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신학 논문, 원고, 컬럼, 번역 글 모음

  [원고] "목사님~~ 그 얘기 다 알아~~", 애린원 회보 원고
  박경철
  

아래글은 애린양로원 2006년 4월 회보에 실린 원고입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은 어두워지고 폭풍우가 불어왔어요.
후~~욱~ 휙~~ 우르릉 쾅 쾅 휘~~익~~~
모세는 지팡이를 잡은 손을 바다위로 쭈~욱 펼치더니 하늘을 향해 높이 올렸어요.
겁에 질려 부들 부들 떨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바라다보았어요....
그때 모세가 ....”

애굽을 도망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는 장면을 별의 별 몸짓을 해가며 신나게 설명하던 중이었다. 그때 방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힘없이 한 말씀하셨다.

“목~사~님~~ 그 얘기 다~~ 알아~~”

애린 양로원에 처음 예배드리러 갔을 때의 모습이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독일유학을 떠났다 만 10년이 넘는 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나는 성경을 들고 교회가 아닌 학교 강단만을 전전긍긍하며 돌아다녔다. 16세기 유럽의 부패한 교회를 향해 신학교 교수였던 마틴 루터의 개혁의 외침 때보다, 오늘날의 교회가 더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마치 나 혼자만 이 부패(?)한 한국교회를 벗어나 교회 개혁을 외치는 깨끗한(?) 목사인양 자부해 오고 있었다. 나는 한 손엔 성경을 들고 있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인 그 성경이 전해져야 하는 교회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당당했던(?) 나를 한 없이 부끄럽게 여기고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게 하여 교회를 너무도 사랑하게 한 곳이 다름 아닌 임상교회이고 애린원이다.

옛 독일에서의 전원생활이 그리워 시골의 전원적인 모습을 갖춘 임상교회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까지만 해도 내게 교회, 특히 농촌교회는 한 없이 마음 편한 쉼터 같이 여겨졌을 뿐이다. 김제들녘에 지는 붉은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한가로움이 한동안 내게 있었다.

임상교회에 부임하고 얼마 뒤 애린양로원 창립 79주년 기념축사를 준비하던 내게 큰 변화가 왔다. 원고준비를 위해 들여다 본 애린양로원 홈페이지에 실린 양로원 설립과 관련된 짤막한 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땅을 사랑하라’는 삼애(三愛)의 정신에 세워진 애린 양로원과 설립자 고 염천 한상용 장로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설립자 염천 한상용 장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섬 주섬 모으기 시작했다. 들녘의 붉은 저녁노을의 한가로움에 취해있던 발걸음은 애린원에 세워져 있는 고 염천 한상용 장로의 기념비로 자연스레 옮겨졌고, 내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보이지 않는 손의 온기를 점차 하나 둘씩 느끼기 시작했다.
고 염천 한상용 장로, 낡은 비문에 얽힌 그 뒷얘기는 이렇다:

