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신학 강의 > 2000년 여름학기 베델신학대학, 프랑크 크뤼제만(Prof. Dr. Frank Crüsemann)

5월 10일

강의에 앞서, 우선 참고로 제공한 별지에 대해, 어떤 근거로 그렇게 된 것인지 짧게 나마 설명을 하고자 한다, 한 눈에 이를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겠지만, 구약신학의 핵심이 되는 "누가, 무엇이 하나님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으로, 본인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하나의 도표로 정리한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근본 주제인, '하나님 이름', '이스라엘과의 관련' 그리고 '자유'(정의)' 세 주제가 근본 골격을 형성한다. 이 세 주제가 왜 근본이고 핵심인지에 대해선 오늘과 다음시간에 설명하기로 한다. (이 세 주제가 가장 위에 나누어져 있고), 그와 관련된 주제들이 왼쪽 아래로 나열되어 있고, 이에 따른 서로 다른 강조점들을 중요 본문들과 함께 근본 세 주제들에 따라 옆으로 나열하였다 (금번 학기 강연은 본 별지에 따라 진행될 것이고, 주제들과 함께 주어진 중요 성서본문들에 대해선 강의 전에 미리 준비 요망...).

☞별지 참고
별지 참고

(별지 참고) 첫 번째 주제는 '하나님 자신의 소개 Selbstvorstellung'. 출 20,2 십계명 서문 첫 문장, 시나이 계시 첫 문장으로, 출애굽이후 이스라엘에게 말하는 하나님 자신의 소개이다: "나는 야훼(하나님 이름 거론), 너의 하나님, 너를 종살이하던 에집트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얘기한다. 과거사건인 출애굽을 얘기하는 것은 그 다음 하나님의 법인 계명들을 거론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 본문,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얘기하는 것은 바로 성서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 정의이다.

이 본문을 제일 먼저 거론하는 이유는 바로 이 본문이 금번 학기 강의 핵심이며, 본인의 근본 테제를 밝혀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본문은 성서 곳곳에서 그와 유사하게 계속 발견된다. 예언서에서와 법조항들을 다루는 곳곳에서....

성서의 하나님에 대한 근본 정의를 말하고 있는 이 본문은 근본 세 주제인 -'하나님의 이름' 인 '야훼', '이스라엘 관련' 인 '너의 하나님', 그리고 에집트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하는 '자유', 이 모두를 갖고있다. 이 본문이 구약성서를 이해하는 하나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본문이 차지하고 있는 그 배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는 십계명 처음, 시나이, 즉 하나님 자신이 계시는 곳이며 그곳으로부터 오시는 그 장소에서 자신 스스로 바로 이스라엘에게 말하는 것이다. 출애굽으로부터 시작하여 오경의 법들로 들어가는 그 바로 가장 앞에 차지하고 있다. 이는 신 5장에 다시 반복(시내산, 호렙)됨으로 십계명이 오경의 핵심을 차지하는 것을 보여준다. 출애굽 주제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다루는 주제로, 이스라엘의 근본 신앙고백의 전승으로 구약 전체에서 매우 특이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 바로 근본 표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바로 역사적 사건과 관련한다. 많은 고대종교들에서 보이는 원역사와 창조와 관련된 그런 신의 모습이 아닌 역사 안에, 역사 사건과 관련된 하나님으로 그 특이성을 보인다. 특히 왕의 하나님, 파라오의 하나님, 강한자의 하나님 상(像)이 아니라, 그로부터 이끌어 내신 하나님이라는 상(像)은 종교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모습이다. 여기서 "너의 하나님" 즉, "나의" 하나님이라고 보는 것은 우선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그 다음에 나오는 십계명에서, 이는 바로 "그렇기 때문"인 그 근거로 제시된다. 자유, 해방이 근거이다. 그래서 "너의 하나님"이 되며, 그로부터 자유와 해방의 계명들이 십계명 근본 내용을 차지하고, 오경 전체가 또한 그렇다.

십계명 전체 계명은 이 주제와 연관되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안식일 계명 자유의 날로써의 그 의미가 그렇고, 살인금지 명령은 단순히 하나의 (일반적인) 요구 명령만이 아니라, 바로 네 이웃, 그러한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이웃에 대한 계명과 연관해서 보아야 한다.

출 20,2에 대한 랍비문헌 (미드라쉬 메히타)에 의하면, 십계명이 왜 토라 그 처음에 주어지지 않았을까 에 대해, 즉, 왜 창조 그 앞이 아닌가의 문제를 설명한다. 이는 계명은 바로 창조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경험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말한다. 전체 계명에 대한 이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그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 그것이 성서가 말하는 진실이다.

