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신학 논문, 원고, 컬럼, 번역 글 모음

  하나님은 누구신가?
  박경철 [ E-mail ]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은 성서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잘못된 질문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존재 유무에 대해 말해주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스라엘 역사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역사 한 가운데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그 이유와 그로 인한 인간의 삶의 변화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성서가 증거 하는 하나님은 그의 존재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답을 주려하거나 이를 증명하려고 하질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저들의 하나님의 존재는 의심의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 질문에 대해 답하고자 노력하거나 하나님 존재 문제에 대해선 아예 관심도 없다. 이미 실재하는 그 존재임을 당연시 할 뿐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이미 전제된 것이다. 단지 성서의 관심은 하나님이 무엇을 인간에게 요구하시며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할 뿐이다.
그랬기에 하나님이 존재하느냐를 성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서가 증거하고 있는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는 이야기를 성서를 통해 찾아보는 길이 바른 길이 될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성서의 하나님은 어떻게 나타나시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을 계시하는가?

상대를 알고자 할 때, 그 상대 스스로가 자신을 알려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참 된 정보가 될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인간들의 경험과 고백인 인간들의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예언자들의 선포 역시 예언자의 입을 통한 하나님의 말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셨는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기 역사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역사 경험속에서의 하나님 고백이 바로 성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한다는 것 역시 이는 하나님과 인간 그 사이의 관계, 그 만남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 관계와 만남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이 성서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바로 인간의 역사 사건 안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말해준다.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무대는 바로 인간의 역사이다.
성서는 아주 특별나게 언제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만났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소개하고 있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하나님 자신의 소개 (Selbstvorstellung)': 십계명 서문 첫 문장인 출 20,2은 시나이 계시 첫 문장으로, 출애굽이후 이스라엘에게 말하는 하나님 자신의 소개이다: "나는 야훼(하나님 이름 거론), 너의 하나님, 너를 종살이하던 에집트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얘기한다. 과거사건인 출애굽을 얘기하는 것은 그 다음 하나님의 법인 계명들을 거론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 본문,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얘기하는 것은 바로 성서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 정의이다.
이 본문은 성서 곳곳에서 그와 유사하게 계속 발견된다. 예언서에서와 법조항들을 다루는 구약성서 곳곳에서 그렇다. 성서의 하나님에 대한 근본 정의를 말하고 있는 이 본문은 근본 세 주제인 -'하나님의 이름' 인 '야훼', '이스라엘 관련' 인 '너의 하나님', 그리고 에집트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하는 '자유', 이 모두를 갖고있다. 이 본문이 구약성서를 이해하는 하나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본문이 차지하고 있는 그 배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는 십계명 처음, 시나이, 즉 하나님 자신이 계시는 곳이며 그곳으로부터 오시는 그 장소에서 자신 스스로 바로 이스라엘에게 말하는 것이다. 출애굽으로부터 시작하여 오경의 법들로 들어가는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신명기 5장에 다시 반복(시내산, 호렙)됨으로 십계명이 오경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출애굽 주제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다루는 주제로, 이스라엘의 근본 신앙고백의 전승으로 구약 전체에서 매우 특이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 바로 근본 표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바로 역사적 사건과 관련한다는 점이다. 많은 고대종교들에서 보이는 원역사와 창조와 관련된 그런 신의 모습이 아닌 역사 안에, 역사 사건과 관련된 하나님으로 그 특이성을 보인다. 특히 왕의 하나님, 파라오의 하나님, 강한자의 하나님 상(像)이 아니라, 그로부터 이끌어 내신 하나님이라는 상(像)은 종교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모습이다. 여기서 "너의 하나님" 즉, "나의" 하나님이라고 보는 것은 우선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그 다음에 나오는 십계명에서, 이는 바로 "그렇기 때문"인 그 근거로 제시된다. 자유, 해방이 근거이다. 그래서 "너의 하나님"이 되며, 그로부터 자유와 해방의 계명들이 십계명 근본 내용을 차지하고, 오경 전체가 또한 그렇다. 십계명 전체 계명은 이 주제와 연관되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안식일 계명 자유의 날로써의 그 의미가 그렇고, 살인금지 명령은 단순히 하나의 (일반적인) 요구 명령만이 아니라, 바로 네 이웃, 그러한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이웃에 대한 계명과 연관해서 보아야 한다.
