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연구.............글: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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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박물관안의 이사야 두루마리
  1. 쿰란 사해 사본이 나오기 까지
  2. 쿰란 공동체: 엣세네파?
  3. 예수와 쿰란
  4. 세례요한과 쿰란
  5. 바울과 쿰란
  6. 쿰란 1-11번 동굴에서 발굴된 지금까지의 문서들
  7. 1QIsaa:쿰란 1번 동굴에서 나온 대이사야 두루마리 원본
  8. 쿰란 연구 참고 문헌들

쿰란 사해 사본이 나오기 까지, 두번째 이야기

쿰란 두루마리를 얻기 까지의 우여곡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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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사야 두루마리 1QIsab XI: 이사야서 59,20-61,2 이가엘은 아버지에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좀 진정하시고 천천히 이야기해 보시라고 권한다. 훗날 야딘이 전하는 당시 아버지의 말은 이렇다: "그날의 아버지는 몹시 흥분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들이 도무지 앞뒤도 없이 왔다 갔다 했죠. 그러면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해 말하다가 베두인이 어쩌구, 무슨 조각들이 있고, 그리곤 무작정 두루마리들이야, 두루마리 하며 마구 횡설수설이셨어요...." 수케닉 교수가 아들 이가엘에게 강조한 것은 그 조각들은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인 아주 오랜 옛날의 것이며 이제 이스라엘이 막 다시 태어나기 전에 반드시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것을 들어 아들의 허락을 받아내려고 했다. 야딘이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다: "내가 아버지로 부터 자세히 듣고 났을때, 전 1947년 당시의 예루살렘으로 부터 저 먼 옛날 쿰란 이야기로 빠져들어가고 있었죠. 그러다가 아버지가 베들레헴에 가도 되냐고 물으시자, 다시 현실로 곧장 돌아오게 되었지요." 아버지 수케닉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내가 어제 집에와서 어쩌자고 네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다 꺼내 놓았단 말이냐... 이 위험천만한 세상에 베들레헴에 가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니, 내가 가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말이다... 이제 돌이킬 수가 없구나. 여기서 그냥 주저 앉을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하겠니?... 내가 가야 하지 않겠니?" 이가엘은 어찌할줄을 몰랐다. 고고학자이기도 한 야딘은 이런 기회를 놓친다는건 말도 안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군인인 신분으로 이것이 또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가? 이 두가지 문제가 결국 자신의 고개를 설레 설레 젖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야딘은 총사령관의 권위로 아버지를 말린다.
전쟁 두루마리(왼)과 찬양집 두루마리(우) 밤이 늦도록 잠 들지 못한 수케닉은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유엔의 결정이 하루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전쟁 역시 하루 늦어질 것이라고 수케닉은 확신한다. 11월 29일 아침 일찍 결국 수케닉은 오한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간다. 그리고 거기 골동품 중개상 Feidi al-Alami 로 부터 두루마리 두개인두번째 이사야 두루마리 전쟁 두루마리와 찬양 두리마리, 그리고 동굴서 나온 항아리 두개를 산다. 그리고 유엔의 최종결정이 나기 한 두시간 전에 가까스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집에 오자 마자 첫번째 두루마리를 펼쳐보는데 라디오에서 유엔 성명이 나오고 있었다. 2천년을 유리하던 모든 유대인들은 이제 팔레스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벤 구리온의 연설도 뒤 따라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2천년을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이제 그 날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렀으니 하나님 자신도 거역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이천년의 숫자를 듣는 수케닉에겐 바로 이 2천년은 그 기간 만큼 감추어져오다 자신의 손안에서 지금 펼쳐지고 있는 두루마리와 같았다. 솟구치는 감동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1947년 12월 말에 수케닉은 완전하진 않은 38장에서 66장까지 있는 이사야 두루마리를 얻게된다. 이것이 바로 1QIsab인 1번 동굴에서 나온 두번째 이사야 두루마리이다. 이것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1QIsab가 대이사야 두루마리인 1QIsaa보다 현 맛소라 이사야 본문과 더 일치한다는 점이다.전쟁 두루마리 첫장, 둘둘말아서 사용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제일 앞면에 여백을 많이 둔 모습이 보인다 1QM
찬양 두루마리 1QH 수케닉이 구한 전쟁두루마리엔 전쟁시의 각종 전술들이 적혀있는 것으로 종말론적인 성격이 강한데 이른바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자식들의 전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찬양 두루마리는 찬양과 감사의 노래들이 적혀 있는 것으로 모든 노래들은 '당신을 찬양합니다, 야훼여'로 시작한다. 마치 시편에 있는 할렐루야 시들과 같은 것이다.
1948년 2월에 비로소 수케닉은 사무엘 감독이 쿰란의 두루마리들을 구입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물론 완벽한 이사야 두루마리가 있다는 것까지 듣는다. 수케닉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를 얻고자 하지만 성 마가 수도원에 갈 수도 없게된다. 구예루살렘 시가지에 있는 그곳에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중개상을 통해 감독의 사인을 받고 며칠간 이를 빌려보게 된다. 며칠 밤을 새우며 수케닉은 이 두루마리를 읽고 읽는다. 수케닉이 사무엘의 이사야 두루마리를 구입하려 했지만 당시 은행도 없었고, 누구도 그에게 엄청난 돈을 빌려줄 이도 없었다. 전쟁은 바로 코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내일일을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박국 주석서
하박국 주석서 대이사야 두루마리는 다시 사무엘 감독에게 되돌려지고 1949년 새해가 밝자 곧장 사무엘은 자신이 갖고 있던 4개의 두루마리를 갖고 미국으로 날아간다. 사무엘이 갖고 있었던 그 4개의 두루마리란, 이름만 들어도 잘 알 수있는 쿰란에서 나온 가장 유명한 보물들이었으니, 바로 대이사야 두루마리하고 공동체 규율집과 하박국 주석서와 펼칠 수 없게 꽉 달라 붙어 말아져 있던 라멕 두루마리였다.
이것들에 대해 잠시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공동체 규율집을 보면 당시 그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살았던지를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몇몇 단어들이 덧붙여 쓰여져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는 실수로 오기된 것에 대해 교정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규율집 그동안에 달라진 공동체의 규율을 다시 적어 놓은 것이다. 공동체 규율집 1QS7,8 을 보면, "누군가 이웃에게 원한을 품거나 앙갚음을 하는자는 6개월 형벌에 처함"이라고 되어 있는데, 공동체 총회를 통해 이 규정은 나중에 강화되어 그 기간을 "1년으로 한다"고 한줄 위에 새로 적어 놓았다.
하박국 주석서의 특징이라면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 자음 4글자가 빠져 있다.
창세기외경과 비버크라우트(Biberkraut) 교수 완전히 달라 드러 붙어서 펼쳐 볼 수 없었던 라멕 두루마리는 이스라엘로 돌아온 뒤 얼마 지나서 비버크라우트(Biberkraut) 교수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것은 아람어로 된 창세기 여러 부분에 대한 그 뒷 얘기들이었다. 그래서 이 라멕 두루마리가 흔히 '창세기 외경'으로 불리워 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예를 들자면 아브라함의 부인인 사라의 미모에 대해 적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그녀의 얼굴, 그녀의 고운 살결위론 황홀한 머리카락, 그녀의 눈은 너무도 사랑스럽구나. 그녀의 코는 우아해서 기품이 있네. 반짝이는 눈동자(...) 그녀의 미모는 그 어떤 여자들보다 뛰어 나는구나..."(1QapGen20,2-5)

