaube an den Gott Israels: Fragen und Antworten zu einem Thema, das im christlichen Glaubensbekenntnis fehlt, (Gutersloh: Kaiser, 1999), 114-118.


3) 이에 대해서는 Georg Strecker, “Die Antithesen der Bergpredigt (Mt 5 21-48 par)”, ZNW 69(1978, 1/2), 36-72; Christian Dietzfelbinger, “Die Antithesen der Bergpredigt im Verständnis des Matthäus”, ZNW 70(1979, 1/2), 1-15; Peter Wick, “Die Antithesen der Bergpredigt als paränetische Rhetorik: Durch scheinbaren Widerspruch zu einem neuen Verständnis”, Judaica 52(1996), 156-178; Günter Röhser, “Die "Antithesen" der Bergpredigt in neueren Bibelübersetzungen” Theologische Beiträge 40(2009), 110-124; Klaus Wengst, “Der Jesus der Evangelien als Ausleger der Tora : Auslegung im Kontext des Judentums”, Bibel und Kirche 65(2010), 28-32 등을 참고하라.


4) 참고: E. Lohse, “Ich aber sage euch”, in: ders. (Hg.), Der Ruf Jesu und die Antwort der Gemeinde, FS J. Jeremias, Göttingen 1970, 189-203, 195f; M. Vahrenhorst, “Ihr sollt überhaupt nicht schwören”. Matthäus im halachischen Diskurs, WMANT 95,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 2002), 218-234.


5) 크뤼제만은 이미 1987년 6월 5-6일간 Fribourg에 있는 'Faculés de théologie de Suisse romande'에서, 그리고 Berlin(Oder)과 Paderborn 신학대학에서 행한 초청 강연 “토라로써의 오경-오경의 최종형태 해석에 대한 서론”(Frank Crüsemann, “Der Pentateuch als Tora-Prolegomena zur Interpretation seiner Endgestalt”, EvTh 49(1989), 250-267)에서, 역사비평은 그 시작서부터 큰 덩어리인 오경을 조각조각 해체해가면서 그 이전 단편들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자 했었다는 점을 비판하고, 오래된 단편들로부터 오경이라는 틀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것으로 인해 오경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그만큼 서로 간에 간격이 커졌고 이것이야말로 오경비평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그의 최근 오경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과 결과들과 최근 연구동향에 대한 이해와 함께 오경을 이스라엘의 법제사를 통해 이해한 토라에 대한 사회사적 연구(Frank Crüsemann, Die Tora. Theologie und Sozialgeschichte des alttestamentlichen Gesetzes, München: Kaiser, 1992; 한글판: 프랑크 크뤼제만, 『토라1, 구약성서 법전의 신학과 사회사』, 김상기 옮김,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5)는 오경의 최종형태가 주는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최근 토라로써의 오경에 대한 주제는 영국 에딘버그에서 열린 SBL 국제학회 모임에서도 이루어졌다. 여기 논의들에 대해서는 Gary N. Knoppers and Bernard M. Levinson, The Pentateuch as Torah: new models for understanding its promulgation and acceptance, (Winona Lake, Ind.: Eisenbrauns, 2007)를 참고하라.


6) 오경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모세의 평가에 대한 성서 보도의 신학적 의미에 대해서 특히, Jeffrey H. Tigay, “The significance of the end of Deuteronomy (Deuteronomy 34:10-12)”, Texts, temples, and traditions (1996), 137-143를 참고하라. 현 오경의 구성에 대해서 왕대일, 『구약신학』(서울: 도서출판 성서학연구소, 2003), 특히 143이하를 참고하라. 특히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모세와 시내산을 중심으로 하는 롤프 크니림의 오경 구성에 대한 분석을 주목하라.


7) 여기서의 ‘사경’은 노트의 이른바 신명기역사서 이론에 따른 신명기를 제외한 앞의 네 권의 책을 가리키는 사경이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8) 참고, W.R. Garr, “The grammar and interpretation of Exodus 6:3”, JBL 111(1992), 385-408.


9) 창세기 톨레도트 구성: 2:4 하늘과 땅의 톨레도트; 5:1: 아담의 톨레도트; 6:9: 노아의 톨레도트; 10:1: 노아 아들들의 톨레도트; 11:10: 셈의 톨레도트; 11:27: 데라의 톨레도트; 25:12: 이스마엘의 톨레도트; 25:19: 이삭의 톨레도트; 36:1+9: 에서의 톨레도트; 37:2: 야곱의 톨레도트.


