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신학 강의 > 2000년 여름학기 베델신학대학, 프랑크 크뤼제만(Prof. Dr. Frank Crüsemann)

5월 22일 2부

지난 시간에 이어서 하나님 (한 분으로)의 일치와 다양성에 대한 종교사와 신학사적 문제들에 대해 몇 가지 더 첨부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일치와 다양성 그리고 신의 존재(현존) 문제는 매우 근본적인 구약신학의 주제이다.

유일신교(Monotheismus)는 우리로 하여금 다신교를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른 신이 있다고 가정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부딪히는 것이다. 다신 세계에서 신들을 믿는다고 하는 신앙이란 없었다. 결코 "신앙"이라는 개념이 적용된 일도 없고,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신앙이 아니라 자기들의 삶과 관련된 경험에 의존한 것이었다. (고대 근동의) 신들은 인간의 모든 근원적 삶의 원천을 대표하는 존재들로 비추어졌다. 인간들의 삶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 예를 들어, 출생과 죽음, 사랑과 증오, 평화와 전쟁, 건강과 질병, 성공과 좌절등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각자의 경험에 기인한 것들이고, 이런 모든 것들은 각기 특정 신들의 속성과 결합되었다. 결국 다신교에는 일신교 보다 보다 인간의 현실 세계와 보다 가깝고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있다. 특히 인간의 삶에서 겪는 부정적이고 불행한 일들의 경우들(죽음, 고통, 불의...)은 다신교 내에선 여러 신들이 갖고 있는 특성으로 인해 일신교 보다 더 인간들의 삶과 직접적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여러 다양한 삶의 영역, 특히 부정적인 삶의 모습들을 담고 있는 가운데 단 한 분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의 하나님은 불의와 억압의 현장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성서가 말하는 이 한 분 하나님 신앙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곧 모든 다양한 인간의 삶의 모습들과 적용되고 일치되어야 하는 문제를 먼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 바로 성서가 말하는 것은 이 다양한 삶의 영역들에 대한 한 하나님 신앙은 늘 그 원인과 결과(Kausalität)를 말해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신학의 다양한 모든 주제들은 바로 이 근본 주제와 결합되고 말해주어야 한다. 어떻게?

종교사적으로나 신학사적으로 유일신교(唯一神敎)로의 발전 과정들은 모든 현존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새롭게 그 구조를 만들어 가는 일이었다. 다신 세계에서 있었던 서로 다른 구조들과 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했던 모든 삶의 영역들의 경험들을 바로 한 하나님 구조 체계 안으로 일치시키는 일이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학계의 논의 결과들을 설명하자면,

첫째로, 종교사적 연구 결과에서는, 이 과정을 여러 다양한 신들의 속성들을 단 한 분 유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안으로 통합시켜 나간 과정(統合過程)(Prozeß der Integration)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가장 큰 문제의 심각성은 어떻게 여러 형태의 존재들에 대한 신의 속성들이 사라질 수 있었으며, 또한 어떻게 그런 것들이 특정의 한 신(神)으로 통합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일신교의 생성에 대하여 성서, 특히 오경(토라, 특히 시나이 토라가 그 핵심)의 생성사(生成史)와의 관련을 보는 것이다. 오경의 생성은 바로 이 유일신 신앙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많이 잊고 지내왔던 문제로, 인간의 부정적인 삶의 영역들에서 나온 탄식의 문제를 바로 이 한 분 하나님 신앙으로 접목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 어떤 하나의 이론적 교리에서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에 대한 탄원과 항변, 그리고 이에 대한 신의 답변과 그 신앙의 문제들을 새롭게 정리해 나갔다고 보는 것이다. 시편의 많은 탄원시(歎願詩)들이 그렇다.

다양성이라는 문제는 사실 하나님의 모습 그 자신 안에서도 발견된다. "야훼는 한 분" 이라는 말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모든 것이 바로 이 한 분 하나님으로 관철된다는 말이다. 한 분 하나님은 모든 것의 하나라는 것이다. 모든 전체가 그 어떤 하나라는 중심으로의 모아짐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것, 곧 이는 신앙의 중점으로의 모아짐이다.

성서 내에서 하나님 자신 안에 여러 다양한 것들이 하나로 집중되는 하나님의 계시(나타남)는 신약에선 바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은 그렇다고 자신의 존재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구약에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임과 동시에 하나님은 말씀보다 더 이상의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는 하나이다. 이와 유사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 카보드 (ࠃࠁࠊ)이다. 하나님의 현존이 나타난 모습이다. 하나님의 다양성은 곧 하나님의 일치 그 통일성을 말하는 그 안에 들어있다. 하나님의 다양성에 대해 말하는 본문은 특히 그것의 발전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은 성서의 지혜문학들이 그렇다. 여러 중요한 본문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잠언 8장 14절 이하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것이며, 이 하나님의 지혜가 세상의 통치 기준이 된다. 22절 이하에선 보다 강조되어, 지혜는 창조의 매개였으며, 모든 창조 이전부터 있었음을 말한다. 지혜 신학(Weisheitstheologie)은 후에 토라와 일치되었고, 지혜의 인격화는 또한 기독론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로고스 신학이다.