성서의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묻는 일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자유" 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 주제는 근본적인 요소다. "자유케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고, 자유가 있는 곳이 하나님이다." 성서 본문에서 누가 하나님인가 하는 주제들은 바로 이 정의(定意)하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해방의 사건, 자유가 있는 곳, 거기 하나님이 관계하셨는가에 대한 물음과 확인이 가장 근본적인 작업이다. 그 동안의 여러 구약신학들의 문제는 바로 이 근본 테마를 도외신 한 것이다.
하나님 자신은 자유이며, 자유케 하시는 이로, 이런 사상은 신약에까지 이어져, 성령이 자유케 하신다고 나온다. 출애굽사건과 그에 따른 주제에 나타나는 "자유" 개념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전(全) 역사와 관련된 것으로, 또한 이는 정치, 사회적으로 개별적인 고백, 경험이 전체로 연결된다.

구약성서는 곧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이의 역사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서 그 전체의 중요 내용이다. 처음은 온 인류의 창조가 다루어지지만, 창 12장으로부터 시작된 아브라함의 역사는 전체 구약성서의 방향을 결정 지워, 페르시아시기인 에스라-느헤미야를 거쳐 가장 마지막 책인 주전 2세기 다니엘서에 까지 이어진다. 이 전체 구약성서 내용 안에는 여러 다양한 개념들과 표상들이 들어 있지만, 이는 항상 그 신학적 의미들을 담고 있으며, 언제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련 주제 안에서 다루어진다.
제일 먼저 이상의 주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으로, 흔히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계약 관계"로 보고, 이를 말해주는 "계약형식문"(Bundesformel)에 대한 것이다. 즉,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는 것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는 것이다. 이 이중 표상들을 담고 있는 많은 성서 본문들에는 각기 여러 다양한 개념들과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그 중 몇몇 예문들을 보면, 하나는 구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본문으로 여기는 사사기 5장의 드보라 노래인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주지만 이는 계약 형식문이 아니다. 5장 3절에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특정되어 나온다 (11절, 13절).
이런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련의 이중 표상들은 예언서들에와 오경의 중심 본문들에 계속 나타난다. 출 6,7 "그래서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곧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그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데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식은 축제절기와 함께 전승된다 (신 26,16이하).
이스라엘과 하나님 관련에 대한 여러 상이한 개념들과 표상들에는, 특히 인간사회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부모와 자식" (호 11장) 관계 안에서의 사랑과 순종등. 또 다른 하나는 부부간의 애정 관계 (호 2장, 11장), 이는 예언서 곳곳에 등장하는 테마이다.
또 다른 한 본문으로 구약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신명기 7장에 나타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련에 대한 것이다. 특히 6절-9절로, 특히 다른 민족들과의 구별과 선택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이스라엘과 열방 민족들에 대한 주제들에서 계속 다루어질 것이다.). 6절에 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들이 다루어지는데, 이는 "거룩한 백성"에서의 "거룩" 이라는 것과 "선택"이라는 것이다. 7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이유는 타민족보다 그 수가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기 때문이며, 특히 8절에 중요한 신학적 개념으로서 "사랑의 하나님"이 등장한다. 즉,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는 조상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맹세에 대한 약속이며, 이는 곧장 출애굽과 연관을 맺는다. 9절 이하에 계속해서 중요 신학적 개념으로 참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으로서 "계약, 베리트"과 "은혜"가 나온다. 신명기 7장은 단지 출애굽사건 경험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관련을 맺게 된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 여러 개념들과 함께 섞여서 나타난다. 바로 이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계명과 법규들이 따라 나오게 된다. 신명기서는 바로 이상의 개념들에 대한 신명기사가의 역사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세 번째로 이상의 개념들과 표상들이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기를 통해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계속 관련하는가의 문제이다. 특히 여기서는 한편으론 부정적인 모습들로, 아모스 3,2 "나는 이 땅의 모든 족속들 가운데서 오직 너희만을 선택하였으나, 너희가 이 모든 악을 저질렀으니 내가 너희를 처벌하겠다." 