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9월 17일-창조절 셋째주일: "기도하는 집"
  박경철
  

✞ 9월 17일-창조절 셋째주일
제목: “기도하는 집”
성경: 구약: 이사야 56:6-7; 신약: 마가복음 11:15-18

가정과 사회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가 지속할 수 있는 최소 조건임과 동시에 가장 중요한 요건은 공동체 구성원간의 소통의 문제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어떻게 이해하고 배려하느냐에 따라 그 공동체의 모습이 나타나고 공동체가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지와 얼마나 강한 결속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결속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곧 의사소통의 문제입니다. 가정의 모든 문제는 가족 간의 대화의 빈도와 그 내용에 있지요. 교회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의 건강성은 교인들 간에 이루어지는 대화의 빈도와 대화의 내용에 있어요. 대화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공통의 관심들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의 모임의 대화의 중심은 다른 모임들에서와는 다른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곧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고가는 말의 시작과 끝, 대화를 이끌어 가는 흔들리지 않는 대화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곧 믿음이라는 것이고, 그 믿음의 대화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지요. 이 말은 말끝마다 예수가 나와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말만으로 그친다는 것이지요. 겉만 교인의 행색을 차린 것으로 비쳐지는 것입니다. 교인만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도 겉으로만 교회당으로 보이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만 높이 달았다고 해서 교회인가요? 십자가 목걸이를 했다고 교인인가요?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전(교회)에 대해 곱지 않은 눈으로 보셨습니다. 오늘 읽은 신약성서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흔히 ‘예수의 성전척결(정화) 사건’으로 잘 알려진 오늘 신약본문은 예수께서 마지막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 갈릴리에서의 하나님 나라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면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임을 성서는 알려줍니다. 예수는 그의 십자가 사건을 고난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지요.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서도,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다시 짓겠다는 그의 말에서도 이는 나타납니다(마 26:61; 27:40; 막 14:58; 15:29).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인 행동은 평소 예수의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무엇이 그렇게 예수를 화나게 했던 것일까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께 제사(예배)드리러 온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 때론 자신이 갖고 온 물건들을 돈으로 바꾸는 일들이 필요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제물로 드리기 위해 비둘기를 사야 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전에서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과 비둘기를 파는 이들은 곧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위해 필요했던 사람들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온정적인 모습을 기억한다면,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의 예수의 모습은 도시 빈민들이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가판대를 걷어치우는 몰인정한 구청 공무원들 같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는 왜 그랬을까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든가 성전 앞이 아니라, 이미 성전 안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혹 자릿세라도 내지는 않았을까요? 예수의 행동 이후 성서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18절)했다고 말합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수장인 대제사장에 대한 성서의 보도는 성전 안에서의 매매행위가 대제사장과 당시 종교 지배자들을 겨냥하고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곧 예수가 언급한 ‘강도’는 그들이지요. 예수는 이사야가 말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사 56:7)을 인용했지만, 그 강조점은 달랐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단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열방들을 위해서도 열려 있음을 강조한 것이지만, 예수는 ‘만민’에 강세를 둔 것이 아니라, ‘기도’에 강세를 둔 것입니다. 성전, 교회,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그 본질은 곧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이지요.


기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인 신앙인들 간에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입니다. 신앙공동체의 요건은 신앙의 주체인 하나님과의 소통의 문제이지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이 없이 교회에 온다면, 교인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지요. 기도하지 않는 교인들이 앉아 매주일 예배할 수 있는 교회당은 있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살아나지 못하고, 교인들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각 지체들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주일을 기도하지 않고 사는 교인들은 주일 교회에 나와도 감동이 없어요.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어는 부부가 일주일 내내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살다가, 매 주 한 번씩 외식하러 갔다고 합시다.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지요. 예수는 광야에서 기도로 시작하고 십자가에서 기도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말하였지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내적 교통이며 나라를 알려주는 통로입니다. 일상 중에 기도하며 사는 이들은 주일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과 은밀히 기도하던 주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그분께 예배하고 찬송하는 주일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지요.

성도들이 집에서만 기도하고 교회에 오지 않아도 되나요? 부부가 단지 서로 사랑한다고 하고,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어떤가요? 그와 동일하지요. 사랑의 고백은 서로 한 몸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의 관계가 있는 이들은 주님의 몸 된 공동체인 교회의 각 지체들과 한 몸을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하는 집’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정말 ‘기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밖에 있으면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꾸미고자 합니다. 기도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나의 기도는 너를 위한, 우리를 위한 기도이지요. 기도하고 싶은 교회를 만드는 일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사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묶어내는 일인 것이지요.
2006-09-24 06: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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