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신학 강의 > 2000년 여름학기 베델신학대학, 프랑크 크뤼제만(Prof. Dr. Frank Crüsemann)

5월 22일 1부

오늘 강의는 구약성서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중 하나인 유일신 신앙인 "일치"(Einheit)의 문제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민족과의 관계, 나아가 바로 이스라엘, 유대인이 아닌 오늘 우리들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지난 시간 시편 82편을 통해서 유일신 신앙은 다신(多神)세계로부터 가난한자와 사회 약자들을 위한 정의와 관련되고 나아가 이제 정의의 이스라엘 하나님은 온 민족, 온 인류를 다스리시는 분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오늘은 유일신 신앙으로서의 "일치(一致)와 다양(多樣)" (Einheit und Vielfalt) 이라는 주제 하에서 잘 알려진 성서본문인 신명기 6장 4절 이하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야훼) 엘로헤이누 아도나이(야훼) 에하드"

쉐마 이스라엘

(들어라 이스라엘이여, 야훼는 우리 하나님, 야훼는 한 분이시다)를 갖고 알아보기로 하겠다.

이 문장은 유대인들의 유명한 신앙고백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신앙고백문은 아니고, 하나의 "부름"(Zuruf)이며, 이스라엘 스스로 자기들을 향한 "우리 하나님은 한 분이다" 라고 하는 경고의 외침 같은 것이다.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나 이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일이 바로 본문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핵심을 보여준다. 8절 이하의 말씀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여라")은 오늘날 정통 유대교의 근본 생활 지침이 되고 있기도 하다 (관련 본문 출 13,9; 신 11,18-20).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이는 이미 주전 2세기에도 일상적으로 행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본문에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한 분 하나님(Einheit Gottes) 신앙은 곧 인간의 하나됨/일치 (Einheit des Menschen)와 관련된다. 곧 "너희는 온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한 분 하나님 신앙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의 실질적인 것으로 작용한다. 그 외의 어떤 다른 영역도 이 한 분 하나님 신앙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유일신 신앙의 근본 주제이다.

세부적인 사항에 들어가기 앞서, 우선 첫 문장의 "하나님 한 분으로의 일치"(Einheit Gottes)에 대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특히 유대교 신앙의 근본이 되고 있는 이 본문을 우리 기독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에 대해 잠시 알아보도록 하자. 이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신약성서 본문을 보면, 이는 오늘날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바로 마가복음 12장 28절 이하이다. 율법학자가 예수께 모든 계명중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를 묻는 말에 예수는 바로 오늘 본문인 "쉐마 이스라엘.."를 대답하고, 율법학자가 또한 이를 동의하는 내용이다. 예수의 그에 대한 마지막 진술인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말은 마가복음의 중요한 신학 테마이기도 하다. 여기 신앙의 핵심이 들어있고, 그 외에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신명기 6장 본문으로 돌아와서,

첫 문장에 들어있는 4 단어에 대해선 매우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하다.

아도나이(야훼) - 엘로헤이누 - 아도나이(야훼) - 에하드

문제는 이 4단어 명사문장에 대한 문법적인 문제로 어디에 강조점을 두어야 하는가 이다. 오늘날 이에 대한 중요한 논의들을 셋으로 구분해 보면,

첫 번째는,

유대 전통에 따라 단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데에 강조를 두어서, 야훼는 우리 하나님이고, 야훼는 오직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으로 보는 일신교(一神敎) (Monotheismus)이다.

두 번째는,

앞의 두 번째 단어에 강조를 두어서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라고 보는 한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일신앙(唯一) (Monolatrie-Monolatrienum-Monolatrismus)을 말한다. 이는 바로 우리에겐 오직 한 분 이라는 신앙이다. 여기 주변 민족들에게 다른 신들이 있는지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세 번째 해석의 가능성으로는,

"야훼는 우리 하나님, 한 분 야훼 이다" 라고 하는 한 야훼 신앙(Mono-Jahwismus)이다. 이는 고고학의 발굴이 말해주는데, 당시 여러 형태로 다양한 성소들로부터 야훼라는 이름들이 각기 다양한 표상들로 나타난다는 데 있다. 이는 분명 당시 한 하나님 야훼신앙으로의 일치를 지키려 했던 문제들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여기 이상의 세 가지 논의들에 대한 본인의 테제는, 히브리 성서 본문 자체에 주어진 4 단어는 각기 문법적으로 액센트를 어디에 두고 읽을 것 인지의 여러 다양한 가능성을 이미 본문 생성시부터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것으로부터 어느 하나만을 고집할 수 없게 해 주는 것이다. 여러 다양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양한 독자와 청중들에 따라 각기 그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 준다는 말이다.

이제, "쉐마 이스라엘..." 에 대한 종교사적으로 그리고 신학의 발전 과정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오늘 날 학계에선 유일 신앙이 이스라엘에 언제부터 있었는지에 대해 여러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지난 2-30년간 새로운 고고학의 발굴작업들과 함께 진행중이다.

