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연구.............글: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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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박물관안의 이사야 두루마리
  1. 쿰란 사해 사본이 나오기 까지
  2. 쿰란 공동체: 엣세네파?
  3. 예수와 쿰란
  4. 세례요한과 쿰란
  5. 바울과 쿰란
  6. 쿰란 1-11번 동굴에서 발굴된 지금까지의 문서들
  7. 1QIsaa:쿰란 1번 동굴에서 나온 대이사야 두루마리 원본
  8. 쿰란 연구 참고 문헌들

쿰란 사해 사본이 나오기 까지, 세번째 이야기

쿰란의 보물 4번동굴의 발견과 전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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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 4번동굴. 윗 화살표 보이는 곳은 베두인들이 파고 내려간 입구1952년 9월 어느 날 밤 유대 광야, 베두인 몇 명이 함께 그들의 천막에 둘러앉았다. 그리곤 그들이 지난 5년 동안 창아 주워 모은 두루마리들과 작은 옛 조각들에 대해 밤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의 값이 얼마나 될 지에 모두 침이 마르고 있었다. 천막 안에 피워 논 모닥불이 진진하게 이야기하는 각자의 얼굴을 더욱 붉게 상기시켜주는 듯 했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젊은이들의 얘기에 귀를 흘리고 천막 저편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던 한 늙은 양치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더니 젊은이들의 얘기에 끼여든다. 그때까지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였던 그가 그 이상한 다 낡아빠지고 쓰레기 같은 천 조각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값이 된다는 말에 잠에서 벌떡 깬 것이었다.
"나 그런 거 봤다 봤어...." 거기 있던 이들이 모두 입을 딱 다물더니 그 노인에게 다가들었다. 그리곤 그가 이제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모두 마른침만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아마 내가 자네들처럼 그렇게 힘이 펄펄 넘쳐나던 때 였을걸세... 하루는 아주 신기하게 생긴 메추리 같이 생긴 새 한 마리를 잡으려고 따라간 적이 있었다네.... 그런데 아, 글쎄 고 녀석이 웬 동굴 같은데 들어가더니 어딘론가 사라지고 없는 게야....." 노인의 입에서 동굴이라는 말이 나오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헌데, 그 동굴에 거_ 웬 오래된 단지 그릇들이 있더구만.... 것도 성한 건 하나도 없었고 다 깨져 있었어...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음_ 그래. 잔뜩 녹이 슨 아주 옛날 등잔인 하나 있었고...."
4번동굴을 학계에선 왼쪽과 오른쪽을 나누어서 4a 그리고 4b라고 부른다 노인의 말을 듣고 있던 베두인들이 눈이 휘둥그래져 가지고 서로를 쳐다본다. 다들 입술은 모두 바짝 타 들어가고 있었다. 노인이 말하는 곳은 쿰란 집터에서 100미터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질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당장 베두인들은 밧줄과 삽 몇 자루 그리고 등잔을 망태에 담아 노인이 말한 그곳으로 급하게 길을 떠난다. 다들 그 황량한 유다 광야에서 태어나 자란 베테랑들이었고 이들에게 그 동굴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동굴이라고 해 봤자 바로 옆에 그 짜디짠 소금바다인 사해에서 불어오는 오랜 세월의 바람으로 쉽게 파 들어갈 수 있었다.
밧줄을 내려 조심스레 내려가니 바로 동굴 위에서 1미터 아래로 작은 방 크기 만한 게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저들이 발을 내린 그곳이 바로 오늘날 쿰란의 제일 보물이라고 하는 제4번 동굴이었으니, 이 방에서 거의 600개에 달하는 두루마리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모두는 펼쳐 볼 수 있는 두루마리로 된 건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잘게 잘게 조각으로 뜯어 내야만 했고 그 갯수는 약 4만개에 달했다.600여개의 두루마리가 발견된 4번동굴안의 모습. 세상에, 바로 코앞에 보이는 지금의 쿰란 집터에서 9개월 동안 고고학자들이 발굴작업을 해 오면서도 이 구멍들을 그 누구하나 거들떠보질 못했던 것이다. 정말 밭에 감추인 보화를 누구도 모르고 지내온 것이었다.

베두인들은 자기들이 찾은 이 엄청난 동굴을 지키기 위해 고고학자들과 마주치거나 또는 요르단 정찰병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한다. 그러니 고고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베두인들이 스스로 마구 파 나가기 시작한다. 그것도 빨리 빨리 일을 끝마쳐야 했다.
이들이 발견한 조각 하나가 당시 동예루살렘에 있던 불란서 고고학 전문대학(École Biblique)에 있던 신부 de Vaux 에게 팔린다.Roland de Vaux 신부 de Vaux는 이 사실을 곧장 당시 골동품 관리위 소장이었던 하딩에게 알린다. 물론 불법 도굴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급히 전한다. 하딩이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이곳에 도착해보니 이미 약 수천 개의 조각들이 요르단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결국 이스라엘 문화재보호 관리국을 통해 요르단 정부에게 15000 요르단 파운드, 당시 돈으로 약 4만 달러 정도 되는 값을 치러야 했으니, 당시 요르단으로선 빠듯한 나라살림에 엄청난 돈이었던 것이다.록펠로 박물관 두루마리 홀에서의 작업

고고학자들의 발굴작업은 계속 이어져 4번 동굴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동굴을 더 발견하는데, 이것이 제5번동굴이다. 이곳선 단지 갈기갈기 찢어진 조각들만을 건지게 되는데 그 양은 4번동굴에 비한다면 아주 작은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힘든 퍼즐(?)

