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4월16일: 부활과 살림-부활절
  박경철
  

✞ 지난 주 말씀(4월16일: 부활주일)
본문: 구약: 이사야 26:19-21; 신약: 누가복음 24:31-35
제목: "부활과 살림“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리는 부활주일입니다. 일 년의 교회력을 맞추는 그 중심은 유월절, 곧 이 날에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을 중심으로 날짜가 짜 맞춰진 것입니다. 기독교의 많은 절기들 중에 부활절은 그 복음적 의미에 있어서 성탄절 보다 더 중요한 날입니다. 독일에서는 부활절 방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일주일간 학교뿐 아니라 회사까지도 공휴일로 쉬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부활절 휴가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독일에서는 부활절이 아주 큰 절기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독일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정작 오늘 부활절을 맞으면서도 우리는 이 날이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활’은 ‘다시 살아남’을 의미합니다. 곧 ‘다시 살았다’는 감격은 ‘죽음’이 전제되는 것이지요. 곧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삶’의 ‘부활’의 감격이 없는 것입니다. 부할절이 그리스도의 ‘다시 삶’을 말한다면, 그리스도의 ‘삽자가’의 감격이 기독인들에게 없기 때문에 오늘날 ‘부활절’의 감격이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2천 년 전 한 젊은이가 실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역사적인 ‘기적적’ 사건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의 사건이 오늘 나의 삶과 직결될 때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이요, 그의 다시 살아남이 아니라, 나의 다시 살아남이 있어야 기독인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이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 누가복음 말씀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통해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잊고 삽니다.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났지만, 두 제자는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이 전혀 다른 이상한 형체였을까요? 두 제자는 생전의 예수를 잘 알고 있던 이들이었음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두 제자는 바로 며칠 전 일어났던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의 사건을 잘 알고 있고 오히려 길에서 만난 이 낯선 이에게 ‘어찌 당신만 알지 못하는가’고 반문합니다. 길을 가던 두 사람은 십자가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던 이들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문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와 그들의 주고받는 내용을 통해, 이들은 예수(인자)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성서(모세와 선지자)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이들에게 성서, 곧 당시 구약성경이었던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을 자세히 풀어줍니다. 그리고 그제야 그들은 ‘눈이 뜨이게’ 됩니다. 곧 이 눈뜨임‘, 이들의 ’깨달음‘이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특히 본문은 이 두 사람이 예수가 풀어 준 성서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곧 부활의 신앙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 지를 오늘 누가복음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성서의 말씀을 가슴 뜨겁게 듣게 되고, 그로인해 새로운 깨달음의 ’눈뜨임‘이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오늘 부활절을 맞으며, 이 날이 오늘 우리 신앙인들에게 무한한 감격의 날로 기념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우선입니다. 말씀 듣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말씀을 들을 때, 마음에 뜨거운 감격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눈뜨임‘의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의 중심 내용이 무엇입니까? 고난을 통한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고난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참 의미에 대한 가슴 뜨거움의 새로운 깨달음이지요. 십자가의 삶의 의미는 오늘 고통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위한 십자가가 곧 인자의 고난이지요. 오늘 세상과 이웃,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것을 살리기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것, 죽이는 것들에 대항하며, 죽임이 아니라 살림을 위해 살아가는 절망과 포기, 패배의 고난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아니라,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내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져 죽는 삶의 결단과 그로인해 많은 열매들의 부활을 이루어내게 된다는 새로운 ’눈뜨임‘과 이 깨달음의 ’뜨거운‘ 감격인 게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성서 이사야서의 말씀은 무엇이 부활인지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 날이 오면....
야훼께서 온 백성을 가리웠던 모든 수의를 벗기고 찢기우실 것이며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라(25:7-8)...
왜냐하면 그 날이 오면....
땅은 그 속에 스며든 피를 드러낼 것이며
살해당한 사람들을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26:21)
이사야는 부활은 곧 땅이 죽은 이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이 부활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죽은 자들의 다시 살아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과 불의로 저지른 살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것이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땅이 그대로 모른 척 덮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다시 드러내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곧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들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는 그런 살아남을 말하는 것이지요. 마치 국가인권위에서 조사하고 있는 우리 현대사의 수많은 의문사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같이 말입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는 우리 신앙인의 부활신앙은 옛 과거의 기적사건에 대한 경이로움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모든 죽임의 세력들에 맞서서 생명보존과 살림의 실천적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나의 새로운 결단을 위한 말씀에 대한 ‘뜨거운’ 깨달음과 ‘눈뜨임’이 필요한 것이지요.
2006-04-23 00:57:07



   

관리자로그인~~ 전체 81개 - 현재 2/6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66
박경철
2006-10-01
2908
65
박경철
2006-09-24
2681
64
박경철
2006-09-17
2185
63
박경철
2006-09-10
1958
62
박경철
2006-09-02
2083
61
박경철
2006-06-18
2107
60
박경철
2006-06-10
2323
59
박경철
2006-06-10
1887
58
박경철
2006-06-03
3171
57
박경철
2006-06-03
1989
56
송면규
2006-06-03
2813
55
박경철
2006-04-30
1976
박경철
2006-04-23
2113
53
박경철
2006-04-15
2509
52
박경철
2006-04-01
2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