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신학사 정리, (참고 R.E.Clements, A Century of Old Testament Study, 1976).....박경철.....

벨하우젠의 이스라엘 종교사에 대한 연구(Prolegomena zur Geschichte Israels, Berlin 1883)는 이스라엘 종교 역사 발달은 무엇보다도 유일신 종교에 초점을 맞추어 특정 종교의 근본적인 개념들을 발생시킨 것으로 보았다. 이로부터 구약성서신학의 개념들인 신적 계시에 대한 내용들을 이루는 것으로 작용했다.

이런 비평적 입장으로부터 B.Stade(Biblische Theologie des Alten Testaemnts, Bd.1 Tübingen 1905; Bd.2 A.Bertholet 에 의해 출판, 1911)는 예언 이전의 종교시대와 아모스 이후 예언자들로부터 이루어진 개혁된 종교시대로 구분했다. Stade이전 이미, 보수적이고 경건주의 입장에서 H.Schultz (Alttestamentliche Theologie, Brauschweig 1869.1889)는 구약성서의 종교와 도덕의 발달에 대해 문헌에 반영된 종교발달의 주요 단계들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고, 신학적이고 윤리적 개념들이 어떻게 특별한 제도와 사건들과 관련을 맺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였다. 아울러 이로부터 파생된 개념들에 대해 조직적으로 이를 설명한 것이 '이스라엘의 구원 의식과 세상의 종교적 견해, 백성들의 종교 역사의 산물'로 인간, 세상 그리고 예언자적 소망이 이스라엘과 하나님 관계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체계화하려고 하였다. Schultz 의 구약성서의 다양한 개념들의 체계화 작업은 곧, 초기 이스라엘의 종교적 개념들을 정리하려는 구약 신학의 작업이 바로 구약성서가 어떻게 자기들의 옛 전승들을 정리했던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본 것이다.

1932년 젤린(E.Sellin, Alttestamentliche Theologie auf religionsgeschichtlicher Grundlage; Erster Teil: Israelitisch-jüdische Religionsgeschichte; Zweiter Teil: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Leipzig 1933)은 이스라엘의 종교 역사연구와 구약성서신학을 구분했다. 이런 이중적 연구는 Eichrodt의 스승이었던 O.Proksch(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Gütersloh 1950)에게서도 나타났다. 역사적인 것과 구약성서의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관련된 다양한 개념들에 대한 조직적인 작업이었다. 이스라엘의 종교역사에 대한 연구는 K.Marti(Geschichte der Israelitischen Religion, 4. verbesserte Auflage von August Kayser's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Strassburg 1903)에게서 더욱 잘 드러났다. 이스라엘의 고대 종교역사에 대한 연구들은 고고학의 새로운 발견들과 함께 비벨-바벨 논쟁으로 이어졌고, 이런 논쟁으로부터 이스라엘 주변 고대 근동문화들과 그들의 종교 비교연구는 구약성서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비벨-바벨 논쟁이란 1902년 독일 베를린에 있었던 '독일 근동연구소'에서 행한 델리취 (Friedrich Delitzsch)의 강연이 논쟁의 발단이 된 것으로(F. Delitzsch, Babel und Bibel : ein Vortrag - 4., durchges. Aufl. Leipzig : Hinrichs, 1903. - 81 S. : Ill., Kt.), 논쟁의 중심은 1차대전 이후 새로이 발견된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에집트 유물들로 인해 메소포타미아 종교(바벨)와 성서(비벨)간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논의들이었다.

덴마트 인류학자 V.Grøbech에 영향을 받은 S.Mowinckel의 시편연구는 시편문학이 초기 이스라엘의 제의에 깊이 연관된 것으로 보고, 제의가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주장했다. 대체로 당시까진 구약성서신학의 재구성 작업이 아니라, 초기 이스라엘의 종교를 역사적으로 서술하려는 작업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19세기 초반 E.W. von Hengstenberg(Christologie des ALten Testaemnt, Berlin 1829-1835)와 J.C.K. von Hoffmann(Weissagung und Erfüllung im Alten und Neuen Testament, 1841-1855) 작업들은 구약의 약속과 신약의 성취라는 도식에 대한 기독론적 연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신학과 역사 사이의 문제는 아직 해결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1925년 C.Steuernagel( Altestamentliche Theologie und Alttestamentliche Religionsgeschichte , Vom ALten Testament, FS K.Marti, K.Budde(Hg.), BZAW 41, Giessen 1925)은 구약성서신학 방법론과 이스라엘 종교 역사 방법론과는 다르다는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른다. 그 후, O.Eissfeldt( Israelitisch-jüdische Religionsgeschichte und alttestamentliche Theologie , in: ZAW 44 (1926), 1-12)는 이스라엘 종교연구에 대한 역사비평방법과 구약성서신학에서 요구되는 신학적 가치 평가 사이엔 엄격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Th.C. Vriezen(Hoofdlijnen der Theologie van het Oude Testament, Wageningen 1949, vgl. R.E.Clements, Contemporary Old Testament Theologians , Hg. R.B. Laurin 1970, 121-140)은, 구약성서신학의 고유한 출발점은 그 목표인 신약성서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기독록적 입장은 오히려 W. Vischer(Das Christuszeugnis des Alten Testaemnts, Bd.1, Zürich 1934, Bd.2, Zürich 1942)의 유형론적 입장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너무 자의적이었고, 구약성서에 대한 역사비평적 작업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보였다.

