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11월19일 창조절 열두째주일-추수감사절: "감격과 감사"
  박경철
  

✞ 11월19일-창조절 열두째주일-추수감사절

제목: “감격과 감사”
성경: 구약: 출애굽기 35:21-22 신약: 사도행전 2:44-47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오늘따라 제단이 더 아름답습니다. 감사절을 맞이하여 제단에는 성도들이 올 해 수확한 것들이 정성스레 쌓여져 있습니다. 감사절 제단을 만든 것이지만, 이 모습을 바라보는 성도님 각자의 마음들은 서로 많이 다를 것입니다. 감사절 제단을 꾸민 것으로만 보일 분도 있고, 감격의 눈물을 삼키며 바라보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 해 농사일에 대한 각자의 마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심었으니 거둔 것으로 여기는 이와, 생명을 심고, 거둠을 통한 생명의 신비를 깨닫고 감격하며, 이를 가능케 하신 생명의 주님을 찬양하는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예전 치통이 심해 치과에 갔을 때, 의사선생님께 통증이 재발하지 않도록 신경을 아예 죽여 달라고 했지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통증이 오는 것은 더 큰 해를 입지 않기 위한 신호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경을 완전히 죽이면, 비록 잠시 통증이 없을지는 모르나, 더 큰 해를 입게 되어도 이를 알지 못하게 되어 더 큰 병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사인 제게 한 마디 설교를 해 주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 큰 병을 얻지 않도록 아픔이라는 통증을 주셨습니다. 때로 우리에게 슬픔과 아픔이 온다고 하지만, 이는 더 큰 병을 얻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신호이지요....”

우리는 흔히 내게 무슨 일이 잘 되었을 때만 ‘감사’를 떠 올립니다. 물론 그때 감사의 크기도 어떤 일에 대한 감격과 감동의 차이만큼 비례합니다. 무엇에 감동하고 감격할 수 있는가에 따라 감사의 종류도 많이 다를 것입니다. 농촌교회 감사절 제단을 바라보며 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농부 성도들과, 도시교회 성도들의 추수감사절 예배의 모습과 내용도 차이가 날 것입니다. 지난 해 보다 더 어려워져만 가는 농촌의 삶에서 올 해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무엇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아픔과 고통의 농촌의 현실을 더 큰 병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신호라고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무엇에 감동하고 감격하는 감사절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시다.

오늘 읽은 구약성서 본문인 출 35장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한 이후,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과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갑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모세는 내려오지 않고, 점점 기다림에 지친 백성들은 지도자를 잃었다는 위기로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들은 저들을 광야에서 이끌어 줄 신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모세의 중재로 인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고 성서는 말합니다(32:14). 그 후 시내산을 내려온 모세가 이에 분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을 부수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두 번째 돌판을 만들게 합니다. 이 때 모세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34:6).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과 다시 언약을 세우게 됩니다(34장). 그리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실 회막을 짓기 위하여 자신들의 예물을 드리게 되는데, 오늘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회막을 짓는 백성들의 마음에 대한 성서의 표현입니다.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35:21)입니다. 이런 표현은 지난 번 금송아지를 만들게 되었을 때의 모습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당시는 아론이 백성들에게 강제로 예물들을 가져오게 합니다(32:2-3). 하나님을 스스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모습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깨닫고 마음에 감동된 이들이 받치는 예물이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아론의 교회가 있고, 모세의 회막이 있지요. 성도들에게 강제로 헌금을 강요하여 짓는 기업교회가 있고, 감격과 감동으로 하나님의 성전인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돌보며 섬기는 교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본문인 사도행전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주님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받고 시작된 주님의 교회의 첫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돌아가야 할 교회의 본질적 보습입니다. 성령 받은 성도들의 감동과 감격이 빚은 초대교회의 모습이지요. 하나님 앞에, 교회 앞에 감동과 감격으로 감사하며 드리는 감사의 예물은, 곧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사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드리는 것이 됩니다. 드리는 것이라기보다는 함께 나누는 것이지요. 오늘 감사절의 예물이 곧 그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리는 예물이고 헌금이지만, 이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또 내게 더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드리는 뇌물이 아니지요. 내게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의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지요.
출 32장의 금송아지를 만들기 위해 지도자의 강요에 억지로 드린 출애굽기 32장의 예물이 아니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은혜에 “마음이 감동하여 자원하여..”드리는 출애굽기 35장의 예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감사의 예물은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함께 나누었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었던 모습에서, 내게 받은 은혜를 나누어 주어야 할 우리의 이웃을 찾아야 하지요. 주님의 몸 된 공동체가 되려면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전은 단지 예배당의 의미만이 아니라, 모든 주의 성도들이 곧 주님의 몸 된 교회라면, 이는 성전을 이루고 사는 주의 공동체 성도들이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를 이루는데 힘을 쓰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서로 자주 만나야지요. 그래야 누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압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먼저 주님의 은혜를 깨닫는 감동과 감격, 곧 성령의 은사이지요.
2006-11-26 08:15:54



   

관리자로그인~~ 전체 81개 - 현재 1/6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81
박경철
2007-02-10
3398
80
박경철
2007-01-28
2612
79
박경철
2007-01-28
2771
78
박경철
2007-01-13
2793
77
박경철
2007-01-06
3130
76
박경철
2006-12-30
3321
75
박경철
2006-12-14
3295
74
박경철
2006-12-10
3988
73
박경철
2006-12-02
2941
박경철
2006-11-26
2879
71
박경철
2006-11-20
2712
70
박경철
2006-11-05
3419
69
박경철
2006-10-29
2541
68
박경철
2006-10-28
2737
67
박경철
2006-10-08
3062

[맨처음] .. [이전] 1 [2] [3] [4] [5] [6] [다음] ..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