10) 아브라함 계약에 대해서는 박경철, 『한 권으로 읽는 구약성서』, 특히 158-166을 참고하라.


11) 갈대바다(얌 숩)까지 추적해 온 애굽의 병사들을 따돌린 기적과 그에 대한 찬양의 노래까지를 포함하면 15장까지 연결될 수도 있지만, 실제 애굽에서의 탈출기는 유월절 기원의 장을 설명하는 12장까지이다.


12) 레 9장 23절은 회막에서의 첫 제사 후에 야훼의 영광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나타났음을 전한다.


13) 번제(올라): 1; 6:1-6; 소제(민하): 2; 6:7-11; 화목제(제바 쉘라밈): 3; 7:11-21; 속죄제(하앗타트): 4:1-5,13; 6:17-23; 속건제(아샴): 5:14-26; 7:1-7.


14) 올슨은 광야에서의 40년 기간은 광야에서 죽은 출애굽 세대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새로운 세대 간을 의미하는 기간이며 이를 통해 오경 전체의 구성을 논한다. Dennis T. Olson, The death of the old and the birth of the new : the framework of the Book of Numbers and the Pentateuch, (Chico, Calif.: Scholars Press, 1985).


15)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관련을 표로 나타내 보이면 다음과 같다. 참고, E. Zenger u.a.(Hg.),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3 Aufl. (Suttgart u.a.: Kohlhammer, 1998), 75.

출애굽기

 

민수기

애굽->광야->시나이

이동

시나이->광야->모압

12장: 유월절

16장: 만나

17장 바위에서 물

18장 조직편성

32장 우상숭배

주제

9:1-4 유월절

11장 만나

20장 바위에서 물

11장 조직편성

25장 우상숭배

(외부)

애굽

아말렉

(내부)

원망

우상숭배

위협

(내부)

원망

우상숭배

(외부)

모압

미디안

“~~를 떠나 ~~에 이르니”

12:37; 13:20; 14:1f.; 15:22; 16:1; 17:1

6개 여정 보도

“~~를 떠나 ~~에 이르니”

10:12; 20:1; 20:22; 21:10f.; 22:1; 25:1



16) 특히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 대한 언급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의 중요한 주제로 언급된다. 이들은 가나안 땅 분배시에 가장 처음으로 요단 동편에서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에게 이미 약속된 땅으로 언급된다(민 32:33; 신 2:26-3:11; 참고, 시 135:10-12; 136:17-22; 느 9:22). 이에 대해서는 특히 Rolf Rendtorff, “Sihon, Og und das israelitishce Credo”, S.Timm u.a.(Hg.), Meilenstein, FS. H. Donner, ÄAT 30(Wiesbaden: Harrassowitz, 1995), 198-203를 참고하라.


17) 조상들과 맺은 ‘땅’ 약속의 주제는 한 권 토라로써의 오경의 구성을 보여 준다: 창 12:7; 13:15,17; 15:7,18; 17:8; 24:7; 28:4,13; 35:12; 48:4; 50:24; 출 13:5,11; 32:13; 33:1; 레 18:3; 19:23; 20:24; 23:10; 25:2,38; 민 11:12; 14:16,23; 32:11; 신 1:8,35; 6:10,18,23; 7:13; 8:1; 10:11; 11:9,21; 19:8; 26:3,15; 28:11; 30:20; 31:7,20f; 34:4.


18) 모세가 파라오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하기를 주문할 때에도 모세의 말과 파라오의 말에 매번 하나님을 ‘섬기는’(아바드) 것과 그에게 ‘제사를 드리는’(자바흐) 것이 반복된다(출 7:16, 26[8:1], 8:4[8], 16[20], 21[25], 9:1, 13, 10:3; 12:31)