이스라엘 종교의 역사 연구와 함께 구약성서신학이 독립적인 분야로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시 W.Eichrodt ( Hat die alttestamentliche Theologie noch selbständige Bedeutung innerhalb der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 in: ZAW 47 (1929), 83-91)에게서 일어났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구약성서 신앙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하나의 원리로 정리될 수 있었는가를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이라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이런 작업은 그의 구약신학(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Bd. 1, Stuttgart 1933; Bd.2, 1935; Bd. 3, 1939)에 기술되었다. 많은 비판이 제기 되었지만, 그의 작업을 통해 구약성서를 신학으로 해석하는 근본적인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구약성서내에 있는 다양한 개념들과 주제들을 조직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너무 인위적인 재구성이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과연 초기 이스라엘 백성 그 누가 그렇게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믿음을 의식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겠는가가 문제였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신앙은 각기 여러 다양한 시대를 거쳐 다양한 특징들을 지닌 신앙의 복합물이라는 것이 정당시되었다. 무엇보다도 왕국 몰락 이전 이스라엘의 초기의 제의 종교가 중심이 되었던 때와 율법이 정경으로 그 권위를 지니게 되었던 포로기 이후 초기 유대교간의 신앙의 차이는 분명 현저했다. 제의 종교로부터 문서로 기록된 종교로의 전환은 구약성서 형서과 권위의 중심을 차지한다. 이미 벨하우젠이 포로기 이전과 포로기 동안의 예언자 신앙과 그가 신랄하게 비판했던 포로기 이후 율법을 중심으로 했던 성서주의와의 구별을 대조시켰던 것과 달리, 아히히로트는 이 두 세계관의 현저한 차이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따라 붙게 된 것이다.

아히히로트의 연구는 구약성서내에 있는 개념에 대한 연구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 하나는 G.E.Mendenhall이 출 20,2-17 십계명에 나오는 시내산 계약전승은 고대 근동의 봉신조약의 양식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Ancient Oriental and Biblical Law , in: BA 17 (1954), 26-46). 계약에 대한 연구는 무엇보다도 E.Kutsch(Verheissung und Gesetz, BZAW 131, Berlin u.a. 1973, 그의 소논문, Gottes Zuspruch und ANspruch, berit in der alttestamentlichen Theologie , in: Questions disputees d'Ancien testament, C.Brekelmans (Hg.) Lovan 1974, 71-90)에 의해서이다. 그는 히브리어 berit를 단순히 '계약'으로 번역하는 것의 오류를 지적하고,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율법으로, 그리고 '약속'으로 berit를 이해했는가를 살폈다. L.Peritt(Bundes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WMANT 36, Neukirchen-Vluyn 1969)는 계약의 신학적 의미와 함께 계약신학의 연대를 신명기시대와 그 이후로 옮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A. Weiser( Die theologische Aufgabe der alttestamentlichen Wissenschaft , in: Glaube und Geschichte im Alten Testament, Göttingen 1966, 182-200)는 구약신학의 과제는 성서주석과 함께 성서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해하는데에 있다고 주장하게 되는데, 이는 독일 구약성서주석 시리즈(ATD: Das Alte Testament Deutsch)의 출현과 함께 구약성서에 대한 비평작업과 함께 성서강해라는 두 작업의 병행을 그 과제로 하였다.

