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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좌] 구약성서의 고난의 의미-욥기(갈릴리 성서아카데미 성서강좌)
  박경철 [ E-mail ]
  

갈릴리 성서 아카데미 제1기 성서강좌

제 6 주: 구약성서의 고난의 의미-욥기 연구
강사: 신학박사 박경철

들어가는 말
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원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신앙의 근거가 장래의 어떤 보상을 바라는 것인가? 구원이라는 대 명제뿐 아니라, 혹이라도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지금보다는 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곧 복을 받기 위해서 신앙하는 것인가? 흔히 기복신앙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신앙관은 올바른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한가? 예수 잘 믿는 사람에게도 고통이 따르기도 하고, 사업이 실패하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 그도 무언가 죄를 지었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오히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수도 안 믿는 비신앙이며, 일반사람들과도 비교해도 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잘 사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잠시 지금 뿐이지, 곧 더 큰 고난의 심판이 닥칠 것임을 믿고 위로를 삼아야 하는가? 도무지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고통과 고난을 당하는 그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상의 모든 질문들 앞에 흔쾌히 대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질문에 종종 처하곤 한다. 이상의 질문은 또한 어제, 오늘만의 질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이런 문제는 있었다. 이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구약성서의 욥기이다. 흔히 욥기는 구약성서 안에 있는 대표적인 ‘고난문학’이라고 불린다. 이상의 질문이 단지 신앙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기에 욥기는 신앙인들 사이에서만 읽혀진 성서의 한 책이 아니라, 비신앙인들에게 있어서도 대단히 많이 읽혀지고 문학 곳곳에 인용된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욥기는 이상의 질문들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알아보자.

욥기에 대한 오해들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에 도움이 되는 여러 성경구절들을 암송하는 경우들이 많다. 마치 명언처럼 외우며, 자신의 각 상황에 따라 적절한 성경구절에 따라 믿음을 추스르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교인들이 많이 외우고 있는, 또는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들이 있다. 다음의 구절들은 욥기에서 따온 것이다.
(욥 5:18-19) 『[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욥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 11: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각 구절만을 읽거나 또는 들으면, 우리가 지금껏 신앙해 왔던 것과 다름이 없는 은혜로운 말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욥기 전체의 문맥에서는 결코 맞는 말이 아니다. 이상의 구절들은 욥의 말도 하나님의 말도 아니다. 욥의 친구들인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욥에게 그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한 말들이다. 욥기는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잘못되었음을 말하는 책이다. 욥의 친구들은 당시 유대 정통주의자들로 대표되는 신앙과 사상을 대변하고 있으며, 욥기는 이런 당시의 신앙과 사상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는 책이다. 욥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제일먼저 교정해야 할 일은 성서의 어느 한 본문만을 명언처럼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욥기 전체를 읽고 전체의 문맥에서 각 말들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단지 욥기만이 아니라 성서 모든 책들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두 번째로 욥기 이해를 위해서 교정해야 할 일은 앞의 것과 관련해서 욥기 전체를 읽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욥기 하면, 동방의 의인 욥을 떠올리며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더 큰 축복을 받게 된 인물로 생각한다. 욥기는 전체가 4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욥의 이해는 욥기의 첫 부분(1-2장)과 마지막(42:7-17)만을 읽는 경우다. 42장으로 이루어진 욥기는 문체상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마치 해설자가 설명하는 듯한 이야기식의 산문체로 되어있고, 욥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3:1-42:6까지는 마치 일련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운문체로써, 욥과 욥의 세 친구들(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논쟁, 엘리후의 연설, 그리고 끝에 하나님과 욥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운문체로 된 이 가운데 부분에서 욥은 기존에 우리가 생각해온 그런 의인이 무고한 고난 앞에서 묵묵히 순종하고 참아내는 그런 모습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억울한 고난 앞에서 탄식하고, 따지고 불평하는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 욥의 고난과 그의 순종, 축복으로 이어지는 욥에 대한 기존의 생각은 욥기 전체를 읽지 않고 아주 작은 부분만을 갖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욥기 전체가 무엇을 말해주려는 것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욥기에 대한 오해 중 또 다른 하나는, 욥기 하면 으레 ‘무고한 자의 고난’을 다룬 책이라고 이를 욥기 전체의 주제로 단정하는 경우이다. 물론 욥기는 무고한 욥의 고난의 문제를 다룬 책이긴 하다. 그러나 욥기가 아무 잘못 없는 욥이 왜 고통을 당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 책은 결코 아니다. 이 문제를 욥기를 통해 해결을 찾고자 한다면 답이 없다. 무고한 자의 고난의 이유가 핵심이 아니다. 어째서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어찌하여 악인이 세상을 활보하는지, 도대체 여기서 하나님은 무얼 하시는지,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고 이를 해결하려는 신정론(神正論)의 문제가 욥기의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까닭모를 고통가운데서 탄식하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그 핵심이랄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정론의 문제, 이 세상에서 풀리지 않는 의의의 고난과 악인의 행복의 문제에 대한 논쟁이 욥과 세 친구들이 벌이는 논쟁들이다. 그러나 욥기는 이상의 논쟁들을 통해서는 결코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욥기가 전하는 해결은 세 친구들과 엘리후의 연설 이후에 나오는 하나님의 등장(38:1-42:6)에 있다. 욥기의 핵심 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등장으로 인해 전통적인 인과응보 사상에 젖어있던 세 친구들과 욥 까지도 지금까지의 저들의 생각들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이 판결된다. 욥의 회개(42:1-6)와 함께 새로운 축복으로 욥기서는 마무리 된다. 여태껏 자신의 무죄를 하소연하던 욥이 갑작스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무엇을 말하셨는가? 이것이 욥기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 해결책이다. 이제 이상의 일반적인 욥기에 대한 오해들을 교정하고 올바른 욥기 이해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욥기 전체를 다시 읽는 것이다.