19) 오경의 전체 큰 구성을 보면 시내산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참고, E. Zenger, Einleitung, 74. 렌토르프는 시내산에 머무르는 동안의 이야기는 오직 레위기에만 나온다는 점을 주목한다. 오경의 모든 법조항들, 곧 하나님의 말씀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모든 율례와 규례인 토라가 수여된 장소가 곧 시내산이기에, 시내산은 토라의 핵심 주제이며, 시내산으로 완전히 연결된 레위기야마말로 “오경의 중심”(Mitte des Pentateuch)이라고 본다. R. Rendtorff, “Leviticus 16 als Mitte der Tora”, Biblical interpretation 11(2003, 3/4), 252-258, 253.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창조와 땅의 약속

애굽-광야-시내산

시내산

시내산-광야-모압

약속의 땅에서 살아갈 말씀

 


20) ‘계약’(베르트)에 대한 구약성서의 의미에 대해서는 박경철, 『한 권으로 읽는 구약성서』, 특히 153이하를 참고하라.


21) 계약법전에 관한 연대에 관한 학계의 논의는 사사시기로부터 왕조시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논의에 대해서는 F. Crüsemann, 『토라 1』, 217이하를 참고하라. 크뤼제만은 계약법전은 첫째, 신명기보다 오래되었고, 구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이라는 것, 둘째 토라의 모든 법들과 고대 근동의 법들과의 구별되는 기본 특징들이 계약법전에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 그리고 셋째 계약법전은 매우 다양한 구성체라는 점을 들어 “계약법전의 형성사는 동시에 구약성서 법의 본질과 독자성을 구성하는 것과 ... 토라를 떠받치는 토대의 형성과 본질에 대한 일체의 이해는 계약법전에 달려있다”고 본다. 216f.


22) 계약법전뿐 아니라 구약성서의 법에 대한 처음의 논의는 Alt의 “이스라엘의 법의 기원”이다. 알트는 무엇보다도 2인칭 명령형의 정언법과 ‘만일 ~~하면’의 결의론적법을 구분하고, 이스라엘의 법은 정언법에 기초한 것이라 보았다. A. Alt, “Die Ursprünge des israelitischen Rechts”, idem, Kleine Schriften zur Geschichte des Volkes Israel, vol.1, (München, 1934, 1959), 278-332. 그러나 계약법전은 정언법의 형식과 결의론적법 형식이 함께 서로 얽혀 있다. 계약법전의 형성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는 특히, L. Schwienhorst-Schönberger, Das Bundesbuch (Ex 20,22-23,33), Studien zu seiner Entstehung und Theologie, BZAW 188 (Berlin: de Gruyter, 1990), 3-21를 참고하라.


23) 계약법전의 최종형태 구성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들에 대해서는, 특히 계약법전이 의도적인 구성체임을 처음으로 밝힌 Jörn Halbe, Das Privilegrecht Jahwes, Ex 34, 10-26 Gestalt und Wesen, Herkunft und Wirken in vordeuteronomischer Zeit, FRLANT 114,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5)를 참고하라. 그 외에 주목할 것으로는 Eckart Otto, Wandel der Rechtsbegründungen in der Gesellschaftsgeschichte des antiken Israel: eine Rechtsgeschichte des "Bundesbuches" Ex XX 22 - XXIII 13, (Leiden u.a.: Brill, 1988); Schwienhorst-Schönberger, Das Bundesbuch 등을 참고하라.


24) 제단법과 관련한 최근의 논의는 Carsten Ziegert, “Das Altargesetz Ex 20,24-26 und seine kanonische Rezeption”, BN 141(2009), 19-34을 참고하라. 제단 설립에 대한 구약의 세 본문들인 출 20:24-26; 27:1-8 그리고 신 27:2-8을 통한 고대 이스라엘의 제단에 대한 고고학적 논의들과 사회,정치 및 경제사적 연구에 대해서는 Paul Heger, The three biblical altar laws: developments in the sacrificial cult in practice and theology; political and economic background, (Berlin u.a.: de Gruyter, 1999)를 참고하라.


25) 제단법이 규정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제단에 관한 고고학적 발굴에 대해서는 특히 Diethelm Conrad, Studien zum Altargesetz. Ex 20: 24-26, (Diss. Marburg, 1968), 특히 26이하, 41, 45이하 등을 참고하라.