구약신학에 대한 전혀 새로운 작업이 G.von Rad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Bd.1 München 1957, Bd.2 1962)에 의해 나타나게 된다. 그의 새로운 주장은 바로 구약신학의 본질적인 주제는 단지 초기 이스라엘의 종교개념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 문헌 자체라고 한 점이다. 초기 이스라엘 종교의 특징은 그 어떤 신학개념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지도 않았고, 이를 교리적으로 공식화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에 대한 짧은 신앙고백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 6,20-24; 26,5b-9; 수 24,2b-13이다. 이 케리그마를 통해 비로서 이스라엘은 야훼가 누구이며 야훼가 어떻게 자기들을 야훼의 백성으로 삼았으며, 또한 어떤 관계를 이루어 왔는지를 고백하게 된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바로 신의 선택이며, 그 선택의 선물이 또한 가나안 땅이라는 것이다. 폰라트는 이 신앙고백문이 비록 후대 문헌(7세기 또는 그 이후)에 나오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았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야훼신앙과 예배 전승가운데 깊이 뿌리를 박고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보았고, 여기서 구속사(Heilsgeschichte)를 전개해 나갔다. 폰라트는 오경의 문서 자료와 구조의 기원 연구에 이를 그 기본 도구로 사용했다. 이스라엘의 초기 전승안에 이미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했다는 기본 신앙고백이 들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히브리 성서 정경의 순서가 토라 다음에 예언서가 위치한다는 사실은 신학적으로 정당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예언이 갖는 가장 큰 특성은 바로 민족의 위기시기에 이를 율법의 조명하에서 해석했다는 점에 있다. 결국 예언은 고대 케리그마의 구속사의 갱신과 회복으로 이해했고, 왕조의 멸망을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로 이해했고, 이는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위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폰라트는 구약의 예언서를 오경에 보존된 고대 역사전승들과 떨어 질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폰라트의 구약신학은 구약신학의 고유한 방법론과 함께 새로이 재검토해야 할 문제들을 제기하게 되었다. 폰라트 이전 오경연구에 있어서, 궁켈의 양식비평연구의 영향은 폰라트로 하여금, 오경 전체 전승사적 연구의 범위로 확대되었고, 이는 오경 문학의 성장에 대한 연구가 구속사라는 신학적 개념을 탄생시키게 된 것이었다. 아이히로트와 그 이전 구약학자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신앙을 역사적이며 단면적으로 보았다면, 폰라트에 의해 제기된 구속사 신학은 구약성서 문헌의 본질과 그 주제들을 신학적인 문제로 이끌어 오는데 공헌한 것이다. 폰라트 신학에 대해 비판하는 경향들에서 제기되는 두가지 면은, 첫째, 그가 구약성서내의 신학사상의 다양성을 너무 강조함으로써, 구약성서내의 상호 연관성의 요소들을 간과했다는 점이며, 둘째는 구약성서 문헌의 구조를 너무 전승사 방법으로 획일시 했다는 비평이다. 폰라트의 전승사 방법론은 오경의 최종형태 및 오경 편집 그 이후에 대한 연구가 적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오경의 독립적인 문헌들로 간주되는 J, E, P 문헌들은 오경이라는 그 전체 산물에서 다루어 져야 하고 이는 가장 후대 오경이라는 그 전체를 만들면서 현재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점과는 달리, 그는 너무 개개 문헌들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비판이다.

폰라트 이후 G. Fohrer(Geschichte der Israelitische Religion, Berlin 1969)는 이스라엘 종교 초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신화적인 세계에서 나온 그 종교적 진술들로부터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진술들을 이끌어 내어야 할 것인지, 즉, 기독교 신학이 구약성서 문헌에 어떤 기초를 두어야 할지를 규명했다. 포러의 관심은 곧 초기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했는가에 있었다. 이는 또 다른 문제인, 현재 구약성서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과 초기 이스라엘에게 요구했던 것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제기되었다. 비록 짧게나마 W.Zimmerli(Grundriss der alttestamentlichen Theologie, Stuttgart u.a. 1972)는 폰라트가 제시한 구약성서의 다양한 진술들의 문제를 제기함과 아울러 구약성서를 함께 하나로 묶는 노력들을 기울였다. 이는 찜멀리 스스로 언급했지만, 폰라트에 의해 제기된 구약성서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관심이 준 영향이었음은 분명하다. 그 주제들은 하나님의 땅 선물과 제사장직과 왕권이다.

