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9월10일-창조절 둘째주일: "신앙의 거울"
  박경철
  

✞ 9월 10일-창조절 둘째주일
제목: “신앙의 거울”
성경: 구약: 창세기 1:31; 신약: 마태복음 11:16-17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산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무언가 자신의 진실 된 모습을 감추고 외식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처럼 들릴지 모릅니다. 물론 그런 부정적인 모습을 빗대어 말하곤 하지만, 이 말이 단지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사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들에서 나타나는 나를 가꾸는 일들 중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곧 거울을 보고 사는 것이지요. 거울을 보고 머리를 다듬고 얼굴에 다른 무엇이 묻지 않았나 살펴보고 집을 나서지요. 남에게 나의 깨끗함을 보여주려고 사는 것입니다. 남에게 보일 필요가 없으면 나를 잘 가꾸지 않지요. 단지 내 외모만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진실한 안의 모습까지도 아름답게 가꾸려는 모습으로, ‘남에게 보여주려고 사는 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나를 가꾸는 것은 남을 의식한 ‘관계’의 문제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부부간의 애정의 표현은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당신이 보기 좋게’를 위해 나를 가꾸는 부부는 행복합니다. 밖에 나갈 때, 남에게 보여주러 나갈 때 보다, 집에서 서로에게 더 예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할 때, 그 가정이 행복한 것이지요. 매일 마주 대하는 사람일수록 아무렇게나 대하기가 쉽지요. 그러나 다른 누구보다도 부부가 서로에게 더 아름답게 보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흔히 부모가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할 때, “이게 다 너 위해서야”라고 말하지만, 자녀가 공부 잘 하면, 그 기쁨은 자식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지요, 자녀들이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더 열심히 공부하는 거지요.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에게 좋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삶의 표준이며 삶의 지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일 테고, 이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사는 것이지요. 성서의 처음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러나 이는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천명하려는 것에 그 중심이 있기 보다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만드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온 우주 만물이 그에게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맨 처음의 일이었습니다. 단지 세상 창조의 기원이 그에게 있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세상의 처음, 그 근본원리는 창조주의 눈에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는 정의를 말해주는 것이지요. 그러니 온 세상의 피조물들은 창조주의 눈에 보기 아름답게 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라고 노래합니다(시 139:2-3). 하나님이 나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시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오늘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보이기 위해 살아가는 삶은 신앙인의 삶의 기본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울 앞에 늘 서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거울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서 앞에 나를 세우는 것입니다. 성서라는 신앙의 거울을 바라다보며 내 삶의 모습을 정갈하게 고치는 것입니다. 성서가 우리 신앙인의 거울이라면, 그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고쳤다면, 그 후로는 성서를 통해 아름답게 꾸민 내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내 모습, 신앙인의 모습을 보고 다른 이들이 기뻐하는 것이지요. 그런 신앙인의 모습들을 통해 하나님이 날마다 이 세상을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하시도록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곧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선교인 것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나의 모습을 고쳐나가듯, 신앙의 거울은 신앙인의 표준이 되는 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표준이 되는 한 사람을 그 본으로 삼아 주었습니다. 그가 곧 세례요한이었지요. 그를 가리켜 여자가 난 자 중에 그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실 정도였으니 말입니다(마 11:11). 그런데 예수님이 세례요한에 대한 그런 평가의 말씀을 하신 이유가 단지 그를 높이기 위함만이 아니었습니다. 세례요한에 대한 평가 후 곧이어,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고 말합니다. 세례요한보다 더 큰 자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이 세대를 빗대어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17절).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지 않고, 남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며 나누지 않는 삶을 비난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곧 천국에서 세례요한보다 더 큰 자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 땅에서 그렇게 살면 저 천국에 가서 세례요한 보다 더 큰 자로 평가 받는 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이 곧 천국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된 믿는 자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남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삶, 기뻐하는 자에게 내 기쁨을 보여주며 사는 것, 슬퍼하는 자에게 내 눈물을 보여주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에게 나를 보여주는 삶입니다.

성서가 내 신앙의 거울이라면, 이제는 내가 남에게 그들의 삶의 거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삶이 변화되고, 변화된 내 모습을 통해 내 가정과, 이웃과 사회가 변화되도록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교회와 우리 신앙인의 본질적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사명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피리를 부는 이를 위해 춤을 춰주고, 우는 이 앞에서 애곡해 주는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내 이웃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생명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이 땅이 신음할 때, 함께 아파하며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다시 말씀 하실 것입니다.
2006-09-17 06: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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