성서가 말해주는 유일신 하나님은 창세기 1장서부터 유일신 하나님의 창조기사부터 말하지만, 예언서들엔 여전히 여러 이방신들을 섬기는 문제들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많이 나타난다. 이전 학계의 주장은 처음엔 유일신앙 Monolatriesmus 이었고, 그 시기는 빨라야 왕조출현 그 이전(以前)으로 보았다. 그리고 예언서들에서 특히 예레미야 호세아등에서 당시 이방신들을 섬기는 문제들에 대한 비판은 혼합주의와 타락의 문제로 보았다. 그런데, 종교사연구와 고고학 연구결과들은 이스라엘의 유일신앙의 출현은 다른 신들의 존재란 없는 오직 한 분 뿐인 일신교(一神敎)의 시작으로 보았다. 문제는 포로기 시기, 제2이사야서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당시 여러 신들이 존재한다는 문제는 바로 이 시기와 관련을 맺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언제부터 그러면 이방 신들에 대한 비판과 경고들이 있어 왔느냐는 데에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이에 대한 연구사들을 정리하거나 그에 대하여 정답을 찾을 길도 없다. 문제의 중요성은 바로 종교사적 연구가 아니라 신학사적 관심이라는 것이다. 여러 성서의 진술들은 스스로 옛 전승들을 지켜나간다는 데에 그 관심이 있다. 종교사적 으로 그러한 성서의 진술들을 그 전 역사와 이후의 역사로 다시 재구성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신학의 관심은 바로 성서가 보여주는 그 옛 모습과 그것의 발전 단계들을 보여주는 본문 자체에 있다. 이를 간편하게 후대 연대로 결정짓는 게 아니다. 성서 자신이 보여주는 신학을 묻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작업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하나의 추상적이고 보편적 개념으로서의 유일신앙에 있어서, 이론적으로 이는 그 개념 자체가 오직 한 분 하나님인지, 또는 이미 여러 신들의 존재가 있지만, 그 중에서 오직 그 분 만을 섬기다는 것인지의 문제를 갖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보여주는 신약성서 본문이 고린도전서 8장 4절 이하인데, 바울이 우상의 고기를 먹는 문제들에 대한 답변에서 4절은 다른 신들은 없고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고 말하고, 5절은 여러 신들이 있으나, 6절에서 우리에겐 하나님 한 분이라고 말한다.

이제 성서의 이스라엘 유일신 신앙에 대하여 종교사적 질문이 아니라 신학적 관심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첫째, 성서 여러 다른 본문들 가운데, 여러 신들의 존재를 전제하면서, 그 가운데 오직 이스라엘과 관련된 하나님 신앙을 말해 주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자. 이미 보았던 시편 82편이 그렇다. 여러 신들의 모임과 정의와 관련되어 신들의 사형판결과 온 민족들을 정의로 판결하실 하나님에 대한 표상, 여기 바로 "다양성" Vielfalt 가 다루어진다. 그 외 다른 두 본문을 든다면, 하나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쫓아 왔을 때 다윗이 말하는 장면인데, 삼상 26장 19절에 (개역개정),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사람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하니라" 본문은 이스라엘 밖에 다른 신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른 바 모세의 노래라 불리는 대목중 하나인 신 32장 8-9절이다. "[8] 지극히 높으신 자 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본문의 지극히 높으신 이로 나온 "엘리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지 아니면 가나안의 신(神)인지는 분명치 않다. 히브리성서 본문엔 이스라엘 자손 이라고 나오지만, 여러 다른 고대 사본들에 따른 본문비평에 의하면, "엘 (신(神)들)의 아들들"이 본래적이었을 것으로 본다. 가장 높은 신(神)-엘리욘-이 민족들의 경계를 나눌 때, 바로 신(神)들의 아들들의 수(數)에 따랐다는 것이다. 이는 곧 여러 신들이 각각의 민족들을 나누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로 여러 상이하고 다양한 종교의 표상을 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쉐마 이스라엘..."에는 특별히 이스라엘하고만 관련된 하나님이며, 다른 민족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유일 신앙(Monolatrie)을 말해주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본문은 바로 십계명의 첫 계명인 출 20,3절이다.

