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6월 11일: "선택"-성령강림후 첫째주일
  박경철
  

✞ 지난 주 말씀(6월11일-성령강림후 첫째주일)
본문: 구약: 신명기 30:15-20; 신약: 마가복음 4:3-9
제목: 선택

만약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이 부여된다면 어쩌면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한 조건을 갖춘 사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것을 원하고, 좋은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좋고 행복한 것인지를 알지만 마음대로 그것을 소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 갖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모든 것을 선택할 권한만 있다면 우리의 행복한 삶은 영원히 보장될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모든 삶들을 돌이켜 보면 우리의 선택에 따라 나타난 결과에 대해 만족하기도 하고, 때론 후회하기도 합니다. 행복을 선택했지만 결과는 불행으로 다가올 때들도 있지요. 좋다고 여긴 것을 선택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선택할 때 믿고 바랐던 대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보다는 보다 나은 내일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 옵니까? 그것은 오늘에 대한 만족이 없는 데에서 옵니다. 어제의 선택이 오늘의 결과를 만들었다면, 오늘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어제와 다른 내일을 선택하려고 할 것입니다. 오늘을 만족하는 사람은 오늘을 내일의 선택으로 재차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는 부부는 다시 태어나면 다른 배우자를 선택하려 할 것이고, 오늘 행복한 부부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하겠소’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직장에서, 또는 오늘 논과 밭에서 일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은 오늘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또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점점 더 열악해져가는 이 농촌에서 땀 흘려 일하는 당신들은 농사가 천하에 가장 귀한 일이라 여기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농군의 아들과 딸로 태어나기를 소망하십니까? 이런 마음이 있는 이들은 지금 흘리는 땀의 참된 기쁨을 소유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교인의 행복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를 다녀도 모두가 한 하나님의 한 백성이요, 성도이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에 대해서, 본 교회 목사와 교인들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다른 교회와 비교하며 늘 마음속에 다른 교회를 동경하는 교인들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내가 선택하는 기준은 곧 오늘 나의 삶에 대한 가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 가정, 직장 그리고 교회 내가 속해있는 지금의 나의 모든 것들에 대해 오늘 내가 얼마만큼의 행복의 수치를 갖고 사느냐에 내일의 선택의 기준이 달려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선택하기를 소망합니까? 그렇다면 오늘을 어제보다 더 행복하게 꾸리십시오. 오늘과 다른 내일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내일을 기다리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바꾸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두 나그네가 불덩이 같은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한 나그네는 너무 고통스러워 여행을 포기하고 싶었지요. 다른 나그네는 지친 친구를 위로하며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 눈앞에 무덤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친구가 말했습니다.
“이제 야 올 것이 왔군. 저 사람들도 우리처럼 지쳐서 죽었을 거야...”
그런데 다른 친구는 그를 위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무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는 희망의 징표라네..”
과연 조금 더 가니 쉬어갈 마을이 나타나 그 두 나그네는 극적으로 구출을 받게 되었지요.

내일의 희망과 생명은 내일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포기하고 절망하게 하는 오늘에서 나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는 바로 오늘에 있는 것이지요. 내일의 선택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닙니다. 또한 강제로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선택으로 주어졌습니다. 오늘 읽은 구약 신명기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질 축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의 선택에 관하여 말해줍니다. 누구나 축복과 생명을 선택할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이스라엘은 그완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해방의 신, 광야의 신인 야훼를 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눈앞에 보이는 풍요의 이방신들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처신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실상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들 역시 우리 눈앞에 보이는 풍요의 신인 맘몬인 돈 앞에 고개 숙여 경배하며 살아가지는 않나요? 그러나 내일의 축복은 내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규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있음을 성서는 줄기차게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축복과 생명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늘 읽은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잘 아는 씨 뿌리는 비유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길 가에, 돌밭에, 가시밭에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들려지는 이 말씀은 어디에 뿌려지고 있나요? 내일의 축복인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의 조건은 옥토에 씨가 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결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오늘을 바꾸는 선택에 성도의 내일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2006-06-18 06:37:09



   

관리자로그인~~ 전체 81개 - 현재 2/6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66
박경철
2006-10-01
2894
65
박경철
2006-09-24
2673
64
박경철
2006-09-17
2175
63
박경철
2006-09-10
1949
62
박경철
2006-09-02
2074
박경철
2006-06-18
2099
60
박경철
2006-06-10
2314
59
박경철
2006-06-10
1879
58
박경철
2006-06-03
3164
57
박경철
2006-06-03
1980
56
송면규
2006-06-03
2804
55
박경철
2006-04-30
1962
54
박경철
2006-04-23
2102
53
박경철
2006-04-15
2501
52
박경철
2006-04-01
2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