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신학 강의 > 2000년 여름학기 베델신학대학, 프랑크 크뤼제만(Prof. Dr. Frank Crüsemann)

5월 15일 1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번 학기 강의의 중심인 하나님이 누구인가, 이에 대한 성서 자신의 증언으로 그 첫 주제인 "하나님 자신의 소개"(출 20,2)에 나타난 기본 세 주제들인 "하나님의 이름", "이스라엘과의 관련" 그리고 "자유"에 대해 강의를 계속한다.

하나님 자신은 자유이며, 자유케 하시는 이로, 이런 사상은 신약에까지 이어져, 성령이 자유케 하신다고 나온다. 이미 언급했듯이, 출애굽사건과 그에 따른 주제에 나타나는 "자유" 개념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전 역사와 관련된 것으로, 또한 이는 정치, 사회적으로 개별적인 고백, 경험이 또한 전체로 연결된다. 이는 "파사 하가다", 유대인은 유월절 의례를 통해 모든 이들의 전체 경험 고백으로 받아들인다.

지난 시간 마지막에 언급한, 이스라엘의 종교사적 연구에서 (대표적으로 Jan Assmann)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을 다신 세계와의 구분하는 기준으로 바로 누가 참신이고, 누가 거짓 신인가 하는 문제는 성서 자신의 증거에 따르면 문제점이 많다고 말했다. 한 분 하나님, 여러 신들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은 바로 누가 정의와 관련지어 자유의 신이고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바로 성서 자체 안에서의 여러 다양한 주제들과 관련되는 것인데, 이는 현 우리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은 곧 우리의 허물과 이를 용서해 주는 그 관련으로가 아니다. 또한 죄와 속죄에 대한 문제가 그 첫 번째가 아니다. 이상의 문제는 성서의 근본문제인 자유와 부자유의 주제 그 아래에서 다루어질 문제이다. 죄에 빠지는 문제는 자유와 부자유의 근본 주제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자유-부자유 주제의 유일한 모습이 아니다.

성서 내에서 허물과 용서, 죄와 속죄의 문제를 다루는 곳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려내는 일이다. 이는 바로 그 어떤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킨 자유의 하나님과 관련된다.

하나님 자신의 소개를 다루는 주제의 그 두 번째로, "나는 너의 하나님"에서 "너" 인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관련"에 대해 알아본다 (별지 참고).

이 주제와 관련하여 5가지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1) 여러 다양한 개념들(Begriffe)

2) 표상들(Bilder)의 문제들 (이들에 대해선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련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신학을 담고 있는 신명기 7장에 대한 것이 다루어진다.)

3) 종말론적 표상에서와 신약성서와의 관련

4) 유대교와의 관련

5) 중심이 되는 하나님 개념에 대한 그 신학적 문제

우선 여러 다양한 개념들과 표상들에 대해 알아보자.

구약성서는 곧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이의 역사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서 그 전체의 중요 내용이다. 처음은 온 인류의 창조가 다루어지지만, 창 12장으로부터 시작된 아브라함의 역사는 전체 구약성서의 방향을 결정 지워, 페르시아시기인 에스라-느헤미야를 거쳐 가장 마지막 책인 주전 2세게 다니엘서에 까지 이어진다. 이 전체 구약성서 내용 안에는 여러 다양한 개념들과 표상들이 들어 있지만, 이는 항상 그 신학적 의미들을 담고 있으며, 언제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련 주제 안에서 다루어진다.

제일 먼저 이상의 주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으로, 흔히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계약 관계"로 보고, 이를 말해주는 "계약형식문"(Bundesformel)에 대한 것인데, 이는 사실 여러 문제점을 지닌다. 여기선 "계약" 이라는 히브리어 "베리트"(ࠛࠉ࠘ࠁ) 에 대한 문제인데, 이는 다음에 별도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제나 이중적 모습을 담고 있는 점을 보기로 한다. 즉,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는 것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는 것이다. 이 이중 표상들을 담고 있는 많은 성서 본문들에는 각기 여러 다양한 개념들과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그 중 몇몇 예문들을 보면, 하나는 구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본문으로 여기는 사사기 5장의 드보라 노래인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주지만 이는 계약 형식문이 아니다. 5장 3절에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특정되어 나온다 (11절, 13절).

