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3월 5일: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사순절 첫째주일
  박경철
  

3월5일: 사순절 첫째주일

본문: 구약: 이사야 58:3-7; 신약: 마태복음 6:16-18

제목: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

지난 주간 저희 집에서 쇼킹한 일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문집에 실린 작은 아이의 글 때문이었습니다. ‘양성평등’에 관한 글이었는데, 초등학교 4학년의 눈에 비친 남자 셋에 하나뿐인 여자 엄마와의 집안 모습에 관한 글이었지요. 한 마디로 우리 집 ‘양성평등’의 점수가 30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교회에서나 학교 강의실에서도 항상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꽤 ‘열린’ 남자라고 자부해 왔는데, 정작 집에서는 ‘30점’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온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지요. 어디 가서 변명할 수도 없고, 참으로 난처하게 됐지요. 가족들은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지만, 다른 한편으론 밖에서의 모습과 안에서의 제 모습을 다시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모습은 어떨까요? 제 자신부터, 교회에서는 목사이기에 성도들에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을 권면하지만, 밖에서, 아니 남들의 눈보다도 오히려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점수를 주시면 얼마인가?]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오늘은 주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사순절의 첫째주일입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시작된 40일간의 사순절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 땅에 실현하고자 걸으셨던 주님의 삶을 기억하고, 특별히 십자가의 고난을 기념하여 경건한 기간으로 정한 오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이 기간에 교회는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 등의 사순절 특별 프로그램들을 갖습니다. 우리 교회도 사순절 기간에 특별히 전 교인의 연속기도회를 갖게 됩니다. 교회력에 맞추어 생활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성서의 말씀을 일상의 삶에 접목하려는 것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미가 있고, 좋은 목적이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자칫 외형적인 행사로 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 이사야서 말씀은 그러한 이스라엘의 외형적인 신앙의 행위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이사야서 58장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행위, 특별히 금식에 관한 것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국가의 멸망과 함께, 하나님의 집인 성전의 파괴는 실로 오직 야훼만을 의지하는 국가신앙에 절대적 위기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로부터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을 통해 철저한 회개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비록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본토로 돌아온 뒤에도 이 국가적 금식일은 끊임없이 진행되었지요. 그러나 금식의 본래적 의미는 점차 사라지고 외형적인 금식일만이 지켜질 뿐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러한 금식이 계속 필요한 지의 의문도 점차 커져갔던 것은 스가랴서 7장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서 58장은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를 고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예언자가 받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에 대한 고발의 내용은, 매일 같이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묻기를 즐겨하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행위를 지적합니다. 얼핏 보면 무엇이 문제일까 의문을 갖지만, 곧이어 나오는 예언자의 고발을 통해 무엇이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나아와 드리는 종교적 행위를 일삼는 것 같지만, 정작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약자들을 짓밟고 불의와 부정을 일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불의의 모습은 그 어떤 종교적 신앙의 행위를 정당화 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회개와 탄식의 외형적 행위로 나타난 것이 곧 ‘금식’ 이었지만, 음식을 폐하고, 잿더미에 앉아 옷을 찢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 금식인가의 질타를 통해, 진정한 금식, 곧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 과연 무엇인지를 예언자는 선포합니다.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헐벗은 자들을 입히며, 갇힌 자들을 풀어주는 일련의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야 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라는 것이지요. 사회정의를 외면 외형적 종교행위를 이사야서는 이미 그 처음부터 신랄하게 비판했었습니다. 이사야서 1장을 보면, 하나님께 나아와 드리는 모든 희생제물과 모든 거룩한 초하루와 안식일등의 집회를 없애버리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 나아와 희생제물을 드리는 그들의 손,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들의 손에 피가 묻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불의와 부정을 일삼으면서, 하나님께 정기적인 종교 행위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사야의 질타의 말씀이 오늘 우리와 작금의 한국교회에게는 들리지 않을까요? 주일마다, 아니 수많은 교회의 예배와 기도회, 성경공부, 수많은 각종 헌금들이 드려지는 오늘 한국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한 손으로는 헌금을 드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불의를 일삼는다면, 그 예물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까요? 한 손으로는 기도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약한 이들을 짓밟는다면,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실까요?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십니다. 남들이 볼 때, 외형적으로는 철저하게 율법의 말씀대로 살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이여, 회칠한 무덤이여!”라고 질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도 이사야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신약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외식하는, 남들에게 보이려는 금식을 나무랐던 것이지요.

사순절을 맞아, 이 기간에 성도로서 나름대로 신앙적 결단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고난에 작게라도 참여하고자 금식을 계획하기도 할 것입니다. 40일간의 사순절의 성서적 의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모세의 40일간의 금식이 있지요. 사순절 기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계명, 율례, 법도)을 받는 모세의 시내산의 40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이 기간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제일먼저 광야로 나가 40일간 금식하셨던 주님의 모습을 떠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기간이지요. 십자가의 삶을 준비하는 기간이지요. 남을 위한 나눔과 섬김, 헌신의 길을 가려는 기간인 것이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기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나 혼자만의 금식과 기도만이 아니라, 이 땅에 연약한 이들을 돌보는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 정의를 세우는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죽임의 문화들에 저항하고 생명, 살림의 문화들을 위한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물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물이 되기 위해, 이 예물은 나만의 축복을 위한 뇌물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공동체와 함께 나누기 위해 드리는 나의 헌신이며, 나의 섬김의 희생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우리의 손은 연약한 이들을 일으켜 주고 안아주는 손들이 되어야 합니다.
2006-03-12 14: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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