하나님의 선택과 심판의 이야기,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끊임없는 그의 "사랑"이 또한 나타난다. 오늘날 교회에서 애용하는 본문인 이사야 43,1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의 것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관련은 이스라엘의 절망기인 포로기에서도 계속된다. 또한 이스라엘 포로기 시대 본문인 예레미야 31,4 "나 주가 먼 곳으로부터 와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주었다. 나는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고, 한결같은 사랑을 너에게 베푼다." 또 다른 표상으로는 스가랴 2,8절(히브리성서 12절) "너희에게 손대는 자는 곧 주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다." 타민족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부부관계에 대한 묘사는 신약성서에서 혼인잔치와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이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의 관계에 대한 신약성서와의 관련을 보고자 한다. 오랜동안 기독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젠 이스라엘로 더 이상 한정되지 않으며, 이젠 교회가 이를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이제 더 이상 그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으나, 이런 신약성서의 해석의 관점은 유효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그렇게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특히 이런 문제에 대해 중요하게 여겨진 로마서 9장에서 11장에 대한 것이다. 롬 9장 4-5절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만물 위에 계시면서,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바울은 결코 이스라엘의 하나님 백성 개념을 단절하지 않는다. 롬 11장에 그의 신학의 중심들이 들어 있는데, 11장 26절에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이스라엘에겐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들과 맺은 계약과 율법들이 있기 때문에, 곧 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이름에 대한 문제에서, 우선 이 이름 "이스라엘"은 12지파의 기원을 말해주면, 남북왕조 분단시기엔 북왕국을 지칭하는 말로, 그러나 북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계속 이 이름 "이스라엘"은 존속한다. 포로기 이후 유대교(Judentum)에서 유다라는 이름을 건네 받지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이스라엘 역사 초기로부터 계속 하나님의 백성 전체로서 이스라엘을 지칭한다. 이는 언제나 연속선상에 있지 단절이 아니다.
하나님 개념에 대한 여러 다양한 용어상의 문제들에 있어서, 이스라엘 관련, 여러 다양한 신학본문들, 하나님 자신의 정의문제, 성서가 스스로 이스라엘과 관련된 하나님을 서술할 때, 열방 민족들과의 관련 문제에서도 언제나 이스라엘 관련 하나님의 문제는 늘 존속한다. 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이스라엘 관련 하나님이 어떻게 민족과 관련하는지 하는 것이다. 즉 온 인류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문제, 이는 지금 우리에게까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문제.
십계명 서문 처음에 하나님의 이름이 먼저 거론되는 것은 그 다음에 따르는 출애굽과의 관련 속에서 이는 마치 사람들끼리도 제일 먼저 자신을 소개할 때 이름을 밝히 듯, 이름은 한 인격에 대한 첫 표현을 담고 있으며, 이는 모든 것이 바로 그 이름과 관련된다는 말을 내포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 자신과 인간과의 관련에서 그 정체성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선 6가지로 나누어 그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첫번째로 야훼 이름의 역사와 그 의미에 대한 문제이다. 여기서하나님이 이름을 갖고 있는 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르는 하나님은 그의 이름이 아니다. 여기서의 하나님이란 다른 일반 종교에서도 통용되는 신에 대한 표상일 뿐이다.
이름 자체에 대한 문제에서 첫째로, 4 자음 글자 YHWH 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함께 그것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이다. 신약시대에 이미 이는 공식적으로 발음할 수 없다는 전통이 있었다 (회당등에서..). 이는 특별한 독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케레 푸티품(히브리어 문법설명 참고)이다.
성서 내에는 많은 야훼 이름이 포함되어 (이사야후, 예레미야후, 야후...) 나타나는데, 그 본래의 발음에 대한 학계의 재구성의 시도들은 그러나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구약성서에 이는 약 7천번 이상 쓰인 단어다. 이는 전형적인 히브리어 이름들이 갖고 있는 하나의 문장형 이름 (Satzname)이다. 3인칭 남성형, 하야(sein동사) 형으로, 옛 형태 하와 에서 온 것이다. 이를 문법상 히필형(사역형)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칼형(일반 능동형)으로 볼 지에 대한 논의들 모두 가설들이다. 대체로 학계에선 하야 동사가 사역형이 없기 때문에 이를 칼형으로 본다. 여기서의 'sein'동사는 그리스식의 어떤 무시간적 한 존재를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문장형 이름이 갖고 있는 의미 속에서 그는 어떤 일을 일으키는(생기게 하는) 이로써 나타내어진다.
