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회 주일 설교 모음(주보용-요약)

  11월26일-창조절 열셋째주일: "예배는 이제 그만!"
  박경철
  

✞ 11월26일-창조절 열셋째주일
제목: “예배는 이제 그만!”
성경: 구약: 이사야 1:13-15 신약: 요한복음 4:19-23

매주일 교회에 올 때마다 여러분의 발걸음은 어떻습니까? 한 주일동안 오늘을 기다리며 살아가나요? 교인의 신앙생활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 참석입니다. 하지만 주일예배 참석이 하나의 성도의 의무로서만 강조되어 단순히 반복된 예배, 습관화된 교회생활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연 이런 예배를 계속 드려야만 할까요?

주일아침 예배와 주일오후 성경공부 그리고 수요성경공부, 새벽기도회 모임등의 집회에 참석수가 현저히 다르게 나타나는 그 근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주일아침예배에 비해 다른 모임들은 그 중요성이 덜 하다는 인식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배만 드리면 됐지...” 하는 생각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다른 어떤 교회의 모임보다 더 중요하지요.

전통적으로 주일오후와 수요모임등 우리는 다 ‘예배’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했지만, 엄밀히 말해 예배의 중요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 교회 주일아침예배는 1982년 세계교회가 정한 리마예식서의 틀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오후와 수요모임은 예배가 아니라, 성경공부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차이가 우리로 하여금 주일오후와 수요성경공부를 등한시 하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참석여부의 기준이 예배라는 이름이 붙고 안 붙고의 차이에만 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우리 교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회들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신앙생활의 그 기준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자세히 듣고 배우는 성경공부 모임에 성도들이 더 열심히 참석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 아닐까요? 그래야 주일아침예배를 보다 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성경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성서학자가 목사로 있는 교회에서 성경공부에 본교회 성도들이 참석하지 않는다니, 어딘가 분명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거 뭐 우리교회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자연스런 현상이니 저나 여러분이나 그리 큰 문제 삼지 말자고 서로 위로할까요? 그럼 아예 형식적으로 모이는 성경공부 모임을 이제 그만 둘까요? 주일아침예배는 어떤가요? 주일아침예배는 꼭 계속 해야만 합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본문에서 예언자 이사야의 입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호히 외칩니다: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예배는 이제 그만! 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인가요? 이사야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이들의 손에 피가 묻어 있다고 말합니다(15절). 세상에 나가서는 부정과 불의, 악을 행하고, 고아와 과부등 사회 약자들을 학대하고 돌보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 제물을 갖고 나오고, 손을 들고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니, 그렇게 모이는 모든 종교적 행위들을 당장 집어치우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모습과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면, 그런 예배는 이제 그만! 이라는 것입니다. 야누스의 모습을 갖고 살아가는 교인이 교회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를 막아 세우라는 말씀이지요. 오늘날 교회는 한 사람이라도 더 모이기를 위해 애들을 씁니다. 물론 한 생명이라도 구원의 숫자가 늘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러나 교회 출석자 한 사람의 숫자를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주님의 백성 한 사람을 더 늘려야 하는 것이 성서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를 보시고 하나님은 무어라고 하실까요? 지금 예배하는 모습이 아니라, 지난 한 주간 우리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교회 밖과 교회 안의 모습이 하나님의 뜻과 다른 모습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는 이 예배를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본문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으로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으로 복음송 가사에도 나오는 것인데, 많은 이들이 복음송 가사처럼 성서가 전하려는 중심과는 벗어나 있습니다.
성서의 핵심은 여인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에 있습니다. 곧 “우리는(사마리아인)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하고, 당신네(유대인)는 저 산(시온산)에 예배하는데 어느 것이 옳으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두 산 모두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예배를 드릴 것인가를 대답하지요. 곧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은 저마다 자기들의 전통과 교리에 따라 각자의 산을 고집하며 살았습니다.

예배의 내용, 예배의 본질을 떠난 전통과 교리란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쩌면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교회, 교인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성도의 신앙생활의 한 의무로 지키고 있는 주일예배, 각자 생각하는 저마다의 그리심산과 시온산을 갖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령과 진정의 예배란 단지 예배 자체의 신성시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드리는 예배이고, 이는 이사야의 말처럼, 형식적 예배를 떠나 성도의 삶 전체에서 나타나야 하는 하나님의 뜻인 예배인 것이지요.

예배의 장소가 교회이고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며 성전이지요.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이 곧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일상 그 전체가 하나님의 집안에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지요. 바울 사도는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고, ‘너희는 그 몸을 이루는 각 지체’라고 했으니, 성도들이 서로 서로를 사랑하며 나누고 섬김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곧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서로 사랑합니까? 나누며 섬기며 살아갑니까? 세상에 나가 불의에 맞서 정의를 실천하며 삽니까? 사회의 소외된 약자들을 돌보며 살아가나요?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립니까? 이 예배를 당장 그만둘까요? 아니면,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정말 다시 잘 드리며 살아갈까요?

다음 주 임상교회의 예배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땅 사랑이 하나 되는 곳에서 드려집니다.
2006-12-02 22: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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