B.S. Childs(Biblical Theology in Crisis, Philadelphia 1970)는 무엇보다도 정경개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Exodus: a commentary, The Old Testament library, London 1974;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as scripture, London 1979). 성서신학의 편집비평방법으로부터 성서 문학의 형식에 대한 관심으로의 새로운 연구방향을 잡게 된다. 성서신학을 개별적인 어휘들과 그런 개념들에 대한 연구로 집중되었던 20세기 초기 경향과 달리 이는 매우 다른 방향을 보여 준 것이다. 물론 그의 '정경비평'은 아직 많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성서의 계시를 지닌 정경으로서의 권위라는 문제와 성서자체 계시라는 전체 개념과의 문제들에서 아직 해결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G.W. Coats 와 B.O. Cong에 의해 편집된 Canon and Authorith, Essays in Old Testament Religion and Authority, Philadelphia 1977에 제기되었다. H.Gese는 그의 논문 Tradition and biblical theology , in: Tradition and theology in the Old Testament, D.Knight(Hg.) 1977, 301-326에서 구약성서의 '정경 형식'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제기했다. 그는 구약신학이 아닌 성서신학의 문제들을 철저하게 전승사적으로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만약 신학이 정경으로서 성서 전승의 발전양식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는 전승들의 후기 단계들이 그보다 앞선 단계의 전승들을 포함하고 있고 이를 더 발전시켰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정경화 작업은 성서 전승의 형성과 구체화의 마지막 단계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결국, 구약성서에 대한 기독교신학의 문제를 제기한것으로, 구약이 신약과의 관계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C. Westermann은 Der Segen in der Bibel und in Handeln der Kirche, 1968에서 구약성서의 '복' 개념을 교회의 예배와 성례전과 관련지었고,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in Grundzügen, ATD Ergänzungsreihe Bd. 6, Göttigen 1978에서, 구약의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는 것,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 그에 대한 증언들과 설화적인 보도와 이들의 확장, 창조질서와의 관련, 인간의 역사실존 속에서의 심판과 용서를 통한 하나님의 복의 중개등을 다루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곧 하나님의 그러한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관계 속에서 구약을 다루었다. A.H.J.Gunneweg은 Vom Verstehen des Alten Testaments : eine Hermeneutik, ATD Ergänzungsreihe Bd.5, Götingen 1977 에서 성서해석학의 쟁점들에 대해 다루었는데, 구약신학과 구약성서해석이라는 문제점들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더욱 확실시 해 주었다.

구약성서신학. 새로 첨가할 문제 (R.Rendtorff, Kanon und Theologie)

I. 들어가는 말

폰라트의 구약신학이 나온 지 벌써 30년이 더 지났다(1권 1957. 2권 1960). 연구사에 있어서 그의 구약신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환점을 가져온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는데(참고. W.H.Schmidt,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vor und nach Gerhard von Rad, VF 17 (1972) 1-25; J.H.Hayes / F.C. Prussner, Old Testament Theology. Its History and Development (1985) 233), H.W. Robinson의 "구약신학은 각 시대마다 새로 쓰여질 수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자주 인용되는 것처럼, 폰라트 역시 그런 사실을 알았을 테고, 그의 신학은 당시 구약신학 연구에 있어서 분명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오늘날의 상황을 특징 지우자면, 지난 2-30년간 진행되어온 개론학과 성서신학간의 상호 왕래에 있어서 내 생각으론 놀라운 진전이다"고 말했다(1권 7).

폰라트는 그의 논제를 가능케 하고 특징지었던 많은 중요 전제들을 언급한다. 그는 서문에서 "궁켈의 양식사 연구로 종교법의 형식들, 각종 제의 문건들, 제의예식들 그리고 특히 매우 오래된 고백문들이 문제로 제기되었다"고 언급한다. 그 이후,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역사 서술에 있어서 다양한 형식들을 보여주는 세 가지 큰 작품인, 6경과 신명기 사가와 역대기사가 작품에 대한 전승사를 새로이 보아야 할 것"을 밝혔다. 특히 그의 책 제1권의 윤곽을 보면, 곳곳에 지난 십여년간 연구에 힘입어 계속적으로 나타난 그 다음 폰라트의 신학을 특징지우는 그의 또 다른 전제들인, '족장들의 하나님', '땅 정복', '암픽티오니(지파동맹)', '계약갱신축제', '필연법', '카리스마적인 판관들', '거룩한 전쟁' 과 그 밖의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상 그의 신학을 특징지우는 전제들은 30년전 독일어권의 많은 구약학자들에게 있어서 각기 떼어져 있었던 것이었고, 많은 논의들 가운데 몇몇은 아예 포기되어지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바로 그때 폰라트의 방법론적 논제가 새로이 문제제기를 하게끔 된 것이다. 이는 그 전제들의 변화는 별도로 하고, 새로이 인식해야 할 문제, 즉 하나의 문제제기는 어떤 구조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폰라트 신학의 결론이 이끈 공헌은 구약성서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것이며, 또한 이는 여러 관점들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폰라트 이후 연구사와 신학적으로 같은 맥락에 서 있는 구약학자들의 책들, 찜멀리(1972)와 베스터만(1978)의 구약신학이 출간된 것이다. 새로 제기할 문제의 기초를 다질 표준을 얻기 위해서, 우선 부분별로 시대를 다시 구분해 보는 일이 좋을 듯 싶다.

