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9월3일-창조절 첫째주일-창립86주년기념주일: "내게 교회란"
  박경철
  

✞ 9월 3일-창조절 첫째주일-창립86주년 기념주일
제목: “내게 교회란?”
성경: 구약 학개 1:7-11; 신약: 마태복음 6:31-33

오늘은 교회력에 따라 창조절이 시작되는 첫 주일임과 동시에 우리교회 창립 86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땅에 생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의 생명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참 의미를 깨달으며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앞으로 창립주일을 ‘고향교회 방문의 날’(Home Coming Day)로 정해 한국 교회에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우리 민족은 명절을 맞을 때마다 고향 방문의 행렬로 ‘민족 대이동’이라는 우리 민족만의 특이한 풍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계신 고향 방문의 ‘민족 대이동’의 모습은 앞으로 길게 잡아 15-20년이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아마 우리 시대의 마지막 모습일 지도 모릅니다. 점점 빨라지고 그 규모도 커져가는 이농현상과 세계화의 속도에 농촌의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질 것이고, 지금 우리 부모님은 어쩌면 농촌을 지키는 마지막 세대가 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농촌에 사는 이들이 적어지고 농촌이 사라지면 농촌교회도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터, 농촌교회가 사라진다는 것은 더 크게 보면 생명의 신앙, 창조의 영성이 사라진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화는 도시화를 의미합니다. 땅을 등지고 잃어간다는 것은 자본의 시장을 이끌어가는 바알에게, 맘몬에게 야훼의 창조신앙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고향에 더 이상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고향을 찾아올 이는 점점 더 드물어 질 것입니다. 이때에 농촌 교회를 살리고, 한국교회가 창조신앙을 잃어가지 않기 위해 농촌교회를 살리는 일로 고향교회 방문의 날을 개교회 마다 만들어 새로운 한국교회의 문화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어느 한 날 민족이 대 이동 하는 모습은 없을 지라도, 매 주일 도시에서 고향교회를 찾아가는 일들이 도시교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정착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농촌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시교회를 살리는 일도 되기 때문이지요.
교회란 내게 어떤 의미입니까? 오늘 나는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옵니까? 나의 신앙의 한 표현 방법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것 일 수 있겠지만, 진정 교회란 내 삶에서 몇 번째 자리를 차지하나요? 믿음에 따라 살아가는 것과, 나의 삶을 위해 믿음이 때에 따라 필요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내 삶이 중심이고, 그 삶을 보다 풍성하게 해 줄 필요로 신앙이 요구되는 것은 성서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풍요한 땅의 축복을 위하여 바알을 숭배하였지요. 이는 자신의 삶이 중심이고, 그 삶을 위해 신앙을 필요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훼신앙은 광야의 신앙이지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오직 야훼만을 의지하고 따라야 하는 시내산의 말씀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말씀과 신앙이 요구되고, 땅의 약속은 전적으로 야훼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땅의 역사입니다.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그 처음은 ‘지시할 땅으로 가라’로 부터였고, 조상들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한 야훼의 뜻은 출애굽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곧 조상들과 약속한 그 땅으로의 출발을 의미 했습니다. 시내산에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 역시, 그 땅에서의 축복과 저주에 관한 것이었지요.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도 땅 점령, 아니 그 땅의 분배의 이야기이며,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의 이야기가 곧 사사시대와 이스라엘 왕국역사이며 역사의 마지막은 그 땅을 잃어버리고 고향을 떠나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이야기입니다. 포로기 동안 예언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위로는 역시 땅으로의 귀환이었지요. 오늘 읽은 구약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그 뒤의 이야기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여러 재난으로 인해 살아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로 하여금 먼저 성전부터 지을 것을 요구받습니다. 백성들의 대답은 ‘아직은 아니다’ 이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의 집을 짓는 일이 급선무였지요.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당장 살 집이 먼저지, 어떻게 성전건축이 먼저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난을 다스린 후에 하나님을 찾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서는 그 재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먼저 하나님의 집을 지어야 그 재난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이지요. 재난과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신앙의 우선권에서 성전건축이 의미하는 바는 곧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남을 돌보기란 더 어렵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더 챙기려 하지요. 모두가 어려울 때, 하나님 안에서, 신앙 안에서 우선 모두가 함께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학개 예언자의 외침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전건축을 외쳤던 학개의 말씀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성전건축이 필요한 곳에서 자주 애용되는 본문입니다. 교회 건축을 위해서 학개서가 애용되는 것은 하나님 보다 교회 건물이 우선시 되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했습니다. 주님의 몸으로서의 공동체가 곧 교회인 것이지요. 그 공동체에 나를 먼저 귀속시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내가 우선이 아니라, 교회가 우선이 되는 것은, 이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를 우선시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신약본문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지요. 예수가 전한 복음의 시작이 ‘하나님 나라’였고, 예수 자신은 겟세마네 동산의 마지막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고 했습니다. 곧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던 주님의 십자가였지요. 그 십자가가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고, 그것이 곧 ‘교회’라고 본 것입니다. 즉 ‘교회가 먼저!’라는 말은 주님의 십자가의 삶이 먼저 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내가 먼저가 아니라, 남을 먼저,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십자가의 삶이 곧 교회인 것이지요. 이 헌신과 봉사 나눔의 삶을 먼저! 살라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2006-09-10 06: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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