이제 하나님 자신이 어떻게 자신을 계시하시는지 성서 본문을 통해 알아보자.
출 3장 과 6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아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 자신의 이름 계시한다. 이 두 본문은 모두 출애굽,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해방사건을 처음 시작하는 그 시점과 관련된다.
출 3장에서,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하나님 자신의 말로 시작(4절), 이전 족장 역사 서술 (6절), 해방과 자유를 위한 출애굽 관련 (7절), "함께 하는 자" (11절), 하나님 이름에 대한 질문 (13절)과 그에 대한 대답 (14절):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 (나는 나다). 그의 이름을 묻는 3인칭 문장형 이름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1인칭으로 나온다. 앞 절에서 "함께 있는 자"로 표현된 하나님 자신에 대해 강조된 의미로서의 대답이다. 15절에서 하나님 자신이 계시하는 이름은 테트라그람-거룩한 자음 4자-, 족장들과의 관련, 그리고 "영원한 이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는 이 본문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외 다른 내용이란 없다. "함께 하는 이"의 자기 계시는 그의 약속이며, 이는 바로 이스라엘과의 관련이다.
하나님 이름의 오용에 대한 금지와 관련하여, 무엇 때문에 마소라 본문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릴 수 없게 한 것인가? 특히 발음상의 그 어려움은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가? 본래의 발음은 가능한 것인가? 이에 대해 종교사적연구는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과 관계를 맺는다. 이는 단지 한 하나님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그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는 것으로 규정한다. 다신 세계에서 신들은 인간들과 같이 각자의 이름들을 갖고 있다. 각자의 이름을 통해 그를 부를 수 있고, 다른 신들과 구분을 지을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인격으로써 자기 정체성과 관련한다. 특히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의 계명은 그 이름이 그로 인해 상해를 입는 것과 관련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곧 인간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해 남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것에 대한 금지인 것이다.
이는 바로 십계명의 거짓증거 금지 계명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 이름에 대한 금지와 그에 대한 대체 발음의 과정들을 보면, 주전 3세기경, 모세오경인 토라의 헬라어 번역인 70인역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퀴리오스'(주)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고, 실상 이는 이스라엘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문제를 갖고 있었다. 주전 2세기경의 쿰란에서 나온 문서들에서도 이미 하나님의 이름은 더 이상 발음될 수 없는 것으로 나온다. 주후 70년 이후 성전이 무너진 이후로는 더 이상 회당에서도 야훼의 이름은 더 이상 불리지 못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신비로움"과 관련을 맺는다. 유대교에선 그 신비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대신에 그에 대한 대용으로 자주 사용한 것이 바로 퀴리오스, 주(主)라는 뜻인 "아도나이" 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일반적인 주인을 가리키는 한 칭호로서가 아니라 단지 발음상의 문제로 인한 하나의 특별 형식(Sonderform)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독일어 루터 성경 등에 고유한 한 칭호처럼 대문자를 사용하여 "Herr" 주(主) 라고 쓰는 것은 본래의 의미와는 잘못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히브리어로 "이름"을 뜻하는 "쉠" 앞에 정관사를 써서 "그 이름" "핫쉠" 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대신에 그 이름을 불러야 하는 곳에서 "핫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아람어 "이름" 을 뜻하는 "쉐마"에서 온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이름과 기독교의 관련은 무엇인가? 매 예배시 마다 외우는 주기도문에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한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기독교에선 하나님의 그 이름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즉 하나님이 자기 이름과 함께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과 관련한다는 것에 대해 기독교는 알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이를 철학적 개념으로 설명하기 앞서 첫 번째 문제는 무엇보다도 번역상의 어려움과 다음으로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있다. 