II. 연구사

구약성서신학의 역사는 성서와 교리학의 분명한 구별을 가져왔던 Gabler로 부터 시작한다(1787)(참고로 구약과 신약의 구분을 처음으로 주장한 이는 가블러 직후인 1796년 G.L.Bauer,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에게서 였다. 이에 대해선 H.J.Kraus, Die biblische Theologie. Ihre Geschichte und Problematik, 1970, 88-91 참고). 그때로부터 제기된 논의를 요약하자면, 4가지 중요유형으로 구별된다.

1. 철학-신학적 종합 구상

19세기 가장 크게 구분이 되는 두 가지 구상이 나타나게 되었으니, 곧 '성서신학' 나아가 '구약성서신학'에 대한 철학적이거나 또는 신학적인 전체 틀을 바꾸어보려는 시도였다.

(이하 요약)Wilhelm Vatke는 1835년 헤겔의 종교철학을 받아들여, 구약성서의 종교는 정경의 책 순서에 따라 발전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Smend와 L.Peritt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고, 폰라트는 그의 구약신학 2권에서 Vatke는 성서학의 한 분류를 갖고 전체 구상의 틀을 잡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Gustav Friedrich Oehler는 1870/71; 1841; 1852-55. 구약성서 구원사의 전과정은 유기적 연관속에서, 그리고 계시의 말씀으로 점차 바뀌어나가는 상황에 대한 인식하에서 역사사건을 바라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Vatke의 철학적 사고와는 다른 신학적 전체 구상의 모델이 되었다.

2. 종교사적 구상

가블러는 성서신학을 'e genere historico'로 정의 한다. 그는 역사비평으로 불리는 '사실(wahren)'과 '순수한 것(reinen)'중 무엇이 종교의 근본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구별한다. 많은 구약학자들은 바로 이 첫 번째 것으로 한정한다. 그 첫 구상은 바로 Georg Lorenz Bauer(1796)에게로 돌려진다. 그 이후로 Hermann Schultz(1869, 1896)는 '종교사'라는 개념을 이끌게 된다. 찜멀리가 이를 가리켜 "시계의 추가 '순수 신학'의 문제로부터 '사실 신학'의 면을 세차게 두들겼다"고 지적하였다. 그 후 '종교사'란 개념은 아주 눈에 띄게 일상적인 것이 되어 사용되어졌다. 그러나 반면, 종교사학파에서는 '종교사'라는 개념은 구약성서 또는 이스라엘의 신학 또는 종교라는 전체적인 설명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3. 조직신학의 구상

구약성서신학의 재생은 이른바 30년대 조직신학의 구상에 의해 가능케 되었다. 여기에 Ernst Sellin(geb 1867)과 Ludwig Köhler가 있다.

Walter Eichrodt 와 Otto Procksch

구약신학에 새로운 논의를 이끈 것은 바로 아히히로트의 3부작: 1부: 하나님과 백성(1933), 2부: 하나님과 세계(1935) 그리고 3부: 하나님과 인간 (1939)이다. 이렇게 세 부분으로 분류한 것의 원조는 Otto Proksch 였다. 대학 강의를 통해 이미 그의 테제가 틀이 잡혔고, 그가 죽고 난 후 1950년에 가서야 비로소 그의 이런 테제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그 둘 사이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이 있었다. 아이히로트는 첫 부분에 있어서 프록쉬와 비교해 정 반대의 편에 서 있었다. 곧 '하나님과 백성'이 그 처음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먼저 다루고 그 다음에 창조에 대한 얘기를 이끈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두 번째 것인 신앙고백에 대한 것을 맨 먼저 다룬 것이다. 이는 분명 칼바르트 신학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바르트는 좀 더 명확하게 이를 설명하였다. 아이히로트는 그의 첫 번째 책을 이끌고 있는 중요개념으로 '계약'이란 단어를 취했고, 이를 통해 계약사상을 펼쳐나가는 것으로 야웨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여러 각도에서 다루었다. (이렇게 계약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을 프록쉬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아이히로트의 구상은 정적인 것으로 특징 지워 진다. 아이히로트는 계약의 정황, 계약 조항들 그리고 계약의 기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개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출애굽 사건은 단지 부수적인 것으로 말할 뿐이다. 그에 반해 프록쉬에게서는 매우 조직신학적 표현들이 보여진다.