"로 이흐예-르카 엘로힘 아헤림 알-파나이"

"너희는 내 앞에서 나 외의 다른 신들을 두지 못한다"

이 본문은 분명하게 다른 신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논의할 문제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는 분명하게 개념화된 일신교(一神敎)(abstrakte Monoteismus)를 말하는 게 아니다. 본문은 여러 신들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고, 여기서의 주제는 바로 한 분 야훼 신앙(Allein Verehrung)을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본인의 근본 테제는 (물론 다른 이들도 인정하듯), 성서의 단 한 분 하나님이라는 일신교(一神敎)(Monoteismus)로 가는 그 초기 유일신앙(唯一神仰)이 형성된 그 기원은 바로 주전 9세기 예언자 엘리야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이를 말해 주는 본문이 왕하 1장 3절이다. 이는 이스라엘 사마리아의 왕 아하시야가 병이들어 사절단을 에그론의 신(神) 바알 (바알세붑)에게 보내어 병이 나을 수 있는 지를 물어보도록 하는 장면인데, 이때, 주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나타나 그들에게 할 말을 전해 주는 말이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 본문을 갖고 바알이 병을 낫게 할 수 있는지 아닌지의 논쟁이나, 또는 당시 바알이 실제로 존재 했었는지의 문제가 논쟁이 중심이 아니라, 핵심은 바로 이스라엘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 계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 본문이다. 바로 이 문제가 엘리야 이야기 전반에 걸친 주제이다. "한 장소 이스라엘" 에서, "한 백성 이스라엘"의 "한 분 하나님 신앙"에 대한 주제이다. 바로 이 주제가 유일신교의 근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본문인 왕상 18장의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이야기인데, 주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바알인가 하나님인가? 이는 일신교(一神敎)를 말하는 게 아니다. 누가 참 하나님인가에 대한 문제는 누가 인간과 온 생물의 삶을 좌우하느냐의 문제, 즉 가나안의 신 바알은 비를 관장하고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풍요의 관장하시는 분이 과연 누구인가를 가려내는 이야기이다. 누가 참 바알인가? 아니면, 누가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인가? 이로부터 시작된 한 분 하나님 신앙, 이 유일신앙(唯一神仰)은 "쉐마 이스라엘"을 거치는 오랜 시간을 통해 후대에 개념화된 일신교(一神敎) (abstrake Monotheismus)로 진행된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일신교(一神敎)를 보여주는 본문들이 무엇인지 보자. 우선 이미 보았던 시편 82편이 그렇다. 거기에 신들의 죽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일신교로 가는 그 과도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쉐마 이스라엘" 본문이다. 다른 예문으로는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이사야 41장 21절 이하이다. 이는 흔히 제2이사야로 불리는 것으로 최소한 그 연대를 포로기로 잡는다. 21절 이하 역시 하나의 "하늘에서의 신들 모임"을 연상시킨다. 민족의 신들을 불러모아 그들로 하여금 미래의 일들을 그리고 예전의 일들을 말해 보게끔 하라는 것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신들로 인정이 된다. 본문의 배경은 포로기 상황에서 이미 예언자가 그 이전에 포로가 될 것을 예견한 것과 함께, 아울러 앞으로의 일들인 고레스 왕이 포로민들을 귀향시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는 것과 맞물려 있다. 신이냐 우상이냐의 척도는 과거와 미래를 말 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다. 본문의 결론은 다른 신들이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본문으로 일신교(一神敎)의 정형을 보여주는 것은 이사야 43장 8절 이하이다. 여기서도 법정의 문제인데, 단지 여기서는 신들이 아니라 민족들이 법정에 서는 것이다. 민족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이 미래를 말해준 일이 있었는지를 증언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로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며 그들이 증인이 된다. 10절 하반절에 분명한 문구: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이것이 바로 개념화된 일신교(一神敎)(abstrakte Monotheismus)를 지칭한다. 포로기 제2이사야를 통해 일신교의 틀이 마련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오직 한 분 하나님은 이젠 온 인류(alle Menschheit)와 관계한다는 것이다. 이 유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제 어떻게 온 민족과 관련을 맺는지에 대한 주제가 다루어지게 된다. 특히 제2이사야서와 다른 본문들에서 민족들에 대한 주제는 종말론 주제와 관련을 맺는다. 그런데 여기 단 한 분 하나님은 아직 눈에 보여지는 그런 분이 아니다. 이제 신은 한 분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온 민족, 온 인류가 그를 알 때까지 이제 그 과정은 아직 열려 있는 상황이다. 제2이사야의 관점은 시편 82편과 같이 만약 이제 신이 한 분뿐이라면, 이제 그가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며, 그로써 온 민족이 그에게로 경배하러 나올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상의 종말론적 관점을 지니고 있는 본문 둘을 예로 들겠다.

그 중 하나는 스가랴서 14장 9절로 바로 여기에 "쉐마 이스라엘"의 관점이 드러난다: (개역개정)"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이 관점은 신약과의 관련에서도 매우 중요한 본문이다. 믿는자의 부활의 소망을 말하고 있는 본문으로 고전 15,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이는 바로 스가랴서의 말씀과 같이 마지막 때에 모든 것이 하나님 한 분으로의 일치를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자신까지도 바로 하나님 한 분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궁극적인 하나님의 일치(Einheit)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치와 다양성(Einheit und Voelfalt)의 주제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결론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