미국으로 간 사무엘은 여러 도시를 돌며 자신의 두루마리들 전시회를 갖게 된다. 미국에선 이미 쿰란에서 나온 이 세기의 보물로 인해 떠들썩해 하고 있었다. 사무엘이 자신의 두루마리들을 팔려고 했지만 잘못된 홍보덕택에 이를 살 사람을 찾질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두루마리 값이 백만달러라고 잘못 알려졌기월가 저널에 실린 광고 때문이었다. 이 엄청난 값에 누구든 쉽게 살려고 덤벼들지 못했다. 이미 이 소식은 전세계의 메스컴을 타고 팔레스틴까지 전해진 상황이었다. 당연히 이 소식을 듣게 된 베두인들은 사무엘의 수도원을 협박하고 있었다. 자기들에게 완전 헐값으로 샀던 것이 지금 상상도 못하는 값으로 사무엘이 팔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54년 6월 1일 미국 증권지인 월가 저널(Wall Street Journal)엔 다음과 같은 판매 광고가 실린다: "사해사본 4개 두루마리-기원전 200년전의 성서 필사본 팝니다...."
바로 이때, 이가엘 야딘은 1953년 아버지 수케닉 교수가 죽고 난뒤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히브리대학 교수를 하고 있었다. 야딘이란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 독립운동 당시 하가나 무장조직을 책임지고 있을때, 그의 암호였고 그 후로 그의 이름은 이가엘 수케닉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가엘 야딘으로 세상에 남게된다. 그의 60년대 텔 하쪼르와 마사다 발굴은 전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되기도 하고 이미 앞서 말했듯이 야딘은 아버지 수케닉 보다 더 유명한 고고학자로 학계에 남게된다.
야딘은 이스라엘 정부의 요직은 맡고 있었기에 자신을 드러내고 사무엘의 그 두루마리들을 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랬다간 아랍계 정보부가 이를 방해하고 나설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야딘은 뉴욕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자신의 친척을 통해 그것을 사겠다고 나선다. 값은 25만 달러였다. 그리고 이는 48시간 이내로 지불해야 했다. 야딘에겐 그만한 돈이 수중에 없었다. 야딘의 유대계 미국친구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보증만 한다면 야딘에게 돈을 빌려줄 준비가 마련된다. 이스라엘 정부는 즉각 보증을 서고 당시 재무장관 Teddy Kollek은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10만 달러를 낸다.

1954년 7월 1일, 결국 이스라엘 사해 북부 한 동굴에서 나온 쿰란 사본은 그것이 세상에 나온지 7년이 지나서 그리고 사무엘 감독이 팔겠다고 광고를 낸지 한달이 지나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이 사실은 당장 보도되지 않았고,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후 Teddy Kollek 이 공식발표를 하게된다.
이미 알다시피 쿰란 동굴의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제1번동굴에 머무르지 않는다. 짐작이 가듯 1번동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당연히 사해 부근 유대 광야는 더이상 불모지로 남을 수 없게 된다....


쿰란, 그 세번째 이야기:
쿰란의 보물이라고 불려지는 제 4번 동굴의 발견과 세계에서 가장 힘든 퍼즐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