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10월15일-창조절 일곱째주일, "무엇이 옳은가?"
  박경철
  

10월15일-창조절 일곱째주일
제목: “무엇이 옳은가?”
성경: 구약: 출애굽기 23:10-12; 신약: 누가복음 6:9-11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너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나와 너’가 서로 다르기에 때때로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종종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갈등의 이유는 ‘너’가 ‘나’와 ‘다르다’가 곧 ‘너는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우리 사는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같은 것이 없어요. 모두가 서로 다릅니다. 모두의 다름은 차이이고, 이 차이는 곧 다양성의 조화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다름’이 보이는 ‘차이’의 다양성을 보기 보다는, ‘다름’이 곧 ‘틀림’이 되고, 이 ‘틀림’으로 상대를 ‘차별’하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서로의 다른 생각은 각자의 주장이요, 각각의 ‘다름’의 ‘차이’로만 인식하고 그 모두를 다 인정해야만 하는 것만은 아니기도 합니다. 분명 어떤 것은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때들도 분명 있는 것이지요. 이 때, 우리는 ‘무엇이 옳은가?’를 분별하고 판단 할 그 어떤 기준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다수의 판단이 상식이 될 수 있기도 하지만 그것도 반드시 옳다고만 할 수도 없을 때들이 있지요. 그만큼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기란 모든 이견들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의 삶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거기서 우리가 믿는 성도들이라는 범주에서, 일반인들과 다른 기준 하나를 더 갖게 됩니다. 그것이 곧 신앙 안에서 판단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도들 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들 간에도, 교단 간에도 때로 서로의 입장의 차이가 크게 대립되는 경우를 자주 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답변은 전혀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오늘 이런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던 예수의 입장을 한 번 살펴봄으로써 ‘무엇이 옳은가?’d[ 대한 하나의 해결점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성서 누가복음 본문은, 예수가 안식일에 지체장애자를 고친 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에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과 원칙 앞에서, 예수의 행동을 살펴보기 전에, 예수의 반문을 먼저 알아봅시다. 예수는 사람들이 안식일의 법과 원칙 앞에서 예수는 어떻게 행동할까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단지 호기심 눈동자가 아니라, 예수가 법을 어기는 현장을 잡기 위한 것이었지요. 예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당시 기득권자들에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떠드는 자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명백한 범죄현장을 잡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들의 마음을 알고 있던 예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합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그리고 예수는 그 병자를 고칩니다. 예수는 안식일 법을 어겼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의 예수의 행위에 대해, 비록 예수는 아무 일을 해서는 안되는 안식일일지라도 사람을 살려놓고 보자는 입장을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곧 예수는 안식일법을 어기기는 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요?
우리는 여기서 잠시 안식일법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안식일법은 구약성서 곳곳에 자주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율법의 계명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출 20장; 신 5장)에도 나오지요. 그런데 십계명의 제4계명인 안식일 계명의 법적근거로 출 20장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맞춰, 제칠에는 일을 하지말라는 것이고, 신 5장은 하나님이 노예로 살던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신명기에서는 일을 하지말라는 법적 근거의 중요성은 노예의 일로 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출 23장은 구약의 많은 법전들 중에 가장 오래된 법률집에 속한 것으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이유의 중요성으로,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종들, 심지어 가축들까지도 하루를 쉬게 함으로써, 그들이 숨을 쉴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곧 안식일의 일하지 말라는 숨을 쉬게 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생명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안식일법은 곧 생명을 살리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일의 금지라는 본래의 취지는 점차 잊혀져 가고, 단지 일하지 말라는 껍데기만 남게 된 것이지요. 그것이 예수 당시까지도 이어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지체장애자를 놓고 벌이는 법적 논쟁에서, 비록 법은 그렇지만 우선 사람부터 살려놓고 보자라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는 사람을 살리는 본래의 안식일법을 준수했던 것이지요.
우리는 ‘무엇이 옳은가?’의 갈등 속에서, 모든 대립의 갈등 요소들 속에서 어떤 원칙과 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때 우리가 내세워야 할 가장 중요한 판단의 근거는 예수가 반문했던, ‘악을 행하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사람을 살리는 것’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무엇이 선을 행하는 것인가? 예수가 제시한 선이란, 무엇보다도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제일원칙의 선은 곧 생명을 살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생명은 무엇보다도 사회의 약자들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안식일법의 일의 금지명령은 모든 이들이 지켜야하는 법이지만, 그 취지는 사회의 약자들의 쉼 없는 노동의 금지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의 모든 근거들은 곧 사회의 약자들의 편에 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민중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해방하신 분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열가지 계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라,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해방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제일 먼저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일상에서 마주대하는 대립과 갈등 속에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생명을 살리는 일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나보다 더 약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해서 그의 입장에서 나와 ‘다른’ ‘너’의 ‘차이’를 고려하고 받아들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 선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내어주는 십자가의 길을 따랐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렇습니다.
2006-10-28 19: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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