한 하나님은 그 자신 안에 이상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다양한 존재들은 곧 한 하나님과 일치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핵심은 이런 다양한 존재들이 하나 안에 모여지고 일치되는 각각의 내용들에 있다. 여러 다양한 경험들이 바로 근본 신앙인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로 맺어지는 것의 의미가 중요하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경험하는 존재들의 그 원천을 언제나 이 자유의 하나님을 통하여 새로이 관계를 맺고 이를 각각의 삶에 일치시킨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일치, 그 통일성의 주제이다.

다음 주제는 한 분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민족(열방 Völker)에 대한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을 에집트로부터 해방시킨 하나님이 오직 한 분 뿐인 하나님, 즉 오직 세상에 그 분 밖에 없다면, 또 그렇게 믿는 다면, 이는 바로 그 하나님이 온 민족의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코 온 인류를 위한 보편주의를 말한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없어지거나, 그것으로 대체된다거나 또는 그와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늘 함께 존재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와 동시에 온 인류의 하나님이다. 이것이 바로 성서가 말하는 독특한 하나님 신앙이다.

여기서 오늘 유대인도, 이스라엘인도 아니 기독인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어떻게 우리가 이스라엘이 믿고 이해했던 이 하나님에게로 다가갈 수 있는가 하는 하나의 시급한 해석학적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것이 이번 학기 강의 중요 요점이 될 것인데, 오늘날 기독인들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구약성서의 이 하나님 신앙을 위한 적합한 근거를 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본인을 이를 위해 어떤 외부적인 시각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서 본문 자체를 통해서 보려고 한다. 전반적으로 본인은 다음과 같은 4단계에 걸쳐서 이를 진행하고자 한다.

1) 서로 다른 두 본문을 예로 들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의 그 목표에 대한 이중적 모습

2) 이스라엘과 민족의 하나님에 대한 전체적 조망, 그에 따른 여러 상이한 신학의 강조점들

3) 부정적인 면을 다루고 있는 본문들, 즉, 열방심판을 다루고 있는 본문들

4) 이상의 문제들을 통한 신학의 핵심적인 문제제기들

그 첫 번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의 그 시작에 서 있는 이중성의 문제를 보고자 한다.

이방 민족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입장 문제들에 다루는 가장 큰 본문은 바로 땅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성서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한 입장을 보여주는 가장 큰 주제 중에 하나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이 되는 바로 그곳에서 온 인류 역사와 관계한다는 점이다.

그 첫 번째 성서 본문은 이스라엘 형성의 그 목적을 향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다.

(창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개역개정)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바로 이스라엘 형성을 위한 그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이는 바로 온 민족을 위한 관점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며, 본문에서 이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아브라함에게 대해 어떻게 처신하는지에 따라 복을 받을지, 또는 저주를 받게 되는지가 다루어진다. 그 다음으로 온 민족들이 복을 받게 된다고 나온다. 여기 쓰인 수동형 (니팔형) 동사 "복을 받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창 18,18과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창 28장 14절("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에 다시 나타난다. 또 다른 하나는 26장 4절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에, 여기서는 니팔형이 아니라 히트파엘, 재귀형으로 나온다. 이는 아브라함이 바로 온 민족의 복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사도바울을 통해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갈 3장 8절: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성서의 정경이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즉, 온 인류의 문제를 다루는 창 1-11장까지의 원 역사 다음에 바로 아브라함의 소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시작을 향한 첫 걸음과 함께 온 민족의 복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전 9세기경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의 출현 그 처음부터 바로 온 민족들과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상 17장 엘리야 이야기의 그 처음은 사르밧 땅의 과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르밧은 바로 이방 바알 신앙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바알이냐, 이스라엘의 하나님인가의 누가 참 하나님인가를 말해주는 엘리야의 이야기는 곧 비를 관장하고 풍요를 뜻하는 바알과의 싸움으로, 가뭄으로 인해 죽음의 면전에서의 바알의 중심 도시 사르밧에서의 기적 이야기에는 이방 여인으로 하여금 엘리야의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내용은 개종의 이야기가 아니라 유일신앙의 출현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또한 이방인 복의 문제를 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로, 이스라엘과 민족의 하나님에 대하여 전체적인 조망을 해보도록 하겠다.

구약성서 전반은 바로 이스라엘과 관련이 되어 있지만, 이는 또한 온 인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성서 처음 창조사는 단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창조와 관련된 것이다. 성서의 많은 본문들이 사르밧의 과부 이야기처럼 이방 민족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그 중 몇몇 만을 추려 이야기한다면, 이방인인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출 18장 11절에서 이드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 어떤 신 보다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고백한다. 또 다른 하나는 민수기 22장 이하의 이방 예언자인 발람(원 발음은 '빌르암')의 모압의 왕 발락의 이스라엘 저주의 청을 거부하고 축복을 예언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와는 정 반대의 이야기가 바로 욥의 이야기이다. 욥은 아라비아 또는 시리아 어느 지경에 있던 우스라는 곳의 사람이다. 욥기에는 이스라엘 관련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욥기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의의 주제와 유일신앙이 함께 다루어지면서도 전혀 이스라엘과의 관련이 나타나질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후에 별도로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이스라엘과 민족 관련 본문 중에 중요한 하나는 아모스서이다. 이스라엘 심판의 하나님은 또한 민족(열방)심판과 함께 다루어진다. 특별히 이스라엘과 이방민족과 관련한 하나님의 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본문은 아모스서 9장 7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에디오피아)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