26) 제단 설립의 장소와 관련하여 야훼의 이름을 기념하는 불특정 다수의 장소 선정을 가능케 하는 계약법전과  오직 한 장소만을 선택하게 한다는 신명기법전간의 차이에 대해서는 특히 Joachim L. Schaper, “Schriftauslegung und Schriftwerdung im alten Israel. Eine vergleichende Exegese von Ex 20,24-26 und Dtn 12,13-19”, ZAR 5(1999), 111-132을 참고하라. 크뤼제만은 계약법전의 제의 장소의 다양성의 문제가 신명기 법전이 말하는 오직 한 곳의 장소 선택의 문제에 대한 반박으로 보지 않고, 이를 제의와 관련해서 성소를 정의하는 일체의 시도들에 대한 비판으로 본다. 다시 말해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참된 성소의 바탕이라는 신명기법전과의 동일한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며, 계약법전은 신명기의 중앙집권적 요구의 선행 또는 초기 형태이며 그 배후에 자리하는 신학이라고 본다. 크뤼제만, 『토라 1』, 329.


27) ‘장소’에 대한 계약법전의 구성이 지니는 신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크뤼제만, 『토라 1』, 324-343을 참고하라.


28) 이에 대해서는 특히 크뤼제만, 『토라 1』, 276이하를 참고하라. 크뤼제만은 ‘미쉬파팀’은 군주시대의 법전이며(315), 그 안에 들어있는 법률용어와 치밀한 구성들로 미루어 교육받은 법조계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예루살렘 중앙 법원의 규준적 법전으로 본다(316f.). 또한 이사야 10장이 비판하고 있는 당시의 법들과 동일한 것으로 ‘자유민’을 노예와 분명하게 법적으로 구분 짓게 한 일종의 계급법으로 본다(318). 특히 미쉬파팀의 의미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균형 모델을 제시한다고 본다(319f.).


29) 히브리어성서는 22장 1절이 21장 37절로 끝이 나고, 22장 2절부터가 1절로 시작하여 30절로 끝난다. 이하 [ ]안의 절수는 한글성경의 절수를 말한다.


30) 구약성서의 법들에 나탄 이방인/나그네(게르)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는 특히, F. Crüsemamm, “Fremdenliebe und Identitätssicherung. Zum Verständnis der „Fremden„ -Gesetze im Alten Testament”, Wort und Dienst (1987), 11-24를 참고하라.


31) 이에 대해서는 특히, Christopher R. Smith, “The Literary Structure of Leviticus”, JSOT 70(1996), 17-32; E. Zenger, “Das Buch Levitikus als Teiltext der Tora/des Pentateuch. Eine synchrone Lektüre mit kanonischer Perspektive”, Heinz-Josef Fabry/Hans-Winfried Jüngling(Hg.), Levitikus als Buch, BBB 119, (Berlin u.a.: Philo, 1999), 47-83을 참고하라.


32) 히브리성서의 책명은 “그가 불렀다”(바이크라)의 첫 단어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칠십인역이 ‘레비티콘’으로 그리고 란틴역에서 ‘리버 레비티쿠스’ 곧 ‘레위인의 책’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이는 전반적으로 제사와 관련이 많은 내용을 담은 레위기를 제사장 계열의 레위인들을 위한 책의 의미를 두어 책명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레위기 전체에서 제사장을 위한 본문은 6:8-7:21; 10:8-15; 16:2-28; 21:1-23; 22:1-6등의 다섯 군데이고 나머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한 말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명으로 삼은 레위기가 단지 제사장 그리고 레위인들만을 위한 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참고, 김영진 외, 『구약성서개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57.


33) 렌토르프 역시 ‘회막’ 안에 계시는 야훼는 출애굽기와 레위기(1:1) 나아가 민수기(1:1)를 밀접하게 연결해 주는 장치임을 주목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머무르는 그 장소, 곧 야훼의 현존은 곧 그의 ‘거룩성’과 관련된다고 본다. 그렇기에 야훼는 그의 ‘거처’(미쉬깐)를 그가 친히 ‘거룩하게’(까다쉬, 니팔) 하는(출 29:43f.) ‘성소’(미끄다쉬)가 된다. 야훼는 바로 그 ‘거룩한’ 장소에서 그의 백성을 만나기 위하여, 그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는 모든 법 규정들을 제시하며 그것이 곧 레위기의 내용이 된다고 본다. R. Rendtorff,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Band 1, Kanonische Grundlegung,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 1999), 61f.


