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신학 논문, 원고, 컬럼, 번역 글 모음

  [원고] 새가정 9월호: 이해하기 힘든, 오해하기 쉬운 성서, 전도서 1
  박경철
  

이해하기 힘든 성서, 오해하기 쉬운 성서, 전도서(I)

박경철(전주대, 구약학)

1. 들어가는 말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의 근원은 앞날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힘든 일을 당해도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새로운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그 어떤 희망과 소망이 없다면 무엇으로 오늘을 버티며 살 수 있겠는가? 신앙은 믿음이다. 그 믿음은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희망과 소망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말했다. 믿음을 가장 근본으로 내세우는 기독교에 앞날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면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급성장한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한국교회의 모습이 모두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교회 부흥의 저변에는 언제나 믿음의 강조는 앞날에 대한 소망과 희망으로 맺어져 왔음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기도를 할 때도 소망을 말해왔고, 말씀을 전할 때도, 말씀을 읽을 때도 미래에 대한 희망찬 소망의 글귀에 밑줄을 그어댔다.
그런데 성서 66권 중에 신앙이이 그토록 바라는 모든 희망과 소망을 산산이 부술만한 성서 한 권이 있으니, 곧 전도서다. 전도서는 그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모든 게 ‘헛되고 헛되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렇다. 전도서하면 거의 모두가 ‘헛되다’, ‘해아래 새것이 없다’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전도서를 ‘헛된’ 성서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니 하나님만 잘 섬기며 살라”는 정도로 전도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종종 듣는 은혜로운 말이긴 하지만 실상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려는 이 세상에서 어찌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여길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특히 이 말은 이해의 어려움 보다는 자칫 오해하거나 왜곡하면 이단의 극단적 종말론으로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전도서가 극한 염세주의를 가르치는 교과서라고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도서와 ‘헛되다’의 연결에 대한 이상의 이해는 다만 해당 성서 본문 구절만 보고 갖게 되는 잘못된 선입견이다. 성서 본문에 대한 바른 이해는 그 전체 책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면에서, 마냥 ‘헛되다’로만 알고 있던 전도서가 진정(!) ‘헛된’ 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전도서 전체를 다시 읽어야 한다. 과연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된 것인가?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게 과연 무슨 말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전도서 전체에서 무엇이, 왜 ‘헛되다’고 했는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2. 전도서의 구성
전도서와 ‘헛되다’(헤벨)를 자연스레 연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도서 곳곳에 ‘헛되다’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래 ‘입김’, ‘숨’을 뜻하는 ‘헤벨’은 전도서에서 그것이 마치 잡을 수 없는 ‘바람’(루아흐)과 같이 ‘헛되다’는 의미로 전체 12장 가운데 무려 38번이나 쓰이고 있다. 구약성서 전체에서 78회 쓰이는 점과 비교해 보면 ‘헛되다’란 말은 전도서에 거의 다 나온다고 보아도 될 정도이다. 더욱이 전도서 첫 서두의 한 절(1:2) 안에 ‘헛되다’라는 말이 무려 5번이나 쓰이고 있으니 전도서 하면 ‘헛되다’부터 떠올리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시작뿐 아니라 전도서 끝도 동일하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다 헛되다”(12:8). 물론 현 정경의 최종형태는 전도자(코헬렛)의 마지막 말 뒤에 후기 편집으로 간주되는 에필로그인 12장 9-14절이 더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중요성은 뒤에 다시 다루기로 한다. 여하튼 전도서는 그 첫 시작과 마지막에서 동일한 말로 전체 책의 내용이 한마디로 ‘헛되다’라고 요약해 보여주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요약(?)은 전도서 전체를 통해서 도대체 무엇이 그리고 왜 ‘헛된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 12장 9-12절의 에필로그는 현 최종형태 정경으로서 전도서가 주는 의미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3. 본문분석
1) 전도서의 표제어와 전체 구도(1:2-3)
1장 2절은 ‘모든 것이 헛된’ 이유가 결국 세상(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아말)가 아무 ‘이득’(이트론)이 없다는 것 때문이라고 말한다(3절). 이 두 구절은 전도서 전체의 표제어와 같은 역할을 하며, 전도서 곳곳에서 자주 반복되는 것이다. 또한 전도서 전체에 걸쳐 ‘헛되다’(헤벨)는 것과 유사한 의미로 함께 자주 쓰이는 반복구는 ‘헛되고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헤벨 우르우트 루아흐)는 말이다(1:14; 2:11,17,26; 4:4; 6:9). 즉, 모두가 ‘헛된 것’(헤벨)은 아무리 ‘수고’(아말)를 해보았자, 그 ‘이득’(이트론)이 내게 돌아오지 않으니, 그 모든 ‘수고’가 마치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황된 것이란 말로 연결될 수 있다. 전도서 전체가 무엇을 말해주는지는 곧 이 구도(수고->이득없음->바람을 잡는 것->헛된 것)안에 들어와 있는 내용들을 살피는 일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단순히 모든 ‘수고’(아말)가 ‘헛되다’(헤벨)는 말과, ‘이득’(이트론)을 얻으려는 ‘수고’(아말)는 ‘헛된 것’이라는 말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이득’(이트론)을 한글 성서에서는 ‘보람’(표준새번역, 공동번역) 또는 ‘유익’(개역, 개역개정)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이트론’은 무언가 ‘남기다’라는 뜻인 ‘야타르’의 명사형으로 오직 전도서에만 나오는데, 이는 어떤 경제적 수익의 ‘이득’을 말한다. 이 ‘이트론’에 대한 이해가 전도서가 말하는 ‘헛되다’가 진정 무엇을 말하는지를 바로 이해하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단어이다.