이런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련의 이중 표상들은 예언서들에와 오경의 중심 본문들에 계속 나타난다. 출 6,7 "그래서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곧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그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데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식은 축제절기와 함께 전승된다 (신 26,16이하).

이스라엘과 하나님 관련에 대한 여러 상이한 개념들과 표상들에는, 특히 인간사회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부모와 자식" (호 11장) 관계 안에서의 사랑과 순종등. 또 다른 하나는 부부간의 애정 관계 (호 2장, 11장), 이는 예언서 곳곳에 등장하는 테마이다.

또 다른 한 본문으로 구약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신명기 7장에 나타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련에 대한 것이다. 특히 6절-9절로, 특히 다른 민족들과의 구별과 선택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이스라엘과 열방 민족들에 대한 주제들에서 계속 다루어질 것이다.). 6절에 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들이 다루어지는데, 이는 "거룩한 백성"에서의 "거룩" 이라는 것과 "선택"이라는 것이다. 7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이유는 타민족보다 그 수가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기 때문이며, 특히 8절에 중요한 신학적 개념으로서 "사랑의 하나님"이 등장한다. 즉,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는 조상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맹세에 대한 약속이며, 이는 곧장 출애굽과 연관을 맺는다. 9절 이하에 계속해서 중요 신학적 개념으로 참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으로서 "계약, 베리트"과 "은혜"가 나온다. 신명기 7장은 단지 출애굽사건 경험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관련을 맺게 된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 여러 개념들과 함께 섞여서 나타난다. 바로 이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계명과 법규들이 따라 나오게 된다. 신명기서는 바로 이상의 개념들에 대한 신명기사가의 역사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세 번째로 이상의 개념들과 표상들이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기를 통해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계속 관련하는가의 문제이다. 특히 여기서는 한편으론 부정적인 모습들로, 아모스 3,2 "나는 이 땅의 모든 족속들 가운데서 오직 너희만을 선택하였으나, 너희가 이 모든 악을 저질렀으니 내가 너희를 처벌하겠다." 하나님의 선택과 심판의 이야기,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끊임없는 그의 "사랑"이 또한 나타난다. 오늘날 교회에서 애용하는 본문인 이사야 43,1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의 것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관련은 이스라엘의 절망기인 포로기에서도 계속된다. 또한 이스라엘 포로기 시대 본문인 예레미야 31,4 "나 주가 먼 곳으로부터 와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주었다. 나는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고, 한결같은 사랑을 너에게 베푼다." 또 다른 표상으로는 스가랴 2,8절(히브리성서 12절) "너희에게 손대는 자는 곧 주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다." 타민족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부부관계에 대한 묘사는 신약성서에서 혼인잔치와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이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의 관계에 대한 신약성서와의 관련을 보고자 한다. 오랜동안 기독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젠 이스라엘로 더 이상 한정되지 않으며, 이젠 교회가 이를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이제 더 이상 그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으나, 이런 신약성서의 해석의 관점은 유효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그렇게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특히 이런 문제에 대해 중요하게 여겨진 로마서 9장에서 11장에 대한 것이다. 롬 9장 4-5절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만물 위에 계시면서,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바울은 결코 이스라엘의 하나님 백성 개념을 단절하지 않는다. 롬 11장에 그의 신학의 중심들이 들어 있는데, 11장 26절에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이스라엘에겐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들과 맺은 계약과 율법들이 있기 때문에, 곧 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이름에 대한 문제에서, 우선 이 이름 "이스라엘"은 12지파의 기원을 말해주면, 남북왕조 분단시기엔 북왕국을 지칭하는 말로, 그러나 북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계속 이 이름 "이스라엘"은 존속한다. 포로기 이후 유대교(Judentum)에서 유다라는 이름을 건네 받지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이스라엘 역사 초기로부터 계속 하나님의 백성 전체로서 이스라엘을 지칭한다. 이는 언제나 연속선상에 있지 단절이 아니다.

하나님 개념에 대한 여러 다양한 용어상의 문제들에 있어서, 이스라엘 관련, 여러 다양한 신학본문들, 하나님 자신의 정의문제, 성서가 스스로 이스라엘과 관련된 하나님을 서술할 때, 열방 민족들과의 관련 문제에서도 언제나 이스라엘 관련 하나님의 문제는 늘 존속한다. 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이스라엘 관련 하나님이 어떻게 민족과 관련하는지 하는 것이다. 즉 온 인류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문제, 이는 지금 우리에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