34) 이른바 ‘성결법전’안에 들어 있는 ‘거룩’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는 특히, Walther Zimmerli, “‘Heiligkeit’ nach dem sogenannten Heiligkeitsgesetz”, VT 30(1980), 493-512


35) 레위기 전체에 대한 단락 구분에 있어서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17-26장을 이른바 ‘성결법전’으로 한 묶음으로 분류한 데 반하여, 이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은 레위기 전체 단락 구분에 있어서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16장과 17장간의 긴밀한 연결로 인하여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다. 이에 대해서는 R. Rendtorff, “Leviticus 16 als Mitte der Tora”, 253이하를 참고하라.


36) Erhard Blum, Studien zur Komposition des Pentateuch, BZAW 189, (Berlin u.a.: de Gruyter, 1990), 318.


37) 렌토르프는 최근 오경을 한 권 토라의 구성적 관점으로 보려는 연구에서 그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레위기는 “매우 의도된”(planvolle) 구성이며, 이러한 관점은 “오경 전체를 새롭게 보여 준다”(in das Ganze des Pentateuch neu in Blick)고 본다. 특히 레위기에서도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16장은 현 레위기 뿐 아니라 전체 토라의 책의 자리에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R. Rendtorff, “Leviticus 16 als Mitte der Tora”.


38) 이 용어에 대한 첫 사용은 A. Klostermann으로, 그는 레 19-22장에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야훼 너희의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이다”(께도쉼 티흐우 키 까도쉬 아니 아도나이 엘로헤켐)(19:2)를 통해 레 17-26장을 ‘성결법전’(Heiligkeitgesetz)라 이름 하였다. 그는 K.H. Graf의 테제를 받아들여 레 17-26장은 에스겔을 통해 포로기 초기에 이루어진 작품으로 보았다. August Klostermann, Der Pentateuch. Beiträge zu seinem Verständnis und seiner Entstehungsgeschichte, (Leipzig: Deichert, 1893), 368-418


39) ‘성결법전’에 대한 연구사에 대해서는 Ludwig Massmann, Der Ruf in die Entscheidung. Studien zur Komposition, zur Entstehung und Vorgeschichte, zum Wirklichkeitsverständnis und zur kanonischen Stellung von Lev 20, (Berlin u.a.: de Gruyter, 2003), 8-29; Klaus Grünwaldt, Das Heiligkeitsgesetz Leviticus 17-26. Ursprüngliche Gestalt, Tradition und Theologie, (Berlin u.a.: de Gruyter, 1999), 5-22; Andreas Ruwe, "Heiligkeitsgesetz" und "Priesterschrift", Literaturgeschichtliche und rechtssystematische Untersuchungen zu Leviticus 17,1-26,2, FAT 26, (Tübingen: Mohr Siebeck, 1999), 5-35; 채홍식, “성결법전(레 17-26)의 형성에 관한 고찰, 레 19:3-18절을 중심으로”, 「구약논단」8(2000), 59-78, 59-63등을 참고하라.


40) 이상의 문제제기들에 대해서는 특히, R. Rendtorff,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63; E. Blum, Studien zur Komposition des Pentateuch,318ff.; F. Crüsemann, Die Tora. 323ff.등을 참고하라.


41) L. Massmann, Der Ruf in die Entscheidung. 9; 루베는 첫 번째 모델을 고전적 모델로, 그리고 두 번째에서 네 번째 까지의 모델을 성결법전에 대한 새로운 연구 모델로 구분한다. A. Ruwe, "Heiligkeitsgesetz" und "Priesterschrift", 5-25 참고.


42) 여기에 속하는 학자들로는 A, Klostermann, J. Wellhausen, C. Feucht, R. Kilian, W. Thiel, H.P. Mathys 등이 있다.


43) 이 모델에 대표적인 이들로는 H. Holziner, K. Elliger, A. Cholewinski, J. Milgrom, I. Knohl 그리고 E. Otto 등이다.


44) 이 견해의 부류에는 D. Hoffmann, E. Blum 및 F. Crüsemann 등이 속한다.


45) 마지막 모델에 속하는 대표적 학자들로는 H.T.C. Sun, E. Gerstenberger, J. Blenkinsopp 등이다.