[...기미년 삼일만세운동 다음 해인 1920년에 교회를 세운 염천은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노비들에게 땅을 주어 이들을 해방한다.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부러 이들을 멀리 떠나게도 한다. 1925년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업어와 돌보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양로원인 현 애린원을 세운다. 그것도 3월 1일에! 전주에서 군산까지 잘 닦인 도로가 반도 제일의 곡창지대인 호남의 쌀들을 일본으로 빼내 갔던 일제수탈의 도로였다고 들었는데, 당시 염천은 김제 들녘에서 이미 한편으론 봉건의 마지막을 훌훌 털어버리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일제 침탈에 앞서 우리의 땅을 지켜내는 일들을 위해 농우회를 조직해 나간다. 나라 잃은 설움이 못 배움으로부터 왔음을 직시한 염천은 암울한 시대, 서슬 퍼런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중생학원을 세우고, 밤에는 교회에서 야학을 통해 민족교육에 헌신한다. 일제가 물러난 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염천은 길거리로 내몰린 전쟁고아들을 데려다 염천애육원(현 염천 기념관)을 세우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도시의 빌딩 숲속에서 자라온 나에게, 머나먼 이국땅에서 월드컵을 치룬 “대~한~민~국”의 한 일원임을 자랑하며 IT 강국을 뽐내던 나에게 농촌은 잠시 도시인이 쉬어가는 한가로운 쉼터 정도로 인식될 뿐이었던 나에게, 염천에 얽힌 끊길 듯 이어지는 옛 이야기들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참으로 얼마나 귀중한 땅이며, 거룩한 땅인지를 새삼 소스라치게 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을 적어가던 애린원 기념 축사 원고의 잉크가 채 마르기 전까지만 해도 애린원의 ‘어르신’들은 나에겐 여전히 ‘양로원’의 ‘할머니, 할아버지’일 뿐이었다. 양로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른바 배운 지식인 목사에겐 다만 보다 잘 사는 국가사회가 만들어 가는 사회복지의 한 프로그램의 대상들로만 인식될 뿐이었다. 거동을 잘 못하는 이들을 위해 잠시 손잡아 주는 일이면 충분해 보였다.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목사가 할 수 있는 예배와 성경공부란 단지 재미있는 구연동화 정도만으로 때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 잘 난(?) 목사에게 던진 한 할머니의 외마디가, “목~사~님~~ 그 얘기 다~~ 알아~~”였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아니 그런 생각조차 못했던 내게, 당신들은 [다 안다]고 하신 것이다. 그만큼 내가 몰랐다. 우선은 평생을 교회를 섬겼던 분들이 계셨음을 몰랐다. 염천을 통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다시 보면서 농촌이 도시인의 잠시의 쉼터가 아니라, 생명의 보금자리임을 다시 볼 수 있었다면, 한 할머니의 [다 안다]는 외마디는 지금까지의 [나는 안다]의 모든 것을 [나는 모른다]로 고치게 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안다]고 했던 것들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이제 내가 진정 더 [알아야 하는 것]들이 무엇이어야 하는 지를 다시 적어가게 된 것이다. 도시의 대형교회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건강한 교회를 향하기보다는 오히려 부패한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작은 농촌교회를 선택했다는 것이 점점 나의 자랑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교만함이 자라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은 주일날 예배시간이 10시 30분 인줄 정말 모르시는(?) 분이다. 그래서 언제나 30분전에 아니 한 시간도 더 이른 시간에 교회에 오신다. 교회와 가장 가까이에 사시는 이분들의 발걸음이 한 시간 전부터 분주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분들은 사실 [알고 있다]. 채 1-2분이면 갈 거리임에도, 이들에겐 30분 이상이나 걸린다는 것을, 그래서 더 일찍 서두른다. 교회를 오고 가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내야하는 한 할머니에게 물었다.

“교회 다니시기 힘들지 않아요?”
“내가 뭐가 있어? 난 교회 밖에 없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보다 젊은(?) 양로원 밖의 교인들은 교회 밖에 [할 일이 많아서] 교회가 전부가 아니다. 그런데 세상을 향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양로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오직 교회밖에 없음을 [다 알고] 계시는 건가? 그러면 오늘도 교회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라는 목사의 설교를 오직 당신들만이 진정으로 온 몸으로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인가?
애린원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들은 더 이상 힘없는 노인들로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라, 우리가 받들고 모시고 새로 배워야 하는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2006-04-02 1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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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영 아! 이제야 동생이 왜 그곳에 있으며 그곳에 뼈를 묻겠다고 했는지를 조금은 알것도 같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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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진 교수님..시인같아요~~^^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 한편 눈에 담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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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목사님...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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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서대치 이시대에 예레미아 와 같은 선지자가 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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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이 글을 읽는데 눈물이 왜 나는지..^^;; 주님의 은혜로 늘 강건하시고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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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생 아~ 그래서 녹진교회 어르신들이 그렇게 교회를 일찍 나오셨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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