구약성서 수많은 본문들에서 하나님에 대해 여러 모습으로 타내는데, 항상 그의 이름은 특별한 역할을 한다. 만약 이를 단순히 "하나님"으로 일괄적으로 번역할 때에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한 본문을 예로 든다면 잘 알고 있는 창 22장의 아브라함의 이삭 희생제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본문에서 특히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는 곳들에서 주의하여 번역해야 한다. 1절에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이는 엘로힘이다. 1절로부터 10절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으로 나타나는 이는 엘로힘이다. 11절에서 야훼의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는 정면에서 바로 야훼 이름이 등장한다 (14절 여호와 이레). 본문은 종교사적으로 당시 어린이 희생제의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설명되어지곤 한다. 당시 이방신들 내에서 신들의 명령에 부모가 이를 순종한다는 내용들이지만,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시킨 것을 스스로 막으신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 발음과 사용에 있어서 오늘날 흔히 외래어를 그대로 수용해서 발음하는 것과 같이, 유대교에서도 사용하는 "아도나이" 라는 대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의 이름의 계시와 함께 이의 오용금지에 나타나는 신비로움의 감춤이 동시에 작용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보다도 어떤 절대자로서의 개념을 지니지 않고, 언제나 한 백성 이스라엘과 관련을 맺고 이는 해방과 자유와 관계한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 다음시간엔 시편 82편을 통해 이상의 주제들이 어떻게 관련되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유일신 신앙
하나님이 누구이며, 무엇인가에 대하여 지난 시간까지 가장 중심이 되는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 자신의 진술을 통하여 (출 20,2), 하나님의 이름, 이스라엘과의 관련과 출애굽을 통한 자유 해방의 주제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이제 특별히 성서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의 문제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인 유일신 신앙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본문인 시편 82편을 다루어 본다. 순서는 히브리성서 본문 번역과 중요 신학 개념 등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시편 82편:
1 하나님(엘로힘)이 신들(엘)의 모임 가운데 서서 재판하시니
2 언제까지 너희가 불공정한 판결을 내리며 악인의 얼굴을 드러내려느냐(셀라)
3 굶주린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결을 내리며 가련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라
4 굶주린 자와 빈궁한 자를 악인들의 손(폭력)에서 구해내거라
5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분별력이 없어 어둠속에서 돌아다닌다.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린다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모두 가장 높은자(엘르욘)의 아들들이다
7 그러나 사람(아담)처럼 너희는 죽을 것이다. 군주(사림) 같이 너희는 쓰러질 것이다
8 일어서십시오 하나님(엘로힘), 세상(땅)을 판결해 주십시요 모든 민족이 열방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본문의 전체 구조를 잠시 살펴보면, 첫 절에 하나의 신들의 모임이 나타나고, 엘로힘이 바로 그 신들(엘) 모임의 그 가운데 위치한다. 이 신들의 모임은 법정재판을 위한 것이다. 그 다음 여기 모인 신들에게 2절에서 4절까지는 약자들을 위한 바른 판결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고, 5절은 그러나 이 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온 세상의 혼돈(카오스)의 상황이 되었고, 결국 6-7절에서 1인칭으로 나오는 "나"는 그들에게 불의를 행했기 때문에 사형판결을 내린다. 끝으로 다시 하나님 자신의 온 땅을 판결할 것에 대한 묘사로 맺는다.
본문에 대한 종교사적 연구들이 많이 있지만, 짧게나마 이를 제시한다면, 본문은 그 유형과 내용으로 하나의 예언자 시편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신들의 모임에 대한 구약성서의 다른 예문들이라면 우선 하늘의 신들의 모임의 표상을 지니고 있는 욥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종교사적 연구에 따르면 우가릿의 만신전(판테온)에서 엘은 신들 중에 최고의 신으로 나타나고, 이스라엘 이전 이미 가나안엔 엘 신이 절대권력자로 나타난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은 매우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선 본문은 법정 재판과정의 요소들을 담고 있는데, 엘로힘 (단수로서)은 엘 신들의 모임 그 가운데에 서서 저들에게 선과 악을 제시하고, 공평과 정의를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에 따른 사형판결을 내린다.