미드라쉬 메히타 본문 설명에 따르면,

".........한 사람이 나타나 주민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제부터 너희들의 왕이 되련다" 주민들이 묻기를, "네가 우리의 왕이 되기 위해 무언가 좋은 일을 했던가? 왕은 성벽을 세우고, 수로를 놓아주나?" 다시 그가 말하기를 "내가 이제부터 그렇게 너희들의 왕이 되련다" 그러자 주민들이 "예" 라고 대답한다. 이스라엘을 에집트로부터 이끌어 내고 홍해바다를 건너고 광야에서 구원해 주고, 시나이에 와서 "내가 너희의 왕이 되련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대답하기를 "예".........."

십계명이 핵심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에 대해 몇가지 중요 사항들을 언급한다면, 우선 본문은 계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 계명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해방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이다. 모세도 아니고....

"너의 하나님" "너" 단수로 나오는 개인은 십계명 전체가 바로 "너"를 향하고 있음과 같다. 이것이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된다.

세 주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고, 이는 어느 하나로 줄일 수 없다. 성서 곳곳에 이 상관관계는 나타난다. 예를 들어, 누가 참 하나님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본문들에도 이 세 주제는 항상 관련된다. 하나님(이름)-이스라엘-자유에서 이 자유(해방)는 한 이론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경험과 관련한다. 성서의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묻는 일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자유" 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 주제는 근본적인 요소다. "자유케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고, 자유가 있는 곳이 하나님이다." 성서 본문에서 누가 하나님인가 하는 주제들은 바로 이 정의(定意)하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해방의 사건, 자유가 있는 곳, 거기 하나님이 관계하셨는가에 대한 물음과 확인이 가장 근본적인 작업이다. 그 동안의 여러 구약신학들의 문제는 바로 이 근본 테마를 도외신 한 것이다.

여기서 본인은 세 가지 방향에서 진행코자 한다. 하나는 출애굽과 광야유랑에 대한 것, 둘째는 이에 반대하는 한 모습으로, 자유와 해방의 하나님에 대한 반항, 끝으로 이로부터 신약성서에 이르는 흐름들에 대해서이다.

첫째로, (일반적으로) '자유'라는 개념은 하나의 보편적이고 추상적 개념이다. 그러나 이런 의미는 구약성서 개념이 아니다. 출애굽과 광야유랑에서 본문이 말하는 것은 에집트로부터 이끌어 내셨다는 역사적 경험과 관련한다. 구약성서 전체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의 그 근본을 이루고 있는 본문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후기 왕조시대의 신학적 산물이다. 출애굽이야기와 함께 나오는 드보라의 구원의 노래는 출애굽사건과 관련이 없는 구원에 대한 유사 주제가 함께 연관된 것이다. 출애굽 주제는 여러 시대를 거쳐 매우 다양하게 펼쳐지는데, 중요한 것을 든다면, 절대권력으로 부터의 자유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를 역사적 사건과 관련지으면 절대권력자였던 솔로몬시대의 강제노역과 관계한다. 솔로몬 사후 강제노역으로 부터의 해방의 모티브가 바로 출애굽 주제를 가진다. 이로부터 자유의 나라 북왕국 이스라엘 건국에 기인한다. 또 다른 역사적 사건으로는 포로기이다. 앗시리아와 바벨론으로 부터의 해방 모티브를 바로 새로운 출애굽과 관련지었다. 출애굽 주제를 발전시킨 중요한 본문으론 사 43장 14절 이하에 나타난다. 16절에 옛 출애굽 사건을 끌어들이고, 18절 이하에 이제 새로운 것을 말한다. "신(新) 엑소더서(출애굽) Neuer Exodus"이다. 포로기 예언자들인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제2이사야에게서 새 출애굽, 해방의 사건은 먼 미래에 대한 종말론적 희망이 아니라 이미 선포되고 시작된 것으로 나타난다. 언제나 자유와 해방에 대한 새로운 출애굽 개념은 옛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으로 강조된다.(사 43,18f.:"..지난 일을 생각지 말라...옛일을 기억지 말라... 보라 새 일을 행하리니...)

개인 "너" 에 대한 것이 전체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을 맺는 것은 유대교의 전통에서도 매우 잘 드러난다. 유대교 '파사 하가다'에 따르면, 유월절 축제 의례시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을 현재 지금 살고 있는 자신들과 관련시킨다.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한 것이 강조된다.

성서 본문 자체에서 보면, 개인 탄원 시편들에서도 탄원자 자신을 출애굽 구원 주제와 관련시킨다.

자유와 부자유의 차이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성서 본문들이 밝히는 것은, 한 하나님, 유일신 문제에서 누가 참 하나님이고 거짓 하나님인가 하는 구분은 잘못이고, 바로 누가 자유의 하나님이고 그렇지 않은가의 구분이어야 한다. 참 하나님과 거짓 하나님에 대한 논의들은 종교사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그것이 우선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는 자유와 억압의 문제하에서 다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