욥기 전체의 문학적 구성
욥기 전체 모습은 다음과 같다:
1-2장: 서론
3장: 욥의 독백-탄식
[첫 번째 논쟁]
4-5장: 엘리바스
6-7장: 욥
8장: 빌닷
9-10장: 욥
11장: 소발
12-14장: 욥

[두 번째 논쟁]
15장: 엘리바스
16-17장: 욥
18장: 빌닷
19장: 욥
20장: 소발
21장: 욥

[세 번째 논쟁]
22장: 엘리바스
23-24장: 욥
25장: 빌닷
26장: 욥
---
27-28장: 욥

29-31장: 욥의 독백-하나님의 출현을 요구
32:1-6: 엘리후 등장 소개
32:7-33:33: 첫 번째 엘리후의 연설
34장: 두 번째 엘리후의 연설
35장: 세 번째 엘리후의 연설
36-37장: 네 번째 엘리후의 연설

38-40:2: 첫 번째 하나님의 질문
40:3-5: 첫 번째 욥의 대답
40:6-41:26: 두 번째 하나님의 질문
42:1-6: 두 번째 욥의 대답

42:7-9: 세 친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판결
42:10-17: 욥의 회복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42장으로 되어있는 욥기는 크게 두 부분(산문체: 서론 1-2장; 결론 42:7-17; 운문체: 3:1-42:6)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부분은 단지 그 문체상의 차이만이 아니라, 더 큰 차이점은 욥에 대한 모습이 전혀 다르게 상반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의인으로서의 욥과 순종하며 인내하는 욥의 모습이 서론에 나타나는 것이라며, 3장에서부터는 인내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차분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불평하고, 억울함으로 탄식하고 저항하는 마치 비신앙인의 모습이다.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문체상의 차이는 무엇이고, 서로 상반된 모습은 무엇인가?
욥기서의 이러한 차이로 인해 학계의 논의는 크게 둘로 나뉜다. 둘의 공통점은 두 부분의 기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논쟁점은 어느 것이 먼저이고, 또 어느 것이 나중에 덧붙여졌느냐는 것이다. 산문체가 먼저였다는 주장은 의인의 고난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전통 민속이야기로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는 것이다(예, 아브라함의 이삭 희생제물). 반면에, 운문체가 더 오래되었다고 보는 사람들은 후대 편집자가 전통적인 인과응보의 사상(예, 신명기)을 개정하기 위해서, 앞, 뒤에 삽입시켰다고 본다. 그러나 이상의 문제들이 결코 지금의 전체 욥기를 이해하는 데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 문제는 서로 상반되게 다르게 보이는 이 둘의 차이가 현재 합해져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지금의 최종형태의 욥기 전체의 구성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처음에 있다(1-2장). 무고한 자의 고난의 문제에 대한 친구들과의 논쟁과 이에 항변하는 욥의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가 오늘의 현실에서도 똑 같은 질문을 던지도록 현 욥기는 이루어져 있지 않다. 독자가 이 논쟁에 자신도 끼어들어 같은 고민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욥기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독자는 욥의 고난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이미 알도록 되어있다는 말이다. 즉, 욥의 고난은 사탄의 시비(?)로부터 전개된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바로 인과응보, 보상심리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 경외의 이유는 결코 그 어떤 보상에 있는 것이 아님을 욥기는 처음부터 결론내리고 있다. 현재 복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또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욥기의 시작이 있다. 이 시작의 결론 때문에 욥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논쟁에서는 해결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 경외가 인간의 중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어떤 결과, 보상을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만약 인간이 그 어떤 보상이 없는 것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에 대해서, 아니 보다 정확히는 하나님께,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에 욥기의 중심이 있는 것이다.
또한 욥기는 욥의 무고한 고난 가운데, 자신의 고난을 통해 자신의 고난의 이유의 문제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문제로부터 이웃의 고통의 문제로 확대되어 가는 점에 중시하고 있다. 이는 어느 한 개인의 고난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통해 이 세상의 고난의 문제로 눈을 돌리고 고난의 연대로 나아가게 한다는 점이다(24:4-8). 욥과 친구들과의 논쟁의 흐름은 자신의 고난의 문제에 대한 싸움이 점차 고통 받고 있는 욥(친구, 이웃)에 대한 친구들의 그 태도의 문제로 진행된다. 고난 받고 있는 이 현실 앞에서 단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만을 따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현실, 그 현실을 함께 나누어지는데 있다는 말이다.

욥의 고난의 문제에 대한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은 체 새로운 한 인물인 엘리후의 연설은 인간의 고난에는 신비가 있음을 역설한다. 이는 인과응보의 전통교리와는 다른 것이지만, 이 또한 해결책으로 제시되지는 못한다. 욥기는 이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그 해결책을 찾아나간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가 고민해 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듣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신비를 얘기할 뿐이다. 그의 창조세계의 질서엔 그 어떤 오류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질서 안에는 이미 악의 존재도 들어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있다. 악의 지배로 세계가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의 고통으로부터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항변이 잘못임을 전하는 것이다. 인간 중심적인 고난 이해에 대한 거부이다.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 책임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하는 세상의 고난 역시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 존재하는 엄연한 사실이고, 이제 인간이 그런 고난에 함께 어떻게 동참할지의 문제이다. 내가 판단한 하나님의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고난 연대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찬양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욥기의 심오한 주제가 되는 것이다.

욥기가 말하려는 것은 인과응보의 신앙이 아니다. 심판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또 구원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의로운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하지 않을지라도 자신들의 신앙을 굽히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그런 신앙!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이다.
2004-03-12 17: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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