46) 루베 역시, 이상의 ‘성결법전’에 대한 지난날의 연구들을 통해 이 법모음집은 개별 독립된 ‘법전’으로 보기 보다는 무엇보다도 전체 시나이 단락(출 (19:1f.*)24:15b-민 10:10) 안에서 함께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A. Ruwe, "Heiligkeitsgesetz" und "Priesterschrift", 특히 39이하를 참고하라. 아울러 성결법전을 전체 오경의 이야기 구조 안에서 살펴본 E. Otto, “Das Heiligkeitsgesetz im Narrativ des Pentateuch und die Entstehung der Idee einer mosaisch-mündlichen Tradition neben der schriftlichen Tora des Mose”, Zeitschrift für altorientalische und biblische Rechtsgeschichte 13(2007), 79-86를 참고하라.


47) 비록 학계의 연구 결과를 통해 지난날 이른바 ‘성결법전’이라 불렀던 레 17-26장은, 더 이상 개별 독립법전일 수 없기에, 이를 ‘성결법전’으로 부르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으나, 본 글에서는 단지 레 17-26장의 내용과 그 구성을 살피는 의미에서 레 17-26장 단락을 가리키는 용어로서만 이하에서는 ‘성결법전’이라 칭하기로 한다.


48) 레위기 전체, 나아가 시나이 단락 전체에서 토라의 전달 방식은 언제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것이지만, 오직 이상에 언급한 곳에서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언급한다.


49) 성결법전과 구약성서에 나타난 피 금지법과 관련해서는 A. Schenker, “Das Zeichen des Blutes und die Gewißheit der Vergebung im Alten Testament. Die sühnende Funktion des Blutes auf dem Altar nach Lev 17,10-12”, Münchener theologische Zeitschrift 34(1983), 195-213을 참고하라.


50) 이교도의 풍습을 따르지 말라는 명령에는 언제나 “나는 야훼, 너희 하나님”(4절, 30절)이라는 출애굽전승과 그 맥을 같이 한다.


51) 이에 대해서는 특히 F. Crüsemann, “Auge um Auge...”(Ex 21,24f). Zum sozialgeschichtlichen Sinn des Talionsgesetzes im Bundesbuch, in: EvTh 47(1987), 411-426; 프랑크 크뤼제만, “계약법전에 나타난 탈리온법의 사회사적 의미”, 박경철 역,『신학사상』 2001/겨울호, 특집: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대화, 115호, 한국신학연구소, 2001, 12, 127-154를 참고하라. 크뤼제만은 고대 근동법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탈리온법이 들어 있는 계약법전(출 20:22-23:33) 전체 안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동해복수법(탈리온법)의 의미를 찾아 나간다. 계약 법전 전체는 보복보다는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연구의 핵심은, 그런데 무엇 때문에 철저한 보복을 말하고 있는 탈리온조항이 계약법전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탈리온법의 삽입 시기를 그는 주전 8세기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과 연관시킨다. 특히 8세기 예언자들의 사회 비판과의 비교를 통해, 본래 화해를 목적으로 했던 미쉬파팀 법전이 권력자들에 의해 오용되었음을 밝힌다. 가진 자들, 돈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위법에 대해 돈으로 해결 할 수 있었다면, 반면, 힘없는 자들에게는 그런 법조항들은 오히려 옥쇄가 되어갔다는 것이다. 이를 예언자들이 비판했고, 그런 불의와 오용을 막고 힘없는 자들을 돌보아야 하는 법의 필요가 바로 탈리온법이 삽입되게 된 결정적 이유라는 것이다. 크뤼제만의 결론에 따른다면, 보복의 정당성은 힘있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자들의 보호 수단이다. 물론 그렇다고 탈리온법이 힘없는 자들의 테러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힘있는 자의 폭력은 결코 돈으로 해결될 수 없고 그만한 대가의 폭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강자의 폭력을 막는 수단으로서 탈리온법의 본래 의미라는 것이다.