엄청나게 많이 발굴된 조각들을 이제 서로 짜 맞추는 일이 이를 찾아내던 일 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쿰란의 동굴들에서 나온 수천의 조각들은 이제 이를 짜 맞추기 위해 동예루살렘에 있는 록펠로 박물관 이름하여 '두루마리 홀'에 수 미터 짜리 긴 책상이 준비되고 그 위로 놓여지게 된다. 이 일을 위해 1953/54년에 7명으로 구성된 국제 연구팀이 만들어진다.
조각들을 짜 맞추는 모습. 4번동굴에선 이런것이 약 4만개나 나왔다. 이제 이들이 할 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힘든 퍼즐 맞추기였던 것이다. 먼저 이들은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레 뜯어내기 시작했다. 달라붙은 것들을 떼어내기 위해 알맞게 물기가 배어 들어가게 한 다음 핀셋으로 숨을 죽여가며 하나씩 벗겨내기도 했다. 거의 2천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어떤 글자들은 뒤에 배겨져 있어서 그 뒷면을 돋보기로나 간신히 볼 정도의 것들도 많이 들어 있었다.
오늘날까지 11개의 쿰란 동굴에서 발굴된 것들은 두루마리가 약 900개 정도이지만, 거의 대부분이 완전하질 않고 이리저리 잘려나가 있고 수많은 조각들로 이어지게 되는 것들이다. 그중 하나는 손으로 일일이 조각들을 이어서 약 3미터 정도의 두루마리를 보여주게 되었다. 11개 두루마리가 어느정도 복구되기도 했다. 나머지 두루마리들은 거의 8만(!)개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들이다.아주 작은 조각들의 모습
지금까지 학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맞춘 쿰란 퍼즐(?)은 약 15000개 정도가 된다. 학자들은 우선 이 많은 것들을 그것들의 재질에 따라 즉, 양피지와 파피루스 또는 쓰여진 색깔에 따라 분류를 했다. 검정 잉크색을 내는 손으로 쓴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우선 일차로 분류가 되었고 그것들을 하나씩 떼어내기 위해 한곳에 모아졌다. 그런데 이제 엄청난 장벽이 막고 서 있었다. 어떤게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를 맞추는 일이었다. 어떤 조각은 손톱정도의 크기에 단지 자음 두자 만 쓰여져 있는 것도 있었기에 말이다. 어떤건 한 5백원짜리 동전 만 한 것도 있었고 어떤 손바닥 크기 만 하기도 했다. 어떤 건 글자들이 중간에 뚝 떨어져 있는 것도 있었다. 도대체 이를 판독해 내기란 신의 손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였다. 그도 아니면 그 이천년 전 쿰란에서 살았던 누구 한 사람이라도 이 사본들과 함께 다시 살아나 말해주지 않는다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여기에 점차 새로운 것들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베두인들이 자기들이 발견한 것들을 누굴 놀리기라도 하듯 한꺼번에 판게 아니라 조금씩 나누어서 팔았기 때문이었다.
이 일이 1958년까지 계속 된다. 사해에서 나온 두루마리들은 하루밤 사이에 베두인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게 되었으니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수입된 케디락 리무진 승용차의 주인은 바로 이 베두인들 중의 한 사람에게 였다.
쿰란에서 발견된 수많은 조각들은 물론 성서의 것들만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유대문학류들도 있었다. 학자들은 이 작품들의 주인을 옛 유대 에세네파 종교공동체라고 쉽게 단정해 버렸다. 성서에 있는 것들은 히브리어 성구사전의 도움으로 다른 것들보다 짝을 맞추는데 용이했다. 그런데 성서외 자료들이 문제였고  르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다 풀리질 않고 있다. 그외 어려운 자료들은 알려지지 않은 히브리어 본문들과 아람어 본문들로, 예를 들어 성서 여러 책들에 대한 주석서라든가 또는 에세네파의 교훈집들 같은 것이다.
파피루스 조각들을 맞추고 있는 Hunzinger 교수누구라도 쿰란에서 나온 이 수많은 조각들을 맞추고 해독한다는게 얼마나 힘든것인지 짐작할 것이다. 당시 연구팀의 일원이었던 훈찡어(Hunzinger) 교수는 그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풀어서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자_ 만약 여러분이 어느날 다락에 올라갔다가 거기 한 귀퉁이에서 아주 옛날 헌 궤짝 하나를 발견했다고 쳐 봅시다. 그리고 그걸 열어보았더니, 그 안엔 당신의 증조 할머니가 쓴 연애편지들이 약 600통이 들어 있는 거예요. 증조 할머니께서 쓰신 그 연애편지의 대상들은 물론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쓴 것이었죠. 그런데 그걸 읽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 편지들은 모두가 잘게 잘게 찢어져 있고 그 수가 대충 10만개 정도 되는 겁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그 모든 것들이 이리저리 모두 뒤섞여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의 80퍼센트는 불에 타져 있는 겁니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을 짜 맞추는 거예요. 그리고 증조 할머니께서 누구에게 무엇을 썼는지를 읽어내는 겁니다. 바로 이게 우리들의 일이었지요. 단지 다른게 있다면 우리 증조 할머니의 연애편지가 아니라 모음도 없이 자음으로만 쓰여져 있는 히브리어와 아람어 본문들이었죠."
이 일에 몸담고 있는 대부분의 연구가들은 40년 이상을 바로 이 작은 쪼가리들을 갖고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쿰란 두루마리 연구가의 한 부인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쿰란 그 처음 1번 동굴이 발견될 때, 아 글쎄 멍청한 염소새끼 한 마리라도 그놈의 것들을 다 씹어 먹어버렸더라면 우리 부부가 이렇게 살아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다음의 쿰란 4번째 이야기는 국제 전문 연구팀들의 활약상에 대해, 그리고 현재까지의 그 연구들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