2) 변하지 않는 자연의 순환(1:4-11)
전도자(코헬렛)는 제일먼저 끊임없이 진행되는 자연의 현상에 대해 언급하고(1:4-11), “해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고 말한다(1:9). 그러나 자연계의 변치 않는 모습에 대해 ‘헛되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자연계의 변치 않는 모습은 ‘순환’(슈브-돌아감)에 있다. 곧 해가 떴다 져서 제자리로 돌아가고(5) 바람이 불고 제자리로 돌아가며(6), 강물이 흐르고 제자리로 돌아간다(7)고 말한다. 이는 자연 각자의 ‘수고’ 모두는 무언가를 남기기(야타르) 위한, 즉 그 어떤 ‘이득’(이트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은 이 자연의 이치를 벗어난, 그 어떤 새로운 ‘이득’(이트론)을 남기려는 그런 것이 없다는 말이지, 지루한 자연계의 순환을 빈정대는 말이 결코 아니다. 자연의 ‘이득’을 구하지 않는 순환의 ‘수고’라는 이 절대 명제를 전도서 가장 앞에 두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전도서 전체 문맥을 통해 인간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다시 돌아가기에 인생살이에서 무언가 ‘이득’을 남기려는 모든 ‘수고’는 ‘헛된 것’임을 말하려는 것과 동일하다. 또한 자연의 순환은 곧 정해진 ‘때’(에트)와 관련된 것이며, 이 ‘때’에 대한 신학은 전도서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헛되다’(1:12-6:12)
전도자(코헬렛)는 이제 1장 12절 이하에서부터 줄곧 전도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세상사의 ‘헛된 것’이 무엇인지를 열거한다. 그 중에 특히 1:12-6:12까지 ‘헛된 것’이 바로 ‘바람을 잡는’ 허황된 것임을 계속 반복해나간다(1:14; 2:11,17,26; 4:4; 6:9). 전도자가 세상(해 아래)에서 경험한 지혜(1:12-18), 향락(2:1-3), 부(4-8), 권력(9-10)이 모두 ‘헛된 것’이었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11). 자신의 모든 ‘수고’(아말)가 ‘이득’(이트론)이 안 되는 것이었다는 말이다(10-11). 전도자의 자기 경험은 곧 무언가 더 ‘남기기’(야타르) 위한 ‘수고’(아말)였고 그것이 곧 ‘헛된 것’(헤벨)이었다. 이는 자연의 ‘이득’(이트론) 없는 순환의 ‘수고’라는 대명제와 반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이 2장 24절이다. 여기서는 부정이 아니라 매우 긍정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개인의 먹고 마시는 것과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지금 자신의 기쁨을 갖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오히려 역설한다(2:24). 무엇이 ‘헛되고’ 그렇지 않은 지의 구분은 바로 인간의 ‘수고’가 현재 자신의 모습을 만족하고 기뻐할 것인 지, 아니면 자신을 위해 무언가 ‘남기려는’(야타르), ‘이득’(이트론)을 챙기기 위한 것인 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2장 24절을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은 마치 여기에 ‘이득’(이트론)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보람’으로 번역하여 자신의 ‘수고’의 ‘보람’을 갖고 사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그러나 히브리성서 원문에는 ‘이트론’이라는 말은 없다.
왜 현재 자신에게 만족하라고 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수고’로 인해 무언가 ‘이득’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이다(24b-26).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이 모든 것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트/카이로스)가 있다. 3장은 장구하게 이 ‘때’에 대하여 열거하고(3:2-8),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 어떤 ‘수고’를 한다고 해서 이 모든 ‘때’에 그 어떤 ‘이득’을 볼 수도 없으며, 그런 것은 ‘헛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9). 이것을 전도자는 ‘깨달았다’(야다)고 말한다(12a).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3:12-13) 그러나 앞날의 ‘이득’을 구하려 애쓰지 않고 살라는 것이 단순히 현실 안주를 권하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이득’을 따져서 ‘수고’하지 말라는 것이며, 다만 지금의 자리에서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진정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며 살라는 말이다.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가르쳐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라는 염세주의적 성서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지금의 자리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이 전도서 곳곳에 계속 반복하여 쓰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2:24; 3:22; 5:17[18]; 8:15; 9:9; 11:8-9). 특히 마지막 결론부에 가서는 저녁에 거두어들일 것(이득/이트론)을 위해 아침에 씨를 뿌리는 것(수고/아말)이 아니라,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부지런히 일하라”고 권고한다(11:6).
-다음 호에 이어서
2005-12-03 0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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