52) 신명기가 본래 개별적인 책이었는지, 현재의 신명기의 형성과정과 오경의 다른 책들과의 관련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매우 다양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 토라로써의 오경의 전체 구성에서 신명기는 그 앞의 책들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특히 신명기의 서문뿐 아니라 율법모음집(12-26장)안에 들어 있는 내용들이 오경의 다른 책들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F. Crüsemann, Die Tora, 235ff. E. Blum, Studien zur Komposition des Pentateuch,176ff.를 참고하라. 신명기와 신명기법전에 대한 최근의 연구논의들에 대해서는


53) 신명기 역시 오경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성서의 책명은 그 첫 단어를 딴 ‘엘레 핫드바림’(이것들은 말씀들이다)이지만, 신명기 17장 18절과 여호수아 8장 32절에 나오는 “토라 사본”(미쉬네 핱토라)에 대한 헬라어 번역(토 듀테로노미온 투토)인 칠십인역에 따라 ‘두 번째 율법’이라는 뜻의 ‘신명기’(Deuteronomium)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54) 참고, R. Smend, “Theologie im ALten Testament”, E. Jüngel u.a.(Hg.), Verifikationen, FS, G. Ebeling, (Tübingen, 1982) 11-26(= “Die Mitte des ALten Testaments”, Gesammelte Studien 1, 1986, 104-117),  1982, 헤르만은 그래서 신명기는 오경의 전체를 이해하는데 나아가 히브리성서 전체를 이해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S. Herrmann, “Die konstruktive Restauration. Das Deuteronomium als Mitte biblischer Theologie”, FS. G. von Rad, (München, 1971), 155-170.


55) 요시아가 발견한 ‘율법책’에 따른 일련의 그의 종교개혁, 특히 예루살렘 중앙제의제가 확립된 근거가 신명기 12장에 나오는 오직 ‘한 곳’에서의 제의 허락 명령이라는 이유다. 이를 처음으로 제시한 이가 de Wette이다. 그는 그의 독일 예나 대학 박사학위로 제출한 그이 논문(W.M.L. de Wette, Dissertatio critico-exegetica qua Deuteronomium a prioribus Pentateuchi libris diversum, alius cuiusdam recentioris auctoris opus esse monstratur, Jena. Uni. Diss., 1805)을 통해 이른바 ‘원신명기 가설’을 처음으로 학계에 발표한 이래 신 12-26장을 이른바 ‘신명기 법전’, ‘원신명기’라 부르게 된 것이다.


56) 옷토는 신 12-26장을 계약법전의 해설로 보고, 그 중심주제는 제의중앙화, 축제들, 법과 재판의 규정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그가 나눈 구성은 ‘제의법’(12:1-28), ‘사회법’(14:22-15:18), ‘축제규정’(15:19-16:17), ‘재판규정’(16:18-18:8), ‘기타 법규정’(19:2-25:12), ‘사회법’(25:2-13)등이다. Eckart Otto, “Vom Bundesbuch zum Deuteronomium, Die deuteronomische Redaktion in Dtn 12-26”, G. Braulik(Hg.), Biblische Theologie und gesellschaftlicher Wandel, FS. Norbert Lohfink, (Freiburg u.a.: Herder, 1993), 260-278, 266.


57) 계약법전과 신명기법전(원시면기)와의 관련에 대해서는 E. Otto, “Vom Bundesbuch zum Deuteronomium”; 채홍식, “계약법전과 원신명기”, 「구약논단」9, 64-89를 참고하라.


58) 렌토르프는 제의 장소의 오직 ‘한 곳’의 선택은 ‘쉐마 이스라엘’(신 6:4)에서 드러난 ‘오직 한 하나님’-‘오직 한 제의 장소’(Ein Gott-ein Kultort)의 연결이라고 보며, 이 중앙제의화가 신명기신학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R. Rendtorff,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74.


59) 신명기와 성결법전과의 관련에 대한 것으로는 G. Bettenzoli, “Deuteronomium und Heiligkeitsgesetz”, VT 34(1984), 385-398 를 참고하라.


60) 크뤼제만은 사회약자보호법 내지는 사회 연대법은 신명기법전 안에서 다른 종교적 법률들과 함께 맞물림으로써 사회적 연대와 야훼 신앙준수로 인한 축복이 현 율법모음집의 전체 구성을 잘 드러내 준다고 본다. F. Crüsemann, Die Tora, 262ff.


61) 신명기의 왕제도에 대해서는 Gary N. Knoppers, “The Deuteronomist and the Deuteronomic Law of the King. A Reexamination of a Relationship”, ZAW 108(1996), 329-346을 참고하라.



2010-04-17 10: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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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재 유익한 자료 너무 감사하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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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ywextfere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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