본문에 제시된 사람들은(달, 야톰, 아니, 에비욘) 사회 약자들로 이들은 구약성서에서 매우 중요한 사회 보호대상자들로 언급되는 이들이다. 특히 이들은 악인들과 본문의 재판과정에 상대적으로 등장한다. 재판에 있어서 불의와 정의문제가 사회 직접당사자들을 다루고 있다. 신들의 의무는 바로 이들을 위한 정의를 행사하는 것으로 나온다. 정의를 행하면 신들은 살아 남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 고대 근동의 다신 세계에서 각 신들은 저마다의 기능과 임무들을 지녔다. 예를 들어 에집트의 파라오는 국가신으로, 또는 바알은 풍요를 관장하여 비를 내린다거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여주는 신들에 대한 그 척도(그가 신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는 바로 정의를 행사하느냐가 그 중심 잣대로 적용된다. 본문은 바로 다신교로부터 유일신교로 가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시편 82편은 바로 구약신학의 근본 주제들에 대해 설명해 준다.
"한 하나님 - 여러 신들" 주제는 "정의"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정의는 신에 대한 그 척도가 된다. 종말론 주제와 관련하여 보면, 온 땅(세상)은 이제 하나님의 정의를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상의 주제들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문제와 관련된다.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 성서의 하나님 신앙은 바로 이 하나님이 정의를 행사할 수 있는가, 나아가 그가 정의를 행하고 있는가, 정의를 실현하기를 바라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되는 것이다.
다신 세계에서의 유일신 하나님 신앙의 척도인 정의, 그리고 그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대망, 그와 함께 이는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한다는 것이 바로 본문이 보여주는 근본적인 신학의 주제들이다. 가난과 착취의 문제는 이스라엘 안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이는 전 세계의 문제이다.
2002-01-04 20:22:52

이름
내용
비밀번호

Ryxcdixn DCEubv
의견글삭제하기
phentermine rx If you have to do it, you might as well do it right.
의견글삭제하기
dr consult adipex Very interesting site. Hope it will always be alive!
의견글삭제하기
phentermine diet drug Excellent site. It was pleasant to me.
의견글삭제하기
sniff soma I want to say - thank you for this!
의견글삭제하기
cialis dose Beautiful site!
의견글삭제하기
reviews on phentermine Perfect site, i like it!
의견글삭제하기
michael soma It is the coolest site, keep so!
의견글삭제하기
does tramadol show up as codeine Very interesting site. Hope it will always be alive!
의견글삭제하기
recreational use adipex Excellent site. It was pleasant to me.
의견글삭제하기
tramadol cheap fast no prescription Excellent site. It was pleasant to me.
의견글삭제하기
tramadol cheapest us price buy online Great work, webmaster, nice design!
의견글삭제하기
phentermine doses I bookmarked this link. Thank you for good job!
의견글삭제하기
free shipping tramadol Very interesting site. Hope it will always be alive!
의견글삭제하기
phentermine no prescription fed ex Great. Now i can say thank you!
의견글삭제하기
buy tramadol on Great. Now i can say thank you!
의견글삭제하기
phentermine diuretic I want to say - thank you for this!
의견글삭제하기
phentermine who Great site. Good info.
의견글삭제하기
phentermine intravenous Great. Now i can say thank you!
의견글삭제하기
adipex retard the offical site d53ofX Beautiful site!
의견글삭제하기
buy adipex phentermine overnight Ofmdoo Great work, webmaster, nice design!
의견글삭제하기
side effects tramadol dog Po2v9Q I want to say - thank you for this!
의견글삭제하기



     
  

관리자로그인~~ 전체 109개 - 현재 6/8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34
2003-06-18
2914
33
첨부화일 : 제2종교개혁을 지향하며 바라보는 새 하늘과 새 땅.hwp (92337 Bytes)
2002-10-27
4256
32
첨부화일 : 선착순-설교.hwp (19742 Bytes)
2002-09-18
3369
31
첨부화일 : hosea.hwp (68608 Bytes)
2002-07-07
3458
30
첨부화일 : Vortrag.hwp (54667 Bytes)
2002-05-05
3268
29
첨부화일 : berith.hwp (186837 Bytes)
2002-01-04
3742
28
첨부화일 : berith-2-97.hwp (142672 Bytes)
2002-04-24
3211
27
첨부화일 : talionsgesetz.hwp (194637 Bytes)
2002-01-04
3997
2002-01-04
3706
25
박경철
2002-01-04
2986
24
2002-01-04
2840
23
2004-03-12
3069
22
2004-03-12
2997
21
2004-03-12
3704
20
2004-03-12
2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