또 다른 구상들:

아직도 여전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대부분의 구상들은 하나의 분명한 조직신학적 틀들을 갖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취하고 있는 구조들은 프록쉬와 아이히로트가 취한 것과 그리 크게 다르진 않다. Hayes와 Prussner는 인간학, 구원론(하나님, 인간, 구원)을 신학의 중요개념으로 잡았고, 이런 방법론은 폰라트 그 이전이나 이후로도 마찬가지로 유용 되고 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표현들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모로 다른 점이 있긴 해도, 이는 Köhler, Theodorus Christian Vriezen(화란어 1949, 독어 1956), Edmond Jakob(불어 1955), Walter Zimmerli(1971) 그리고 Claus Westermann(1978)에게서 나타났다.

쾰러는 '하나님의 현존'을, 프리젠은 "하나님은 유일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절대 타자"라고 말했다. 야콥은 "Le Dieu vivant, centre de la revelation et de la foi", 찜멀리는 "구약성서는 야웨의 이름을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하나님 그 자신을 신앙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바로 여기에 이스라엘 신앙의 연속성과 그 중심이 놓여져 있다고 본 것이다. 베스터만은 제1부 '구약성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2부 '구원자 하나님과 역사' 그리고 제3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과 창조'를 펼쳐나간다.

각자의 다양한 신학적 전제들의 특징들과 또 서로 어떻게 비교가 되는지를 한 눈에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폰라트 이전과 그 이후가 서로 근본적으로 어떤 차이들이 있는지를 가리켜주는 것이다. 또한 아이히로트와 프록쉬에게서 간과되었던 출애굽사건이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쾰러, 프리젠 그리고 야곱은 찜멀리와 베스터만과 매우 다른 입장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찜멀리는 '에집트에서 구원하신 야웨'를 이끌어 내었고, 베스터만은 제2부 '구원자 하나님과 역사'에서 출애굽을 새로운 단락으로 다루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1938년 폰라트의 테제인 '신조'가 나오게 되면서 연구사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신학의 기초를 다진 것이고, 이는 그후 50년간 영향을 미치게 하는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본인은 이상에서 얻은 것들을 계속 진전시키고 또한 그로부터 계속된 중요한 신학적 차이들을 언급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구원론, 법, 제의, 예언 그리고 지혜등에 관한 문제들이다.

4. 정경의 관련에서 본 구상 (폰라트)

폰라트의 구상은 지금까지 요약 기술했던 그 어떤 부류에도 속하지를 않는다. 그는 자주 '전승사'라는 개념아래 분류되곤 한다. 그렇지만 그의 기본 구상이 그 틀 안에 전체적으로 다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육경 신학'의 테제는 폰라트에게서 시작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에게 있어서 본문의 정경으로써의 모습이 어떻게 짜여져 있는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옛 '신조' 구성은 출애굽이라는 구원사건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을 통해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적으로 늦은 이스라엘의 창조신앙과 구원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창조신앙을 원역사와 함께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폰라트의 구상은 정경의 구원사 도식의 시대를 따라 그의 육경신학을 펼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정경과의 관련속에서의 구상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정경'이라는 신학적 의미에 대한 논의는 그보다 훨씬 늦은 때에 와서야 이루어지게 되었다. 폰라트 자신은 최근 한창 논쟁중인 본문에 대한 '정경의 최종형태'에 대한 생각은 하질 못했다.). 폰라트는 육경 다음으로 나오는 책들에 대해, 정경이라는 범주안에 같은 방식으로 넣을 수는 없고, 주제별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라 하고 '기름부음 받은 이스라엘'라는 제목아래서 다루었다. 이는 그의 중요 관심거리인 사사시대와 왕조시대에 따른 반영이었다. 그의 책 제2권에서는 '정경'에 대해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 한편으론 간략한 역사 서술을 하는데, 이스라엘 역사의 한 떠도는 현상으로써 예언을 다루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한편, 각각의 예언자들은 구약성서 정경인 예언서들에 따라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정경으로써의 성서 본문들이 곧 구약성서신학의 구상에 길잡이라는 것을 정리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III. 새로 추가해야 할 문제에 대하여

내가 새로이 추가하려는 것들은 여러 면에 있어서 폰라트의 견해들을 정리해야하는 것들이다.

