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10월1일-창조절 다섯째주일: "하나님을 경외?"
  박경철
  

✞ 10월1일-창조절 다섯째주일
제목: “하나님을 경외?”
성경: 구약: 레위기 19:13-16; 신약: 디모데전서 2:5-10

교인을 가리켜 ‘성도(聖徒)’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뜻이지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녀할 삶의 모습으로 성서는 ‘거룩’할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너희’(이스라엘)도 곧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함’의 내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레위기 17-26장의 내용으로 이른바 ‘셩결법전’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해야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거룩’한 삶의 모습은 다만 종교적 영역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윤리적 모습에까지 미쳐 있습니다. 모든 일상에서 정의롭게 살아가고 사회 약자들을 돌보아야 하는 윤리강령들을 통한 ‘거룩한 성도들의 삶’을 성서는 이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신인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 신앙행위인 것으로만 인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정의를 행하고 사회 약자들을 돌보아야 하는 사회 윤리실천행위들을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또한 ‘거룩한 성도들의 삶’이라고 연결합니다. 이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오늘 우리가 읽은 레위기 19장의 내용입니다.

레위기 19장의 시작은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대 명제로부터 시작합니다(2절). 그 거룩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나 ‘나는 여호와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그 어떤 것보다 이 ‘여호와의 명령’을 반드시 준수해야 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명령의 주체인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가리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을 제시하게 됩니다. 그는 곧 “너희를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36절)임을 결말짓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구원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의 존재가 가능했다면, 이제 그 출애굽의 구원사건을 이끄신 장본인인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에만 이스라엘의 존재가 앞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 명령의 기본은 사회 약자들을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희’(이스라엘)가 곧 애굽에서 그런 사회의 약자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의 약자들을 돌보고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사회 약자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거룩한 삶’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해 사회 약자들을 위한 ‘거룩한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대표적인 내용을 살펴봅시다.
첫째, 일터에서 거둔 수확을 혼자 다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9-10절). 곡식을 다 거두지 말고, 혹 수확 중 떨어진 이삭은 다 줍지 말라는 명령은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들을 위한 먹거리로 남겨두라는 말씀이지요. 내 수확의 일부를 가난한 자들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둘째, 나보다 못한 이들을 억압하지 말라(13-14절). 이웃에 대한 착취 금지 명령은 분명 남보다 더 가진 자가 더 갖기 위해 힘없는 자, 가지지 못한 자의 것을 불의로 빼앗는 것에 대한 금지명령입니다.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는 명령은 품꾼의 하루 삯은 품꾼 가족의 하루 하루의 생존권이 달린 가장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는 극빈층의 모습을 하나님은 보시고 있는 것이지요. 청각장애자와 시작장애자에 대하여 저주하지 말고 장애물을 두지 말라는 명령(14절)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은 그 어떤 이유로도 비난(저주)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체적 장애를 종교적 저주의 결과로 받아들였던 것에 대한 절대 반대를 오히려 성거가 증거하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두지 말라’는 명령은 그들의 불편을 노릿감으로 삼지 말라는 것을 넘어, 모든 장애의 구조들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은 이 부분에 가서 유독 이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흔히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멀리 두려고 합니다. 나의 이득을 헤치는 이들로 여기고, 그들의 길목에 장애물을 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런 사회 약자들을 돌보는 일, 특히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돌보고, 그들의 삶의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임상교회가 양로원과 함께 시작했다는 것은 오늘 레위기의 본문에 비추어 우리 교회의 자랑이지요. 문제는 이 선조들의 신앙을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어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18절에서 우리가 잘 아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은, 단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의미를 넘어서, 내가 돌보아야 할 이웃, 나보다 더 가지지 못한 이웃, 모두가 이웃으로 두려고 하지 않는 그런 사회적 약자들과 지체장애자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내 몸처럼 돌보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웃간의 분쟁이 일어날 때, 성도들은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 디모데전서 2장은, “분노와 다툼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말합니다(8절). 싸우는 손, 고발하는 손, 험담하는 손가락질이 아니라, 그 손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피차 선행을 베푸는 일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10절)이라고 여기서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피차 선을 행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선행을 통해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레위기 본문과 연결하면, 우리 사회 약자들을 돌보는 일입니다. 그들 앞에 장애물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이웃으로 맞아들이는 일이지요. 이 일을 위해 성도들을 자신들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이지요.
2006-10-08 08: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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