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3월26일: "농부 하나님"-사순절 넷째주일-농민선교주일
  박경철
  

3월26일: 사순절 넷째주일-농민선교주일

본문: 구약: 호세아 2:16-23, 신약: 요한복음 15:1-5
제목: "농부 하나님"

지난주에 행복하게 사는 길 중에 하나로 ‘자랑하며 살기’를 전했는데, 오늘도 역시 행복하게 사는 길 또 하나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행복한 삶에 대한 바람은 언제나 미래적인 것이지요. 곧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행복을 바라는 바로 이 ‘희망’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특히 우리들의 희망, 농촌의 희망, 우리 농촌교회의 희망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행복의 수치가 크면 클수록 희망의 수치가 자연히 커지게 될 것이지요. 그러면 누가 큰 행복을 바랄까요? 보다 큰 희망을 갖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의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내일에 대한 희망은 더욱 커집니다. 오늘 우리 농촌의 현실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에 탄식하고 좌절하고 쓰러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큰 행복의 희망으로 노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희망하며 어떤 내일의 행복을 꿈꾸며 살아야 할까요? 어서 빨리 낙후된 우리 농촌도 저 화려한 도시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까요? 우리 농촌교회의 기도제목이 도시의 대형교회의 모습이어야 할까요?

농촌을 일구는 이들의 공통적인 희망은 올해 뿌리는 씨앗이 잘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농작물이 잘 자라기 위해 여러 농사기술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연이 이를 잘 뒷받침을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종자가 중요하고 농사법이 중요하다해도 비옥한 농토가 그 기본이요, 때에 따라 적당한 햇빛과 비가 내려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모든 농사의 풍작은 땅과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지요. 사람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된 현대 과학의 시대에 산다고 해도 사람이 땅과 하늘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누구보다도 예나 지금이나 땅에 먹거리 생명을 지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땅과 하늘을 하나의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것이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면서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은 농사짓기에 그렇게 좋은 땅은 아니었지요. 무엇보다도 비가 잘 내리지 않는 마른 광야가 대부분인 땅에 살던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은 곧 비를 관장하는 가나안의 신 ‘바알’ 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그래서 저들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내고 마른 광야 길을 인도해 주셨던 야훼 하나님을 잊고, 비를 내려주는 ‘바알신’을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예언자 호세아가 나타나 바알신을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고 오직 야훼 하나님만을 따르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호세아서 말씀에는 ‘이스르엘’ 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르엘’은 이스라엘 중북부에 위치한 가장 비옥한 평야 지대입니다. ‘이스르엘’이라는 지명은 ‘하나님이 씨를 뿌리다’라는 뜻입니다. 땅이 비옥한 이유가 하나님이 씨를 뿌렸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지요.

그런데 호세아는 아무리 비옥한 ‘이스르엘’ 땅이라 해도 그 땅의 모든 농작물의 풍요로운 결실의 이유는 하나님이 하늘에 허락해야, 하늘이 땅에 허락을 하고, 그래야 땅이 ‘이스르엘’에 곡식이 나도록 응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풍요의 기본 전제는 곧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호세아는 백년전 이 ‘이스르엘’ 땅에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예후의 혁명이었지요. 예후는 바알 숭배자들을 모조리 살육하고 바알종교를 척결하려 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바알을 없앤 예후 이지만 호세아는 그를 칭송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가 이스르엘 땅에서 흘린 피흘림의 죄를 심판합니다. 풍요로운 이스르엘 땅을 위한 호세아의 전제는 이 땅에서 모든 살육의 전쟁을 종식하고 죽임의 무기인 활과 칼을 꺽는 것이어야 한다고 미리 말합니다. 호세아는 홍수심판 이후 하나님이 노아와 모든 생명체와 맺었던 피흘림의 금지 계약을 다시 떠올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과 다시 정의와 긍휼, 사랑의 새로운 결혼을 약속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하나님은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모든 농작물에 응답하니 그것이 곧 이스르엘에 응답할 것’이라는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씨를 뿌리는’, ‘이스르엘’은 곧 하나님이 이 땅에 정의와 생명을 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농촌교회의 희망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정의와 생명을 심는 땅을 갖고 사는 농촌이 될 때, 떠나갔던 농촌이 다시 돌아오는 농촌이 될 것이지요. 여기에 우리 농촌이 가장 큰 행복의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농부 교인여러분! 씨를 뿌릴 때, “하나님이 씨를 뿌려주십시오” 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뿌리십시오. 곧 ‘이스르엘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지요. 씨를 뿌리고 종자를 심을 때, 이것이 “생명이 되게 하옵소서” 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심으십시오. 정의를 외면하고, 생명의 땅을 외면하고, 오직 다산과 풍요의 바알을 외치며 줄행랑을 쳐대는 저 바알의 도시가 모든 생명들과 맺은 피흘림의 금지인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고 돌아오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며 심는 것입니다.

호세아가 ‘이스르엘’ 곧 씨를 뿌리는 농부 하나님, 정의와 생명을 심는 농부 하나님을 말했다면, 예수님은 오늘 읽은 신약성서 본문 말씀에서 자신을 포도나무요 하나님은 참 농부라고 비유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가리켜 포도나무에 달린 ‘가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가지’가 원 줄기에 붙어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곧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나니, 곧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물러,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는 것을 또한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참 생명이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주님 안에 있는 성도들은 이제 생명의 열매들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며 많은 열매를 기대하는 것처럼, 농부 성도는 단지 내 밭에, 내 논에 많은 열매 맺기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점점 더 무시당하고 버림받는 이 농촌의 땅에 생명을 심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점점 더 짓밟는 현대인들이 다시 생명의 땅으로 찾아 올 수 있는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농민선교주일을 맞아 우리 농촌교회가 갖는 행복한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6-04-01 20: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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