1. 전체적 윤곽

기본적으로 구약성서내의 책들안에서 스스로 밝혀질 수 있는 신학적 개념설정들이 기본적으론 전체적인 윤곽이 되어야할 것이다. 여기서 '기본적'이라는 말은 오늘날 각각의 책들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나름대로 기본적으로 설정된 것들을 인지할 수 있는 것들, 덧붙여 그러한 정리가 신학적 관점들로 인해 늘상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제한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경'의 눈으로 보는 관점은 과도한 짐을 지울게 아니라 오히려 신학의 관점을 보려는 것이며 그렇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구약성서신학'의 문제를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 것이다. 예를 들자면, 폰라트가 말한 정경이 보여주는 구원사의 시대순 안에서, 세계 그리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신학적으로 그 전체를 조명하려는 것, 즉 창조로부터 약속된 땅에 들어가는데 까지에 대한 구상들을 보는 것이다. 이런 전체적인 구상 안에는 그 전체 시대순 뿐 아니라 각각의 여러 사건들(원역사-족장사-출애굽과 시나이-땅정복)에 대한 신학 작업들 역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는 커다란 역사집인 신명기사가의 것과 역대기사가의 작품들을 위해서는 필요한 경우 변경도 유효한 것이다.

예언서의 경우 두 가지 중요한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각각의 예언자들 또는 예언서들은 그들의 독특한 것들이 다루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폰라트가 제기했듯이, 각 책들은 자체 통일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다루어지고 고려되어져야 한다. 예언자들의 자신의 말들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문제들은 오늘날 학계에서 매우 토론의 여지가 높고 논의되어지고 있다. 각 예언자들의 선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윤곽을 잡는 것이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또한 그것뿐 아니라 현재 모습 안에서 예언서의 전체 문체들이 문제제기가 되고 있다. 아울러 예언서는 각기 상응하는 역사서술들로부터 떼어낼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알려주고 있는 표제어들로부터 읽혀져야 하고 이해되어져야 한다. 신명기사가 작품은 예언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주장들 (Klaus Koch, Das Prophetenscweigen des deuteronomistischen Geschichtswerk, in: Die Botschaft und die Boten. FS. H.W.Wolf, 115-128와 Lothar Perlitt, 'Bundesschweigen' bei den Propheten. in: ders, Bundestheologie im Alten Testament, WMANT 36, 1969, 129ff.를 참고하라.)은 오늘날 새로운 연구들에 의해 많은 점에서 그 힘을 잃고 있다.

구약성서 정경으로 굳어진 이 책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는 각각의 경우, 서로 차이나는 그 특징들에 의해 결정 지워져야 한다. 예언서들에 있어서 고려되어야할 기본 명제는, 첫째, 각 예언서들의 특징들과 신학의 윤곽들이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가능한 한 히브리 정경으로 되어지기 이전의 역사 서술들과 관련지어 다루어져야 한다.

종합적으로, 여기 다루는 개괄들은 폰라트의 방법론적 숙고들의 연속선상에서의 결과들이다. 폰라트는 개론학과 성서신학에 대한 놀라운 접근과 함께 이들의 상호 교차점들을 말한 것이었다. 내가 제기하는 구상이란 여러 서로 다른 입장들 속에서, 편집사, 구성사 또는 본문의 최종 형태에 대한 정경비평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이끌려는 것이다. 이는 최종형태에 나타나 있는 문학과 신학의 현상에 대한 것으로 다시 말해, 편집과 구성의 역사적 흐름을 통해 나타난 최종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다. 이전 본문의 모습이 현재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가를 살피는 공시적 연구 방법의 관점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질적으로 '신학이란 역사적으로 후대 이루어진 산물'이지만, 구약성서의 신학 안에 있어서 만큼 이 신학은 이스라엘 종교, 나아가 떠돌아다니는 신앙에 대한 묘사들은 가장 크게 관심을 기울일 부분이다. 여기서 최종형태에 대한 신학의 유효성을 묻는 교리적 질문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Childs는 오히려 이런 교리적 측면에서 그의 정경신학을 이끌어 나가고, Jame Barr는 이에 대해 아주 신랄한 비판을 한다.(Holy Scripture, Canon, Authority, Criticism, 1983)

2. 조직신학적 관점

하나의 구약성서 신학에 대한 여러 상이한 구상들은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로 인해 서로 부딪치고 있다. 어떻게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본문의 형태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옳게 방향을 잡아 설명할 것인가 이다. 즉 각각의 주제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처리할 문제들과 각 개념들을 어떻게 하나로 일관성 있게 정리해 나가는가의 문제이다. 프록쉬는 이런 딜레마에 대답하기 위해 그의 책을 두 부분, 즉 '역사로서의 세계'와 '사상의 세계'로 나눔으로써 해결해 보려 했다. 그렇지만 그의 뒤를 이어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 이는 나타나질 않았다. 대부분의 새로운 구약신학자들은 체계적인 전체윤곽을 잡아 개별적인 주제들과 개념들을 다루었다.

폰라트는 창조, 계명들, 희생, 야웨의 천사, 다윗계약, 정의, 하나님 말씀, 야웨의 날 등과 같은 주제들을 따로 다룸으로써 이를 전환시켰다

본인은 본문과 그 내용의 대상에 접근하는 방법에 있어서 서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이 둘을 서로 양분시킬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시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테마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야할 것이다: 하나는 구약성서 책들 또는 수집물들에 대한 '정경'으로서의 개괄/윤곽, 그리고 둘째는 그 동안의 연구사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구약성서내의 각 개별적인 주제들과 신학적 논제들을 다루는 것이다.

IV. '성서신학'?

구약성서신학이란 기독교 교의학의 산물이다. 만약 이런 생각이 일시적으로 불거진 것이라든가 완전히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기독교 신학의 원칙들이 근본적으로 늘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신학 또는 그 구상들은 표준(척도)이며 자명한 전제가 되어왔다는 것을 최소한 알 수 있다. 이런 관련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면, '종교사'라는 것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유대교의 '타나크(토라-느비임-케투빔의 앞자들로 유대교의 성서를 뜻함)신학'이란 없다"라는 것과 맞물려 있다. 이것은 우선 성서에 대해 전적으로 다른 상황, 즉 성서시대 이후 유대교 전통안에서 이루어진 것에 기초해 있다. 오늘날 현대 성서학의 생성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유대인 학자들은 단지 근동 연구가나 또는 성서 본문에 대한 역사가들로 일할 수 있었으나, 반면 기독교 신학교에서 '신학'은 독점적으로 남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런 연구사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원칙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려는 유대인 학자들은 스스로 말해야한다. 기독교 구약신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두 가지 아주 다른 관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하나는 구약성서는 기독교 성서의 한 부분이라는 것과 신약과 분명한 관련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또 다른 하나는 구약성서가 기독교 성서로 되기 이전에 이미 거룩한 '문서', 다시 말해 유대인 성서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주 빨리 배워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련에서 구약성서가 어떻게 신학적으로 풀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답변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주석가가 기독교 이전 즉, 유대교가 갖고 있었던 본문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중요하게 처리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 기독교 주석의 역사가 보여주었던 답변들을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간단하다. 왜냐하면 신약성서가 바로 판단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약으로부터 구약의 신학적 가치를 논해온 것이다. 이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다루어졌다. 구약은 신약성서를 위한 전단계로, 증거자료로 또는 길잡이 정도로 이해된 것이다(예를 들어 유형론, 기독론적으로 그리고 구원사적 도식으로). 또는 이를 극복하거나 신약성서를 위한 필요에 따른 한 모형, 또는 이방 종교에 대한 증거등으로 다루어진 것이다. 한가지 긍정적인 것으로는, '전체 성서 신학'이라는 문제를 던져볼 수 있겠다. 이는 가블러 이후 제기된 것으로 그것이 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논의가 최근에 이르러 매우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JBTh Bd.1 1986; Bd.2 1987; Bd.3 1988; Bd.4 1989; Bd.5 1990을 참고 하라.).

만약 기독교 주석가가 후대 기독교 신학의 중요성으로부터 신약을 기준으로 그리스도교 이전, 유대교 본문을 등한시 한다면 그의 과제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구약성서 본문은 우선 그것의 정경의 틀 속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로부터 새로운 해석학의 과제가 나오는 것이다. 이는 그 동안 기독교 주석사에 있어서 그 어떤 제시된 상도 없었고 단지 개론을 위한 약간의 도움만을 주었을 뿐이다.

여기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기독교 주석가는 구약성서를 유대적 상황으로부터 어떻게 이끌어내어 해석할 것이며, 이는 유대교의 주석에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이지에 대한 것이다. 여기 바로 서로간에 많은 교환들이 생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하나는 아주 새롭게 답변을 해야하는 것인데, 기독교 성서의 그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교 성서가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온 이상, 이제 여기에 실상 어떤 신학적 의미가 있는냐는 것이다. 새로운 해석학의 질문은 바로 성서의 본문이 새로 '기독교'의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기독교 주석가와, 기독교 신학 그리고 교회만으로 연관되어진다고 간단히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대교와 기독교 종교와 신학간의 상호 교환과 공통점들에 대한 문제들이 다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중 어느 하나를 택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